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간 김대중 전 대통령 주치의를 지낸 장석일 박사는 “김 전 대통령 재임중에 암에 걸렸다는 등의 소문이 나돌았지만 모두 틀린 것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휴일에도 관저에서 일을 할 정도로 워커홀릭이었다. 다만, 임기 말 신장 기능이 떨어져 투석이 필요했지만 김 전 대통령이 원치 않아 퇴임 이후에야 신장 투석을 했다”고 말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하니TV ‘더 인터뷰’와 함께하는 한겨레가 만난 사람]
김대중 전 대통령 주치의 장석일 박사
김대중 전 대통령 주치의 장석일 박사
지난 8월18일 아침,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 앞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씨가 물었다. “어떻게 되실 것 같습니까?” 장석일(53·성애병원 원장)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제는 옆에 와서 계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희호씨는 무슨 뜻인지 알아챘다. 병실에 올라가 옷을 갈아입은 뒤 다시 중환자실로 내려왔다. 그리고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했다. 장 박사가 기억하는 김 전 대통령 부부의 마지막 이별 장면이다. 그날 오후 1시43분 김 전 대통령은 영면했다. 장석일 박사는 김 전 대통령의 청와대 입성과 퇴임,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를 옆에서 지켜본 몇 안 되는 인사 중 한 사람이다. 1990년 10월, 지방자치제 도입을 내걸고 단식농성을 벌이다 건강이 악화한 ‘야당 총재 김대중’을 그는 처음 만났다. 김 전 대통령 재임 시절엔 청와대 의무실장과 대통령 주치의를 지냈고, 퇴임 뒤에도 동교동 주치의로 줄곧 김 전 대통령을 보살폈다. 장 박사를 만나, 숱한 ‘건강 논란’ 속에서도 비교적 건강하게 장수했던 김 전 대통령의 공개되지 않은 얘기를 들었다. -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가 국민들에겐 좀 갑작스럽다는 느낌이 있었는데요, 지난 6월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에 참석하신 이후로 건강이 나빠졌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 서거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준 건가요? “충격이 온 건 사실이죠. (영결식장에서) 더운 날 낮에 장시간 앉아계신 것 자체가 힘들었죠. 또 (신장) 투석을 오래 하다보면 근육이 많이 풀어지기 때문에 움직이는 데 힘들어하셨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몸 상태가 조금씩 다운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주치의로서 김 전 대통령이 연세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신 뒤 언제 ‘다시 일어나지 못하시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까, 그리고 이런 생각을 이희호 여사에겐 언제 얘기하셨습니까?
“연령이 80세를 훨씬 넘으셨고, 신장 투석을 오래하셔서 입원하실 때 이미 면역기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폐렴의 예후가 좋지 않을 거로 예상을 했습니다. 입원 3일째 인공호흡기를 달면서 위기가 오기 시작했는데, 1주일 후 다행히 인공호흡기를 뗐습니다. 극적으로 회생하시겠다 싶었는데, 폐색전증이 오면서 그때는 회생하시는 게 힘드실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여사님은 강한 신앙의 힘으로 희망을 버리지 않으셨기에 그걸 깰 수는 없었습니다. 돌아가시는 날(8월18일) 오전에 여사님이 중환자실에서 대통령님을 면회하시고는 제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되겠느냐”고. 그래서 “이제는 옆에 와서 계셔야겠습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여사님께서 무슨 뜻인지 알아채시고 옷을 갈아입으시곤 다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우시기 시작했습니다.” -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되실 때 이미 고령(73살)이셨는데요, 그래서 선거운동 과정은 물론이고 청와대에 입성한 뒤에도 건강에 대해 숱한 의혹에 시달렸습니다. 대장암 말기라느니, 걷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느니 하는 소문이 돌았는데요, 재임 시절 김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는 어땠습니까. “물론 고령이셨죠. 그래서 선거운동 때엔 건강진단서까지 공개했구요, 여러 신문사에서 취재를 해서 홍역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건강진단서에 적힌 내용은 틀린 게 없습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함에 있어 문제가 없을 것으로 사료된다”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실제로 대통령님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을 하셨습니다. 워커홀릭이라고 할 정도로, 일요일이나 공휴일에도 일정만 없었을 뿐 관저에서 집무를 계속했습니다. 건강 때문에 뭔가를 못한 건 없습니다. 다만 때때로 루머(소문)가 돌아 저도 상당히 당혹스러웠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두번 병원에 입원했다. 2002년 4월 대퇴부 염좌(허벅지 근육통)와 위장 장애로, 그해 8월엔 기관지염으로 청와대 부근 국군서울지구병원에 입원했다. 경복궁 맞은편 삼청동의 국군서울지구병원은 군 병원으로 역대 대통령들이 자주 이용해 ‘대통령 전용병원’이라 불린다. 1979년 10·26 사태 때 총에 맞은 박정희 대통령이 운명한 곳도 이 병원이었다. 김 전 대통령의 입원 사실은 두차례 모두 언론에 공개됐다. 건강을 둘러싼 소문이 커졌지만, 당시 청와대는 “과로로 인한 것일 뿐 건강에 심각한 이상은 없다”고 밝혔다. 90년 단식농성 때 첫 인연…임종까지 지켜봐
임기 말 신장투석 권유에 “재임 중 안하겠다” - 2002년 김 전 대통령이 병원에 입원하실 때 구체적으로 건강 상태는 어땠습니까? 또 두 차례 외에 비공개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신 적은 없습니까? “두 차례 입원은 발표된 게 거의 팩트(사실)입니다. 4월엔 방에서 넘어지셔서 (허벅지에 이상이 와서) 입원했고, 8월엔 기관지염 때문이었습니다. 폐렴까지는 가지 않은 단계였습니다.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8월에 입원하신 동안에 장대환 국무총리 서리가 첫 국무회의를 주재했는데, 회의를 잘했다고 흡족해하셨습니다. 새 총리 서리의 첫 국무회의니 자신이 꼭 참석해야겠다고 고집을 부리시는 바람에, 과로하면 안된다고 쉬시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 삼청동 국군서울지구병원은 대통령 전용병실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2002년 4월 김 전 대통령이 처음 이 전용병실을 이용했을 때 시설이 굉장히 낡고 좋지 않아 역정을 냈고, 이 때문에 리노베이션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사실 지구병원 입장에선 좀 억울한 면이 있어요. 오래 전에 만들어놓은 대통령 전용병실인데, 주목적은 건강검진 때 잠깐 쉬시도록 하자는 개념이었습니다. 저도 직접 보고 규모도 작고 이렇게 낙후될 수가 있을까 깜짝 놀랐습니다. 일반 종합병원 특실보다도 훨씬 작았죠. 그러니 대통령께서 굉장히 역정을 내셨어요. 어떻게 대통령 병실이 이렇게 일반 병원보다 못하느냐고 상당히 화를 내셨죠. 그래서 리노베이션을 했습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긴 했지만, 사실 몇십년간 병실 손을 안봐서 낙후됐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삼청동 국군서울지구병원은 다른 데로 이전될 뻔했다. ‘굳이 막대한 예산과 인원을 쓰면서 대통령 전용병원을 청와대 근처에 둘 필요가 있느’냐’는 이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었다. 그러나 청와대 경호처와 국방부의 강한 반대로 이전 방침은 철회됐고, 병원은 그 자리에 살아남았다. - 청와대 근처에 대통령 전용병원이 꼭 있어야 합니까. 국군서울지구병원의 이전 철회결정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결론적으로 저는 잘했다고 봅니다.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건 특권에 관한 문제가 아니고요, 우리나라의 국가적인 여러 측면에서 볼 때 간과해선 안되는 게 ‘보안’입니다. (대통령 건강상태가) 너무 노출이 되면 국가적으로 손실입니다. 민간병원은 전산화가 잘되어 있어 (자료 유출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뇌 사진에 관한 보도가 있었는데, (민간병원이라면) 사진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충분히 유출될 수가 있죠. 얼마 전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조깅하다 졸도를 했을 때 군 병원으로 급히 후송되어서 회복을 했습니다. 그때 자세한 설명은 없이 그냥 ‘좋아졌다’는 발표만 나왔습니다. 그런 면에서 (청와대에서) 가까운 거리에 그런 시설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 대통령 건강은 언제나 국민의 관심사입니다. 대통령이 감기에 걸려서 일정을 취소하면 그게 곧 중요한 뉴스로 취급됩니다. 이런 이유로 한국이나 미국이나 대통령의 건강을 솔직하게 국민에게 알리지 않는다, 건강이 나빠도 감추는 경향이 있다는 의혹이 항상 제기됩니다. 대통령 주치의로 계실 때 정말 김대중 전 대통령 건강상태를 100% 국민에게 솔직하게 공개하셨습니까? “가려서 해야지요. 그 당시에는 청와대 비서실장, 대변인과 상의를 해서 발표를 했습니다. 어떤 사실을 숨긴다기보다는 그 사실을 발표함에 있어서 조금 충격을 완화시키는 정도였습니다. 비밀이란 게 감출 수가 없죠. 김 전 대통령이 대단하신 게, 그런 건 있는 그대로 (발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큰 갈등은 없었지만, 표현상에 기술적인 문제는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김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 줄곧 신장 투석을 받으셨는데요, 재임 중에도 이미 신장 투석이 필요하다는 추정이 있었거든요. 보도는 되지 않았지만, 저도 개인적으로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은 그게 감춘 사항 중 하나였습니다. 일부러 불안을 야기할 필요는 없었으니까요. 조금씩 조금씩 콩팥 기능이 나빠지셨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가 여러 가지 노력을 해서 우리가 예측한 시간보다 투석을 해야 하는 시점이 많이 연기가 됐습니다. 2002년 퇴임하시기 직전에 TV 화면을 보면 느끼셨겠지만 (김 전 대통령 얼굴이) 약간 푸석하고 오히려 살이 쪄보인다고 할까요, 사실은 좋지 않으셨습니다. 밥맛도 없어 하시고요. 그런 여러 가지가 있어서 (임기 말에) 투석을 권유했습니다. 이제 하셔야겠습니다 그랬는데도 재임기간 중에는 안하시겠다고 해서 (퇴임 후로) 연기를 했죠.” - 투석을 하면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걸려 국정운영에 소홀해지니까 거절하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의료진은 “투석은 빨리 하면 좋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끝까지 버티시겠다고 해서…. 아주 혼신의 힘을 다해서 일을 하셨습니다.” ‘물속 걷기’ 권유했더니 수영장 옆 사우나로만
이희호씨 방미 때 짧은 한복치마도 의료진 의견 - 김 전 대통령이 그런 면에서 정신력이 강하시네요. “대단하시죠. 정신력도 강하고 국가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너무 강했습니다.” - 김 전 대통령은 1971년 대선 때 의문의 교통사고로 다리를 저시고, 그래서 운동을 거의 못하셨을 텐데요, 그럼에도 85살까지 정정하게 장수하신 거 같습니다. 평소 김 전 대통령의 건강유지 비결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게 참, 운동을 잘 안하십니다. 기껏 하시는 게 도수체조 정도, 일종의 스트레칭이죠. 간단히 하시고요. 다리가 불편하니까 청와대 계실 때는 휠체어 타는 모습을 가급적 안보이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긴 동선일 때는 휠체어 타시고, TV 화면이 비칠 때는 서시고 하셨는데요. 그래서 운동으로 권해드린 것이, 청와대 경내에 수영장이 있습니다. 수영장에서 물 속에서 걸으시라고. 그래서 물속에서 걷는 것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물속에서 걷는 건 잠깐이고, 거기 붙어 있는 사우나 에서 더 오래 계셨죠. 그래서 운동하시는 날이면 경호실장과 나는 바깥에 물론 항상 대기하고 있었는데, 2시간 가량 대기하는데 그 시간이 참 길었습니다. (건강하신 건) 타고난 체질인 것 같습니다. 음식을 잘 드시고, 여러 가지 생각이 많으시긴 한데 잘 정리를 하시구요. 여러 번 제게 사석에서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모든 면은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좋은 점을 배열해보고, 나쁜 점도 배열해 보면 거기에서 위안을 삼을 수 있다. 실망할 것만은 아니다. 그렇게 해서 잘 이겨나간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이겨나간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집중력으로 버티신 것으로 보여집니다.” - 대통령제와 내각제 국가를 비교하면, 국가원수의 건강을 보살피는 수준이 아주 다른 거 같습니다. 가령 청와대엔 앰뷸런스가 24시간 대기하지만, 내각제인 일본에선 총리관저에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대통령제 국가와 내각제 국가에서 국가원수의 건강을 책임지는 수준이 어떻게 다른지 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다 본 것은 아니지만, 제일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다자간 정상회담이다. 그러니까 아셈(ASEM)이나 에이펙(APEC) 이런 데를 가보면 알 수 있습니다. 미국, 우리나라, 인도네시아 같은 대통령제 국가는 의무팀이 숫자도 많고. 특히 미국은 더 많이 (의료진이) 근접해서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데 내각책임제의 총리 주치의들은 무슨 역할을 하는지 잘 모르겠고, (총리의) 옆자리에 별로 없습니다. 아마 총리는 수시로 바뀌니까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구요, 또 그런 사례가 지금은 많이 개선됐다고 들었습니다. 몇년 전 오부치 일본 총리가 관저에서 뇌경색증이 와서 병원으로 후송됐는데 그때 앰뷸런스가 없어서 치료 자체가 늦어졌고, 그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는 확실히 내각책임제는 총리 건강을 체크하는 게 대통령제보다 느슨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 청와대에서 대통령 또는 가족이 갑자기 몸이 아파 앰뷸런스를 이용해 병원에 가신 적이 있습니까? “네. 딱 한번 있습니다. (김 전 대통령) 임기 시작하고 두 달이 지났을 때입니다. 1998년 4월26일 일요일이었습니다. 일요일 오전이라 저는 교회 예배를 보고 집사람과 시장을 보고 있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빨리 관저로 들어와야 되겠다”고 하는데, 내용은 잘 얘기를 안하려고 해요. 영부인(이희호 여사)이 서재에서 의자에 앉다가, 의자가 바퀴달린 것이었는데, 그것이 미끄러지면서 엉덩방아 찧으셨는데 굉장히 아파하신다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들어가면서 국군서울지구병원 병원장을 대기시키고, 우리 의무실에 정형외과 군의관을 대기시켰습니다. 같이 가서 봤더니 골절 의심이 되는데 그걸 확인하려면 엑스레이를 찍어야 겠더라구요. 그래서 처음으로 앰뷸런스를 관저 경내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한달 전에 앰뷸런스의 구급침대를 다 교체했었습니다. (청와대에) 들어와서 보니까 앰뷸런스 자체가 일반 민간병원에서 쓰는 수준이 아니었고, 요즘은 119 구조대가 환자를 후송할 때 침대를 빼면 자동적으로 바퀴다리가 밑으로 내려와서 사람이 끌고 가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것도 없었습니다. 사람이 들어야 하는 것이었어요. 경호실장이 협조를 잘해줘서 교체를 했는데, 다행히 교체한지 한 달도 안 되서 그것을 쓰게 됐습니다. 그 이후로 쓴 일은 없습니다. 다행이죠. 사실 (앰뷸런스를) 쓰면 안 되죠.” - 그 당시에 그런 일은 언론에 공개가 안됐죠? “영부인이 입원하신 건 발표를 했습니다. 고관절이 부러져 인공관절치환술을 했다고. 그날이 4월26일이었는데, 왜 문제가 되냐면 6월에 임기 시작한 뒤 처음으로 미국 국빈방문이 예정돼 있었거든요. 클린턴 대통령 초청으로 가는데 영부인이 갈 수 있겠느냐, 휠체어를 타고 가야 하는 거 아니냐 이런 게 아주 큰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재활을 열심히 하셔서 5월5일 행사엔 휠체어를 타고 참석하셨지만 6월6일 출국하실 때는 걸어서 가셨습니다. 다만 넘어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치마를 짧게 입으셨습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여사님께서 오해를 받으셨습니다. 한국 전통한복의 치마를 짧게 해서 멋없게 입었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사실 이것은 의료진의 권유였습니다. 치마에 걸려서 넘어지면 안된다, 그러니까 한복이지만 발이 드러나는 그런 짧은 치마를 입으셨던 겁니다.” - 건강 때문에 짧은 치마를 입으신 건데, 패션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으셨던 거군요? “네. 우리 전통 고전미를 없앴다고 해서 그랬죠.” - 외국 국가원수가 우리나라를 방문할 때도 외국 국가원수의 건강을 청와대 의료팀이 책임지나요? “청와대 의무실에서 군의관이 나갑니다. 그쪽에서도 의무팀이 오는데, 이쪽의 편의를 위해 앰뷸런스 1대와 군의관, 간호장교가 나갑니다.” - 우리나라에서 와서 응급실을 이용하거나 아주 긴박한 의료상의 사태에 직면했던 외국 국가원수 가 있습니까? “국민의 정부 때 있었던 일은 아니구요, 저도 청와대에 들어와서 여러 가지 사례에 대한 스터디를 했는데, 노태우 대통령 집권 초기니까 1988년쯤이겠네요. 콜롬비아 대통령이 국빈 방문을 했는데,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배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알래스카 미 공군기지에서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이상이 없다”고 해서 (한국까지) 오셨습니다. 그런데 배가 계속 아프고 복막염 증세가 나타나니까 국립의료원으로 가서 검사를 했다가 거기서 복막염 확진을 받고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국빈 방문 일정이 복막염 치료와 회복 일정으로 바뀌게 됐죠. 그 당시에 처음엔 우리나라에서 수술을 안 하겠다고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대에서 수술을 잘 받고 가셨고, 나중에 수술진을 초청해 훈장도 주고 굉장히 칭찬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 우리나라 의료 수준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도 되었겠네요. “네, 그렇습니다.” - 일반 국민이 많이 궁금해 하는 사항인데요, 대통령은 뭔가 특별하게 건강관리를 받지 않느냐는 생각을 합니다. 가령 대통령이 감기에 걸리면 국민이 먹는 것과 같은 약을 먹는지, 실제로 몸이 아프거나 감기에 걸리거나 피곤해하실 때 일반 국민과 다르게 특별하게 처치되는 요법이라든가 약이 있습니까? “그런 게 있을 게 없죠. 똑같은 치료인데요. 약도 약국 가서 사와야 하는 것이고. 다만 치료를 최선을 다해서 하고, 제일 거기에 적합하고 좋은 약을 골라 씁니다. 의료보험 제제를 받지 않으니까 충분히 약을 제대로 잘 쓸 수 있다는 이점은 있을 수 있겠죠. 제일 좋은 약을 쓴다는 거는 있겠지만, 일반 국민과 다른 처방을 하는 건 현대 의학에서는 있을 수 없죠.” - 처방 받아서 먹는 약은 일반 국민이 약국에서 받는 약과 다르지 않은 것이네요? “네. 다르지 않죠. 다만 최선을 다해서 치료했고, 가장 좋은 약을 쓴다는 것이죠.” 평양방문 전 “의료준비 잘 하라” 거듭 주문
김정일 국방위원장 환대에 조금씩 긴장 풀려 - 혹시 외부의 지지자나 후원자가 좋은 음식을, 가령 산삼 같은 걸 청와대로 보내올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그런 외부의 보양식품을 청와대에서 접수하면 대통령에게 드리나요? 아니면 사전에 검사를 합니까? “김 전 대통령께서 연세는 많으셨지만, 과학적인 것에 근거를 두는 걸 첫째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효능이) 입증되지 않은 것엔 미련이 없으셨습니다. 과학적이냐, 근거가 있느냐를 먼저 따졌죠. 보양식품이라고 하는 건 사전에 검사를 했죠. 독극물 검사, 그리고 여러 가지 중금속 검사를 다 합니다.” - 김 전 대통령이 특별히 보양식을 즐겨드신 건 없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대통령은 보양식을 즐겨하지 않았습니다. 식사 위주로 했습니다. 이번에 (서거하신 다음에) 좀 마음이 불편한 것은, (연세세브란스에) 입원하시고 한동안 흡입성 페렴 때문에 식사를 하지 못하셨습니다. 1주일 만에 회복됐을 때 하신 말씀이 “회가 먹고 싶다. 배가 고프다”는 거였는데, 그걸 못 드셨습니다. 바로 그 다음날 폐색전증이 생겼기 때문에 다시 중환자실로 내려가셨습니다. 튜브를 통해 위장에 액체 상태의 음식을 집어넣었지만 식사를 다시는 하지 못하셨습니다.” - 대통령 주치의는 조선시대로 치면 어의라 할 수 있습니다. 박사님이 내과니까 웬만한 것은 보시겠지만, 모든 병을 다 치료하짐 못할텐데, 분야별로 자문의사를 두고 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조직에 보면 주치의라는 것은 일반 병원에서 말하는 주치의와 개념과 다릅니다. 대통령 주치의란 의전적인 형태로 1명만 둡니다. 코디네이터죠. 그리고 분야별로 자문교수단을 구성합니다. 우리 때도 각 파트별로, 내과도 여러 분야니까, 심장내과 신장내과 내분비내과 이런 식으로 나눠서 자문교수단을 구성을 했습니다. 필요할 때는 (해당 분야의) 그 분을 모셔다가 진료하게 하고 자문도 받고 합니다. 자문교수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 청와대 경내에 진료소가 있어서, 그 진료소로 자문교수를 불러서 진료를 받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관저 바로 앞에 의무실이 있고 그 안에 진료실이 있습니다.” - 대통령들은 주로 어느 과 진료를 많이 받나요? “허허. 어디 과라고 생각하세요?” - 글쎄요. 뭐 내과... “통계로 보니까 치과가 제일 많습니다. 대개 50대 이상이 되면 치과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특히나 국민의 정부 시절에 진료를 하러 자문교수가 오신 횟수를 따져볼 때 가장 많은 것이 치과였습니다. 그런데 (진료실) 구조상 치과 진료실의 방이 내과 진료실 방보다 굉장히 작게 되어 있습니다. 처음 생각할 때 조금 잘못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내과 수요가 많을 것으로 생각하고 내과 진료실을 크게 지었는데 치과 진료가 많았다는 것이네요? “네. 그렇습니다.” - 의사에게는 환자의 비밀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대통령에게도 과연 그런 의무 준수가 필요하냐는 논란이 있습니다. 대통령은 모든 국민의 관심을 받는 국가원수이기 때문에, 대통령 건강만은 100% 가리는 것 없이 국민에게 공개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미국도 특히 많습니다. 존 에프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같은 경우 재임 시에 건강상태에 대한 많은 의혹 제기가 있었고, 실제로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아팠다는 내용이 사후 20년이 지난 다음에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주치의로서, 의사로서 대통령 건강에 대해 국민의 알권리와 환자의 비밀 준수 의무 가운데 어느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 입장엔 변함이 없습니다. 제가 의사이고 의사로서의 윤리가 있습니다. 맡은 환자에 대한 비밀, 신체상의 비밀이나 진료상의 비밀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다른 이유에서의 (국민) 알권리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판단이 필요하겠죠. 그러나 제 입장에서는 비밀을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청와대 주치의로 계실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일은 어떤 게 있습니까? “제일 기억에 남는 사건은 아까 말씀드렸듯이 임기 시작 2달 만에 여사님 수술을 하시게 된 겁니다. 그 때 비상이 걸렸고, 그로 인해 저도 다니던 교회를 바꿔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일요일날 (청와대로) 돌아오는 20여분의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그날 수술도 잘 되고 해서, 미리 짜놓았던 자문교수단이 잘 가동이 됐죠. 마취과, 정형외과, 그 분야에서 맡아서 했던 분들이 그대로 (수술을) 하도록 했고. 물론 수술장비는 모두 성애병원에서 다 가져가서, 보조 간호사까지 다 국군서울지구병원으로 가서 했죠. 그런데 지구병원 수술실이 그 당시에는 무균 수술실이 아닌 상태였기 때문에 집도의는 상당히 꺼렸습니다. 겁도 나고. 감염이 되면 안 되니까요. 그 이후에 지구병원 수술방은 무균 수술실로 아주 새롭게 됐습니다. 그 다음에는, 대통령께서는 비가 많이 오거나 하면 운동도 안하시고 수영장에서 목욕(사우나)이나 운동하시는 것조차도 않고, 태풍이 불거나 하면 관저에서 꼭 반드시 체크를 하시고 기다리십니다. 그런 게 어떻게 보면 꼭 신앙과 같았기 때문에 옆에서 느끼는 게 많았습니다. 과연 저런 정신으로 해야겠구나…, 우리 대통령은. 그 다음에, 저는 의사로서 기억에 남는 게 의약분업입니다. 나중에 (왜 저한테 먼저 물어보지 않았느냐고 김 전 대통령께) 여쭤보니까, 장 박사가 반대할 것 뻔히 알고 있기에 의약분업 해도 좋으냐 말으냐, 여기에 대한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 말을 안하셨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실 대통령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부담을 많이 갖고 계셨습니다. 바로 (의약분업) 시행을 해야 하느냐 하는 것을 두고요. 누구나 다 느끼겠지만 2000년 6월 평양을 방문했던 것도 인상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그때 공군1호기를 타고 같이 평양에 내렸는데요, 사실은 저의 원적이 평양이에요. 태어난 건 남쪽이지만 저희 집도 이북에서 피난나온 상태였기 때문에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남북관계가) 지금과 같은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상당히 긴장하고 갔죠. 대통령께서도 저를 따로 보자고 해서, 3번 정도를 잘 준비해서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평양 가실 때는 의료 부분에서도 잘 준비해서 가자고 하시면서 챙기시고, 사실 걱정이 좀 됐죠.” - 굉장히 긴장하셨겠어요, 대통령도. “네. 그렇습니다. 긴장이 많이 됐었습니다. 그런데 가서, 백화원 초대소에 가보니까 대접이 다르더라구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 자리에서 뭐라 했냐면, 모든 건 자기를 믿으라고. 잘 모시고 잘 계시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일종의 보증수표가 됐죠. 그 다음부터는 조금씩 조금씩 긴장이 풀렸지만은 상당히 긴장을 하고 갔습니다.” - 그 당시 북한 음식은 대통령의 입에 맞았나요? “맞죠. 북한은 조미료라는 것을 쓰지 않고 천연 상태로 만드는데, 상당히 북한의 경제 수준에 비해서는 음식 나오는 수준이, 물론 국빈 만찬은 다 좋게 하지만 굉장히 좋았습니다. 김치도 그렇고. 여러 가지 맛있는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맛있게 잘 드셨고. 또 성과가 있었기 때문에 기분도 좋으셨습니다. 다만 6월이어서 날이 좀 더웠는데요, 에어컨을 너무 세게 트니까, 우리 대통령이 에어컨을 싫어하시거든요. 근데 방의 온도가 너무 추우니까 첫날 약간 감기가 오려고 해서 조금 긴장을 했습니다. 물론 그냥 지나가긴 했습니다만.” (정리=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인터뷰/박찬수 부국장 pcs@hani.co.kr, 정리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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