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일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맨 왼쪽)가 9일 오후 서울 혜화동 한성대 에듀센터에서 열린 ‘박정희 시대의 재평가’ 경제사회 분야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박정희 시대 재평가 토론회] 경제분야
경제학자들은 박정희 체제의 ‘지속불가능성’에 주목했다. 단기간에 뚜렷한 양적 성과를 거둔 것은 맞지만 체제의 작동방식 자체가 ‘지속가능성’을 결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교수가 볼 때 박정희 체제는 ‘항상적 위기에 시달리는 체제’였다. 국내 저축이 부족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추진된 자본축적 전략은 인플레와 국제수지 적자 문제를 상존시켜, 개별 기업들 뿐 아니라 국가 경제 시스템 전체가 안팎의 위기에 취약한 구조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단명할 수밖에 없는 체제가 20년 가까이 지탱했으니 부작용이 없을 리 없다. 흥미로운 사실은 유 교수가 오늘날 양극화의 연원을 박정희 체제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가장 큰 실책으로 ‘양극화’를 꼽는 진보진영 주류의 시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유 교수는 “민주정부 아래서 진행된 양극화를 개탄하는 것은 옳지만, 이런 지적은 박정희 시대에는 양극화가 없었다는 논리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고 말한다.
유 교수가 제시하는 것은 198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변화해온 분배 지표들의 추이다. 자료들은 불평등(지니계수)·양극화(ER지수) 지표 모두 1980년대 높은 수준에서 완만한 하락세를 보이다가 노태우 정부 시절인 90년대 초반 상승세로 반전하는 추세를 보여준다. 무엇이 상황의 반전을 가져온 것일까.
유 교수에 따르면 노동운동이 활성화되자 대기업이 고용회피 전략을 구사하면서 제조업 고용비중이 감소한 게 한 요인이요, 또 하나는 재벌 기업의 시장지배력이 강화되면서 고용의 절대다수를 감당하는 중소기업 부문이 피폐화되고, 이에 따라 기업 양극화, 소득 양극화가 심화된 탓이다. 유 교수는 “양극화 저변에는 재벌중심 성장과 적대적 노사관계가 핵심 문제로 자리잡고 있는데, 이는 박정희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란 점에서 양극화의 연원은 박정희 시대에서 찾아야 한다”고 단언한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 역시 박정희 체제의 ‘지속불가능성’에 주목하는데, 그 핵심에는 재벌체제가 자리잡고 있다. “박정희 체제를 붕괴시킨 것은 체제의 최대 수혜자였던 재벌이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박정희 체제의 경제적 성공은 ‘정부→금융→재벌→노동’으로 이어진 수직적 자원배분 시스템 덕이다. 이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재벌의 과대성장과 노동운동의 조직화를 불러 심각한 위협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성공의 역설’이다.
특히 차입금에 기초해 외형확장 위주로 이뤄진 대규모 설비투자는 중화학공업분야에서 대기업집단의 급격한 성장을 가져왔다. 이 과정에서 모습을 드러낸 재벌은 1980년대 후반 3저호황 국면을 계기로 독점자본으로 성장하면서 정부와 대립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재벌 합리화를 위한 최소한의 정부개입조차 무력화하면서 국민경제의 왜곡과 축적위기를 가중시키게 되는데, 1997년 외환위기는 자본시장 개방을 통해 축적위기를 돌파하려다 맞게 된 필연적 결과라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문제는 박정희 체제의 가장 큰 수혜자인 재벌의 지배력이 오늘날 박정희 신화를 지탱하는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재벌은 박정희 신화 속에서 스스로 신화가 됐다”며 “박정희 체제의 진정한 극복을 위해서는 재벌 신화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재벌중심 ‘반짝 성장’…오늘날 양극화 유산남겨”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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