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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DJ “노 비리수사, 내게도 불행”

등록 2009-08-21 10:12수정 2009-08-21 11:38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건강이 악화되기 직전까지 쓴 100일간의 친필일기 중 일부가 추모 공식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됐다. 이 일기는 지난 1월1일부터 건강악화로 일기를 못쓰게된 지난 6월4일 전까지 약 100일간 기록한 것이다. 위부터 2009년 1월6일, 1월14일, 5월1일 일기. 2009.8.20  (서울=연합뉴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건강이 악화되기 직전까지 쓴 100일간의 친필일기 중 일부가 추모 공식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됐다. 이 일기는 지난 1월1일부터 건강악화로 일기를 못쓰게된 지난 6월4일 전까지 약 100일간 기록한 것이다. 위부터 2009년 1월6일, 1월14일, 5월1일 일기. 2009.8.20 (서울=연합뉴스)
“노 자살 강요된 것”…2009년 일기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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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DJ) 전 대통령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수뢰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 "노 대통령 개인을 위해서도, 야당을 위해서도, 같은 진보진영 대통령이었던 나를 위해서도 불행"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DJ 측이 21일 공개한 올해 고인의 일기를 보면 DJ는 4월18일자 일기에서 노 전 대통령 일가와 인척, 측근들이 줄지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노 대통령이 사법처리될 모양. 큰 불행"이라며 이같이 우려를 나타내면서 "노 대통령이 잘 대응하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그는 이어 5월23일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자살했다는 보도. 슬프고 충격적"이라고 안타까워하면서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다"고 검찰의 여론몰이식 수사 태도를 강력히 비판했다.

그러면서 "신병을 구속하느니 마느니 등 심리적 압박을 계속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노 대통령 서거에 대한 거국적인 추모 열기에 대해서는 "국민의 현실에 대한 실망, 분노, 슬픔이 노 대통령의 그것과 겹친 것 같다"고 분석하면서 "앞으로도 정부가 강압일변도로 나갔다가는 큰 변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DJ는 85회 생일인 1월6일 일생을 회고,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고 밝혔고, 15일에는 "수많은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그 길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DJ측 최경환 비서관은 "2008년과 2009년 1월1일부터 6월4일까지 (고인은) 두 해 두권의 일기장을 남겼으며, 오늘 공개한 것은 2009년 일기장의 일부"라며 "김 전 대통령의 생애와 마지막 생각, 국민과 나라 사랑에 대한 마음을 되새기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 정부 비판 = DJ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참석했던 5월29일 일기에서 "이번처럼 거국적인 애도는 일찍이 그 예가 없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정부가 강압일변도로 나갔다가는 큰 변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앞서 1월 20일에는 용산 참사 과잉진압 논란과 관련, "참으로 야만적 처사"라며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고 술회했다.

1월17일 일기에선 `다시 한번 대통령 해달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 등 자신의 신년 외신기자 클럽 기자회견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을 소개하며 "댓글을 볼 때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며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힘닿는 데까지 헌신,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1월16일에는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고 했다.

◇盧 서거 = 4월18일 일기에는 노 전 대통령 주변인사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큰 불행"이라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담겼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5월23일 일기에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슬프고 충격적"이라는 비통한 심경과 함께 "검찰이 마치 소통작전을 하듯 공격하고 언론플레이를 했다"며 검찰 수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풀어냈다.

5월24일 일기에선 측근인 박지원 의원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살았고 국민은 그를 사랑해 대통령까지 시켰으니 국민이 바라는대로 국민장으로 하는 게 좋겠다'고 가족들을 설득한 뒷얘기도 소개됐다.

◇대북 관계-클린턴 부부와의 만남 = 그는 5월25일 일기에서 북한의 2차 핵실험과 관련, "참으로 개탄스럽다", "절대 용납해서는 안된다"면서도 미국 오바마 행정부에 대해서도 "북의 기대와 달리 대북 정책 발표를 질질 끌었다"며 "이러한 미숙함이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의 관심을 끌게 하기 위해 핵실험을 강행하게 한 것 같다"고 우려했다.

북한 동향과 관련, "6자 회담 복구하되 그 사이에 미국과 일대일 결판으로 실질적인 합의를 보지 않겠는가 싶다"(5월25일)고 내다봤다.

DJ는 또한 지난 2월과 5월 방한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와의 전화통화를 언급, "나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표명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방한 중인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만찬을 함께 한 5월18일 일기에서는 "우리의 대화는 진지하고 유쾌했다"며 "언제나 다정한 친구"라고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이날 일기에는 DJ가 클린턴 전 대통령을 통해 부인인 힐러리 국무장관에게 보내는 문서 등 대북 정책 조언이 담긴 메모를 전달했다는 내용도 소개됐다.

◇인간적 면모 = 그는 설날인 1월26일 "가난한 사람들, 임금을 못받는 사람들, 주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생애 마지막 고향 방문길이 돼버린 하의도 방문에 대해 "모교 어린이들의 활달하고 기쁨에 찬 태도에 감동했다", "행복한 고향방문이었다"고 행복해 하는 내용(4월24일), "꽃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며 동교동 자택 마당에 핀 영산홍과 철쭉꽃을 소개하는 내용(5월1일) 등도 담겨 있다.

앞서 DJ는 2월17일 명동성당에 안치된 고(固) 김수환 추기경 시신 앞에 조문한 뒤 "평소보다 더 맑은 얼굴 모습이었다"며 "역시 위대한 성직자의 사후 모습이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hanksong@yna.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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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기자
jahn@yna.co.kr (서울=연합뉴스)


공개된 일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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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1일

새해를 축하하는 세배객이 많았다.

수백 명.

10시간 동안 세배 받았다.

몹시 피곤했다.

새해에는 무엇보다 건강관리에 주력해야겠다.

‘찬미예수 건강백세’를 빌겠다.

2009년 1월 6일

오늘은 나의 85회 생일이다.

돌아보면 파란만장의 일생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일생이었고, 경제를 살리고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2009년 1월 7일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2009년 1월 11일

오늘은 날씨가 몹시 춥다. 그러나 일기는 화창하다.

점심 먹고 아내와 같이 한강변을 드라이브했다.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

둘이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매일 매일 하느님께 같이 기도한다.

2009년 1월 14일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 그것도 고통 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다.

2009년 1월 15일

긴 인생이었다.

나는 일생을 예수님의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교훈을 받들고 살아왔다.

납치, 사형 언도, 투옥, 감시, 도청 등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길을 갈 것이다.

2009년 1월 16일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

2009년 1월 17일

그저께 외신기자 클럽의 연설과 질의응답은 신문, 방송에서도 잘 보도되고 네티즌들의 반응도 크다.

여러 네티즌들의‘다시 한 번 대통령 해달라’‘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 답답하다, 슬프다’는 댓글을 볼 때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힘닿는 데까지 헌신, 노력하겠다.

2009년 1월 20일

용산구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 단속 경찰의 난폭진압으로 5인이 죽고 10여 인이 부상 입원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

2009년 1월 26일

오늘은 설날이다.

수백만의 시민들이 귀성길을 오고가고 있다.

날씨가 매우 추워 고생이 크고 사고도 자주 일어날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 주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다.

2009년 2월 4일

비서관회의 주재.

박지원 실장 보고에 의하면 나에 대해서 허위사실을 공표한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서(100억 CD) 대검에서 조사한 결과 나는 아무런 관계 없다고 발표.

너무도 긴 세월동안‘용공’이니‘비자금 은닉’이니 한 것, 이번은 법적 심판 받을 것.

그 의원은 아내가 6조 원을 은행에 가지고 있다고도 발표, 이것도 법의 심판 받을 것.

2009년 2월 7일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2009년 2월 17일

명동성당에 안치된 김수환 추기경의 시신 앞에서 감사를 드리고 천국영생을 빌었다.

평소 얼굴 모습보다 더 맑은 얼굴 모습이었다.

역시 위대한 성직자의 사후 모습이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다.

2009년 2월 20일

방한 중인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으로부터 출국 중 전용기 안에서 전화가 왔다.

그는 전화로 1. 클린턴 대통령의 안부 2. 과거 자기 내외와 같이 있을 때의 좋았던 기억 3. 나의 재임시의 외

환위기 수습과 북한 방문시 보여준 리더십 4. 다음 왔을 때는 꼭 직접 만나고 싶다 5. 남편 클린턴 대통령도

나를 만나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힐러리 여사가 뜻밖에 전화한 것은 나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 표명으로 한국 정부와 북한 당국에 대한 메

시지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아무튼 클린턴 내외분의 배려와 우정에는 감사할 뿐이다.

2009년 3월 10일

미국의 북한 핵문제 특사인 보스워스 씨가 방한했다가 떠나기 직전 인천공항에서 전화를 했다.

개인적 친분도 있지만 한국 정부에 내가 추진하던 햇볕정책에의 관심의 메시지를 보낸 거라고 외신들은 전한다.

2009년 3월 18일

투석치료.

혈액검사, X레이검사 결과 모두 양호.

신장을 안전하게 치료하는 발명이 나왔으면 좋겠다.

다리 힘이 약해져 조금 먼 거리도 걷기 힘들다.

인류의 역사는 맑스의 이론 같이 경제형태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이 헤게모니를 쥔 역사 같다.

1. 봉건시대는 농민은 무식하고 소수의 왕과 귀족 그리고 관료만이 지식을 가지고 국가 운영을 담당했다.

2. 자본주의 시대는 지식과 돈을 겸해서 가진 부르주아지가 패권을 장악하고 절대 다수의 노동자 농민은

피지배층이었다.

3. 산업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노동자도 교육을 받고 또한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 노동자와 합류해서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4. 21세기 들어 전 국민이 지식을 갖게 되자 직접적으로 국정에 참가하기 시작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그 조짐을 말해주고 있다.

2009년 4월 14일

북한이 예상대로 유엔 안보리의 의장성명에 반발해 6자회담 불참, 핵개발 재추진 등 발표.

예상했던 일이다.

6자회담 복구하되 그 사이에 미국과 1 대 1 결판으로 실질적인 합의를 보지 않겠는가 싶다.

2009년 4월 18일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와 인척, 측근들이 줄지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노 대통령도 사법처리 될 모양.

큰 불행이다.

노 대통령 개인을 위해서도,

야당을 위해서도,

같은 진보진영 대통령이었던 나를 위해서도,

불행이다.

노 대통령이 잘 대응하기를 바란다.

2009년 4월 24일

14년 만에 고향 방문.

선산에 가서 배례.

하의대리 덕봉서원 방문.

하의 초등학교 방문, 내가 3년간 배우던 곳이다.

어린이들의 활달하고 기쁨에 찬 태도에 감동했다.

여기저기 도는 동안 부슬비가 와서

매우 걱정했으나 무사히 마쳤다.

하의도민의 환영의 열기가 너무도 대단하였다.

행복한 고향방문이었다.

2009년 4월 27일

투석치료.

4시간 누워 있기가 힘들다.

그러나 치료 덕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 크게 감사.

나는 많은 고생도 했지만 여러 가지 남다른 성공도 했다.

나이도 85세.

이 세상 바랄 것이 무엇 있는가.

끝까지 건강 유지하여 지금의 3대 위기 ─ 민주주의 위기, 중소서민 경제위기, 남북문제 위기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언과 노력을 하겠다.

‘찬미예수 백세건강’

2009년 5월 1일

이제 아름다운 꽃의 계절이자 훈풍의 계절이 왔다.

꽃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

마당의 진달래와 연대 뒷동산의 진달래가 이미 졌다.

지금 우리 마당에는 영산홍과 철쭉꽃이 보기 좋게 피어 있다.

2009년 5월 2일

종일 집에서 독서, TV, 아내와의 대화로 소일.

조용하고 기분 좋은 5월의 초여름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이고 아내와 좋은 사이라는 것이 행복이고 건강도 괜찮은 편인 것이 행복이다.

생활에 특별한 고통이 없는 것이 옛날 청장년 때의 빈궁시대에 비하면 행복하다.

불행을 세자면 한이 없고, 행복을 세어도 한이 없다.

인생은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도전과 응전 관계다.

어느쪽을 택하느냐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것이다.

2009년 5월 18일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이 내한한 길에 나를 초청하여 만찬을 같이 했다.

언제나 다정한 친구다.

대북정책 등에 대해서 논의하고 나의 메모를 주었다.

힐러리 국무장관에 보낼 문서도 포함했다.

우리의 대화는 진지하고 유쾌했다.

2009년 5월 20일

걷기가 다시 힘들다.

집안에서조차 휠체어를 탈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다.

좋은 아내가 건강하게 옆에 있다.

나를 도와주는 비서들이 성심성의 애쓰고 있다.

85세의 나이지만

세계가 잊지 않고 초청하고 찾아온다.

감사하고 보람 있는 생애다.

2009년 5월 22일

버마 혁명민주지도자 등 수 명이 내방.

민주화에 대해서, 나는“버마는 외국의 지지는 충분히 얻고 있으니 이를 활용해서 안에서 국민이 자력으로 쟁취하도록 노력하시오”라고 격려했다.

2009년 5월 23일

자고 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보도.

슬프고 충격적이다.

그간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노 대통령,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 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수사기밀 발표가 금지된 법을 어기며 언론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신병을 구속하느니 마느니 등 심리적 압박을 계속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

2009년 5월 24일

노 대통령 장례식을 정부와 측근들은 국민장을 주장하는데 가족은 가족장을 주장해 결말을 못 보았다.

박지원 의원 시켜서‘노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살았고 국민은 그를 사랑해 대통령까지 시켰다.

그러니 국민이 바라는 대로 국민장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전했는데 측근들이 이 논리로 가족을 설득했다 한다.

2009년 5월 25일

북의 2차 핵실험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태도도 아쉽다.

북의 기대와 달리 대북정책 발표를 질질 끌었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 주력하고 이란, 시리아, 러시아, 쿠바까지 관계개선 의사를 표시하면서 북한만 제외시켰다.

이러한 미숙함이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의 관심을 끌게 하기 위해서 핵실험을 강행하게 한 것 같다.

2009년 5월 29일

고 노 대통령 영결식에 아내와 같이 참석했다.

이번처럼 거국적인 애도는 일찍이 그 예가 없을 것이다.

국민의 현실에 대한 실망, 분노, 슬픔이 노 대통령의 그것과 겹친 것 같다.

앞으로도 정부가 강압일변도로 나갔다가는 큰 변을 면치 못할 것이다.

2009년 5월 30일

손자 종대에게 나의 일생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이웃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

2009년 6월 2일

71년 국회의원 선거시 박 정권의 살해음모로 트럭에 치어 다친 허벅지 관절이 매우 불편해져서 김성윤 박사에게 치료를 받았다.

kem@newsis.com

【서울=뉴시스】정리 = 김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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