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베이커 전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부소장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에드워드 베이커 전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부소장
미국체류 때 연구원직·강연 주선 등 40여년 인연
“민주화 후퇴·남북관계 경색은 고인 뜻 버리는 것”
미국체류 때 연구원직·강연 주선 등 40여년 인연
“민주화 후퇴·남북관계 경색은 고인 뜻 버리는 것”
“김대중 선생님의 지도가 꼭 필요한 때인데….”
에드워드 베이커(사진) 전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부소장은 21일 이렇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안타까워했다.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한국에도 미국에도 없습니다. ‘세계 시민’이었기에 모두의 손실입니다.”
베이커 교수는 이날 2007년부터 매년 1학기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양대 국제학부 연구실에서 기자를 만나,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술회했다. 김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난 건 1975년 고인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친구를 통해서였다. 김 전 대통령이 사형선고를 받고 1982년 12월 형집행 정지로 풀려나 미국으로 출국당하자, 그가 본격적으로 나섰다. 하버드대 페어뱅크 동아시아연구센터 연구원 초빙이 갑작스레 어렵게되자, 이번에는 같은 학교 국제문제연구소 담당자와 만남을 주선해 김 전 대통령이 연구원으로 머물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 민주화를 주제로 김 전 대통령이 강연할 수 있도록 마련한 자리에는 약 400명이 참석해, 김 전 대통령이 워싱턴에 한국 민주화 지도자로 알려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런 인연 등으로 1998년 김 전 대통령의 취임식에도 초청받아 참석했고, 이달 초에는 세브란스병원을 찾아 병문안도 했다. 그는 “1985년 귀국하겠다고해서 필리핀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처럼 공항에서 암살당할까봐, ‘큰일 난다’ ‘안가시는 게 좋겠다’고 염려했지만, 미국 올 때부터 귀국하고 싶어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40년 가까이 지켜본 김 전 대통령은 “자기 신념에 대한 용기가 가득찬 분이었다.” 그는 1966년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첫발을 디딘 이후, 40여년에 걸쳐 수십번 한국을 오갔으며 8년 가까이 한국에서 살았다. 그는 “김 선생님은 정치적으로 국회에서 타협하기도 했지만 민주주의를 버리는 타협은 하지 않았다”며 “두번씩이나 목숨을 잃을 위기를 넘기고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베이커 교수는 “제가 80년대 대만을 방문했을 때, 민주화 운동을 한국만큼 잘했으면 좋겠다고 많이 부러워했고 김 선생님은 정말 영웅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꽃피운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도 우려했다. 그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뒤 미국이 한국 민주주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없어졌고, 한국이 스스로 민주화를 이뤄냈다”며 “지금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후퇴하고 있지만, 국민들이 반대하는 데 과거로 돌아가서는 절대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북화해를 위해 노력한 고인의 뜻을 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이커 교수는 “지난 1년간 남북관계가 점점더 나빠졌지만 6·15 공동선언 준수를 약속하고 협력하면서 평화조약으로 가야한다”며 “지금 정부는 반대쪽으로 가고 싶은 것 같지만 김 선생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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