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서 첫 승소 뒤 청도·청주·청원 유족들도 준비
법원이 ‘울산 보도연맹사건’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지난달 국가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한겨레> 2월11일치 9면)을 내놓자, 비슷한 민간학살 사건의 유족들의 소송이 봇물을 이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9부(재판장 지영철)는 지난달 10일 ‘울산 보도연맹사건 유족회’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유가족 508명에게 모두 200억여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고, 국가와 유족회 모두 항소해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 판결 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움직인 곳은 ‘청도유족회’다. 청도유족회 박희춘 회장은 15일 “이달 말께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기 위해 유족들의 참여 신청을 받고 있는데 지금까지 80여명이 참여 의사를 전해왔다”고 밝혔다. 청도유족회는 1949년 2월~1951년 2월까지 군인과 경찰에 의한 공비토벌 과정에서 숨진 희생자들의 유가족이 모인 단체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신원을 확인한 청도 희생자 586명의 유족들 가운데 122명이 참여하고 있다. 청도유족회는 오는 17일까지 소송 참여 인원이 확정되는대로 ‘울산 보도연맹사건’을 맡았던 김형태 변호사에게 소송대리인을 맡길 예정이다. 박 회장은 “울산 사건의 판결 소식을 듣고 일부 유족들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며 “과거엔 유족들이 불이익을 당할까봐 나서는 걸 꺼려했는데, 지금은 살림이 넉넉치 않은 형편인데도 100만원 정도의 소송 비용을 부담하겠다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청주·청원 보도연맹 유족회도 소송을 준비 중이다. 이들은 15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이상희 변호사와 함께 유족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었으며, 다음달 말까지 원고 선정을 마치고 소장을 낼 계획이다. 청주·청원 유족회의 조남하 진실규명후속조치 대책위원장은 “대부분의 유가족들이 연좌제로 공무원·육사·대기업 채용에서 불이익을 받으며 살아왔는데 이번 사법부의 판단으로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회(전국유족회) 쪽은 “구체적인 소송 준비가 진행중인 곳은 청도와 청주·청원 정도지만,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결정이 난 유족회 40여곳 모두 소송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진실화해위도 “평소 한 주에 10건 미만이었던 희생자 유가족들의 진실규명 관련 문의 전화가 법원 판결 뒤 크게 늘었고, 지금도 매주 30통 이상 걸려오고 있다”고 밝혔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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