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19일 오전 전남 신안군 하의도 후광리 김 전 대통령 생가에서 4촌 조카인 김홍선씨가 심경을 밝히고 있다. 신안/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조카가 전하는 임종]
“말은 끝내 못하고 가셨다”
“말은 끝내 못하고 가셨다”
셋째 김홍걸(46)씨가 작별인사를 하는 순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버님 염려 마십시오. 제가 하는 일들이 잘되고 있습니다. 제 걱정 많이 하시지 마세요.” 홍걸씨는 1980년 고교생의 어린 나이로 아버지의 구속과 사형 선고를 지켜보는 불운을 겪어, 김 전 대통령 부부가 내내 애틋해한 막내아들이다.
18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서 김 전 대통령의 임종을 지켜본 조카 김홍선(48·서울·사진)씨는 “돌아가시기 3일 전부터는 상태가 점점 나빠져서 눈조차 뜨지 못하셨고, 눈물을 흘리기보다 간혹 비치는 정도였는데 작별인사를 할 때는 이야기를 다 알아들으시는 듯 줄곧 눈물을 흘리셨다”고 말했다.
김홍선씨는 전남 신안의 하의도 분향소에서 상주를 하기 위해 19일 들어와,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상세하게 전했다. 그는 “오전 9시40분께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11시께 병원에 도착해 보니, 4평 규모의 중환자실에 작은어머니, 세 아들과 며느리, 손자·손녀 등 가족들이 모두 울고 있어 임종을 예감했다”고 했다.
가족들은 오후 1시께 의료진이 임종이 임박했다고 말하자 돌아가며 작별인사를 나눴다. 자신이 직접 짠 벙어리장갑을 낀 김 전 대통령의 손을 잡고 있던 부인 이희호씨는 “하나님, 한 번만 저희에게 다시 보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뒤이어 가족들이 마지막 인사를 하는 동안, 김 전 대통령의 눈에서는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다. 파킨슨병을 앓아 말을 제대로 못하는 큰아들 김홍일(61)씨는 마지막으로 “아버지”라고 또렷하게 말했다.
오후 1시43분, 의료진이 서거를 알리자 가족들은 두 번째로 작별인사를 했다. 이희호씨는 울면서 기도 형식의 인사를 했지만, 흐느낌이 많이 섞여 잘 들리지 않았다. 이희호씨와 며느리들은 찬송가를 불렀지만, 노래는 두세 소절밖에 이어지지 못했다. 중환자실이 눈물바다가 됐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예감한 것은 지난주 초부터였다고 한다. 점점 잠을 자는 시간이 길어졌고, 가족들의 말을 들으며 가끔 눈물을 흘리거나 눈으로 대화를 나누는 일이 부쩍 줄어들었다.
이희호씨는 8일 저녁께부터 순면 실로 장갑을 짜기 시작했다. 혈압이 떨어진 김 전 대통령의 손을 놓지 않던 그는 “얼음처럼 찬데 얼마나 춥겠느냐”며 뜨개질에 나섰다. 홍선씨는 “그때 하필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하며, 손을 덜덜 떨 정도로 몸이 불편하셨지만 빠른 속도로 뜨개질을 하루 만에 마치셨다. 9일 오전엔 장갑을 끼워 드리고, 저녁엔 양말을 완성해 신겨 드렸다. 자식들은 어머니를 걱정하면서도 차마 말릴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홍선씨는 김 전 대통령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된 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그때 너무 힘을 많이 쓰셨다. 그렇잖아도 기력이 약하신 분이 충격을 많이 받으셨다.”
홍선씨는 “작은어머니가 가장 안타까워하셨던 게, 끝내 가족들에게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가신 것”이라며 “병실에서 눈은 종종 뜨셨지만 말은 끝내 못하고 가셨다”고 전했다. 하의도/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홍선씨는 “작은어머니가 가장 안타까워하셨던 게, 끝내 가족들에게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가신 것”이라며 “병실에서 눈은 종종 뜨셨지만 말은 끝내 못하고 가셨다”고 전했다. 하의도/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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