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2000년 6월13일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을 하려고 북한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손을 맞잡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외치며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을 위해 헌신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서거했다. 납치와 테러, 사형 선고 등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고, 야권 분열로 대선에서 낙선의 고배도 마셨다. 하지만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돼 펼친‘햇볕정책’과 6·15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남북의 화해협력을 주도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을 향한 염원을 한 평생 실천하며 살다 떠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인동초 같은 인생을 사진으로 살펴본다.
‘인동초’ 쓰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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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대통령이 1970년 9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신민당 후보 경선에서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김영삼 후보에게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뒤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85년 3·6전면 해금조처로 해금돼 함께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위) 이듬해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됐으나 이들은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했다. 1987년 10월 25일 고려대 운동장에서 열린 ‘거국중립내각쟁취실천대회’에서 김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 굳은 표정을 지은 채 서로 외면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른바‘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육군형무소에 수감된 김 전 대통령이 1981년 1월 청주교도소에 입소하며 찍은 사진. 연합뉴스
김 전 대통령이 1988년 5월14일 한겨레신문사를 방문해 국민주 신문으로 탄생한 한겨레신문 창간호를 송건호 한겨레신문 회장과 함께 살펴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2년 대통령선거에서 낙선한 김 전 대통령이 그 해 12월19일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민주당사를 나서자 신순범 전 의원(왼쪽)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연합뉴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1년 4월 서울 장충단공원에서 열린 대통령선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3년 2월25일 국회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이 끝난 뒤 손을 맞잡은 채 단상을 내려오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인동초’ 쓰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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