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낮 인천 서구 석남동의 한 오락실 게임기의 버튼 부분에 네모난 ‘딱따구리’(버튼 자동 누름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왼쪽 사진) 서울 강서구의 한 불법오락실에서 40~50대 성인들이 16일 밤, 이런 장치가 설치된 어린이용 오락기 앞에서 경품이 쏟아지길 기대하며 오락기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가운데) 오락실 직원이 오락기에 불법 환전을 할 수 있는 경품을 채워넣고 있다.(오른쪽)
시간당 10만원 날리고
싸구려 경품만 쥐어
“단속 경찰들에 뒷돈
월 5백만원~2천만원”
싸구려 경품만 쥐어
“단속 경찰들에 뒷돈
월 5백만원~2천만원”
[현장] 갈수록 교묘해지는 ‘사행성 오락’
20일 낮 12시, 인천 서구 석남동의 상업단지에 있는 한 오락실. 1층 구석의 전자오락실은 ‘○○게임랜드’라는 여느 오락실처럼 보이는 외부 광고판과 달리, 통유리 전체를 가려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일요일 낮인데도 40~50대 성인 남녀들만 7~8명이 앉아 있었다. 어린이는 한 명도 없었다. 30여대의 전자오락기에는 모두 배에서 포탄을 쏘아 상대편 전함 등을 맞히는 게임 한 종류만 돌아갈 뿐이었다.
한 자리를 골라 앉자 직원이 큰 필통 크기의 네모난 기계를 들고 왔다. ‘딱따구리’라고 불리는 것으로, 오락기 버튼을 자동으로 눌러주는 기계다. 이를 설치하자 반복되는 기계음과 함께 버튼이 규칙적으로 눌러졌다. 오락기의 지폐 투입구에 2만원을 넣어 게임을 시작했지만, 게이머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우두커니 화면을 보거나 담배를 피워댈 뿐이었다.
이처럼 주로 어린이들이 하는 ‘전체 이용가’ 등급의 게임을 불법 개·변조한 사행성 게임들이 우후죽순처럼 번지고 있다.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올해 들어 적발한 불법 게임 단속 실적을 보면, 전체 이용가 게임들의 불법 운영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표 참조)
서울 지역은 사행성 오락실이 음지로 숨어들었다. 15년 넘게 불법오락실을 출입해온 ㅇ씨(48)와 함께 지난 16일 저녁 서울 강서구의 한 번화가를 찾았다. ㅇ씨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자 40대의 한 오락실 사장이 골목에서 나타났다. 그를 따라 한 허름한 상가로 들어서려 하자, 길 건너편에서 모자를 쓴 청년이 급히 뛰어왔다. 사장이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신호를 보내자 그는 다시 사람들 틈으로 사라졌다.
칠흑같이 어두운 복도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자 사장이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그러자 문이 열리고 “어서 옵쇼” 하는 소리와 함께 오락기의 요란한 기계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철저한 방음으로 밖에선 전혀 들리지 않았다. 오락실에는 역시 어린이들이 할 법한 슈팅게임 ‘○○헌터’(악당을 총으로 쏘는 게임) 일색이었다.
자리를 잡자 딱따구리를 설치하며 사장이 설명했다. “경품은 개당 5000원이고요, ‘똥값’(환전 수수료)은 10%입니다.” 혼자 돌아가는 게임이지만 운 좋게 일정 보너스 점수를 얻으면 오락기에서는 경품(싸구려 열쇠고리 등)이 나오고, 업소에선 이를 돈으로 바꿔준다. 이를테면 두 개의 경품(1만원)을 받아 환전소로 가져가면 10%를 떼고 9000원을 내준다.
2만원을 넣고 게임을 시작했지만, 자동으로 진행되는 게임은 10분도 안 돼 끝났다. ㅇ씨는 “심한 게임은 시간당 20만원도 들어간다. 이런 게임을 혼자서 서너 대 돌리는 중독자도 있다”고 귀띔했다.
ㅇ씨는 “이런 식의 개조 게임은 모두 경품 확률이 올라가는 ‘예시’, 경품이 쏟아지는 ‘연타’가 화면에 등장한다”고 말했다. ○○헌터의 경우 배경화면이 어두운 밤으로 바뀌면 예시고, 고래가 화면에 나타나면 연타였다. ㅇ씨는 “게이머들은 하늘의 별 따기 같은 연타를 기다리며 게임기에 매달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장은 “지금은 사업 초반인데도 ‘섭외비’로 500만원이 들어간다”고 하소연했다. 섭외비란 단속 경찰들에게 건네는 뇌물을 뜻한다. ㅇ씨는 “섭외비는 지역에 따라 매달 500만~2000만원 수준이라는 말이 파다하다”며 “인천과 부평, 대전역 주변, 경남 양산, 충북 청주 등에선 단속이 약해 업자들이 길가에서 버젓이 영업한다”고 전했다.
인천/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