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공안기록까지 뒤져 기소증거로 법정제출
사면 불구 ‘공안 사범’ 행적 보관…사찰 의혹도
사면 불구 ‘공안 사범’ 행적 보관…사찰 의혹도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해 6월26일 이아무개(41·여)씨는 서울 정부중앙청사 뒤편 도로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행진에 참가했다가 불법 집회를 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검거됐다.
당시 이씨를 수사한 서울 강남서는 이씨의 성별과 주민등록번호, 본적과 주소 그리고 직장과 직위, 범죄사실 등을 모두 아울러 ‘시위사범 전산입력 카드’를 작성했다. 경찰은 이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씨의 부모와 형제, 남편 등 모든 가족의 공안기록까지 조회했다. 그 결과, 이씨의 아버지와 남편이 공안사범으로 처벌받았다는 기록이 나왔다. 경찰은 이씨의 시위사범 카드에다 남편과 아버지의 해묵은 공안사범 기록을 첨부해 기소의 근거 자료로 법정에 제출했다.
최규식 민주당 의원은 11일 이런 내용을 공개하며 “시위 참가자 가족의 공안기록까지 샅샅이 뒤지고 이를 기소의 증거자료로 법정에 제출하는 것은 사실상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연좌제’에 해당한다”며 “이런 위헌적이고 반인권적인 행태가 누구의 지시로 얼마나 광범위하게 저질러졌는지 진상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사람 등에 대해, “공안사범에 대한 자료의 처리에 준하여 전산 처리한다”는 내용이 담긴 ‘공안사범자료관리규정’ 17조에 근거해 수사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최 의원은 “이 규정이 군사독재 시절인 1981년 법적 근거도 불분명한 채 대통령 훈령으로 만들어진 것일뿐더러, 대한민국의 어떤 법 규정에도 헌법이 보장한 연좌제 금지 규정을 위반하여 가족의 공안기록까지 뒤져 수사하고 법정에 제출하는 것이 합법이라는 규정이 없다”고 반박했다.
또 이씨의 아버지와 남편의 공안사범 조회 리스트에선 정치인과 민간인에 대한 ‘사찰’ 의혹도 감지된다는 게 최 의원의 주장이다. 이씨의 아버지와 남편은 각각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을 지낸 이아무개씨와 이인영 전 국회의원이다. 이들은 민주화 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이미 사면을 받은 상태다. 하지만 공안사범 조회 리스트엔 이들이 각각 몇 건의 공안범죄를 저질렀는지 등은 물론이고, 아버지 이씨가 1976년 유신체제 아래서 ‘민주구국선언문’을 유포해 체포됐다는 점과 이 전 의원이 고려대 총학생회장 시절 4·19 묘역에서 학생 시위를 주도했다는 사실까지 여전히 기록돼 있다.
특히 이 리스트는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코드’로 가득 차 있다. 이 리스트는 ‘시찰사항’이란 문항에서 이씨의 아버지와 이 전 의원을 각각 현시찰 유별 ‘65’, ‘80’이라는 숫자로 분류하고 있다.
경찰이 공안사범 조회 리스트 등 시위·공안사범으로 분류해 축적한 자료가 얼마나 되는지, 이 자료가 수사와 재판에 얼마나 활용돼 왔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 최 의원은 “현시찰 유별 코드의 의미를 밝히고, 현재 시찰하고 있는 대상이 얼마나 되는지, 어떻게 관리하는지 진상을 밝혀야 한다”며 “법적 근거 없이 축적하고 있는 자료를 즉시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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