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연구원, 6개월 지난 뒤 노조에 “사무실 빼라”
예보공사도 해지통보…민노총 “노조 무력화 시도”
예보공사도 해지통보…민노총 “노조 무력화 시도”
공공기관이 노동조합에 단체협약 해지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일이 확산되고 있다. 민간 기업에서도 유사한 양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져, 노사 관계 악화에 따른 노동쟁의 등으로 사회적 비용 증가가 우려된다.
노사 관계를 연구하는 한국노동연구원의 노조는 6일 하루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연구원 쪽이 지난 2월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한 뒤, 지난 5일 단협의 효력이 끝나자마자 ‘노조 사무실 제공 중단’ 등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단체협약은 노사 한 쪽이 해지를 통보하면 6개월 뒤 효력을 잃는다. 단체협약은 노동자들이 조합의 단결권을 통해 근로계약을 보장받기 때문에 근로기준법보다는 보호 수준이 대개 높다.
이상호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노동연구원 지부장은 “연구원 쪽은 그동안 교섭 권한을 가진 박기성 원장은 나오지 않은 채, 아무 실권도 없는 노무사하고만 얘기하라고 했다”며 “결국 불성실 교섭을 통해 단협을 해지하려는 게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해양수산개발원과 직업능력개발원도 단협이 해지됐다. 이광오 공공연구노조 정책국장은 “최근 더 많은 연구원에서 단협 해지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예금보험공사(예보) 노조도 지난달 9일, 금융위원회 산하 18개 공공기관 가운데 처음으로 단협 해지를 통보받았다. 예보는 ‘취업규정 개정 시 노조 합의 및 협의 조항 삭제’와 ‘공사의 쟁의행위 방해 금지 의무 삭제’ 등을 담은 새로운 단협안을 제시했다. 최효순 예보 인사지원부장은 “기간을 정해놓고 협상을 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해 단협을 해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성민호 예보 노조위원장은 “근로조건 등 기존 단협을 후퇴시키기 위해 회사 쪽이 우선 단협부터 해지해 버렸다”며 “정부의 노사 관계 선진화 방안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노조 쪽은 정부가 상급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예보 노조부터 먼저 무력화시킨 뒤, 다른 금융기관에도 노조 활동 축소, 인력 감축 등의 ‘금융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을 파급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이후 단협 해지가 공공부문에 의해 주도되고, 민간으로 파급되고 있다”며 단협 해지를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상훈 민주노총 정책부장은 “예전에는 노조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단협 개정을 요구했지만, 최근엔 회사 쪽이 근로조건을 최소 수준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단협을 해지하는 현상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김상호 경상대 교수(법학)는 “단체협약은 일종의 노사간 ‘평화 협약’인데 회사가 노조 활동을 제약하기 위해 해지를 한다면, 쟁의가 발생할 여지도 커지고 이면 합의가 필요해지는 등 사회적 비용만 증가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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