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의 요리사 이현진(28·사진)
롯데호텔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 이현진 요리사
프랑스 요리학교 간 불문학도
시골 레스토랑서 ‘현장 실습’ ‘내 꿈의 방향을 묻는다’는 시인 정지원의 질문에 당신은 뭐라 답하겠는가. “아직 모른다”는 답이 많을 것 같다. “흔들림 없이 꿈을 향해 간다”고 답할 자신만만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지난 10월 문 연 롯데호텔 서울의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의 요리사 이현진(28·사진)씨는 자신있게 답할 것 같은 사람이다. 그는 고교2년 때 텔레비전에서 프랑스의 요리학교 르 꼬르동 블루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꿈의 방향을 처음 느꼈다. 고향 대구에서 작은 한식당을 운영하던 부모는 딸을 주방에 부르는 일이 없었다. 조리학교가 아닌 인문계 고교에 다닌 뒤 대학 불문학과로 진학했다. 그러나 이는 준비 시기였다. 불어의 기초를 닦은 뒤 2001년 파리로 떴다. 같은 해 9월 르 꼬르동 블루에 입학했다. 2년간 제과·제빵과 요리를 공부했다. 수업 진행 아르바이트를 하며 같은 수업을 4번씩 들었다. 졸업 뒤 다른 한국인 동기들은 대도시에 남았지만, 이 요리사는 자신을 시험하고 싶었다. 프랑스 중동부 시골의 레스토랑 주방을 책임졌다. 현장은 그에게 ‘학교에서 배우는 건 일부’라는 진리를 가르쳐줬다. 협객이 강호의 고수를 찾아가 제자를 자청하듯, 2004년 조엘 로부숑의 레스토랑 문을 두드렸다. 이곳은 레스토랑 가이드 <미슐랭 가이드>에서 최고 평점인 별 셋을 여러 차례 받고, 다른 매체에서도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5위 안에 꼽힌 곳이다. 6개월 분투끝 실력 인정받아
“스스로 만족해야 진짜 요리”
하지만 그의 주방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넘치는 공간이었다. 욕설과 상명하복, 여성비하적인 성적 농담이 난무했다. 누구도 ‘동양 여자애’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여섯 달 동안 급료 없이 일했다. 어느 날 조엘 로부숑이 그의 어깨를 조용히 짚었다. 그의 실력을 인정한 것이다.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셋을 받은 피에르 가네르도 그의 실력을 인정하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서울의 레스토랑에 이씨를 스카우트했다. <씨네21> 김혜리 기자의 어법을 빌면, 이현진 요리사는 엘리트다. 서울대를 나와서 엘리트가 아니라 자신의 목표에 한치 흔들림 없다는 뜻에서 엘리트다. 10년 뒤의 꿈을 묻자 “양심적인 요리를 하고 싶다”고 답했다. 양심적인 요리가 뭔지 물었다. “자신의 요리를 광고하는 시대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스스로 만족하는 요리를 하는 것”이란다. 시인 정지원은 이 시에서 “내 피를 보태어 사위어가는…희망을 빼앗긴 사람들의 동맥을/다시 뛰게 할 수 있다면”이라고 노래했다. 여전히 한국인들은 평가에 인색하지만, 요리사는 ‘동맥을 뛰게 하는’ 존재 가운데 하나다. 이현진 요리사도 그렇다.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시골 레스토랑서 ‘현장 실습’ ‘내 꿈의 방향을 묻는다’는 시인 정지원의 질문에 당신은 뭐라 답하겠는가. “아직 모른다”는 답이 많을 것 같다. “흔들림 없이 꿈을 향해 간다”고 답할 자신만만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지난 10월 문 연 롯데호텔 서울의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의 요리사 이현진(28·사진)씨는 자신있게 답할 것 같은 사람이다. 그는 고교2년 때 텔레비전에서 프랑스의 요리학교 르 꼬르동 블루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꿈의 방향을 처음 느꼈다. 고향 대구에서 작은 한식당을 운영하던 부모는 딸을 주방에 부르는 일이 없었다. 조리학교가 아닌 인문계 고교에 다닌 뒤 대학 불문학과로 진학했다. 그러나 이는 준비 시기였다. 불어의 기초를 닦은 뒤 2001년 파리로 떴다. 같은 해 9월 르 꼬르동 블루에 입학했다. 2년간 제과·제빵과 요리를 공부했다. 수업 진행 아르바이트를 하며 같은 수업을 4번씩 들었다. 졸업 뒤 다른 한국인 동기들은 대도시에 남았지만, 이 요리사는 자신을 시험하고 싶었다. 프랑스 중동부 시골의 레스토랑 주방을 책임졌다. 현장은 그에게 ‘학교에서 배우는 건 일부’라는 진리를 가르쳐줬다. 협객이 강호의 고수를 찾아가 제자를 자청하듯, 2004년 조엘 로부숑의 레스토랑 문을 두드렸다. 이곳은 레스토랑 가이드 <미슐랭 가이드>에서 최고 평점인 별 셋을 여러 차례 받고, 다른 매체에서도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5위 안에 꼽힌 곳이다. 6개월 분투끝 실력 인정받아
“스스로 만족해야 진짜 요리”
하지만 그의 주방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넘치는 공간이었다. 욕설과 상명하복, 여성비하적인 성적 농담이 난무했다. 누구도 ‘동양 여자애’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여섯 달 동안 급료 없이 일했다. 어느 날 조엘 로부숑이 그의 어깨를 조용히 짚었다. 그의 실력을 인정한 것이다.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셋을 받은 피에르 가네르도 그의 실력을 인정하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서울의 레스토랑에 이씨를 스카우트했다. <씨네21> 김혜리 기자의 어법을 빌면, 이현진 요리사는 엘리트다. 서울대를 나와서 엘리트가 아니라 자신의 목표에 한치 흔들림 없다는 뜻에서 엘리트다. 10년 뒤의 꿈을 묻자 “양심적인 요리를 하고 싶다”고 답했다. 양심적인 요리가 뭔지 물었다. “자신의 요리를 광고하는 시대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스스로 만족하는 요리를 하는 것”이란다. 시인 정지원은 이 시에서 “내 피를 보태어 사위어가는…희망을 빼앗긴 사람들의 동맥을/다시 뛰게 할 수 있다면”이라고 노래했다. 여전히 한국인들은 평가에 인색하지만, 요리사는 ‘동맥을 뛰게 하는’ 존재 가운데 하나다. 이현진 요리사도 그렇다.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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