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 90주년 산증인’ 김자동(81) 임정기념사업회장
‘임정 90주년 산증인’ 김자동 임정기념사업회장
“김구 선생도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빨갱이’라고 손가락질 당하지 않을까 싶어요.”
“친일 반민족주의자 보수행세”
‘독립운동 집안’ 임정 따라 성장 13일 임시정부 수립 90돌을 맞아 김자동(81·사진)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김 회장은 이제 몇 남지 않은 임시정부의 산 증인이다. 그는 구한말 고관대작 가운데 유일하게 독립운동에 뛰어든 동농 김가진 선생의 손자이자, 임시정부 외교연구위원 등으로 활동한 김의한 선생의 아들이다. 그의 모친 정정화 선생은 상하이부터 충칭까지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도맡은 열혈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그는 1928년 상하이에서 태어나 일제의 탄압을 피해 이동하던 임시정부를 따라다니면서 성장기를 보냈다. 32년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 이후 정처 없이 떠돌던 임시정부가 난징에 머물 때 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와 작은 아들 김신 선생과 1년 정도 한 집에서 머물기도 했다. 그는 “다른 아이들은 김구 선생을 할아버지라 불렀지만 나는 아저씨라 부르며 가깝게 지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날 오전 서울 남산 백범동상 앞에서 정부 주최로 열린 임시정부 90돌 행사를 다녀 온 김 회장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뉴라이트’의 사관에 기초해 임시정부의 빛나는 역사를 폄하하고, 건국절을 추켜세운 이명박 정권의 역사 의식은 바로 잡혀야 합니다.”
“다른 나라를 보면 대개 보수는 민족주의자, 진보는 사회주의자인데, 우리 나라는 사회주의자가 민족주의였고, 보수주의자들은 대개 일본을 찬양하고 미국을 추종했던 반민족주의자들이었어요. 그러니 본받을 만한 보수를 찾기 어려운 거죠. 백범 선생을 비롯 임정 계열 어르신들이 우리 나라에서 거의 유일한 민족적 보수주의자였죠.” 김 회장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지금 기준으로 40년대 임시정부의 강령을 보면 눈이 휘둥그래질 내용이 많다. ‘주요 산업의 국유화, 공장 경영의 노동자 참여, 토지사유 제한’ 등이 담겨 있다. “임시정부를 만든 어른들이 꿈꾼 사회는 지금 같은 사회가 아니예요. 그분들은 좀 더 평등하고, 좀 더 인간적이고, 좀 더 위엄있는 나라를 꿈꿨던 것인데. 신자유주의 바람에 우리 사회는 반대로 가고 있죠.” 김 회장은 젊은 시절 4·19혁명 직후 창간된 진보적 일간지 <민족일보> 기자로 활동했고, 이후 박정희 정권의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처형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민족일보사건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2004년 9월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납북된 임정 요인 묘소 참배(2007년) 등 굵직한 사업을 이끌고 있다. 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독립운동 집안’ 임정 따라 성장 13일 임시정부 수립 90돌을 맞아 김자동(81·사진)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김 회장은 이제 몇 남지 않은 임시정부의 산 증인이다. 그는 구한말 고관대작 가운데 유일하게 독립운동에 뛰어든 동농 김가진 선생의 손자이자, 임시정부 외교연구위원 등으로 활동한 김의한 선생의 아들이다. 그의 모친 정정화 선생은 상하이부터 충칭까지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도맡은 열혈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그는 1928년 상하이에서 태어나 일제의 탄압을 피해 이동하던 임시정부를 따라다니면서 성장기를 보냈다. 32년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 이후 정처 없이 떠돌던 임시정부가 난징에 머물 때 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와 작은 아들 김신 선생과 1년 정도 한 집에서 머물기도 했다. 그는 “다른 아이들은 김구 선생을 할아버지라 불렀지만 나는 아저씨라 부르며 가깝게 지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날 오전 서울 남산 백범동상 앞에서 정부 주최로 열린 임시정부 90돌 행사를 다녀 온 김 회장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뉴라이트’의 사관에 기초해 임시정부의 빛나는 역사를 폄하하고, 건국절을 추켜세운 이명박 정권의 역사 의식은 바로 잡혀야 합니다.”
“다른 나라를 보면 대개 보수는 민족주의자, 진보는 사회주의자인데, 우리 나라는 사회주의자가 민족주의였고, 보수주의자들은 대개 일본을 찬양하고 미국을 추종했던 반민족주의자들이었어요. 그러니 본받을 만한 보수를 찾기 어려운 거죠. 백범 선생을 비롯 임정 계열 어르신들이 우리 나라에서 거의 유일한 민족적 보수주의자였죠.” 김 회장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지금 기준으로 40년대 임시정부의 강령을 보면 눈이 휘둥그래질 내용이 많다. ‘주요 산업의 국유화, 공장 경영의 노동자 참여, 토지사유 제한’ 등이 담겨 있다. “임시정부를 만든 어른들이 꿈꾼 사회는 지금 같은 사회가 아니예요. 그분들은 좀 더 평등하고, 좀 더 인간적이고, 좀 더 위엄있는 나라를 꿈꿨던 것인데. 신자유주의 바람에 우리 사회는 반대로 가고 있죠.” 김 회장은 젊은 시절 4·19혁명 직후 창간된 진보적 일간지 <민족일보> 기자로 활동했고, 이후 박정희 정권의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처형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민족일보사건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2004년 9월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납북된 임정 요인 묘소 참배(2007년) 등 굵직한 사업을 이끌고 있다. 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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