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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함께 가자” 했건만 하나되지 못한 ‘애증의 길’

등록 2009-05-28 20:11수정 2009-05-28 23:16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여의도백화점 앞에서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의 지지 모임인  ‘MJ사랑연대‘가 둘러준 붉은색 스카프를 매고 승리의 V자를 그려보이고 있다. 이정우 기자 woo@hani.co.kr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여의도백화점 앞에서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의 지지 모임인 ‘MJ사랑연대‘가 둘러준 붉은색 스카프를 매고 승리의 V자를 그려보이고 있다. 이정우 기자 woo@hani.co.kr
노무현과 진보
집권 전, 노무현의 가치=진보의 가치 ‘어깨동무’
집권 뒤, ‘파병’서 생긴 틈 ‘한미FTA’로 격렬 대립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과정에서 진보, 시민사회 진영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정작 5년 집권기간 내내 노 대통령과 진보진영은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다.

2003년 참여정부 출범 초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청와대 참모진에 정찬용 인사보좌관, 박주현 국민참여수석 등 시민단체 출신 인사가 다수 기용됐다. 대통령 취임 뒤 상견례를 겸한 각계 인사 간담회 일정에서도 시민사회 원로 초청이 첫번째로 잡혔다. 2003년 초에는 5월 화물연대 파업, 6월 철도노조 파업, 그 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논란 등이 불거졌으나 그런대로 절충점을 찾았다.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2004년 3월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모인 시민들이 촛불을 치켜든 채  ‘탄핵 무효’를 외치고 있다.
  김종수 기자 <A href="mailto:jongsoo@hani.co.kr">jongsoo@hani.co.kr</A>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2004년 3월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모인 시민들이 촛불을 치켜든 채 ‘탄핵 무효’를 외치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본격적으로 문제가 생긴 것은 그해 가을 이라크 파병이었다. 인권단체를 비롯한 범진보진영은 명분 없는 전쟁 참여 절대 반대를 내세웠다. 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강조했던 대미 자주외교 노선의 ‘원칙’에 충실할 것을 이들은 요구했다. 반면에 외교부와 국방부 관료집단과 보수언론 등은 한-미 관계 현실과 국익 등을 거론하며 정권의 선택을 주시하고 나섰다. 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반미면 어떠냐”고 연설했던 것과 결부시키며 일종의 색깔 시험대로 간주했다. 진보와 보수 진영 사이에 총력 세대결이 펼쳐졌다.

2007년 6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서명을 앞두고 서울 대학로에서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를 위한 전국노동자대회’를 마친 뒤 광화문 쪽으로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2007년 6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서명을 앞두고 서울 대학로에서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를 위한 전국노동자대회’를 마친 뒤 광화문 쪽으로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당시 노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파병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며 “그러나 한-미 관계의 현실 여건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어 끝까지 괴로워하던 끝에 파병 결정을 내렸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진보진영은 이 결정을 계기로 “정권을 잡더니 생각이 바뀌었냐”며 강한 불신을 갖기 시작했다. 관료집단과 보수언론이 정보를 흘리며 여론몰이를 하는데 노 대통령 쪽이 끌려다니는 모양새가 된 것도 불신을 키웠다.

양쪽의 간극은 새만금 간척사업, 스크린쿼터, 금융산업법 등을 둘러싸고 점점 벌어지다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시민사회운동 진영과 진보 학계 등은 성급한 자유무역협정 추진에 따른 위험성을 거듭 경고했다. 산업별 피해를 우려한데다 한국 사회의 법체계와 가치관까지 ‘미국화’될 가능성도 경계했다. 반면에 노 대통령은 에프티에이를 통해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리라고 확신했다. 가치관과 철학의 차이마저 불거지며 양쪽은 한층 격렬하게 대립했다. 심지어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교수와 정태인 전 국민경제비서관, 박태주 전 노동비서관까지 이탈해 반대운동에 가담했다.

대립이 거듭되자 진보진영 쪽은 노 대통령이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한다”며 정체성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반면에 노 대통령 쪽은 “도와주진 않고 무책임하게 비판만 한다” “진보진영이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노 대통령은 한 토론에서 “좌파 신자유주의가 뭐가 나쁘냐”며 감정 실린 어조로 항변했다. 노 대통령과 시민사회운동 지도자들의 간담회 등 대화 노력은 꾸준히 이뤄졌다. 그러나 초기에 우호적인 질문과 건의, 응답이 오가던 간담회는 점차 격렬한 논쟁 무대로 바뀌어 나갔다. 그러던 끝에 정권 차원에선 지지층의 이탈이, 시민사회운동 쪽에선 운동 대열의 약화와 위축이 나타났다.

여기까지 이른 데는 양쪽의 문제점을 꼽을 수 있다. 우선 노 대통령 쪽을 두고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정치전략의 오류를 지적한다. 그는 노무현 정부가 진보세력을 적극 동원하려던 초기 전략이 철도 파업과 이라크 파병 등을 계기로 벽에 부닥치자 중도·보수층으로 지지기반을 넓히려는 전략으로 전환했다고 본다. 문제는 “지지세력이 될 수 없는 상대를 포섭하려고 무리한 의제를 반복적으로 제기하며 지지기반의 균열만 초래했다”는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대연정 제안이 대표적이다.(창비사 발간 <노무현 시대의 좌절>)

진보진영을 두고선 노 대통령을 당선시킨 뒤 비판적 입장을 넘어 적대적 입장을 설정한 게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는 “비판을 하되 건설적으로 어느 정도 숨구멍은 틔워주고 해야지, 이건 뭐 너 죽으라는 살기등등한 적대적인 비판만 해왔다”며 “그 결과 노 대통령이 기댈 곳도 없어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데 대해 진보진영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시대’의 마감 이후 범진보진영의 새로운 방향에 대한 제언도 나온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범진보진영이 비판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입장에서 보수진영과 경쟁할 환경이 본격적으로 조성되고 있다”며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시민사회운동 진영 등을 하나로 묶어낼 새로운 가치 프레임을 만들어내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박창식 선임기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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