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언론법 결정’ 살펴보니]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대리투표 조목조목 밝혀
“입법과정 제안 설명·질의 토론 생략도 위법”
학계 “절차 정당성 부정하며 실체 인정” 비판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대리투표 조목조목 밝혀
“입법과정 제안 설명·질의 토론 생략도 위법”
학계 “절차 정당성 부정하며 실체 인정” 비판
헌법재판소는 한나라당의 언론관련법 강행처리에 대해 “심의·표결권 침해”라며 칼을 뽑아들었지만, 결국 법안 가결을 무효화하지 않은 채 칼집에 도로 집어넣었다. 헌법학계 일각에서는 헌재가 ‘정치적 절충점’을 찾으려고 헌법재판소법이 부여한 권한을 스스로 축소 행사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 재투표·대리투표 인정 지난 7월22일 방송법 1차투표 집계 결과 출석 정족수(148명)에 3명 모자란 것으로 나타나자, 김형오 국회의장을 대리한 이윤성 국회부의장은 투표 종료를 선언해놓고도 재투표를 실시했다. 한나라당은 ‘출석 정족수 미달이기 때문에 부결이 아니라 표결 불성립’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출석 정족수와 찬성 정족수는 따로 구분되지 않으므로 출석 정족수가 미달됐다면 ‘부결 확정’으로 봐야 하고, 부결된 의안을 재표결한 것은 특정 법안을 같은 회기에 다시 처리할 수 없다는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또 “전자투표 표결은 투표 종료 선언으로 결과가 집계되고 종료된다”며 이 부의장의 투표 종료 선언으로 법안이 부결된 게 확실하다고 밝혔다. 일부 재판관들은 “출석 정족수는 의결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부결이 아닌 불성립”이라는 일부 재판관들의 반대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다수 의견은 “그렇다면 출석 정족수를 만족할 때까지 몇 번이고 재표결을 할 수 있다는 논리”라고 반박했다. 한나라당이 ‘남의 투표 단말기에 손을 뻗기만 했다’며 잡아뗐던 신문법 대리(무권)투표 사실도 인정됐다. 헌재는 “하나의 투표함에 정당한 투표와 그렇지 않은 투표가 혼재돼 신뢰할 수 없는, 투표함 자체가 오염된 상황과 유사하다”며, 그 근거로 △대리투표로 의심받을 행위들이 있었고 △민주당 의원들이 한나라당 의원 의석에 앉아 반대 투표를 했다는 점을 거론했다. 반면 일부 재판관은 “인정되는 무권투표는 3건에 불과해 실제 표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의견을 냈다. 헌재는 제안 설명이나 질의토론 등 절차 생략의 위법성도 지적했다. 이런 절차들은 “표결 절차와 마찬가지로 의사 결정에서 생략할 수 없는 핵심 절차로 입법 절차의 본질적 부분이고, ‘표결의 민주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필수불가결하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 정치적 타협의 결과? 헌재는 권한쟁의심판 판단과, 문제가 된 법률을 무효화할지는 다른 문제라는 이유로 언론관련법 가결·선포의 효력을 무효화하지 않았다. 일부 재판관들은 “헌법적으로 요청되는 예외적 경우”에만 법을 무효화해야 한다는 논리로, 또다른 일부 재판관들은 “헌재의 재량”에 속한 것이라는 명분으로 모순된 결정에 동참했다. 헌재 관계자는 “헌재는 신문법, 방송법의 유·무효를 판단한 것이 아니라, 이를 판단해 달라는 청구를 기각한 것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또 “한 재판관이 신문법과 방송법에서 서로 다른 결론을 내는 등 쟁점마다 의견이 어지럽게 갈렸다. 정치적 판단이 아닌 법리적 판단을 했다는 방증”이라며 “헌재가 법안 가결·선포를 무효라고 선언한다 해도 곧바로 법안 자체가 무효가 되는지는 또다른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야당과 시민단체는 물론 법학계와 법조계에서도 ‘정치적 판단’이라며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김승환 전북대 교수(헌법학)는 “국회가 자율적 판단을 하지 못해 헌재로 사건이 넘어왔는데 다시 국회로 보내버렸다”며 “헌재는 법률안 처리의 ‘절차적 정당성’은 부정하면서도 ‘실체적 정당성’은 인정하는 모순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논평에서 “국회법을 위반해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에게 부여된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권한인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면 이는 당연히 위헌이고 무효일 수밖에 없다”며 “이번 결정은 법리적으로 논리모순일 뿐이며, 헌재의 존재 의의마저 스스로 부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 재투표·대리투표 인정 지난 7월22일 방송법 1차투표 집계 결과 출석 정족수(148명)에 3명 모자란 것으로 나타나자, 김형오 국회의장을 대리한 이윤성 국회부의장은 투표 종료를 선언해놓고도 재투표를 실시했다. 한나라당은 ‘출석 정족수 미달이기 때문에 부결이 아니라 표결 불성립’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출석 정족수와 찬성 정족수는 따로 구분되지 않으므로 출석 정족수가 미달됐다면 ‘부결 확정’으로 봐야 하고, 부결된 의안을 재표결한 것은 특정 법안을 같은 회기에 다시 처리할 수 없다는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또 “전자투표 표결은 투표 종료 선언으로 결과가 집계되고 종료된다”며 이 부의장의 투표 종료 선언으로 법안이 부결된 게 확실하다고 밝혔다. 일부 재판관들은 “출석 정족수는 의결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부결이 아닌 불성립”이라는 일부 재판관들의 반대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다수 의견은 “그렇다면 출석 정족수를 만족할 때까지 몇 번이고 재표결을 할 수 있다는 논리”라고 반박했다. 한나라당이 ‘남의 투표 단말기에 손을 뻗기만 했다’며 잡아뗐던 신문법 대리(무권)투표 사실도 인정됐다. 헌재는 “하나의 투표함에 정당한 투표와 그렇지 않은 투표가 혼재돼 신뢰할 수 없는, 투표함 자체가 오염된 상황과 유사하다”며, 그 근거로 △대리투표로 의심받을 행위들이 있었고 △민주당 의원들이 한나라당 의원 의석에 앉아 반대 투표를 했다는 점을 거론했다. 반면 일부 재판관은 “인정되는 무권투표는 3건에 불과해 실제 표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의견을 냈다. 헌재는 제안 설명이나 질의토론 등 절차 생략의 위법성도 지적했다. 이런 절차들은 “표결 절차와 마찬가지로 의사 결정에서 생략할 수 없는 핵심 절차로 입법 절차의 본질적 부분이고, ‘표결의 민주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필수불가결하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 정치적 타협의 결과? 헌재는 권한쟁의심판 판단과, 문제가 된 법률을 무효화할지는 다른 문제라는 이유로 언론관련법 가결·선포의 효력을 무효화하지 않았다. 일부 재판관들은 “헌법적으로 요청되는 예외적 경우”에만 법을 무효화해야 한다는 논리로, 또다른 일부 재판관들은 “헌재의 재량”에 속한 것이라는 명분으로 모순된 결정에 동참했다. 헌재 관계자는 “헌재는 신문법, 방송법의 유·무효를 판단한 것이 아니라, 이를 판단해 달라는 청구를 기각한 것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또 “한 재판관이 신문법과 방송법에서 서로 다른 결론을 내는 등 쟁점마다 의견이 어지럽게 갈렸다. 정치적 판단이 아닌 법리적 판단을 했다는 방증”이라며 “헌재가 법안 가결·선포를 무효라고 선언한다 해도 곧바로 법안 자체가 무효가 되는지는 또다른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야당과 시민단체는 물론 법학계와 법조계에서도 ‘정치적 판단’이라며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김승환 전북대 교수(헌법학)는 “국회가 자율적 판단을 하지 못해 헌재로 사건이 넘어왔는데 다시 국회로 보내버렸다”며 “헌재는 법률안 처리의 ‘절차적 정당성’은 부정하면서도 ‘실체적 정당성’은 인정하는 모순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논평에서 “국회법을 위반해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에게 부여된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권한인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면 이는 당연히 위헌이고 무효일 수밖에 없다”며 “이번 결정은 법리적으로 논리모순일 뿐이며, 헌재의 존재 의의마저 스스로 부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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