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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가난한 아이들 자립 버겁다

등록 2009-08-03 07:05

 지난 31일 오후 서울 관악구 청룡동의 한국청소년상담원 상담실에서 상담원(왼쪽 맞은편)이 한 청소년과 상담을 하고 있다. 한국청소년상담원 제공
지난 31일 오후 서울 관악구 청룡동의 한국청소년상담원 상담실에서 상담원(왼쪽 맞은편)이 한 청소년과 상담을 하고 있다. 한국청소년상담원 제공
학업중단 등 90여만명 위기
어릴적 취업전선 내몰리기도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아
“갈길을 모르겠다” 하소연도
이혼·빈곤가정 출신 편견에…정부지원 걸음마 단계

#1. 미진(17·가명)이는 2007년 제주도에서 홀로 서울에 왔다. 그에게도 부모님, 동생 넷과 함께 살던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부모의 이혼으로 모든 게 달라졌다. 동생들을 보살피는 엄마의 부담을 덜어주려 취직을 해야 했다. 서울에서 잠시 미용기술을 배우기도 했지만, 결국 친구의 꾐에 빠져 룸살롱에 나갔다.

미진이는 알고 지내던 수녀님의 권유로 유흥업소를 빠져나와 지난 5월부터 ‘자립’에 나섰다. 한 달 준비로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할 만큼 똑똑한 편이었지만 나이와 학력 탓에 취업은 쉽지 않았다. 예닐곱 번의 낙방 끝에 지난달 통신판매원 자리를 구했으나 팀장의 냉대로 3주를 버티지 못했다. 요즘도 룸살롱 언니들은 ‘다시 나오라’는 연락을 해온다. “내 미래를 생각하면 거기 갈 순 없잖아요.” 다른 일자리를 찾고 있다는 미진이는 “길을 모르겠다”고 했다.

#2. 작은 도움으로도 위기 청소년의 자립은 훨씬 수월해진다. 고서연(19·가명)양은 지난해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땄을 때만 해도 간호사의 꿈에 한 걸음 다가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번번이 면접에서 걸려 15번이나 떨어졌다.

가정 상황에 대한 질문이 늘 문제였다. 고양은 부모가 이혼한 뒤, 아버지를 찾아갔다가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때리는 것을 목격했다. 그 뒤 2년 남짓 우울증에 시달렸다. 수업시간에 5층 창문 밖으로 뛰어내린 적도 있다. 면접 때 가정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뽑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며 뛰쳐나오기 일쑤였다. 그러나 정부 지원 프로그램인 ‘두드림존’에서 면접 연습을 거치고 난 뒤 지난달 18일 간호조무사로 취직할 수 있었다.

이혼·빈곤 가정이 늘면서 성인이 되기 전에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잃고 취업 전선으로 내몰리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위탁·보호 시설 퇴소를 앞두고 있거나, 고교 학업을 중단하고 당장 경제·사회적 자립이 필요한 청소년은 지난해 4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건복지가족부는 추산하고 있다. 여기에다 빈곤 가정에 속해 있어 잠재 위험군에 들어가 있는 초·중·고교 아이들까지 포함하면 ‘위기의 청소년’은 90여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 청소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과 대책은 미흡하다. 보호시설에 있는 청소년들은 16개 시·도의 자립지원센터에서 퇴소 때 자립 지원을 하지만, 일반 가정의 위기 청소년의 경우 학교로 돌려보내야 할 ‘문제아’라는 시선이 강해 정부의 자립 지원책은 거의 없었다.


복지부가 2007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두드림존 프로그램’이 일반 가정의 위기 청소년까지 포함하는 사실상 첫 지원 정책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제도의 혜택을 본 청소년은 8000명 선에 그친다. 예산 부족으로 아직 서울, 대전, 경기 등 전국 세 곳에서만 상설 운용되고 있으며, 청소년들에 대한 홍보도 부족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이 프로그램을 2011년까지 전국 16개 시·도로 확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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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장애물은 사회의 ‘높은 벽’이다. 지난해 두드림존 프로그램을 통해 취업, 학교 복귀 등 사회 진출로 이어진 청소년의 수는 382명에 불과했다. 복지부 아동청소년자립과 임숙영 과장은 “사회 양극화의 심화로 위기 청소년은 늘고 있는데, 학교나 취업 현장에선 청소년의 복귀 의지를 꺾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국청소년상담원의 백윤미 상담원은 “기업도 사회 공헌 차원에서 이들 청소년을 지원하는 등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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