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송(50)씨
첫 개인전 연 미술평론가 김진송씨
평론가이자 ‘목수 김씨’로 알려진 김진송(50·위 사진)씨가 작가로서 화단에 명함을 내밀었다. 그는 ‘불안’(잠보다 깊은 욕망·아래)을 제목으로 서울 신문로2가 성곡미술관에서 22일까지 첫 개인전을 열고 있다.
전시장은 마치 중세시대의 어느 시점에 온 듯한 착각을 준다. 그의 그림에는 죽음과 섹스 등 불안을 말하는 상징과 알레고리가 넘친다. 단어가 조합된 텍스트처럼 그림들은 관객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온다. 마치 문맹자를 위해 성경의 내용을 표현한 이콘화나, 꺼져가는 촛불 등으로 인생무상을 이야기하는 바니타스 그림과 흡사하다. 예컨대 ‘한낮의 정사’. 흐트러진 침대, 물기를 머금은 꽃, 문밖으로 나가는 뱀, 날개를 편 독수리 등이 한 화면에 들어가 섹스 뒤의 불안함이 화폭 가득하다. 그림의 이야기는 관객과 관객의 대화를 이끌어내 전시장은 단연 활기가 넘친다.
소설 평론집 펴낸 인기작가이자 목수
“끄적거리기·그리기·만들기 모두 같아”
이미지만 남은 미술판…이야기 담아 ‘옛소’ 하고 툭 던져놓은 듯 하지만, 보면서 호박씨를 까든말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오만함 가운데 아주 오랫동안 준비한 치밀함이 겹쳐져 있다. 말로는 딱 1년 반 동안 준비했다는데, 그림은 아주 어려서부터 그렸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끄적거리기, 그리기, 만들기를 했다. 이 세 가지는 나한테 따로 구별되지 않는다.” 보통사람들이 장르를 구분해 나눌 뿐 그한테는 똑같았다는 것. 국문학과 미술사를 공부한 김씨는 자기 이름으로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장미와 씨날코> <목수, 화가에게 말을 걸다>를 썼고, 자기 이름을 뒤집은 ‘장 그노스’란 이름으로 <인간과 사물의 기원>이란 소설을 썼다. 문화비평, 역사, 소설을 넘나들었던 것. 더불어 ‘목수 김씨’의 손 끝에서 나무들은 형상을 얻어 온갖 아름다운 가구가 되었다. 그러니 그의 말과 실제가 하등 다르지 않다. 옛 선비들이 추구하던 시-서-화 일체의 세계에다 목수까지 얹혀 있는 모양새다. “10년 넘게 목수일을 하다보니 두통과 관절염이 생겼다. 이제는 몸이 힘들어서 못하겠다.” 김씨는 그림이 팔만으로 하는 일이니 육체적으로 목수일의 10%면 가능하더라고 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지금의 미술판이 못마땅하다고 했다. 미술이 이미지에서 이야기를 배제하는 쪽으로 바뀌어 지금처럼 재미없는 ‘현대미술’이 되었다는 것이다. 작가들이 새로운 스타일만을 추구하는 것이 지긋지긋하고 모두들 동어반복을 하는 것도 지겹다는 것. 그러면서 화단은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 김씨의 관점이다. “미술 작품은 관객과의 대화가 근본이다. 나는 그림에서 잃어버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제 목수 김씨를 화가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02) 737-7650. 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끄적거리기·그리기·만들기 모두 같아”
이미지만 남은 미술판…이야기 담아 ‘옛소’ 하고 툭 던져놓은 듯 하지만, 보면서 호박씨를 까든말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오만함 가운데 아주 오랫동안 준비한 치밀함이 겹쳐져 있다. 말로는 딱 1년 반 동안 준비했다는데, 그림은 아주 어려서부터 그렸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끄적거리기, 그리기, 만들기를 했다. 이 세 가지는 나한테 따로 구별되지 않는다.” 보통사람들이 장르를 구분해 나눌 뿐 그한테는 똑같았다는 것. 국문학과 미술사를 공부한 김씨는 자기 이름으로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장미와 씨날코> <목수, 화가에게 말을 걸다>를 썼고, 자기 이름을 뒤집은 ‘장 그노스’란 이름으로 <인간과 사물의 기원>이란 소설을 썼다. 문화비평, 역사, 소설을 넘나들었던 것. 더불어 ‘목수 김씨’의 손 끝에서 나무들은 형상을 얻어 온갖 아름다운 가구가 되었다. 그러니 그의 말과 실제가 하등 다르지 않다. 옛 선비들이 추구하던 시-서-화 일체의 세계에다 목수까지 얹혀 있는 모양새다. “10년 넘게 목수일을 하다보니 두통과 관절염이 생겼다. 이제는 몸이 힘들어서 못하겠다.” 김씨는 그림이 팔만으로 하는 일이니 육체적으로 목수일의 10%면 가능하더라고 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지금의 미술판이 못마땅하다고 했다. 미술이 이미지에서 이야기를 배제하는 쪽으로 바뀌어 지금처럼 재미없는 ‘현대미술’이 되었다는 것이다. 작가들이 새로운 스타일만을 추구하는 것이 지긋지긋하고 모두들 동어반복을 하는 것도 지겹다는 것. 그러면서 화단은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 김씨의 관점이다. “미술 작품은 관객과의 대화가 근본이다. 나는 그림에서 잃어버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제 목수 김씨를 화가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02) 737-7650. 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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