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려고 17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을 찾은 시민들이 김 추기경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보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김수환 추기경 선종]
수백m 꼬리문 조문객들
명동성당서 ‘눈물로 추모’
지역 성당도 발길 이어져 김수환 추기경의 주검이 안치된 서울 명동성당 안팎은 17일 아침부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하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날 정오께 추모 행렬은 성당 마당을 굽이굽이 돌아 성당 밖 남산 1호터널 방향 인도까지 1㎞가량 꼬리를 물었다. 일부 추모객들은 조문을 위해 3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 ‘부디 영면하소서….’ 추모객들은 김 추기경의 주검이 안치된 유리관 앞에서 겨우 2~3초 머무는 사이 고개를 숙여 그의 안식을 기원했고, 곧바로 뒷사람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다. 조문을 마친 추모객들은 성당에서 매시간 진행되는 위령기도(연도)를 올리거나 삼삼오오 모여 김 추기경의 자취를 더듬으며 넋을 기렸다. 연도를 올리고자 하는 추모객들로 1200석 규모의 대성당을 비롯한 4곳의 조문소가 저녁까지 매번 꽉 찼다. 작업복 차림의 김진우(47)씨는 “어제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파 작업을 일찍 마치고, 오토바이를 타고 남양주에서 달려왔다”고 말했다. 1시간 동안 줄을 서 조문을 했다는 김씨는 “아픈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충남 보령에서 새벽 열차를 타고 왔다는 전청흡(59)씨는 “어제 선종 소식을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파 직접 뵙고자 왔다”고 말했다. 수원에 사는 한태풍(18)군은 “학교에 가기 전에 들르려고 새벽 버스를 타고 왔다”며 “추기경님이 하신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말을 가슴에 담고 산다”고 했다. 불교방송 이사장인 영담 스님은 “국민의 성직자이신데, 오래 계셔야 하는데 일찍 가셔서 안타깝다”며 슬퍼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불교를 믿지만 종교가 무슨 상관인가.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이 돌아가셔서 애통하다”고 말했다.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도 이날 오후 성당을 찾아 조문한 뒤 “미국에 김수환 추기경을 아는 친구들이 많다”며 “수년 동안 민주화·인권·평등에 공헌하셨고, 마지막까지 나누고 가신 그의 삶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정진석 서울대교구장에게 조전을 보내 “국제사회와 함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애도를 표했다. 장례위원회 쪽은 이날 밤 10시 현재 추모객 수를 9만명으로 집계했다. 김 추기경의 고향인 대구에서는 그가 1951년 9월 사제 서품을 받은 계산성당에 분향소가 마련돼 신도들의 조문 발길이 이어졌다. 김 추기경이 어린 시절을 보낸 경북 군위군 용대리의 옛집에도 빈소가 차려졌다. 군위군 관계자는 “3년 전 김 추기경의 옛집을 복원해 초가집을 완성했고, 인근 터에 기념관을 건립할 예정이었는데 이를 못 보시고 떠났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추기경의 사제 서품 뒤 첫 부임지인 안동교구 목성동 성당, 55~56년 주임신부로 재직한 경북 김천 황금성당에도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이 밖에 부산·광주·대전 등지에서도 지역 교구 및 성당별로 분향소를 차리고 추모 미사를 진행했다. 권오성, 대구/박영률 기자 sage5th@hani.co.kr
명동성당서 ‘눈물로 추모’
지역 성당도 발길 이어져 김수환 추기경의 주검이 안치된 서울 명동성당 안팎은 17일 아침부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하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날 정오께 추모 행렬은 성당 마당을 굽이굽이 돌아 성당 밖 남산 1호터널 방향 인도까지 1㎞가량 꼬리를 물었다. 일부 추모객들은 조문을 위해 3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 ‘부디 영면하소서….’ 추모객들은 김 추기경의 주검이 안치된 유리관 앞에서 겨우 2~3초 머무는 사이 고개를 숙여 그의 안식을 기원했고, 곧바로 뒷사람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다. 조문을 마친 추모객들은 성당에서 매시간 진행되는 위령기도(연도)를 올리거나 삼삼오오 모여 김 추기경의 자취를 더듬으며 넋을 기렸다. 연도를 올리고자 하는 추모객들로 1200석 규모의 대성당을 비롯한 4곳의 조문소가 저녁까지 매번 꽉 찼다. 작업복 차림의 김진우(47)씨는 “어제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파 작업을 일찍 마치고, 오토바이를 타고 남양주에서 달려왔다”고 말했다. 1시간 동안 줄을 서 조문을 했다는 김씨는 “아픈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충남 보령에서 새벽 열차를 타고 왔다는 전청흡(59)씨는 “어제 선종 소식을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파 직접 뵙고자 왔다”고 말했다. 수원에 사는 한태풍(18)군은 “학교에 가기 전에 들르려고 새벽 버스를 타고 왔다”며 “추기경님이 하신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말을 가슴에 담고 산다”고 했다. 불교방송 이사장인 영담 스님은 “국민의 성직자이신데, 오래 계셔야 하는데 일찍 가셔서 안타깝다”며 슬퍼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불교를 믿지만 종교가 무슨 상관인가.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이 돌아가셔서 애통하다”고 말했다.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도 이날 오후 성당을 찾아 조문한 뒤 “미국에 김수환 추기경을 아는 친구들이 많다”며 “수년 동안 민주화·인권·평등에 공헌하셨고, 마지막까지 나누고 가신 그의 삶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정진석 서울대교구장에게 조전을 보내 “국제사회와 함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애도를 표했다. 장례위원회 쪽은 이날 밤 10시 현재 추모객 수를 9만명으로 집계했다. 김 추기경의 고향인 대구에서는 그가 1951년 9월 사제 서품을 받은 계산성당에 분향소가 마련돼 신도들의 조문 발길이 이어졌다. 김 추기경이 어린 시절을 보낸 경북 군위군 용대리의 옛집에도 빈소가 차려졌다. 군위군 관계자는 “3년 전 김 추기경의 옛집을 복원해 초가집을 완성했고, 인근 터에 기념관을 건립할 예정이었는데 이를 못 보시고 떠났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추기경의 사제 서품 뒤 첫 부임지인 안동교구 목성동 성당, 55~56년 주임신부로 재직한 경북 김천 황금성당에도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이 밖에 부산·광주·대전 등지에서도 지역 교구 및 성당별로 분향소를 차리고 추모 미사를 진행했다. 권오성, 대구/박영률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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