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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김대중과 나] 인도적 북한 지원으로 ‘화해뜻’ 이어야 / 윤공희

등록 2009-08-20 19:16

윤공희 대주교·전 천주교광주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전 천주교광주대교구장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죽음고비마다 천주교계 구명운동…민족화해 유지되길
김대중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1964년 4월께 이효상 국회의장 공관 만찬 자리였다. 국회의장이 천주교 주교들과 가톨릭 신자인 국회의원들을 초청했다. 누군가 ‘오늘 국회에서 김대중 의원이 의사일정을 끌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연설했다’며 칭찬했다. 젊고 유망한 가톨릭 정치인이 나왔다는 생각에 흐뭇했다. 그 뒤로 몇차례 김 전 대통령을 만났고, 1973년 대주교가 된 뒤부터 성탄 카드를 주고 받았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장으로 80년 5월 광주의 아픔을 겪었다. 천주교계는 광주민중항쟁으로 구속된 양심수들의 구명 운동에 나섰다. 80년 7월 하순께 국가보위입법회의 상임위원장이던 전두환씨를 만났다. 중앙청 옆 건물에서 전씨를 만나 구속자 전면 사면을 설득했지만, 확실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대법원은 81년 3월31일 김 전 대통령 등 광주 관련자 5명에게 원심대로 사형을 선고했다.

나는 인혁당 사건처럼 구속자들이 곧 처형될 수도 있다는 다급한 마음에 김수환 추기경을 찾아 대통령 면담 문제를 협의했다. 수도경비사령부 군종 신부를 통해 대통령 면담을 주선해달라고 부탁했다. 81년 4월1일 전두환 대통령을 만나 사면을 호소했다. 전두환씨는 굳은 표정으로 “경찰을 죽인 사람을 어떻게 그냥 사면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천근처럼 무거운 마음으로 명동성당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81년 4월3일 청와대 비서실에서 “곧 사면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고, 낮 12시 뉴스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5명이 모두 무기형으로 감형된다는 발표를 들었다.

87년 9월로 기억된다. 정치활동을 재개한 김 전 대통령이 광주대교구를 찾았다. 수많은 시민들이 광주대교구청으로 몰려드는 바람에 울타리가 무너지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에게 고생을 참 많이 하셨다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김 전 대통령은 일본에서 납치됐던 사건을 화제로 삼아 위기 상황에서 신앙으로 영적인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천주교계에서 5월 양심수들의 구명 운동을 펼쳐준 것에 대해서도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정치인이면서도 경제·정치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지식인의 풍모를 갖추고 있었다.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미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신부들과 하원의원들이 한국에 왔을 때 김 전 대통령과 리영희 선생을 초청했다. 당시 한국의 경제 상황을 영어로 유창하게 설명하던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김 전 대통령이 92년 12월 대선에서 패배한 뒤 영국으로 떠나기 전 ‘한결같은 지지와 성원을 보낸다’는 내용을 담은 성탄 카드를 보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아, 이제 한 시대가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1일 서울 국회의사당 마련된 고인의 빈소를 찾아 명복을 빌 생각이다. 22일 명동성당에선 김 전 대통령의 추모 미사를 집전한다. 김 전 대통령은 박해를 많이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신념을 지키신 지도자이자, 그야말로 행동하는 신앙인이었다. 무엇보다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고,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남북화해에 기여하는 등 큰 일을 했다. 민족화해를 위한 노력이 더 진전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가시는 것이 참 애석하다. 민족의 화해를 위해 북한에 인도적 지원이 계속되길 소망한다.

윤공희 대주교·전 천주교광주대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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