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판서 52억 날려
사기 도박판에서 50억원가량을 뜯긴 피해자가, 알고 보니 회삿돈을 900억원 가까이 빼돌린 것으로 드러나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14일 은행에 보관된 900억원대 회사 채무 변제금을 빼돌린 혐의(사기 등)로 동아건설 자금과장 유아무개(37)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또 공범인 박아무개(48) 부장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애초 박씨는 사기도박단의 꾐에 넘어가 도박판에서 52억원을 뜯긴 피해자로, 경찰의 ‘보호 대상자’였다. 김아무개(39)씨 등 8명은 지난해 6월 박씨가 건설사 자금팀 간부인데다 노름을 즐긴다는 사실을 알고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이들은 “돈 많은 사람을 데려올 테니 한 팀이 되어 도박을 하자. 한 명이라도 돈을 따면 똑같이 나누고, 돈을 잃으면 똑같이 분담하자”며 박씨를 꼬드겼다. 그러나 박씨가 찾은 노름판에는 미리 공모한 5명이 앉아 있었고, 지난해 6월부터 모두 4차례에 걸쳐 노름판을 벌여 52억원을 뜯겼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들 사기도박단 가운데 3명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의 사기 혐의로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하고 공범 5명을 쫓고 있다.
이처럼 한꺼번에 거금을 날린 박씨는 회삿돈에 손을 댄 것으로 드러났다. 박씨 등은 지난 3월 회사가 ㅅ은행에 신탁한 1500억여원 규모의 채무 변제금이 들어 있는 계좌에서 지급청구서 등을 위조하는 수법으로 240억원을 인출하는 등 모두 8차례에 걸쳐 890억여원을 빼돌렸다. 경찰은 “박씨는 회삿돈 가운데 일부를 수표로 인출해 도박판, 경마장 등에서 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거된 유씨는 “자신은 심부름꾼일 뿐이며 돈에 손을 대지는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아건설은 2001년 5월 수천억원의 빚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한 뒤 2007년 1월 회생절차를 시작해, 지난해 3월부터 정상 경영을 하고 있다. 이 건설사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회생한 대표적 회사로 박씨 등이 빼돌린 돈에는 국민 세금도 일부 포함되어 있는 셈이다.
권오성 박현철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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