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낮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김안제 교수는 “소주도 좋아하고 담배도 피우고 노래도 좋아한다”고 말하는 등 고희를 넘긴 나이인데도 만년 청년처럼 활기가 넘쳤다. 대화 도중 가끔 농담을 하던 그는 행정도시 문제에 대해서는 “만일 국가 전체의 균형발전을 위해 행정도시보다 더 효율적인 것이 있다면 내가 접겠다”며 원안 추진을 거듭 역설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집값 떨어질까봐 수도권 기득권층 반대 많아
행정도시 안하려면 균형발전 포기 고백해야
행정도시 안하려면 균형발전 포기 고백해야
한겨레가 만난 사람 / ‘행정수도 계획의 산증인’ 김안제 건국대 석좌교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임시행정수도 건설계획을 발표한 것은 1977년이었다. 2년 뒤 ‘철권통치자’ 박 전 대통령이 비명횡사하면서 이 정책도 함께 사라졌다. 그후 25년, 이 정책은 박 전 대통령과 정치적 성향이 크게 다른 정치인에 의해 되살아났다. 신행정수도 건설을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내건 민주당의 노무현 대통령 후보였다. 사반세기의 시차와 두 대통령 사이의 정치적 간극을 뛰어넘어 이 두 개의 행정수도 건설 정책에 모두 참여한 사람이 있다. 1977년에는 임시행정수도 건설계획인 ‘백지계획’의 자문위원 및 작업단원으로, 2004년에는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장으로 활동한 김안제(72)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석좌교수다.
지난달 27일 낮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김 교수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최대 이슈인 ‘행정도시(행정수도) 문제’를 두고 “두 번 실패를 했다”고 뼈아파했다. 김 교수는 “만일 국가 전체의 균형발전을 위해 행정도시보다 더 효율적인 것이 있다면 내가 접겠다”며 행정수도 이전의 필요성을 거듭 역설했다. 그는 또 “이 정부는 행정도시를 하지 않으려면 균형발전을 포기하고 수도권을 키우겠다고 솔직히 이야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김 교수는 또한 같은 날 밤 열린 ‘대통령과의 대화’와 관련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 참석해 이명박 대통령한테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어 정부 쪽 사람에게 이런 의사를 전했더니 ‘그냥 계시는 게 좋겠다’는 답변이 돌아오더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대통령과의 대화’가 방영된 뒤인 3일 김 교수와 추가로 전화 인터뷰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7일 밤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행정도시 수정에 대해 “죄송하다”면서도 “행정 비효율이나 자족성에 문제가 있어서 수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행정도시 건설에 반대하는 분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지만, 본말이 바뀌었습니다. 자족성과 행정 효율성을 이야기하는데, 근본적으로 왜 이것을 만들려 했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행정도시는 자족·녹색·명품 도시를 만들려는 게 아니라, 국가 균형발전을 이끄는 견인차로 만든 것입니다. 1966년부터 40년 동안 수많은 수도권 억제, 지방 발전 정책을 폈는데도 수도권의 흡입력을 못 당했습니다. 그래서 내놓은 최후의 수단이고, 극약처방입니다. 만일에 이 정부에서 행정도시 건설을 안 하려면 국민들에게 국가의 균형발전을 안 하겠다고 솔직히 이야기해야 합니다. 대신 수도권을 잘 키워서 세계에 나가 이익을 낼 테니 지방은 좀 참아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정부가 국가를 균형발전시키겠다면 다릅니다. 균형발전을 위해 행정도시보다 더 효과적인 정책이 있다면 내가 접겠습니다. 행정도시의 자족성, 행정효율성 걱정하는 것은 고마운데, 그것은 행정도시에 추가로 해달라는 것입니다.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행정도시와 국가 균형발전 정책을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공동 업적으로 남기자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행정도시 건설 반대자들은 행정도시가 대통령 선거에서 포퓰리즘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노 전 대통령이 “행정수도 공약으로 선거에서 재미 좀 봤다”고 말한 것이 그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야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겨냥해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고 있고, 그렇게 생각하는 국민들도 있습니다.
“행정도시 건설 반대자들은 노 전 대통령이 ‘재미를 봤다’고 이야기한 것을 자주 인용합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릅니다. 정치라는 것은 국민의 마음을 정확히 읽고 그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2002년 선거에서 신행정수도 건설이라는 공약은 노무현 후보 개인의 생각이 아닙니다. 국민들 마음속에 있는 것, ‘이랬으면 좋겠다’, ‘이런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을 정확히 짚어서 공약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고 당선에 영향을 준 것입니다. 거꾸로 어떤 대통령 후보가 선거 때 독도를 일본에 줘버리겠다고 공약하면 표가 나오겠습니까? 수도권의 과밀이나 지방의 발전에 대한 국민들의 여망이 수십년 쌓여왔는데, 노 대통령이 그것을 짚은 것입니다. 국민들이 마음속으로 원하는 일을 선거에 활용했는데, 이것을 포퓰리즘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사실 이명박 대통령도 그런 국민들의 마음을 읽었기 때문에 선거 때 행정도시 건설을 그대로 하겠다고 약속한 것 아닙니까?”
-김 교수께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행정도시의 계획 과정에 모두 참여했습니다. 특히 노무현 정부 때는 추진위원장으로서 역할이 컸는데, 최근 불거진 행정도시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매우 착잡합니다. 두 번 실패를 했습니다. 1977년에 박 전 대통령이 ‘서울과 수도권을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된다. 지방은 고갈되고 수도권은 과밀하다. 수도권을 억제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때 서울 인구가 500만명이었고, 이호철 선생의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가 그해 나왔습니다. 당시 청와대에 임시행정수도 건설단이 만들어져 3년 동안 300여명의 공무원·교수·연구원·전문가들을 동원해 기본계획과 설계, 투자계획 등을 세웠습니다. 세월이 흘러 노무현 정부 때 이 정책이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수도 이전이 관습헌법상 위헌이라는 이상한 결정이 나서 ‘수도’는 빠지고 입법부·사법부는 그대로 있는 상태로 상당수의 행정부처를 옮기기로 했던 것입니다. 제가 지금 이 정부의 사람들이 행정도시 건설을 반대하는 원인을 분석해봤습니다. 첫째로는 노무현 정부 때 행정수도와 행정도시에 대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청구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이 정부의 핵심에 있습니다. 권력이 없을 때도 위헌이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는데 가만히 있겠습니까?” 이 대목에서 “그 사람들이 누구냐”고 묻자 김 교수는 “그걸 말하기는 그렇다”고 말했다. 당시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람 가운데 이 정부에 참여한 대표적인 이는 최상철 지역발전위원장(당시 수도이전반대 국민연합 대표), 김형국 녹색성장위원장, 이석연 법제처장(당시 변호인) 등이다. 헌법소원 청구인단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헌법소원을 강력히 지지했던 사람으로는 이명박 대통령(당시 서울시장),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당시 한나라당 의원), 김문수 경기지사(당시 한나라당 의원) 등이 있다. “둘째로는 기득권층이 있습니다. 정부, 기업, 언론사에 있는 사람들은 행정부처가 서울에 있는 걸 좋아합니다. 이들은 행정도시로 옮기면 잘될지, 자신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지 의심스러워합니다. 또 서울 사람들이 입으로는 지역 균형발전이 백년대계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자신의 집값이 떨어지면 속으로는 섭섭할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수도권에는 (행정도시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고 봐야 합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행정수도를 옮겨도 서울에 경제적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당시에도 나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행정수도를 지방으로 옮기면 수도권의 집값, 땅값, 물가가 내려가고 지방은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앞사람이 세운 정책을 뒤에서 빛내주는 것을 꺼리는 이유도 있다고 봅니다. 앞사람의 일을 바꾸고 부정하고 자신의 업적을 새로 세우려 하는 것이죠.” 이 대목을 이야기하면서 김 교수는 담배를 피워도 되느냐고 물었다. 원래는 흡연이 허용되지 않는 회의실이었다. 그러나 김 교수의 답답하고 씁쓸해하는 표정을 보고도 그 부탁을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김 교수는 줄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이어갔으나 답답해하는 표정은 가시지 않았다. -대통령과 총리, 정부 관계자들은 자족기능이 부족해 행정도시를 안 한다고 하는데요? “정 총리를 비롯해 이 정부의 이야기가 행정도시가 도저히 자족도 안 되고 인구 50만명도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행정기능을 빼고 연구기능이나 포항이나 구미, 울산같이 기업을 넣어서 자족도시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자족도시는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행정도시는 자족 가능한 신도시 하나를 더 만들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으로는 서울의 과밀을 지방으로 끌어당길 힘이 안 생깁니다. 한국은 아직도 중앙집권·행정중심적 성격이 강해서 행정이 가야 다른 것도 따라갑니다. 행정도시가 건설되면 서울로 오려 했던 개인이나 기업들이 원래 있던 곳에 그대로 있거나 다른 지방으로도 갈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이 정부의 전문가들도 잘 알고 있지만, 감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장 힘있는 사람과 이 문제에 대해 대담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 불러 주겠지요.”(웃음) -행정도시는 수년간 논란과 검토 끝에 이뤄진 것입니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서 갑작스레 이야기가 나오더니 불과 한두 달 만에 수정하려고 하는데요. 황당한 일입니다만, 정권이 바뀌면 이런 일이 생길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까? “행정도시는 일회용 정책이 아니기 때문에 대비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기본계획, 실시설계, 투자계획 등을 마련했고, 대통령 임기 말에 기공식까지 했습니다. 그때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못을 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이 정부에 들어가서 대못을 뺀다고 난리치고 있습니다.”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에서 행정도시를 교육과학 중심 경제도시로 바꾸기로 사실상 결정했습니다. 행정도시 이전의 핵심인 행정부처 이전을 백지화한다는 뜻이기도 한데요? “안 됩니다. 그런 도시를 만들면 자족만 될 뿐입니다. 행정을 기본으로 해서 과학·기술·교육·녹색을 넣는 것은 원계획에도 다 들어가 있습니다. 자족기능을 어떻게 마련할지도 원안에 다 정해놨습니다. 그러나 행정을 빼면 원래의 국가 균형발전은 안 될 것입니다.” 자족 신도시 하나 만들어서는 흡인력 안생겨
행정비효율? 서울과밀 비효율과 비교도 안돼 -행정도시 수정론의 또하나의 근거가 행정 비효율인데, 이것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원래 계획대로면 2012년부터 행정부처가 이전하는데, 행정의 비효율·불편이 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크게 보면 행정의 비효율은 서울의 과밀로 인한 국가 전체의 비효율과는 전혀 비교가 안 되는 것입니다. 서울 과밀의 비효율이 더할 수 없이 큰 것이죠. 또한 행정에서 비효율이 발생한다면 이를 극복하는 길을 찾는 게 더욱 현명한 일입니다. 행정절차와 회의, 행사를 간소화하고, 전화나 영상을 이용하면 됩니다. 행정도시 건설의 목표는 결코 행정 능률의 향상이 아닙니다. 행정도시 반대자들은 행정부처가 내려가면 행정도시에서 일하고 서울로 올라와야 해서 불편하다고 합니다. 정말 그게 문제라면 장관들이 아니라, 주로 대통령이 행정도시로 가면 됩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행정부만 오라 가라 하는 국회의 오만한 행태를 고쳐서 국회의원들이 행정도시로 찾아가 일을 보게 하면 됩니다. 장기적으로도 행정 불편이 계속된다면 대통령과 입법부까지 다 옮기면 됩니다. 노무현 정부 때 위헌 결정이 나서 대통령이 못 가게 됐지만, 개인 의견으로는 헌법에 수도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대통령이 세종시로 옮겨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또 그것도 문제라면 개헌을 해서 옮기면 됩니다.” -통일 이후를 생각하면 지금 큰돈 들여서 행정도시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통일이 언제 됩니까? 2012년에 된다고도 하고, 20년 이상 더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통일이 내일쯤 된다면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언제 될지도 모르고, 수도권 과밀과 지방 쇠퇴라는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집니다. 전체 인구의 49%가 수도권 인구입니다. 이로 인한 부작용과 비용이 큰데, 통일 뒤에 해결하려면 더 힘이 들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통일 뒤에 중부의 서울과 남부의 세종, 북부의 평양에 중추기능을 적절히 두면 좋겠습니다. 세종시도 살리고, 평양도 살릴 수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행정도시와 혁신도시를 토지를 통째로 매입해서 새로 만드는 신도시 방식으로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비용이나 기간, 환경, 기존 도시 공동화, 부동산 투기 등을 고려하면 기존 도시 안에 만드는 신시가 방식이 낫지 않았을까요? 그랬다면 노 전 대통령 임기 안에 거의 다 이전할 수 있었을 텐데요? “신도시 방식은 땅이 많이 필요하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봤습니다. 행정도시를 신시가 형태로 건설한다면 대전과 공주가 있는데, 기존 도시에 매몰돼 신선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기존 도시의 낡은 지역을 재개발하더라도 어차피 주민들의 원성은 나옵니다. 사람도 적고 땅값도 싼 데를 찾다 보니 연기로 결정하게 됐습니다.” 정리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김 교수께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행정도시의 계획 과정에 모두 참여했습니다. 특히 노무현 정부 때는 추진위원장으로서 역할이 컸는데, 최근 불거진 행정도시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매우 착잡합니다. 두 번 실패를 했습니다. 1977년에 박 전 대통령이 ‘서울과 수도권을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된다. 지방은 고갈되고 수도권은 과밀하다. 수도권을 억제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때 서울 인구가 500만명이었고, 이호철 선생의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가 그해 나왔습니다. 당시 청와대에 임시행정수도 건설단이 만들어져 3년 동안 300여명의 공무원·교수·연구원·전문가들을 동원해 기본계획과 설계, 투자계획 등을 세웠습니다. 세월이 흘러 노무현 정부 때 이 정책이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수도 이전이 관습헌법상 위헌이라는 이상한 결정이 나서 ‘수도’는 빠지고 입법부·사법부는 그대로 있는 상태로 상당수의 행정부처를 옮기기로 했던 것입니다. 제가 지금 이 정부의 사람들이 행정도시 건설을 반대하는 원인을 분석해봤습니다. 첫째로는 노무현 정부 때 행정수도와 행정도시에 대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청구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이 정부의 핵심에 있습니다. 권력이 없을 때도 위헌이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는데 가만히 있겠습니까?” 이 대목에서 “그 사람들이 누구냐”고 묻자 김 교수는 “그걸 말하기는 그렇다”고 말했다. 당시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람 가운데 이 정부에 참여한 대표적인 이는 최상철 지역발전위원장(당시 수도이전반대 국민연합 대표), 김형국 녹색성장위원장, 이석연 법제처장(당시 변호인) 등이다. 헌법소원 청구인단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헌법소원을 강력히 지지했던 사람으로는 이명박 대통령(당시 서울시장),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당시 한나라당 의원), 김문수 경기지사(당시 한나라당 의원) 등이 있다. “둘째로는 기득권층이 있습니다. 정부, 기업, 언론사에 있는 사람들은 행정부처가 서울에 있는 걸 좋아합니다. 이들은 행정도시로 옮기면 잘될지, 자신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지 의심스러워합니다. 또 서울 사람들이 입으로는 지역 균형발전이 백년대계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자신의 집값이 떨어지면 속으로는 섭섭할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수도권에는 (행정도시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고 봐야 합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행정수도를 옮겨도 서울에 경제적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당시에도 나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행정수도를 지방으로 옮기면 수도권의 집값, 땅값, 물가가 내려가고 지방은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앞사람이 세운 정책을 뒤에서 빛내주는 것을 꺼리는 이유도 있다고 봅니다. 앞사람의 일을 바꾸고 부정하고 자신의 업적을 새로 세우려 하는 것이죠.” 이 대목을 이야기하면서 김 교수는 담배를 피워도 되느냐고 물었다. 원래는 흡연이 허용되지 않는 회의실이었다. 그러나 김 교수의 답답하고 씁쓸해하는 표정을 보고도 그 부탁을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김 교수는 줄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이어갔으나 답답해하는 표정은 가시지 않았다. -대통령과 총리, 정부 관계자들은 자족기능이 부족해 행정도시를 안 한다고 하는데요? “정 총리를 비롯해 이 정부의 이야기가 행정도시가 도저히 자족도 안 되고 인구 50만명도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행정기능을 빼고 연구기능이나 포항이나 구미, 울산같이 기업을 넣어서 자족도시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자족도시는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행정도시는 자족 가능한 신도시 하나를 더 만들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으로는 서울의 과밀을 지방으로 끌어당길 힘이 안 생깁니다. 한국은 아직도 중앙집권·행정중심적 성격이 강해서 행정이 가야 다른 것도 따라갑니다. 행정도시가 건설되면 서울로 오려 했던 개인이나 기업들이 원래 있던 곳에 그대로 있거나 다른 지방으로도 갈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이 정부의 전문가들도 잘 알고 있지만, 감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장 힘있는 사람과 이 문제에 대해 대담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 불러 주겠지요.”(웃음) -행정도시는 수년간 논란과 검토 끝에 이뤄진 것입니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서 갑작스레 이야기가 나오더니 불과 한두 달 만에 수정하려고 하는데요. 황당한 일입니다만, 정권이 바뀌면 이런 일이 생길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까? “행정도시는 일회용 정책이 아니기 때문에 대비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기본계획, 실시설계, 투자계획 등을 마련했고, 대통령 임기 말에 기공식까지 했습니다. 그때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못을 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이 정부에 들어가서 대못을 뺀다고 난리치고 있습니다.”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에서 행정도시를 교육과학 중심 경제도시로 바꾸기로 사실상 결정했습니다. 행정도시 이전의 핵심인 행정부처 이전을 백지화한다는 뜻이기도 한데요? “안 됩니다. 그런 도시를 만들면 자족만 될 뿐입니다. 행정을 기본으로 해서 과학·기술·교육·녹색을 넣는 것은 원계획에도 다 들어가 있습니다. 자족기능을 어떻게 마련할지도 원안에 다 정해놨습니다. 그러나 행정을 빼면 원래의 국가 균형발전은 안 될 것입니다.” 자족 신도시 하나 만들어서는 흡인력 안생겨
행정비효율? 서울과밀 비효율과 비교도 안돼 -행정도시 수정론의 또하나의 근거가 행정 비효율인데, 이것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원래 계획대로면 2012년부터 행정부처가 이전하는데, 행정의 비효율·불편이 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크게 보면 행정의 비효율은 서울의 과밀로 인한 국가 전체의 비효율과는 전혀 비교가 안 되는 것입니다. 서울 과밀의 비효율이 더할 수 없이 큰 것이죠. 또한 행정에서 비효율이 발생한다면 이를 극복하는 길을 찾는 게 더욱 현명한 일입니다. 행정절차와 회의, 행사를 간소화하고, 전화나 영상을 이용하면 됩니다. 행정도시 건설의 목표는 결코 행정 능률의 향상이 아닙니다. 행정도시 반대자들은 행정부처가 내려가면 행정도시에서 일하고 서울로 올라와야 해서 불편하다고 합니다. 정말 그게 문제라면 장관들이 아니라, 주로 대통령이 행정도시로 가면 됩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행정부만 오라 가라 하는 국회의 오만한 행태를 고쳐서 국회의원들이 행정도시로 찾아가 일을 보게 하면 됩니다. 장기적으로도 행정 불편이 계속된다면 대통령과 입법부까지 다 옮기면 됩니다. 노무현 정부 때 위헌 결정이 나서 대통령이 못 가게 됐지만, 개인 의견으로는 헌법에 수도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대통령이 세종시로 옮겨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또 그것도 문제라면 개헌을 해서 옮기면 됩니다.” -통일 이후를 생각하면 지금 큰돈 들여서 행정도시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통일이 언제 됩니까? 2012년에 된다고도 하고, 20년 이상 더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통일이 내일쯤 된다면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언제 될지도 모르고, 수도권 과밀과 지방 쇠퇴라는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집니다. 전체 인구의 49%가 수도권 인구입니다. 이로 인한 부작용과 비용이 큰데, 통일 뒤에 해결하려면 더 힘이 들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통일 뒤에 중부의 서울과 남부의 세종, 북부의 평양에 중추기능을 적절히 두면 좋겠습니다. 세종시도 살리고, 평양도 살릴 수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행정도시와 혁신도시를 토지를 통째로 매입해서 새로 만드는 신도시 방식으로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비용이나 기간, 환경, 기존 도시 공동화, 부동산 투기 등을 고려하면 기존 도시 안에 만드는 신시가 방식이 낫지 않았을까요? 그랬다면 노 전 대통령 임기 안에 거의 다 이전할 수 있었을 텐데요? “신도시 방식은 땅이 많이 필요하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봤습니다. 행정도시를 신시가 형태로 건설한다면 대전과 공주가 있는데, 기존 도시에 매몰돼 신선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기존 도시의 낡은 지역을 재개발하더라도 어차피 주민들의 원성은 나옵니다. 사람도 적고 땅값도 싼 데를 찾다 보니 연기로 결정하게 됐습니다.” 정리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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