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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DJ 담당 전 교도관 “빈소 가서 울고 싶다”

등록 2009-08-18 16:23수정 2009-08-18 17:12

"의지가 강한 분이셔서 위태로운 고비를 잘 넘길 것으로 기대했는데, 돌아가셨다니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병상에서 서거했다는 소식을 들은 강복기(67.청주시 흥덕구 분평동) 전 청주교도소 서무과장은 18일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안타깝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망연자실했다.

강씨가 김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신군부가 군사재판을 통해 김 전 대통령에게 내란음모죄를 씌운 뒤 사형을 선고했다가 무기로 감형해 1981년 1월 청주교도소에 수감하면서부터였다.

김 전 대통령은 이 때부터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미국으로 떠났던 1982년 12월까지 23개월간 청주교도소에서 복역했다.

당시 청주교도소 교도관으로 일했던 강씨는 "1980년대는 지금과 달리 소위 '암울한 시기'로 불렸던 때라 1평 남짓한 감방에 수감돼 있던 김 전 대통령은 상당히 어렵게 생활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김 전 대통령은 수인번호 '9'번을 달고 주위에 벽돌을 쌓아 외부와 차단한 특별감방에서 수감생활을 했으나 청주교도소측이 2004년 내부 시설공사를 하면서 이 감방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김 대통령이 일반 수형자들과 달리 '특별처우'를 받았다고 말한 그는 "좋은 면에서의 특별처우가 아니라 교도관들조차 마음대로 출입이 안 되는, 외부와의 접촉이 일절 차단된 가운데 일반 수용자보다 훨씬 강한 통제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한달에 몇차례 가족들과 만나는 일반 수용자들과 달리 김 전 대통령은 한달에 한번씩 10분동안만 가족을 만나야 했다"면서 "심한 통제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은 괴로워했고, 힘들게 수형생활을 하도록 통제해야만 했던 우리 교도관들도 무척 힘들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은 잠을 자거나 식사를 하고, 운동을 하는 시간을 빼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책을 읽었다고 강씨는 말했다.

2000년 12월 청와대로부터 스웨던 오슬로에서 열리는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식에 참석하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는 "감개무량했다"고 말했다.

그는 "교도관 생활을 마친 뒤에도 연하장이 계속 왔고 올해에도 왔는데.."라고 회고하며 "김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 텔레비전만 쳐다보고 있는데, 빈소가 차려지면 당장이라도 찾아가 울고 싶다"고 덧붙였다.

심규석 기자 ks@yna.co.kr (청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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