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중-고교 실태조사
인권위, 중·고교 실태조사
열명중 8명 폭력·6명 성폭력 경험…강제 성관계도
평균 4시간 학업도 부실 “더하기부터 배우고 싶어”
열명중 8명 폭력·6명 성폭력 경험…강제 성관계도
평균 4시간 학업도 부실 “더하기부터 배우고 싶어”
“딸이 처음 선배한테 맞았다고 했을 때 ‘선배들이 화낼 수도 있지 왜 그러냐’고 했는데, 지난해 9월 딸아이가 아스피린 40개를 삼켰어요. 아버지도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니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시도를 한 거죠.” 중학교 양궁 선수 딸을 둔 박아무개(43)씨의 말이다. 박씨는 “아이가 운동을 그만둔 뒤에 학교생활에 적응 못하고 다른 동급생들을 때렸다는 말을 들었을 땐 억장이 무너졌다”고 한숨지었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는 19일 최근 6개월 동안 전국 중·고등학교 남녀 학생 선수 1139명을 대상으로 벌인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조사에서 학생선수 열 중 여덟이 폭력을 경험했으며, 특히 ‘성적 폭력’을 경험한 학생도 열 중 여섯이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기관이 학생 선수의 인권 실태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를 벌인 것은 처음이다.
■ 성폭력 “한 명이 공격하고 감독 선생님이 수비를 하는데요, 수비하면서 옆구리 만지고 가슴 만지고 ….” 이번 조사에서 심층면접에 응한 한 중학교 2학년 핸드볼 선수인 박아무개양의 고백이다. 이번 조사에서 성폭력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이들은 725명(63.8%)이다. 구체적인 피해 사례를 보면, ‘몸이나 외모에 대한 농담’(58.5%)에서부터 ‘키스 강요’(11.0%) ‘몸을 만지는 행위’(19.6%) 등을 경험했고, 심지어 ‘강제 성관계를 요구받거나 한 적이 있다’는 이들도 28명(2.5%)이나 있었다.
그러나 성폭력을 문제 삼거나 인권침해로 여기는 학생 선수들은 많지 않았다. ‘몸이나 외모에 대한 농담’을 경험한 656명 가운데, 이를 ‘성폭력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학생은 260명으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 폭력 일상적인 폭력도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의 78.8%가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폭력 피해의 영향을 묻는 질문에는 56.4%가 “운동을 그만두고 싶게 만든다”고 답했고, “언젠가는 복수하겠다”는 답변도 18.4%였다. 반면 “연습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한 학생은 20.1%에 그쳤다. 폭력에 대한 대처를 보면, “참거나 모르는 척한다”(41.5%)고 답한 이가 “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한다”(29.7%)고 답한 이보다 훨씬 많아, 일상적인 폭력에 대한 둔감함도 드러냈다.
■ 학습권 침해 학업 부실’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 선수들의 정규 수업 참여 시간은, 시합이 있을 땐 하루 평균 2시간, 시합이 없을 때도 4.4시간에 불과했다. 또 학생들의 82.1%가 빠진 수업에 대한 보충수업은 받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실태조사에 참여한 문경란 상임위원은 “한 고2 여고생은 ‘개인과외로 더하기 빼기부터 배우고 싶다’고 토로하기도 했다”며 “학습권 침해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명선 한국여성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경쟁적인 훈련으로 선수를 길러내려는 ‘엘리트 체육’ 정책에서 인권 정책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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