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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 방응모, 문화계 안익태 등 논란 인물들 포함
민족문제연 “학문적 증명 자신…후손도 과오 인정을”
민족문제연 “학문적 증명 자신…후손도 과오 인정을”
8일 세상에 나온 <친일인명사전>의 ‘뜨거운 감자’는 역시 박정희 전 대통령, 장면 전 국무총리, 김성수 전 부통령 등 한국 현대사의 유력 인사들의 친일 행적 문제였다.
그동안 이들의 친일 여부를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이 끊이지 않았는데, 친일인명사전의 발간이 이런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는 선정 기준의 객관성과 사료를 통한 학문적 증명에 자신감을 표시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친일 행적(3쪽 분량)은 마지막까지 논란의 대상이었다. 그의 아들 박지만(51)씨는 마지막까지 ‘게재·배포금지 가처분 신청’ 등을 법원에 내며 사전의 발간을 막았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는 ‘만주국군 혈서 지원’을 증명하는 1939년 <만주신문> 기사를 내놓으며 ‘객관성 논란’에 정면으로 대응했다.
‘시일야방성대곡’이란 제목의 사설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고발했던 장지연은 오히려 다른 대상자들의 2~3배에 이르는 6쪽 분량으로 친일 행적이 정밀하게 공개됐다. <황성신문> 주필을 지낸 그는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항일 언론인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910년 중반부터 일본을 “동양의 선각”이라고 치켜세운 반면, “(조선인은) 단체성이 없는 인종이 되고 말았다”고 비난하는 글과 한시를 잇따라 실었다.
‘소극적 부일협력자’라는 시비를 낳았던 장면 전 총리의 친일 행적도 상세히 기록됐다. 사전은 그에 대해 “1938년 2월 ‘조선지원병 제도 제정 축하회’의 천주교 쪽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 ‘국민정신 총동원 천주교 경성교구 연맹’을 창설할 때 간사를 맡았다”고 기록했다.
현재 독립유공자(건국훈장 대통령장)로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동아일보> 창업주 김성수의 친일 전력도 상세히 기술됐다. 그는 3·1 운동에 참가했고, 동아일보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을 했다. 하지만 사전은 그가 1937년 보성전문학교 교장에 취임한 뒤, 중-일 전쟁 등을 홍보하는 시국강연에 잇따라 나섰다고 밝혔다. 또 1943년 8월5일치 <매일신보>에 ‘대의에 죽을 때 황민 됨의 책무는 크다’라는 제목으로 “의무를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일본군 입대를 독려한 것으로 나타난다.
일제강점기 당시 잡지 <조광>의 발행인과 <조선일보> 사장 등을 지낸 방응모는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한 ‘경성군사후원연맹’의 위원으로 활동했고, ‘전시봉공’을 목적으로 하는 ‘임전대책협의회’에도 참여한 것으로 기록됐다. 또 그는 <조광>에 실은 글에서 “대동아 전쟁을 반드시 이기기 위해 군관 당국을 절대 신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경찰에 복무했던 친일 행위자들도 많았다. 사전은 일본군 헌병 오장 출신으로 이승만 대통령 시절 특무대장(지금의 기무사령관에 해당)을 지낸 김창룡에 대해 “조선과 중국의 항일조직을 정탐하는 임무를 맡았고, 1943년부터 2년간 50건이 넘는 항일조직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문화·예술계에선 시인 서정주 등 익히 알려진 인사들의 행적이 낱낱이 기록됐다. 사전은 서정주가 “시·소설·잡문·평론 등을 통해 일제에 협력했다”고 밝혔다. 그는 1944년 <매일신보>에 발표한 ‘송정오장 송가’라는 제목의 시에서 한국인 첫 ‘가미카제’(전투기 자살특공대) 전사자를 추모하며 “소리 있이 내리는 고운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이라고 읊었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는 일본 왕의 즉위식에 쓰이는 축하곡 ‘에텐라쿠’를 만들어 줬고, 무용가 최승희는 ‘내선일체’를 선전하기 위한 무용 공연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군·경찰·밀정 등 식민통치 폭압기구의 복무자들과 지식·문화예술인, 출세형 협력자들에게 더 엄중하고 가혹한 책임을 물었다”며 “후손들은 역사와 사회정의 실현에 동참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문화·예술계에선 시인 서정주 등 익히 알려진 인사들의 행적이 낱낱이 기록됐다. 사전은 서정주가 “시·소설·잡문·평론 등을 통해 일제에 협력했다”고 밝혔다. 그는 1944년 <매일신보>에 발표한 ‘송정오장 송가’라는 제목의 시에서 한국인 첫 ‘가미카제’(전투기 자살특공대) 전사자를 추모하며 “소리 있이 내리는 고운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이라고 읊었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는 일본 왕의 즉위식에 쓰이는 축하곡 ‘에텐라쿠’를 만들어 줬고, 무용가 최승희는 ‘내선일체’를 선전하기 위한 무용 공연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군·경찰·밀정 등 식민통치 폭압기구의 복무자들과 지식·문화예술인, 출세형 협력자들에게 더 엄중하고 가혹한 책임을 물었다”며 “후손들은 역사와 사회정의 실현에 동참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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