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규 강혜숙 부부가 지난 26일 오전 서울 삼성동의 한 찻집에서 후원중인 어린이 100명의 사진을 살펴보며 이야기나누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세계 아이들 100명 후원’ 함영규·강혜숙씨 부부
부부는 두꺼운 성경책 만한 굵기의 사진첩을 조심스레 꺼냈다. 각 장에는 우간다·콩고·베트남·인도 등 세계 각지의 어린이 사진과 함께 이름과 취미, 가정형편 등이 적혀 있다. 부인은 “아직 이름까지 다 외우진 못한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지난 27일,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을 통해 세계 100명의 빈곤 아동을 후원하고 있는 함영규(53)·강혜숙(52)씨 부부를 서울 강남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1명으로 시작…“노후자금 깨더라도 더 해보자”
한달에 200만원…“아이들 돕는 게 최고의 기쁨” 부부는 지난해 10월 한 ‘기아체험’ 방송에서 세계의 고통받는 아이들을 본 뒤 아이들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처음은 1명으로 시작했지만 부인 강씨는 “우리가 훗날을 대비해 준비하는 돈을 줄이면 당장 사는 게 위협받는 아이들을 구할 수 있지 않느냐”며 같은 달 99명을 추가해 100명을 후원하기로 했다. 남편 함씨는 처음 부인의 결심을 듣곤 깜짝 놀랐다. 1인당 후원금 2만원씩이면 매달 200만원이 들어간다. 함씨는 “너무 여럿을 후원하다가 중간에 후원을 끊게 되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겠느냐”며 걱정했다. 운영하는 골프용품점도 당시 번지던 금융위기의 파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부인 강씨는 “어려워지면 노후자금을 깨더라도 1년만 해보자”며 설득했고, 의외로 큰탈 없이 후원을 이어올 수 있었다. 남편은 “가진 것에 대한 걱정부터 앞선 내가 부끄러웠다”고 했다.
사진첩을 보며 아이들을 설명하는 부부의 눈은 반짝였다. “히겐이 하미두(10·우간다)는 학교 갈 나이인데도 못 다니고 있었어요. 3일 전에 2학년으로 입학했다는 소식이 왔는데 얼마나 기쁘던지.” 강씨는 인도의 쿠르미 데파크(4)가 ‘후원자님 아들과 딸을 형제로 부르고 싶다’며 보내온 편지도 자랑스레 꺼내 보인다. 함씨는 “비록 떨어져 있지만 항상 사진 속 아이들의 눈을 한참 바라본 뒤 기도하면 가깝게 느껴진다”고 한다. 두 부부의 후원은 지난 세월 느낀 고난함과 닿아 있다. 함씨는 “사업이 망한 뒤 1989년 ‘엔화 벌이’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3·5살짜리 아이들과 떨어져 사는 동안 아이들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다”며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기쁨”이라고 말했다. 헤어지기 앞서 “너무 자랑처럼 늘어놓은 것 아닌지 모르겠다”며 “사실 베풀 때 가장 기뻤기 때문에 한 일”이라는 부부의 미소는 늦여름 바람처럼 시원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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