지난 성탄절 오후「아바타」를 봤다. 힘있는 스토리에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화면으로 3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이 짧게 느껴질 정도였다. CG에 대한 찬사나 내용에 대한 긴 설명 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로 영화에 대한 소회를 대신해도 좋을만큼.
하지만 이 감탄스러운 영화를 보는 동안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아바타」는 그동안 이 정도 규모의 헐리웃 블록버스터들이 종종 간과하거나 완성하지 못한 철학을 튼실한 스토리 안에 묵직하게 녹여내고 있다. 실사가 아닌 CG에 의해 눈 앞에 구현된 환타지의 환경과 인물, 사건들이 보고싶지 않은 현실의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까보이며 어디를 향해 가야겠느냐며 화면밖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영화의 줄거리이자 내용을 재미없는 사회적 언어로 치환하자면, '경제적 효율과 물질 만능의 개발주의가 빚어낸 폭력성에, 행동하는 양심으로 맞서 생명과 정신적 가치, 소통의 존귀함을 지켜낸다'는 것이다. 이렇게 써 놓으니 정말 재미없는 영화처럼 보이는데 영화 「아바타」는 정말 재밋다.
그런데 실사를 섞어만든 3G 만화같은 화면을 바라보고 영어와 외계어(?)가 뒤섞인 대사를 들으며, 중반부터는 마음이 뒤숭숭했더랬다. 힘은 없지만 살던 곳에서 함께 살던 이웃들과 어울려 그대로 살고싶은 나비족들의 보금자리가 포크레인으로 엉망으로 부서져 나가는 것을, 빠른 속도로 공격해오는 인간들에 대해 나비족들이 속수무책 밀려가거나 죽어가는 것을, 아바타들과 나비족들이 첨단장비에 맞서 싸워가는 것을 보면서 내내 조마조마하고 속상하더니 종래엔 눈물까지 찔금 나왔다. 연기자들도 아닌 CG의 아바타들의 비극인데, 과거도 현재도 아니고 미국도 한국도 그 어느 것도 아닌 존재한바 없는 비현실의 이야기인데, 따뜻한 극장 안에 앉아 대추리가, 용산이, 각종 뉴타운에 밀려 추운 겨울 한귀퉁이씩 뭉턱뭉턱 허물어져가는 철거지역과 그곳 사람들 생각이 났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영화의 비극은 행동하는 양심을 가진 아바타의 일조와 기도를 들어 기적을 행하는 영혼의 나무로 저지되었지만, 아바타는 고사하고 인간조차 행동하는 양심을 갖고살기 척박하고 기적을 행해줄 신(神)도 요원한 현실의 비극은 계속됨을 아는 까닭이었다.
지난 세밑 용산참사 희생자 장례식이 극적으로 타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부를 제외한 희생자 유가족이나 관련자들 누구도 납득하거나 만족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지만, 정부 만큼은 생색도 크고 만족도 높았다. 이제 머지않아 남일당도 자취를 알아볼길 없이 철거될 것이고, 아현동 등 가난한 이들이 등붙이고 살아온 다른 철거지역들도 철거되면, 그 자리는 경제적 효율성 기치아래 누군가의 뿌듯한 아파트가 되고 누군가의 위풍당당한 고층빌딩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땅에 원래 살던 이들의 존재나 그들의 절박함이나 마음은 잊혀져갈 것이다. 영화 속 아바타들도 고민하던 느리지만 소통, 당장의 복지나 경제적 효율성 보다 소중한 정신적 가치, 생명과 환경에 대한 존중을 현실에서 정치지도자나 이미 많이 가진 이들에게 기대한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인건지 마음이 답답한 연말이었다.
새해가 시작하고 나서는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밀어붙이기 문제가 다시 쟁점의 화두에 올랐다. 삼성, 웅진 같은 대기업 진출설, 대기업이나 대학에 토지를 헐값에 공급할 것이라는 정부의 방책(?), 이건희 회장의 사면이 세종시 관련 단독딜이라는 의심까지, 여러가지 예측과 전망, 의혹을 담은 보도와 칼럼들이 어지러웠다. 그런데, 정부부처의 효율을 강조하든, 경제적 자립을 강조하든, 대기업을 유치하든, 땅을 얼마에 공급하든, 그 막후에서 뭔 딜을 했던, 다른 것이 궁금하다. 현 정부는 조상대대로 살던 고향땅을 눈물겹게 내놓고 이주했던 현지 주민들을 숫자가 아니라 그 존재자체로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지, 그랫던 그들의 마음은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며 일해야 하는 공무원들의 불편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인지...그런 것들이 말이다. 한국 사회가 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효율적으로 돌려야하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많은 돈을 벌어들여야 정말 잘살게 되는 것인지를 잘 모르겠는 나는, 철모르는 것인지 몰라도 이런 것들이 궁금한 새해다.
영화 속 아바타 보다 더 약자나 소수자와의 소통에 귀기울일 줄 알고 물질보다 환경의 가치에 고민하는 정부는 바라지도 않으니, 우리 사회에 영화 속 아바타처럼 행동하는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는 2010년이었으면 좋겠다. 에잇. 이따 저녁엔 답답한 뉴스일랑 관두고, 「아바타」나 한번 더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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