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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중이 참여하고 함께 분배받는 경제체제

등록 2009-08-21 12:25

[되돌아본 DJ] ② 경제
개발독재 대안 논리로 등장…중산층·중소기업 이익대변
대중경제론

이 말 속에는 관치와 독재가 지배하던 세상에 온몸으로 맞서 싸웠던 정치인 김대중의 삶과 사상 자체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1960~70년대 개발독재 시대의 압축성장 과정에서 나타났던 관료-재벌의 유착 고리를 과감하게 끊어내고, 그 자리에 중소기업을 키우고 공정한 시장경쟁 질서를 만들겠다는 게 바로 김대중 경제학의 뼈대다. 디제이노믹스를 형성하고 차츰 살찌우는 데 보탬을 준 경제 자문그룹인 ‘중경회’(김대중 경제를 사랑하는 사람들) 학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연결고리 역시 이것이다.

국민의 정부 5년은 디제이노믹스의 숨가쁜 실험장이었다. 성공도 있었고 실패도 맛봤다. 시작은 성공에 가까워 보였다. 오랜 기간 이론과 사상으로 다져진 디제이노믹스는 97년말 닥친 외환위기를 계기로 현실의 정책 무대로 올라서게 된다. 건국 이래 최대 국난이라던 외환위기 극복을 핵심 과제로 내세우며 갓 등장한 김대중 정부에서, 디제이노믹스는 곧 위기 극복 전략의 첫 단추였다. 하루아침에 경제정책의 주권을 사실상 잃어버렸던 당시, 국제통화기금의 거센 구조조정 압력 앞에서 디제이노믹스는 노동·공공·금융·재벌 등 ‘4대 부문 개혁’이라는 형태로 차츰 구체화됐다.

정권 초기의 강력한 구조조정 정책은 빠른 성과를 내기도 했다. 64조원의 공적자금을 쏟아부었던 금융부문 개혁에선 부실 은행이 대거 퇴출됐다. 외국에서 고리의 단기자금을 마구 들여와 돈놀이에 열중하던 은행들이 잇따라 문을 닫는 운명을 맞았다. 재벌 집단간 ‘빅딜’을 통한 불합리한 투자 조정을 거치면서 한때 500%에 이르던 대기업의 부채비율은 100%대로 낮아졌다. 문어발식 경영을 일삼던 재벌도 잠시나마 움츠러들지 않을 수 없었다. 공기업 민영화도 속도를 냈다. 정부의 우산 아래 방만 경영을 일삼던 공기업들은 이제 ‘시장’이라는 큰 물에서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야 했다. 이런 노력을 쏟은 결과, 국제 금융자본의 신뢰를 다시 획득한 국내 금융시장으론 외국인의 투자자금이 밀려들었고 위기 당시 39억달러에 그쳤던 외환보유액은 몇 년 만에 2천억달러대로 불어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김대중 정부는 집권 2년차인 99년 8월15일을 맞아 ‘외환위기 극복’을 공식 선언하기에 이른다.

노동 부문 개혁에서도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 발전이라는 디제이노믹스의 비전은 그 열매를 맺었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일종의 사회적 대타협 논의기구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노사정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뿌리깊게 남아 있던 대립적 노사관계의 전통을 넘어 생산적 복지의 기틀을 처음 마련하는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정보통신(IT) 산업의 꽃을 활짝 피우게 된 것도 디제이노믹스의 성과로 꼽힌다. 김대중 정부 초기부터 주목받았던 벤처산업은 정보통신 산업의 등장이라는 시대적 조건과 맞물려 재벌체제의 대항마로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정보통신강국’의 주춧돌을 놓은 셈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늘도 따르는 법. 나라 안에서 작은 열매를 맺었던 디제이노믹스에도 시련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세계적으로 몰아친 닷컴 신화 붕괴와 때맞춰 터진 9·11 사태는 비운을 예고하는 전주곡이었다. 모두에게 ‘신경제’라는 환상을 심어준 채 야생마처럼 질주하던 세계경제는 하루아침에 급속도로 곤두박질쳤고, 국내 경기 역시 맥없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정권 초기 구조조정 과정이 남긴 상처는 내수 침체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디제이노믹스가 방향을 잃은 채 표류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한국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처방전으로 출발했던 디제이노믹스는 온데간데없고, 단기 땜질처방식 경기부양책만이 쏟아졌다. 김대중 정부 말기부터 싹트기 시작한 부동산 거품과 카드사태는 바로 이 과정에서 무리한 내수 부양책이 안겨다준 혹독한 상처로 두고두고 우리 경제사에 남아 있다.

또다른 목소리도 있다. 공정한 시장경제의 기틀을 만드는 작업이 외환위기라는 피할 수 없는 ‘제약조건’ 아래 진행되다 보니, 결국 외국자본에 알짜 기업들을 넘기는 결과만 낳았다는 비판도 뒤따르는 것이다. 실제로 금융시장의 빗장은 되레 활짝 열렸고, 전세계를 넘나드는 투기적 자본 이동에 아무런 방어막을 마련하지 못한 것도 논란거리다.


무엇보다 김대중 정부 아래 계층간 경제적 불평등 정도가 결코 낮아지지 않았다는 현실은 결국 디제이노믹스를 거치면서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를 되레 심화시켰을 뿐이라는 일부 진보진영의 비판을 낳았다. 어렵사리 관치가 물러난 자리에 냉혹한 ‘시장독재’가 들어섰고 디제이노믹스야말로 바로 그 단초를 제공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취임 직전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재벌의 시대는 끝났다”고 자신있게 외친 그였지만, 결국 그의 임기 동안 재벌의 시장지배력은 사실상 더욱 확대되는 현실과 맞닥뜨려야만 했다. 디제이노믹스가 미완성 작품이자, 아직 ‘절반의 성공’으로만 남아 있는 이유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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