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승범 고려대 연구교수(가운데)가 17일 저녁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역사에서 배우는 아프간 파병 셈법’이란 주제로 열린 23차 한겨레 시민포럼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 계승범 교수, 이제훈 <한겨레> 통일외교팀장.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제23차 한겨레시민포럼 / 아프간 파병
“노전대통령, 미국이 고마워할까 거듭 물었다” 회고도
“노전대통령, 미국이 고마워할까 거듭 물었다” 회고도
“조선시대 파병논쟁은 결국 ‘명(明)은 조선에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귀착된다.”(계승범 고려대 연구교수)
“지금의 논쟁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냐’가 본질이다.”(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
‘지음’(知音)이라 했던가.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죽이 맞았다. 한 사람은 조선 후기사를 전공한 역사학자, 또 한 사람은 청와대 안보라인에서 일했던 군사전문가. 두 사람을 맺어준 건 시대를 초월해 지속되는 비운의 역사였다. 17세기의 비극이 20세기에 재연되고 20세기의 불운이 21세기에 되풀이되는, 수난과 굴욕의 한국 외교사.
* 플레이버튼(▶)을 클릭하면 한겨레 시민포럼전문이 들립니다. ‘사대=국익’이던 시대 지났다 17일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재단에서 열린 제23차 한겨레시민포럼의 주제는 ‘역사에서 배우는 아프간 파병 셈법’이었다. 발표자 계승범 교수는 파병 문제로 고민하는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이 후금 정벌전쟁에 군대를 보내라는 명의 요청을 받고 격론을 벌이던 17세기 광해군 때와 유사하다고 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요청의 주체가 미국이며, 파병의 목적지가 만주가 아닌 아프가니스탄이란 점이다. “명이 강력한 패권국이었던 16세기였다면 파병은 논란거리가 안 됐을 겁니다. 하지만 당시는 누르하치가 만주를 평정하고 중원을 넘보던 상황이었어요. ‘사대가 곧 국익’이던 한 세기 전과는 상황이 달랐던 겁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파병을 고민하는 것은 미국과의 관계 때문인데, 과연 미국의 헤게모니가 예전만 한가요? 오히려 중국의 부상이 괄목할 만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동맹과 국익에 대한 관점도 달라져야지요.”
계 교수가 강조한 것은 동맹(사대)에 집착하지 않고 국익의 경중을 가릴 줄 아는 전략적 사고다. 조선 역사에서 파병 요청에 가장 적극적으로 응했던 16세기 중종 때조차 파병이 가져올 많은 부작용이 논의됐으며, 15세기엔 현실적 어려움을 들어 파병을 거절하기까지 했던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다. 계 교수는 또 정부가 아프간 재파병이란 중차대한 결정을 내리면서 왜 파병을 해야 하는지, 이렇다 할 설명이 없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아프가니스탄이 매우 위험한 지역이란 사실을 다 알고 있는데, ‘한국군이 주둔할 곳은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니 국민이 설득될 리 없다는 것이다. “핵심은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안보보좌관실 행정관으로 파병 논쟁을 지켜봤던 토론자 김종대 편집장은 당시의 논쟁을 ‘패권안정론 대 평화교환론’의 구도로 정리했다. 청와대 일각의 파병반대론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실질적 논쟁은 ‘패권국에 신속하게 협력함으로써 더 많은 실리를 찾자’는 적극적 파병론과 ‘파병을 통해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전향적 협조를 얻어내야 한다’는 소극적 파병론 사이에서 진행됐다는 것이다. 김 편집장은 “결국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의 절충으로 ‘아르빌 3000명 파병안’이 확정됐다”며 “하지만 당시 노 대통령은 이종석안을 승인하면서도 ‘이 정도 파병 규모로 미국이 고맙다고 할 것인가’를 거듭해 물을 만큼 미국의 존재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최근 이명박 정부가 확정한 ‘아프간 300명 파병안’에 대해서는 “엄밀히 말해 파병안이라 보기 힘들다”며 “머잖아 재파병 논의가 불거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빨리 미국에 파병 약속을 해야 한다’는 압박과 ‘대규모로 보낼 처지가 못 된다’는 현실적 상황이 맞물려 급조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정부 때와 주변 정세, 정치적 상황은 다르지만 파병을 결정하는 핵심 기준은 여전히 ‘미국이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문제”라며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건 ‘대한민국에 미국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프간 파병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른 탓인지, 객석의 질문 열기도 뜨거웠다. 한 평화운동가는 “파병으로 어떤 국익이 있냐를 따지기 전에 그 전쟁이 정당성을 갖는지를 따지는 게 우선 아니냐”고 물었다. 한 70대 방청객은 “정권이 바뀌었다지만, 전임 대통령이 철수시킨 군대를 다시 보내는 것은 국제사회에 대한 심각한 약속 위반”이라 꼬집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 플레이버튼(▶)을 클릭하면 한겨레 시민포럼전문이 들립니다. ‘사대=국익’이던 시대 지났다 17일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재단에서 열린 제23차 한겨레시민포럼의 주제는 ‘역사에서 배우는 아프간 파병 셈법’이었다. 발표자 계승범 교수는 파병 문제로 고민하는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이 후금 정벌전쟁에 군대를 보내라는 명의 요청을 받고 격론을 벌이던 17세기 광해군 때와 유사하다고 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요청의 주체가 미국이며, 파병의 목적지가 만주가 아닌 아프가니스탄이란 점이다. “명이 강력한 패권국이었던 16세기였다면 파병은 논란거리가 안 됐을 겁니다. 하지만 당시는 누르하치가 만주를 평정하고 중원을 넘보던 상황이었어요. ‘사대가 곧 국익’이던 한 세기 전과는 상황이 달랐던 겁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파병을 고민하는 것은 미국과의 관계 때문인데, 과연 미국의 헤게모니가 예전만 한가요? 오히려 중국의 부상이 괄목할 만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동맹과 국익에 대한 관점도 달라져야지요.”
계 교수가 강조한 것은 동맹(사대)에 집착하지 않고 국익의 경중을 가릴 줄 아는 전략적 사고다. 조선 역사에서 파병 요청에 가장 적극적으로 응했던 16세기 중종 때조차 파병이 가져올 많은 부작용이 논의됐으며, 15세기엔 현실적 어려움을 들어 파병을 거절하기까지 했던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다. 계 교수는 또 정부가 아프간 재파병이란 중차대한 결정을 내리면서 왜 파병을 해야 하는지, 이렇다 할 설명이 없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아프가니스탄이 매우 위험한 지역이란 사실을 다 알고 있는데, ‘한국군이 주둔할 곳은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니 국민이 설득될 리 없다는 것이다. “핵심은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안보보좌관실 행정관으로 파병 논쟁을 지켜봤던 토론자 김종대 편집장은 당시의 논쟁을 ‘패권안정론 대 평화교환론’의 구도로 정리했다. 청와대 일각의 파병반대론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실질적 논쟁은 ‘패권국에 신속하게 협력함으로써 더 많은 실리를 찾자’는 적극적 파병론과 ‘파병을 통해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전향적 협조를 얻어내야 한다’는 소극적 파병론 사이에서 진행됐다는 것이다. 김 편집장은 “결국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의 절충으로 ‘아르빌 3000명 파병안’이 확정됐다”며 “하지만 당시 노 대통령은 이종석안을 승인하면서도 ‘이 정도 파병 규모로 미국이 고맙다고 할 것인가’를 거듭해 물을 만큼 미국의 존재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최근 이명박 정부가 확정한 ‘아프간 300명 파병안’에 대해서는 “엄밀히 말해 파병안이라 보기 힘들다”며 “머잖아 재파병 논의가 불거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빨리 미국에 파병 약속을 해야 한다’는 압박과 ‘대규모로 보낼 처지가 못 된다’는 현실적 상황이 맞물려 급조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정부 때와 주변 정세, 정치적 상황은 다르지만 파병을 결정하는 핵심 기준은 여전히 ‘미국이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문제”라며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건 ‘대한민국에 미국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프간 파병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른 탓인지, 객석의 질문 열기도 뜨거웠다. 한 평화운동가는 “파병으로 어떤 국익이 있냐를 따지기 전에 그 전쟁이 정당성을 갖는지를 따지는 게 우선 아니냐”고 물었다. 한 70대 방청객은 “정권이 바뀌었다지만, 전임 대통령이 철수시킨 군대를 다시 보내는 것은 국제사회에 대한 심각한 약속 위반”이라 꼬집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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