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정 교수(이하 서)= 요즘 누구나 위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모두 위기에 대해 다른 정의를 내리고 있다. 어떤 이는 금융위기를 말하고, 다른 이는 경제 전반의 위기를 얘기한다. 또 다른 이들은 신자유주의의 위기, 미국 헤게모니의 위기,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해 말한다. 현재의 위기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얘기로 오늘 대담을 시작하자.
월러스타인 교수(이하 월)=우선 위기란 말이 너무 막연하게 사용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기란 말을 단순히 상승했던 경기곡선이 하강하는 의미로 사용한다. 나는 위기란 용어를 그런 식으로 쓰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는 위기, 매우 드문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여기서 몇가지 요소들을 구분해야 한다. 1945년 이후 세계를 보면, 미국이 세계체제 속에서 확실한 헤게모니 국가였던 25년의 시기가 있었다. 이 시기는 세계 경제 역사상 최대의 경제적 팽창이 이뤄진 시기였다. 프랑스인들은 이 시기를 ‘영광의 30년(Les Trente Glorieuses, 1945~1975년)’이라고 부른다.
이 두 현상은 1970년께 거의 동시에 종말을 맞았다. 한편에서, 미국 헤게모니는 이 시기 이래로 계속 쇠락의 길을 걸었다. 콘트라티예프 순환(러시아 경제학자 콘트라티예프가 주장한 40~60년 주기의 경기순환, A국면은 팽창국면이고 B국면은 정체국면)의 관점에서 보면 이때 B국면에 들어섰다. 이후 세계경제는 30여년 동안 상대적 경기침체기를 겪었다. 경기침체의 전형적 특징은 독점기업이 막대한 이윤을 얻던 상황에서 다른 기업들이 시장에 효과적으로 진입해 이익을 얻던 대부분 기업들의 이윤 수준이 기본적으로 붕괴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두 가지 대응 방식이 있다. 역사적으로 임금이 보다 낮은 지역으로 산업을 이전하는 것이다. 보다 더 일찍 옮기지 않으면 거래상 손실을 보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이윤의 위기다. 다른 나라들이 발전하면서 한국도 보다 이윤이 적은 산업을 안게 되면서 그렇게 되고 있다.
콘드라티예브 순환의 B국면에서 일어나는 두번째는 사람들이 많은 돈을 금융영역으로 옮기고자 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여러 종류의 부채 메커니즘을 통한 투기이다. 나는 1970년대 미국과 서유럽 일본 등 강력한 경제 행위자들의 관점에서 이를 봐왔다. 나는 이것을 ‘실업을 수출하는 것’이라고 부른다. 산업생산 쇠퇴의 결과로 세계체제에 상당한 실업이 존재하기 때문에 누가 이것을 감내할 것이냐의 문제가 생긴다. 실업률을 0%로 만들수 없기 때문에 각국이 실업을 다른 나라로 수출하고자 한다. 1970년대엔 유럽이, 1980년대엔 일본이, 그리고 1990년대 초엔 미국이 이것을 잘 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여기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다양한 메커니즘을 통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금융투기는 항상 터지게 되어 있다. 지난 500년동안 그런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왜 이번에는 일어나지 않겠는가? 우리가 콘트라티에프 B국면의 막바지에 와 있기 때문에 금융위기가 터진 것이다. 최근 벌어진 메도프의 엄청난 폰지 금융사기는 금융투기로 이윤 창출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가장 완벽한 사례이다. 어떨 때는 그냥 넘어가기도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서= 콘드라티예프 순환의 현재 국면에서 흥미로운 점은, 미국 헤게모니가 이전보다 더욱 심각하게 의문시되고 있는 가운데, 세계 경제가 순환의 저점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베트남전 패배 이래 약 30년 동안 쇠퇴를 거듭해왔다. 이후 미국의 여러 행정부들이 다양한 수단을 통해 이 과정을 되돌리려 해왔다. 어떤 행정부는 인권외교나 일부 진보적인 조처들을 시도했고, 다른 행정부는 군사력을 확장하는 보다 현실적인 정책을 펴거나 스타워즈 같은 첨단 군사력에 눈을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행정부도 이 과정을 되돌리지는 못했지만, 모두 보다 적은 힘을 가지고 세계를 장악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으려 했다. 최근 조지 부시 행정부는 군사주의와 일방주의 정책을 통해 이런 흐름을 되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네오콘들과 손을 잡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들이 시도했던 일마다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쇠퇴의 과정을 되돌리고 미국의 헤게모니를 회복하는 대신, 쇠퇴의 과정을 가속화시킨 결과를 낳았다. 월= 2009년이 되는 현재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되돌릴 수 없는 다극적 국제상황에 처해 있다. 아주 복잡하고 혼란스런 상황이다. 그리고 ‘금융의 붕괴’, 경기후퇴 상황에 처해 있다. 심각한 디플레이션이 이어질 것이다. 디플레이션은 ‘천정부지로 물가가 치솟는 인플레이션의 형태를 띨 수 있지만, 그것은 디플레이션의 또다른 형태일 뿐이다. 4~5년 안에 거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정상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작동해온 방식이다. 헤게모니의 쇠락에도 새로운 것은 없다. 콘드라티예프 순환 B국면에서 새로운 것은 없다. 오히려 더 정상적이다. 서=헤게모니의 쇠락과 결합된 장기적인 경기침체는 역사적 세계체제의 정상적 활동의 일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그 자체로 어떻게 작동되나? 전체 체제가 그렇게 깊은 수렁에 빠져 현재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는가? 달리 말해,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과거에도 여러차례 위기를 겪었고, 성공적으로 헤쳐나왔다. 현재의 국면은 분명한 하강국면이다. 이 국면이 정상적 순환의 방향전환인가, 아니면 이번 위기를 과거 위기 국면과 다르게 만드는 뭔가가 있는가? 월= 무엇이 위기인가는 다른 문제이다. 우리는 정상적 하강국면과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번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위기라는 점에서 앞으로 20~30년 안에 체제가 안정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체제가 사라져 다른 종류의 세계체제로 대체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30년간 썼던 글들에서 수차례 설명한 얘기이지만, 자본의 세가지 기본 비용은 인적비용과 투입비용, 과세비용이다. 모든 자본가들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는 이 세가지 비용을 감담해야만 한다. 비용 부담이 너무 큰 반면에 생산으로 얻을 수 있는 잉여가치는 너무 줄어들어 분별력 있는 자본가들에겐 가치없는 상황이 왔다. 위험은 너무 큰 반면 이윤은 너무 작은 것이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대안을 찾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또다른 대안을 찾고 있다. 이에 대해, 나는 체제가 균형상태로부터 너무 많이 이탈해 일시적으로라도 어떤 균형상태로도 회복될 수 없게 됐다고 분석했다. 우리는 이러한 혼돈의 상황에 처해있다. 우리는 분기점에 놓여있는 것이다. 두가지 가능한 대안 중 어떤 것을 택하게 될지에 대해 근본적인 갈등이 있다. 예측할 수는 없지만,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보다 나은 체제를 맞이하거나, 자본주의보다 더 나쁜 체제를 갖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 체제는 우리가 가질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서= 세계체제 전체가 B국면에서 쇠퇴하고 있다고 하지만, 위기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1970, 1980, 1990년대에도 아주 위험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체제의 종말이나 자본주의 세계의 종말을 예견하는 전문가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세계체제는 어려움을 빠져나오는 방법을 찾아냈다. 예를 들어, 70년대에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석유위기를 빠져나오는 방법을 찾았고, 80, 90년대에도 그랬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자본주의 세계 경제는 20세기초 대공황이나 19세기의 대공황같은 보다 심각한 곤경도 벗어났다. 그렇다면, 이번 위기에서 그렇게 되기 어려운 이유는 뭐라고 보나? 월=첫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번은 아주 힘든 국면이다. 체제 붕괴를 1년이나 10년의 문제로 생각하는데, 체제 붕괴는 50~80년 걸리는 사안이다. 두번째로, 서 교수가 지적하고 위기 탈출과정은 바로 ‘실업을 수출하는 메카니즘’에 대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석유수출국기구(오펙)의 석유위기는 미국이 많은 지원을 했던 메커니즘이다. 실제로 미국이 부추겼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1973년 유가인상을 밀어부친 두 나라는 사우디와 이란이었다. 당시 이란의 국왕은 오펙 내에서 가장 친미적인 지도자였다. 유가 인상의 주요한 결과로 돈이 산유국으로 옮겨갔고, 그 돈이 즉시 미국은행에 예치됐다. 미국보다도 유럽과 일본이 힘들었다. 1970년대 은행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전세계 각국의 재무장관들을 상대로 “국제수지 문제로 정치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기꺼이 차관을 제공해 주겠다”며 차관을 제안했다. 물론 차관을 통해 돈을 끌어들일 수는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차관은 되갚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때고 터질 수 있는 채무상태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른바 채무위기는 멕시코 때문에 1982년에 발생한 것으로 흔히 이야기된다. 그러나, 나는 1980년에 폴란드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하다. 폴란드 상황을 분석해보면, 차관 때문에 빚어진 문제다. 폴란드 정부는 반발하는 노동자들을 억압함으로써 이 문제를 처리하려고 했다. 그 결과 이들 나라들은 모두 곤경에 빠져 또다른 차관을 찾아나서야 했다. 80년대는 정크본드(부도위험이 높은 낮은 신용등급의 채권)의 시대이다. 기업들이 다른 기업들을 사들여 정크본드를 발행해 많은 돈을 만들었다. 물론, 이게 터지면 새로운 메커니즘을 찾아나서야 한다.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새로운 메커니즘은 미국 정부와 미국 소비자였다. 부시 행정부는 이미 채무과잉 상태였다. 재무부 채권에 투자한 중국이나 한국 등 다른 국가들과 공생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는 미국이 부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믿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다. 부채는 언젠가는 갚아야 하는 것이다. 이게 현재의 상황이다. 중국이나 노르웨이, 카타르 같은 나라들이 한편으로는 (미국이) 자국의 상품을 계속 구매해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달러로 투자한 돈의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해서 미국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미묘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그래서 달러 가치가 올라가고 있다. 어느쪽에서든 돈을 잃게 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이들 나라들이 달러에서 서서히 손을 떼게 되면 달러는 붕괴하게 된다. 더 나아가 21세기 미국 헤게모니의 두축이 달러와 쓸모 없는 군사력이기 때문에 미국의 헤게모니는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은 엄청난 무기를 가지고 있지만 군인들이 없으니 군사력도 쓸모가 없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에 군대를 보내야 한다는 게 입증됐다. 그러나 미국에선 정치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군인들을 보낼 수가 없다. 미국이 마지막으로 진짜 군대를 사용했을 때 베트남 위기라는 ‘반란’을 겪었다. 그래서 미국은 군대를 동원하지 않고 용병을 쓰고 있다. 흑인, 라틴계, 그리고 시골의 백인 젊은이 같은 가난한 집 자식들에게 돈을 줘 복무하게 하고 있다. 미 육군과 해병대가 이렇게 꾸려지고 있다. 현재 이들 병력은 약간 과용되고 있다. 하지만 그들도 복무 연장을 할만큼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방위군이 동원되고 있다. 이들은 중산층 출신이다. 이들도 이라크에서 몇년씩 허비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도 복무연장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병사들이 없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어디에도 보낼 병사가 없다. 모두들 북한이다, 이라크다, 소말리아다 하는데, 말이 안되는 얘기다. 보낼 병사도 없고, 폭격할 수도 없다. 되지도 않을 일이다. 그래서 세계인들은 미국의 군사력이 쓸모없으니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은 무기쪽에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효과가 없다. 사람들이 이걸 깨닫게 된 이상 미국은 할 게 없다. 지금 미국은 최악의 금융위기를 맞고 있다. 달러는 (유일한 기축통화 지위를 잃어가면서) 여러 통화 가운데 하나가 됐다. 미국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나쁜 상황에 있다. 이것이 오바마가 당선된 이유다. 그러나 오바마도 마술을 부릴 수는 없다. 오바마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약간의 사회민주주의 정책을 펴는 것이고, 나도 이를 지지한다. 이를 통해 고통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그가 마술을 부려 미국의 헤게모니를 회복할 수는 없고, 마술같은 정책으로 세계 경기침체에서 미국을 빠져나오게 할 수도 없다. 오바마도 그럴 힘이 없고, 그밖에 어느 누구도 마찬가지다. 심하게 요동칠 혼돈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누구도 돈을 어디에 넣어둬야 할지 모른다. 매일매일 변동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당분간 이런 혼란이 계속될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건 결코 유쾌하지 않은 상황이다. 개인적인 수준에서나, 전체적 수준에서도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한 친구가 뭄바이 테러가 일어났는데도 인도에 간다고 해서 잘 다녀오라고 했다. 어디고 안전한 곳은 없다. 그 좋은 호텔들도 이전에는 위험하지 않은 곳이었다. 서= 지금은 그곳이 공격 목표가 되고 있다. 월= 그렇다. 다른 방법이 없다. 이른바 ‘테러리스트’들은 그런 장소를 선정할 때 아주 유리하다. 모든 것을 보호할 수는 없다. 제한적인 장소만을 골라 콘크리트 장벽을 세울 수 있다. 미국이 바그다드에 그린존을 만든 게 이런 것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는 있지만, 완벽하게 안전할 수는 없다. 서=현재 세계가 매우 혼란스러운 콘드라디에프 B국면에 들어가 있을 뿐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위기 말기에 와 있다고 진단했다. 이미 말기 단계에 들어섰다고 한다면 현재의 경제위기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월= 현재의 상황은 지난 20~30년 동안 계속된 상황의 일부이다.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도 20, 30, 40년 정도 계속될 것이다. 내 생각에서는 2050년이면, 우리는 다른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본다. 위기에서 벗어날 정상적인 메커니즘은 더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과거에도 이런 대공황을 몇차례 겪었다. 1929년의 대공황 외에도 1873~1896년은 콘드라티예프 B국면에 해당되고, 1893~1896년이 현재와 같은 시기였다. 지난 400~500년 동안 여러 차례 이런 일이 있었다. 거기에서 벗어나는 표준적 방식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너무 어려운 상황이라 벗어나는 방식이 작동되지 않고 있다. 표준적 방식은 새롭고 생산성이 높은 첨단 산업을 창출해 내고 이를 독점해 높은 이윤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들 상품을 위한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약간의 재분배가 이뤄진다. 이전에는 이런 방법을 통해 위기를 벗어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경기순환상의) 회복이 나타날 수는 있다. 앞으로 5년 뒤쯤에 상대적 회복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회복은 세가지 비용 곡선을 더욱 높여, 문제를 더 크게 만들 것이다. 오래 전 물리학의 한 분석을 보면, 한 곡선이 점근선(asymptote)을 따라 올라가 70~80%까지 도달했다가 갑자기 붕괴되기 시작한다는 분석이 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현재 상황은 3가지 비용곡선의 70~80% 지점에 와 있고, 엄청나게 요동치고 있다. 내가 혼란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너무 가깝기 때문에 더이상 올라갈 수 없다. 과거에는 여기서 20~30% 떨어졌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없었다. 30~40%로 떨어져 굴러갈 수 있었다. 올라가기만 한다면 더이상 갈 곳이 없다. 이게 점근선의 개념이다. 나는 판매가격의 관점에서 이를 분석하고자 한다. 일정 시점이 되면 가격이 너무 비싸져서 소비자들이 사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판매를 위해 무한정 요구하는대로 돈의 양을 확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서= 새 오바마 행정부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당신이 현재 자본주의 체제 위기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세가지 문제, 즉 임금비용, 투입비용, 과세비용의 상승이라는 문제에 오바마가 대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미국에서 높은 임금 비용의 주요 원인은 엄청나게 비싼 의료보험 비용이다. 의료보험계가 지난 몇십년 동안 신자유주의 물결을 타면서, 의료보험료는 엄청나게 올랐다. 신자유주의는 제약받지 않는 시장이 경제를 해치는 수준에 도달했다. 그래서, 오바마는 잠재적으로 전체적 임금비용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일종의 전국민 의료보험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또 오바마의 야심찬 국내 지출 프로그램은 사회기반시설과 신 기술 투자를 통해 투입비용 상승에 제동을 걸려는 노력으로 볼 수도 있다. ‘녹색 기술(친환경 기술)’에 투자하는 국가적 정책은 투입비용을 높이는 환경적인 외형을 줄이려는 것뿐 아니라 낮은 투입비용으로 높은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과세 문제는 적자지출로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바마는 지나친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치유하려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보다 심층적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오바마가 이런 목적을 이루는 데 얼마나 성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월= 오바마가 세계적인 장에서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오바마가 이 문제들을 공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이 하잘것 없는 존재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현재 세계에는 8~10개의 힘의 초점이 있고,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옵션은 제한적이다. 브라질에서 열린 리우그룹회의를 보자. 미국, 캐나다 그리고 유럽국가들을 초청하지 않은 채 중남미와 카리브해의 모든 국가들이 2백여년 만에 처음으로 모였다. 친미적인 콜롬비아와 페루, 두나라를 예외로 하면, 각국의 정상들이 다 모였다. 이 두 나라조차도 회의를 보이코트하지는 않고 정부 서열 2,3위의 인사를 파견했다. 멕시코 정상도 참석했다.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도 참석해 그 회의에서 가장 주목받았다. 리우 회의는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아주 강경한 입장을 취했고, 미국을 완전히 배제했다. 미국도 미주정상회의라는 다른 구조가 있고, 쿠바를 제외한 서반구의 국가 정상들이 미주정상회의에서 몇차례 만났다. 내년 4월에는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만날 예정이다. 그러나 몇나라나 참석할지 궁금하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리우정상회의를 통해 미주정상회의를 완전히 격하시켰다. 5년 전엔 생각할 수도 없던 일이다. 이게 오바마가 할 일이다. 오바마는 유럽연합이 오바마의 당선을 환호하면서도 “미국과 우호관계를 새롭게 하길 원하지만, 이번에는 유럽이 하위 파트너가 되지 않겠다”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사실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려볼 수 있는 그림은 아주 분명하다. 며칠 전, 한·중·일 3국 정상회담(12월13일·후쿠오카)이 열려 내가 오래 전에 ‘언젠가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처럼 3국 사이의 일종의 정치적 협력을 다짐했다. 미국이 원하지 않는 일이다. 오바마는 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축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바마가 세계인들을 향해 좀더 맘에 들게 말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미국을 지도국가로 만들 수는 없다. 오바마는 미국이 지도국가라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지만,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어느 나라도 미국을 지도국가로 원치 않는다. 사람들은 미국이 지도국가가 아니라, 기후변화와 같은 많은 사안에서 협력국가의 하나가 되길 원한다. 그리고 오바마의 손발은 세계경제에 묶여 있다. 오바마가 할 수 있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국내적으로 국가기구를 활용해 국내적 소요를 막기 위해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을 펴는 일이다. 미국이나 중국, 남아프리카, 독일에서도 이런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최근 그리스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분노한 이들의 자발적인 봉기가 일어날까봐 걱정하고 있다. 정부가 대처하기 매우 어려운 일이다. 국민들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에 약간 화를 내고 있다면, 그들은 더욱 분노하게 될 것이다. 모든 정부는 이들을 달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게 오바마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오바마는 국내적으로 이런 일들을 하게 될 것이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다리를 짓는 데 돈을 쓸 것이다. 전국민 의료보험도 시행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일도 국내적, 지역적인 일이다. 다른 나라 지도자들이 자국에서 하는 일과 똑같은 일이다. 오바마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한다면 대단한 성공을 거둘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계를 모른다면 뭔가에 끌려들어가게 될 것이다. 최근에 파키스탄과 관련해 ‘파키스탄, 오바마의 악몽’이란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오바마가 파키스탄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우리는 충분한 피해를 입었다. 오바마가 더이상 뭔가를 하려 한다면 무모한 일이 될 것이다. 선거과정에서 오바마는 “나도 깐깐한 놈”이라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그래서 그는 아프가니스탄도 그래도 둘 수 없다는 성명을 내놨다. 파키스탄에 대해서, 그리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도 성명을 발표했다. 오바마는 이제 성명을 내놓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오바마는 수사를 낮춰야 한다. 오바마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얘기해줘야 한다. 서= 우리는 매우 달라진 세상을 보고 있다. 브레튼우즈협정 이래 세계통화로 자리잡아 1970대 위기에서도 살아남았던 달러가 뚜렷하게 약해졌다. 달러는 특히 다음 세계통화를 놓고 경쟁하는 유로나 엔화 같은 다른 통화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금융위기는 달러에 대한 믿음을 근본적으로 흔들었고, 어떤 이들은 세계통화로서 달러는 이미 붕괴했다고 얘기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은 도전자가 없는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고, 이런 군사적 우위를 지키기 위해 불균형적으로 지출하고 있다. 미국은 나머지 전세계 국가들의 군사비 지출을 모두 합친 것만큼이나 지출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력은 아무리 기술적으로 정교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간 같은 전장에서는 효과가 거의 없고, 쓸모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헤게모니의 두 주요축이 속속들이 흔들리고 있다. 이런 변화가 지정학적 분열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는가? 월= 맞다. 일리있는 질문이다. 내가 보기엔 현재 세계에는 8~10개의 지정학적 파워국가들이 있다. 너무 많다. 이 모든 나라들은 각자 충분한 파워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타협을 통해 최상의 조합을 모색하려 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교묘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 사람들은 가능성을 엄밀히 따져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상하이협력기구(SCO)가 가능한 조합이다. 러시아나 인도, 중국도 확신하지 못한다. 러시아나 중국은 상황을 주도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브라질과 중남미 국가들과 은밀하게 거래를 하고 있다. 미국도 그런 게임을 할 수 있다. 일찌기 1980년대에 쓴 논문에서 가능한 조합에 대해 주장한 적이 있다. 동아시아와 미국의 결합, 그리고 유럽과 러시아의 결합이 가능하고, 인도는 이 가운데 어디에 합류하려 하는지 확실하지 않다. 서= 당신이 쓴 글들에서 얘기하고 있는 분열 중의 하나는 다보스포럼과 세계시민사회포럼간의 분열이다. 이건 지정학적인 분열은 아니다. 월= 맞다. 이건 정치적 분열이다. 서= 서로 다른 정치적 비전이라는 관점에서 정치적인 분열이다. 월= 이런 분열이 현실의 위기를 대처해야 한다. 우리가 가능한 두개의 해결책을 의미하는 분기점에 놓여있다고 한다면, 다보스포럼과 세계시민사회포럼(포르투알레그레)는 서로 다른 가능한 해결책이다. 어느 쪽이 승리하게 될지는 매우 불확실하지만, 분명히 매우 다른 비전이다. 중요한 점은 다보스포럼에 참여한 이들이 자본주의를 복구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다보스포럼은 불평등과 위계질서 등의 원칙을 유지하려는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와는 다른, 이를 담당할 또다른 체제를 가지게 될 수도 있다. 세계시민사회포럼은 보다 민주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시스템이다. 어느 쪽도 미래의 구조에 대한 분명한 상을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다. 어느 쪽도 완전히 통합되어 있지는 않다. 다시 말해, 다보스포럼에선 약간 장기적 비전을 보려는 사람들과 단지 앞으로 3년을 걱정하는 사람들로 나뉘어 있다. 그들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세계시민사회포럼도 그들이 얘기하는 ‘다른 세계’가 어떤 시스템이 될지에 대해 전적으로 확신하지 못하고 있긴 마찬가지다. 특히 그들은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사용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앞으로 5년 내지 10년 동안 다보스 진영 안에서 뭔가 진행될 것이다. 엄밀하게 다보스포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다보스의 정신’이라고 부르고 싶다. 포르토알레그레 진영에서도 세계시민사회포럼의 정신과 같은 뭔가가 이뤄질 것이다. 현재로선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다. 어느 쪽이 좀더 분명한 전략을 갖게 될지, 그게 뭔지에 대해선 알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무엇이 일어날지에 대해 아주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 어느 한쪽이 보다 낫고 분명한 비전을 갖고 승리하게 된다면, 이 문제는 결정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서= 우리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말기 단계에 와 있다. 현재의 금융위기를 헤쳐나가거나 국경을 넘는 금융거래에 대한 감독기구를 제도화하는 방법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은 체제의 종말을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종의 생명보조장치로 죽어가는 체제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것이다. 그들의 논지는 예를 들면 50억달러와 100억달러 구제금융중 무엇이 최선의 생명보조장치인가 하는 식이다. 그러나, 진짜 논의는 현재의 세계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결국 대체하게 될 새로운 역사적 세계체제에 대한 것이다. 월러스타인 교수께서 말씀하신대로 두 진영이 서로 다른 세계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경쟁적으로 자신들의 비전을 구체화해가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그려나가고 있다. 한쪽은 현재와 같은 권력과 생산의 불평등한 분배구조를 다른식으로 재생산하려 하고 있다. 이 세계는 국가의 발전적 역할과 규제 기능 그리고 현재 세계의 구조적 문제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될 구제기구의 감독과 관리에 기반을 두게 될지도 모른다. 반면, 다른 한 진영은 보다 민주적이고 평등주의적인 다른 세상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다. 그러나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여전히 할 일이 남아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우리가 가져야 할 비전은 무엇인가? 월= 그점이 바로 현재 사람들이 논쟁하고 있는 부분이다. 평등한 세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예를 들어, 논쟁이 되고 있는 한 가지 점은 지난 2백년 동안 세상은 자코뱅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지향적 정책뿐 아니라 누구나 똑같아야 한다는 단일화의 결과가 빚어졌다. 사람들을 똑같은 종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려 한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것이 그런 것들이다.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혁명, 중국혁명이 모두 그랬다.그러나 지금 자코뱅적인 비전은 심각한 의문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다양한 문화가 번성하는 것이 허용되길 원하고 있다. 정확히, 이게 무슨 뜻인가? 나는 두갈래 전략이 맞다고 주장해 왔다. 항상 단기적으로 차악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벌어져왔다. 사람들은 오래 살지 못하고 지금 일을 10년이나 20년 뒤로 미루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보다 덜 나쁜 악을 찾아나선다. 항상 차악은 존재한다. 하지만 차악일 뿐이다. 동시에 건설하고자 하는 새로운 세계의 보다 큰 부분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이 문제는 비전에 대한 끊임없는 토론과 협상 그리고 통합의 문제이다. 이게 내가 제안할 수 있는 전부다. 나는 끝까지 이를 추구할 것이다. 서= 유익하고 통찰력 있는 말씀에 감사드린다. 정리/뉴헤이븐(예일대)/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서= 콘드라티예프 순환의 현재 국면에서 흥미로운 점은, 미국 헤게모니가 이전보다 더욱 심각하게 의문시되고 있는 가운데, 세계 경제가 순환의 저점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베트남전 패배 이래 약 30년 동안 쇠퇴를 거듭해왔다. 이후 미국의 여러 행정부들이 다양한 수단을 통해 이 과정을 되돌리려 해왔다. 어떤 행정부는 인권외교나 일부 진보적인 조처들을 시도했고, 다른 행정부는 군사력을 확장하는 보다 현실적인 정책을 펴거나 스타워즈 같은 첨단 군사력에 눈을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행정부도 이 과정을 되돌리지는 못했지만, 모두 보다 적은 힘을 가지고 세계를 장악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으려 했다. 최근 조지 부시 행정부는 군사주의와 일방주의 정책을 통해 이런 흐름을 되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네오콘들과 손을 잡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들이 시도했던 일마다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쇠퇴의 과정을 되돌리고 미국의 헤게모니를 회복하는 대신, 쇠퇴의 과정을 가속화시킨 결과를 낳았다. 월= 2009년이 되는 현재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되돌릴 수 없는 다극적 국제상황에 처해 있다. 아주 복잡하고 혼란스런 상황이다. 그리고 ‘금융의 붕괴’, 경기후퇴 상황에 처해 있다. 심각한 디플레이션이 이어질 것이다. 디플레이션은 ‘천정부지로 물가가 치솟는 인플레이션의 형태를 띨 수 있지만, 그것은 디플레이션의 또다른 형태일 뿐이다. 4~5년 안에 거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정상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작동해온 방식이다. 헤게모니의 쇠락에도 새로운 것은 없다. 콘드라티예프 순환 B국면에서 새로운 것은 없다. 오히려 더 정상적이다. 서=헤게모니의 쇠락과 결합된 장기적인 경기침체는 역사적 세계체제의 정상적 활동의 일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그 자체로 어떻게 작동되나? 전체 체제가 그렇게 깊은 수렁에 빠져 현재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는가? 달리 말해,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과거에도 여러차례 위기를 겪었고, 성공적으로 헤쳐나왔다. 현재의 국면은 분명한 하강국면이다. 이 국면이 정상적 순환의 방향전환인가, 아니면 이번 위기를 과거 위기 국면과 다르게 만드는 뭔가가 있는가? 월= 무엇이 위기인가는 다른 문제이다. 우리는 정상적 하강국면과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번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위기라는 점에서 앞으로 20~30년 안에 체제가 안정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체제가 사라져 다른 종류의 세계체제로 대체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30년간 썼던 글들에서 수차례 설명한 얘기이지만, 자본의 세가지 기본 비용은 인적비용과 투입비용, 과세비용이다. 모든 자본가들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는 이 세가지 비용을 감담해야만 한다. 비용 부담이 너무 큰 반면에 생산으로 얻을 수 있는 잉여가치는 너무 줄어들어 분별력 있는 자본가들에겐 가치없는 상황이 왔다. 위험은 너무 큰 반면 이윤은 너무 작은 것이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대안을 찾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또다른 대안을 찾고 있다. 이에 대해, 나는 체제가 균형상태로부터 너무 많이 이탈해 일시적으로라도 어떤 균형상태로도 회복될 수 없게 됐다고 분석했다. 우리는 이러한 혼돈의 상황에 처해있다. 우리는 분기점에 놓여있는 것이다. 두가지 가능한 대안 중 어떤 것을 택하게 될지에 대해 근본적인 갈등이 있다. 예측할 수는 없지만,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보다 나은 체제를 맞이하거나, 자본주의보다 더 나쁜 체제를 갖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 체제는 우리가 가질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서= 세계체제 전체가 B국면에서 쇠퇴하고 있다고 하지만, 위기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1970, 1980, 1990년대에도 아주 위험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체제의 종말이나 자본주의 세계의 종말을 예견하는 전문가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세계체제는 어려움을 빠져나오는 방법을 찾아냈다. 예를 들어, 70년대에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석유위기를 빠져나오는 방법을 찾았고, 80, 90년대에도 그랬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자본주의 세계 경제는 20세기초 대공황이나 19세기의 대공황같은 보다 심각한 곤경도 벗어났다. 그렇다면, 이번 위기에서 그렇게 되기 어려운 이유는 뭐라고 보나? 월=첫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번은 아주 힘든 국면이다. 체제 붕괴를 1년이나 10년의 문제로 생각하는데, 체제 붕괴는 50~80년 걸리는 사안이다. 두번째로, 서 교수가 지적하고 위기 탈출과정은 바로 ‘실업을 수출하는 메카니즘’에 대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석유수출국기구(오펙)의 석유위기는 미국이 많은 지원을 했던 메커니즘이다. 실제로 미국이 부추겼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1973년 유가인상을 밀어부친 두 나라는 사우디와 이란이었다. 당시 이란의 국왕은 오펙 내에서 가장 친미적인 지도자였다. 유가 인상의 주요한 결과로 돈이 산유국으로 옮겨갔고, 그 돈이 즉시 미국은행에 예치됐다. 미국보다도 유럽과 일본이 힘들었다. 1970년대 은행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전세계 각국의 재무장관들을 상대로 “국제수지 문제로 정치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기꺼이 차관을 제공해 주겠다”며 차관을 제안했다. 물론 차관을 통해 돈을 끌어들일 수는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차관은 되갚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때고 터질 수 있는 채무상태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른바 채무위기는 멕시코 때문에 1982년에 발생한 것으로 흔히 이야기된다. 그러나, 나는 1980년에 폴란드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하다. 폴란드 상황을 분석해보면, 차관 때문에 빚어진 문제다. 폴란드 정부는 반발하는 노동자들을 억압함으로써 이 문제를 처리하려고 했다. 그 결과 이들 나라들은 모두 곤경에 빠져 또다른 차관을 찾아나서야 했다. 80년대는 정크본드(부도위험이 높은 낮은 신용등급의 채권)의 시대이다. 기업들이 다른 기업들을 사들여 정크본드를 발행해 많은 돈을 만들었다. 물론, 이게 터지면 새로운 메커니즘을 찾아나서야 한다.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새로운 메커니즘은 미국 정부와 미국 소비자였다. 부시 행정부는 이미 채무과잉 상태였다. 재무부 채권에 투자한 중국이나 한국 등 다른 국가들과 공생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는 미국이 부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믿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다. 부채는 언젠가는 갚아야 하는 것이다. 이게 현재의 상황이다. 중국이나 노르웨이, 카타르 같은 나라들이 한편으로는 (미국이) 자국의 상품을 계속 구매해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달러로 투자한 돈의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해서 미국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미묘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그래서 달러 가치가 올라가고 있다. 어느쪽에서든 돈을 잃게 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이들 나라들이 달러에서 서서히 손을 떼게 되면 달러는 붕괴하게 된다. 더 나아가 21세기 미국 헤게모니의 두축이 달러와 쓸모 없는 군사력이기 때문에 미국의 헤게모니는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은 엄청난 무기를 가지고 있지만 군인들이 없으니 군사력도 쓸모가 없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에 군대를 보내야 한다는 게 입증됐다. 그러나 미국에선 정치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군인들을 보낼 수가 없다. 미국이 마지막으로 진짜 군대를 사용했을 때 베트남 위기라는 ‘반란’을 겪었다. 그래서 미국은 군대를 동원하지 않고 용병을 쓰고 있다. 흑인, 라틴계, 그리고 시골의 백인 젊은이 같은 가난한 집 자식들에게 돈을 줘 복무하게 하고 있다. 미 육군과 해병대가 이렇게 꾸려지고 있다. 현재 이들 병력은 약간 과용되고 있다. 하지만 그들도 복무 연장을 할만큼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방위군이 동원되고 있다. 이들은 중산층 출신이다. 이들도 이라크에서 몇년씩 허비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도 복무연장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병사들이 없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어디에도 보낼 병사가 없다. 모두들 북한이다, 이라크다, 소말리아다 하는데, 말이 안되는 얘기다. 보낼 병사도 없고, 폭격할 수도 없다. 되지도 않을 일이다. 그래서 세계인들은 미국의 군사력이 쓸모없으니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은 무기쪽에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효과가 없다. 사람들이 이걸 깨닫게 된 이상 미국은 할 게 없다. 지금 미국은 최악의 금융위기를 맞고 있다. 달러는 (유일한 기축통화 지위를 잃어가면서) 여러 통화 가운데 하나가 됐다. 미국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나쁜 상황에 있다. 이것이 오바마가 당선된 이유다. 그러나 오바마도 마술을 부릴 수는 없다. 오바마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약간의 사회민주주의 정책을 펴는 것이고, 나도 이를 지지한다. 이를 통해 고통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그가 마술을 부려 미국의 헤게모니를 회복할 수는 없고, 마술같은 정책으로 세계 경기침체에서 미국을 빠져나오게 할 수도 없다. 오바마도 그럴 힘이 없고, 그밖에 어느 누구도 마찬가지다. 심하게 요동칠 혼돈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누구도 돈을 어디에 넣어둬야 할지 모른다. 매일매일 변동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당분간 이런 혼란이 계속될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건 결코 유쾌하지 않은 상황이다. 개인적인 수준에서나, 전체적 수준에서도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한 친구가 뭄바이 테러가 일어났는데도 인도에 간다고 해서 잘 다녀오라고 했다. 어디고 안전한 곳은 없다. 그 좋은 호텔들도 이전에는 위험하지 않은 곳이었다. 서= 지금은 그곳이 공격 목표가 되고 있다. 월= 그렇다. 다른 방법이 없다. 이른바 ‘테러리스트’들은 그런 장소를 선정할 때 아주 유리하다. 모든 것을 보호할 수는 없다. 제한적인 장소만을 골라 콘크리트 장벽을 세울 수 있다. 미국이 바그다드에 그린존을 만든 게 이런 것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는 있지만, 완벽하게 안전할 수는 없다. 서=현재 세계가 매우 혼란스러운 콘드라디에프 B국면에 들어가 있을 뿐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위기 말기에 와 있다고 진단했다. 이미 말기 단계에 들어섰다고 한다면 현재의 경제위기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월= 현재의 상황은 지난 20~30년 동안 계속된 상황의 일부이다.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도 20, 30, 40년 정도 계속될 것이다. 내 생각에서는 2050년이면, 우리는 다른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본다. 위기에서 벗어날 정상적인 메커니즘은 더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과거에도 이런 대공황을 몇차례 겪었다. 1929년의 대공황 외에도 1873~1896년은 콘드라티예프 B국면에 해당되고, 1893~1896년이 현재와 같은 시기였다. 지난 400~500년 동안 여러 차례 이런 일이 있었다. 거기에서 벗어나는 표준적 방식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너무 어려운 상황이라 벗어나는 방식이 작동되지 않고 있다. 표준적 방식은 새롭고 생산성이 높은 첨단 산업을 창출해 내고 이를 독점해 높은 이윤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들 상품을 위한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약간의 재분배가 이뤄진다. 이전에는 이런 방법을 통해 위기를 벗어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경기순환상의) 회복이 나타날 수는 있다. 앞으로 5년 뒤쯤에 상대적 회복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회복은 세가지 비용 곡선을 더욱 높여, 문제를 더 크게 만들 것이다. 오래 전 물리학의 한 분석을 보면, 한 곡선이 점근선(asymptote)을 따라 올라가 70~80%까지 도달했다가 갑자기 붕괴되기 시작한다는 분석이 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현재 상황은 3가지 비용곡선의 70~80% 지점에 와 있고, 엄청나게 요동치고 있다. 내가 혼란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너무 가깝기 때문에 더이상 올라갈 수 없다. 과거에는 여기서 20~30% 떨어졌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없었다. 30~40%로 떨어져 굴러갈 수 있었다. 올라가기만 한다면 더이상 갈 곳이 없다. 이게 점근선의 개념이다. 나는 판매가격의 관점에서 이를 분석하고자 한다. 일정 시점이 되면 가격이 너무 비싸져서 소비자들이 사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판매를 위해 무한정 요구하는대로 돈의 양을 확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서= 새 오바마 행정부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당신이 현재 자본주의 체제 위기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세가지 문제, 즉 임금비용, 투입비용, 과세비용의 상승이라는 문제에 오바마가 대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미국에서 높은 임금 비용의 주요 원인은 엄청나게 비싼 의료보험 비용이다. 의료보험계가 지난 몇십년 동안 신자유주의 물결을 타면서, 의료보험료는 엄청나게 올랐다. 신자유주의는 제약받지 않는 시장이 경제를 해치는 수준에 도달했다. 그래서, 오바마는 잠재적으로 전체적 임금비용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일종의 전국민 의료보험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또 오바마의 야심찬 국내 지출 프로그램은 사회기반시설과 신 기술 투자를 통해 투입비용 상승에 제동을 걸려는 노력으로 볼 수도 있다. ‘녹색 기술(친환경 기술)’에 투자하는 국가적 정책은 투입비용을 높이는 환경적인 외형을 줄이려는 것뿐 아니라 낮은 투입비용으로 높은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과세 문제는 적자지출로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바마는 지나친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치유하려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보다 심층적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오바마가 이런 목적을 이루는 데 얼마나 성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월= 오바마가 세계적인 장에서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오바마가 이 문제들을 공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이 하잘것 없는 존재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현재 세계에는 8~10개의 힘의 초점이 있고,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옵션은 제한적이다. 브라질에서 열린 리우그룹회의를 보자. 미국, 캐나다 그리고 유럽국가들을 초청하지 않은 채 중남미와 카리브해의 모든 국가들이 2백여년 만에 처음으로 모였다. 친미적인 콜롬비아와 페루, 두나라를 예외로 하면, 각국의 정상들이 다 모였다. 이 두 나라조차도 회의를 보이코트하지는 않고 정부 서열 2,3위의 인사를 파견했다. 멕시코 정상도 참석했다.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도 참석해 그 회의에서 가장 주목받았다. 리우 회의는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아주 강경한 입장을 취했고, 미국을 완전히 배제했다. 미국도 미주정상회의라는 다른 구조가 있고, 쿠바를 제외한 서반구의 국가 정상들이 미주정상회의에서 몇차례 만났다. 내년 4월에는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만날 예정이다. 그러나 몇나라나 참석할지 궁금하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리우정상회의를 통해 미주정상회의를 완전히 격하시켰다. 5년 전엔 생각할 수도 없던 일이다. 이게 오바마가 할 일이다. 오바마는 유럽연합이 오바마의 당선을 환호하면서도 “미국과 우호관계를 새롭게 하길 원하지만, 이번에는 유럽이 하위 파트너가 되지 않겠다”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사실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려볼 수 있는 그림은 아주 분명하다. 며칠 전, 한·중·일 3국 정상회담(12월13일·후쿠오카)이 열려 내가 오래 전에 ‘언젠가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처럼 3국 사이의 일종의 정치적 협력을 다짐했다. 미국이 원하지 않는 일이다. 오바마는 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축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바마가 세계인들을 향해 좀더 맘에 들게 말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미국을 지도국가로 만들 수는 없다. 오바마는 미국이 지도국가라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지만,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어느 나라도 미국을 지도국가로 원치 않는다. 사람들은 미국이 지도국가가 아니라, 기후변화와 같은 많은 사안에서 협력국가의 하나가 되길 원한다. 그리고 오바마의 손발은 세계경제에 묶여 있다. 오바마가 할 수 있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국내적으로 국가기구를 활용해 국내적 소요를 막기 위해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을 펴는 일이다. 미국이나 중국, 남아프리카, 독일에서도 이런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최근 그리스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분노한 이들의 자발적인 봉기가 일어날까봐 걱정하고 있다. 정부가 대처하기 매우 어려운 일이다. 국민들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에 약간 화를 내고 있다면, 그들은 더욱 분노하게 될 것이다. 모든 정부는 이들을 달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게 오바마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오바마는 국내적으로 이런 일들을 하게 될 것이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다리를 짓는 데 돈을 쓸 것이다. 전국민 의료보험도 시행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일도 국내적, 지역적인 일이다. 다른 나라 지도자들이 자국에서 하는 일과 똑같은 일이다. 오바마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한다면 대단한 성공을 거둘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계를 모른다면 뭔가에 끌려들어가게 될 것이다. 최근에 파키스탄과 관련해 ‘파키스탄, 오바마의 악몽’이란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오바마가 파키스탄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우리는 충분한 피해를 입었다. 오바마가 더이상 뭔가를 하려 한다면 무모한 일이 될 것이다. 선거과정에서 오바마는 “나도 깐깐한 놈”이라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그래서 그는 아프가니스탄도 그래도 둘 수 없다는 성명을 내놨다. 파키스탄에 대해서, 그리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도 성명을 발표했다. 오바마는 이제 성명을 내놓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오바마는 수사를 낮춰야 한다. 오바마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얘기해줘야 한다. 서= 우리는 매우 달라진 세상을 보고 있다. 브레튼우즈협정 이래 세계통화로 자리잡아 1970대 위기에서도 살아남았던 달러가 뚜렷하게 약해졌다. 달러는 특히 다음 세계통화를 놓고 경쟁하는 유로나 엔화 같은 다른 통화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금융위기는 달러에 대한 믿음을 근본적으로 흔들었고, 어떤 이들은 세계통화로서 달러는 이미 붕괴했다고 얘기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은 도전자가 없는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고, 이런 군사적 우위를 지키기 위해 불균형적으로 지출하고 있다. 미국은 나머지 전세계 국가들의 군사비 지출을 모두 합친 것만큼이나 지출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력은 아무리 기술적으로 정교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간 같은 전장에서는 효과가 거의 없고, 쓸모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헤게모니의 두 주요축이 속속들이 흔들리고 있다. 이런 변화가 지정학적 분열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는가? 월= 맞다. 일리있는 질문이다. 내가 보기엔 현재 세계에는 8~10개의 지정학적 파워국가들이 있다. 너무 많다. 이 모든 나라들은 각자 충분한 파워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타협을 통해 최상의 조합을 모색하려 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교묘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 사람들은 가능성을 엄밀히 따져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상하이협력기구(SCO)가 가능한 조합이다. 러시아나 인도, 중국도 확신하지 못한다. 러시아나 중국은 상황을 주도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브라질과 중남미 국가들과 은밀하게 거래를 하고 있다. 미국도 그런 게임을 할 수 있다. 일찌기 1980년대에 쓴 논문에서 가능한 조합에 대해 주장한 적이 있다. 동아시아와 미국의 결합, 그리고 유럽과 러시아의 결합이 가능하고, 인도는 이 가운데 어디에 합류하려 하는지 확실하지 않다. 서= 당신이 쓴 글들에서 얘기하고 있는 분열 중의 하나는 다보스포럼과 세계시민사회포럼간의 분열이다. 이건 지정학적인 분열은 아니다. 월= 맞다. 이건 정치적 분열이다. 서= 서로 다른 정치적 비전이라는 관점에서 정치적인 분열이다. 월= 이런 분열이 현실의 위기를 대처해야 한다. 우리가 가능한 두개의 해결책을 의미하는 분기점에 놓여있다고 한다면, 다보스포럼과 세계시민사회포럼(포르투알레그레)는 서로 다른 가능한 해결책이다. 어느 쪽이 승리하게 될지는 매우 불확실하지만, 분명히 매우 다른 비전이다. 중요한 점은 다보스포럼에 참여한 이들이 자본주의를 복구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다보스포럼은 불평등과 위계질서 등의 원칙을 유지하려는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와는 다른, 이를 담당할 또다른 체제를 가지게 될 수도 있다. 세계시민사회포럼은 보다 민주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시스템이다. 어느 쪽도 미래의 구조에 대한 분명한 상을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다. 어느 쪽도 완전히 통합되어 있지는 않다. 다시 말해, 다보스포럼에선 약간 장기적 비전을 보려는 사람들과 단지 앞으로 3년을 걱정하는 사람들로 나뉘어 있다. 그들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세계시민사회포럼도 그들이 얘기하는 ‘다른 세계’가 어떤 시스템이 될지에 대해 전적으로 확신하지 못하고 있긴 마찬가지다. 특히 그들은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사용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앞으로 5년 내지 10년 동안 다보스 진영 안에서 뭔가 진행될 것이다. 엄밀하게 다보스포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다보스의 정신’이라고 부르고 싶다. 포르토알레그레 진영에서도 세계시민사회포럼의 정신과 같은 뭔가가 이뤄질 것이다. 현재로선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다. 어느 쪽이 좀더 분명한 전략을 갖게 될지, 그게 뭔지에 대해선 알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무엇이 일어날지에 대해 아주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 어느 한쪽이 보다 낫고 분명한 비전을 갖고 승리하게 된다면, 이 문제는 결정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서= 우리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말기 단계에 와 있다. 현재의 금융위기를 헤쳐나가거나 국경을 넘는 금융거래에 대한 감독기구를 제도화하는 방법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은 체제의 종말을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종의 생명보조장치로 죽어가는 체제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것이다. 그들의 논지는 예를 들면 50억달러와 100억달러 구제금융중 무엇이 최선의 생명보조장치인가 하는 식이다. 그러나, 진짜 논의는 현재의 세계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결국 대체하게 될 새로운 역사적 세계체제에 대한 것이다. 월러스타인 교수께서 말씀하신대로 두 진영이 서로 다른 세계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경쟁적으로 자신들의 비전을 구체화해가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그려나가고 있다. 한쪽은 현재와 같은 권력과 생산의 불평등한 분배구조를 다른식으로 재생산하려 하고 있다. 이 세계는 국가의 발전적 역할과 규제 기능 그리고 현재 세계의 구조적 문제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될 구제기구의 감독과 관리에 기반을 두게 될지도 모른다. 반면, 다른 한 진영은 보다 민주적이고 평등주의적인 다른 세상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다. 그러나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여전히 할 일이 남아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우리가 가져야 할 비전은 무엇인가? 월= 그점이 바로 현재 사람들이 논쟁하고 있는 부분이다. 평등한 세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예를 들어, 논쟁이 되고 있는 한 가지 점은 지난 2백년 동안 세상은 자코뱅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지향적 정책뿐 아니라 누구나 똑같아야 한다는 단일화의 결과가 빚어졌다. 사람들을 똑같은 종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려 한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것이 그런 것들이다.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혁명, 중국혁명이 모두 그랬다.그러나 지금 자코뱅적인 비전은 심각한 의문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다양한 문화가 번성하는 것이 허용되길 원하고 있다. 정확히, 이게 무슨 뜻인가? 나는 두갈래 전략이 맞다고 주장해 왔다. 항상 단기적으로 차악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벌어져왔다. 사람들은 오래 살지 못하고 지금 일을 10년이나 20년 뒤로 미루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보다 덜 나쁜 악을 찾아나선다. 항상 차악은 존재한다. 하지만 차악일 뿐이다. 동시에 건설하고자 하는 새로운 세계의 보다 큰 부분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이 문제는 비전에 대한 끊임없는 토론과 협상 그리고 통합의 문제이다. 이게 내가 제안할 수 있는 전부다. 나는 끝까지 이를 추구할 것이다. 서= 유익하고 통찰력 있는 말씀에 감사드린다. 정리/뉴헤이븐(예일대)/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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