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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검찰이 안 나서는 사회가 가장 좋은 사회”

등록 2008-10-13 14:40수정 2008-10-14 13:30

[그사람 그후] ③ ‘기고문 파문’ 금태섭 변호사
검사 출신으로 ‘이례적’ 민변 활동…방송 맡기도
“개인 성향 박쥐?…언젠가 소설작가 되는 게 꿈”
[%%TAGSTORY1%%]

“피의자가 됐을 땐, 첫째 아무 것도 하지 말라. 둘째 변호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

2006년 9월11일, 검찰 내부가 발칵 뒤집혔다. 서울중앙지검 형사부 금태섭 검사가 <한겨레>에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①’을 실은 뒤였다.

동료 검사들 사이에선 “그런 걸 다 가르쳐주면 앞으로 수사를 어떻게 하란 말이냐” “혼자만 튀려면 왜 검찰에 남아 있냐” 등 격앙된 반응이 쏟아졌다. 검찰 수뇌부는 금 검사에게 기고 중단을 종용했다. 10회 연재 예정이었으나, 그는 단 1회 만에 펜을 놓았다. 검찰의 신뢰를 높이려고 쓴 글인데, 오히려 검찰 안의 격렬한 충돌을 불러 검찰의 이미지가 더 나빠지는 게 부담스러워서였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다. 그 사이 금 검사는 법무법인 퍼스트의 대표 변호사가 됐다. 기고문 파동이 불거진 뒤 그해 10월 비수사부서인 총무부로 좌천됐고, 이듬해 1월 결국 사표를 썼다. “100% 자의에 의한 것”이라고 했지만, ‘기고문 파동’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검찰에 몸담고 있을지 모른다. 어릴 때부터 탐정이 되고 싶어 연수원 생활 뒤 검찰직을 택했고, 검찰총장이 목표였던 그의 꿈은 그렇게 12년 만에 무너졌다.

그는 검사에서 물러난 뒤 2007년 금태섭·황선기법률사무소를 열었다. 대형 로펌회사의 영입 제의도 있었지만, 더 넓은 세상을 볼 요량으로 뿌리쳤다. 그 뒤 방송인으로 변신해 EBS 시사 프로그램 <세상에 말걸다>를 진행했고, CBS 라디오 <뉴스레이다 스페셜-책과 문화>는 지금도 진행을 맡고 있다. 강연도 많이 했고, 정기적으로 언론에 기고도 하고 있다.

<디케의 눈>이라는 책도 한권 냈다. 올 6월에는 구본주, 금윤섭, 백성엽, 황선기 변호사 등과 의기투합해 퍼스트 법무법인을 세웠다. 그를 만난 건 지난 6일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법무법인 사무실이었다. 귀공자 같은 깔끔한 인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금태섭 변호사
금태섭 변호사

#1. 수사 제대로 받는 법’ 연재 파문

그의 인생을 뒤바꾼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은 공교롭게도 ‘인간 금태섭’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계기도 되었다.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파문이 클 정도의 내용이 아니었다”며 “법에 있는 내용을 쉽게 설명한 것이어서 그 얘기가 자주 나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고 머쓱해했다. 실제 그의 기고문을 원문 그대로 해석하면 헌법 12조 ‘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를 쉽게 풀어 쓴 내용에 불과하다.

당시 첫 연재가 실린 뒤 국민들은 그의 파격적인 제안에 열광했다. ‘금태섭’은 평범한 검사에서 하루 아침에 ‘국민의 검사’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그는 “파격이 아니었는데, 검찰이 적잖이 당황했던 것 같다”며 “정치를 하거나, 개인적인 목적으로 기고를 한 것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당시를 더 자세히 들춰보기로 했다.

- ‘수사 제대로 받는 법’ 연재는 왜 하게 됐나?
= 몇 년 전부터 생각했었다. 사실은 책을 내고 싶었다. 지난 정권 때 사법개혁에 관여해 일을 했는데, 검찰이나 형사사법제도가 국민들한테 신뢰를 주고 있나 생각해보니 반성할 부분이 많았다. 우리 형사사법제도의 문제는 ‘피의자가 오면 우리가 다 한다’는 인식에서 나온다. 국민을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나 객체로 보는데, 이 과정에서 국민이 주체로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의자나 피고인이 되어도 적법한 절차와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 글을 쓰게 됐다.

- <한겨레>에 연재한 이유는?
= 여러 매체의 기자들한테 내 뜻을 전했다. 내 계획은 10회 이상 연재하는 것이었다. 다른 신문의 기자한테도 뜻을 전했지만 내 요청을 받아들여 지면을 내어 준 곳이 <한겨레>였다.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나중에 주변에서 농담처럼 이런 말을 들었다. 가장 프롤레타리아적인 기자와 가장 부르주아 같은 검사가 왜 그런 일을 저질렀냐고.

▶“평생 시골검사로 살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 어느 정도의 논란을 예상했을 텐데.
= 설마 옷을 벗으리라고는 생각 안했다. 여러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 중에 확률이 가장 높았던 것이 10회의 기고문을 다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혹시 개인적으로 기고하는 게 적절하지 않아 인사상 불이익을 당한다고 해도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고 중단 확률도 그리 높지 않다고 봤다.

- 단 1회 만에 중단했는데, 100% 자의적인 결정이었나?
= 100% 자의적 판단이라기는 그렇고, 고집을 부렸으면 계속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도 큰 파문이 예상됐기 때문에 중단했다. 어쨌든 글을 쓴 것도, 중단한 것도 내 책임이다.

- 당시 힘들었을 텐데, 심경은 어땠나?
= 검찰 내부에 서운했다. 그 때는 힘들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다른 생각이 있어서, 이름을 알리거나 정치를 위한 게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 검찰 조직을 떠난 궁극적인 이유는.
= 그때 내 소박한 생각은 글을 다 쓰고 난 뒤 평생 시골검사를 해도 좋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연재도 다 못했는데, 그럴 바에야 다른 일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사표를 썼다. 총무부에 와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시간도 많았고. 사표는 100% 내 뜻에 따른 것이다. 총무부로 발령이 난 것은 섭섭했고, 잘못된 조치라고 생각한다.

#2. 현실에 참여하는 부르조아 변호사로 변신중?

그는 변호사가 된 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 가입했다. “개업하면 민변에 다 가입하는 줄 알았다”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실은 좀 의외다. 민변에서도 “판·검사 출신이 민변에 가입한 건 오랜만”이라며,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그는 2006년 당시 천정배 법무부장관의 ‘X파일’ 수사와 관련한 발언에 대해 검찰 내부통신망에 ‘소위 X파일 수사에 관한 법무부장관의 발언에 대한 단상’이라는 글을 통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의 부친도 판사 출신 변호사이니, 집안의 내력이나 개인 성향으로 보자면 진보보다는 보수와 더 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변에 아는 사람도 많고, 이미지도 좋고. 그동안 좋은 일, 의미있는 일을 많이 했잖아요. 지금은 배우고 있는 중이에요. 제 성향은… 글쎄요. 불의가 있으면 얘기하고 고쳐나가야 한다는 쪽인데, 경제적·정치적 측면에서 갈릴 때는 어느 쪽인지 잘 모르겠어요. 개인적으로는 자유주의자이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쪽이죠. 박쥐 같은가요?”

민변의 변호사답게 그는 최근 광우병 보도와 관련한 검찰의 <피디수첩> 수사와 광고불매운동 누리꾼 수사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사이버 모욕죄’ 신설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피디수첩>·광고불매운동 수사는 검찰이 오버한 것”

“형사사법권은 후유증이 크기 때문에, 다른 걸 쓸 수 없을 때 나오는 거예요. 피디수첩의 보도가 왜곡되거나 틀렸으면 다른 언론이 반박해서 다루면 되고, 불만인 사람들은 촛불시위를 하면 되요. 언론탄압을 염두에 두지 않았길 바라는데, 만약 그런 방향이라면 굉장히 잘못된 거죠. 피디수첩 수사는 수사권 남용입니다.”

- 그렇다면 광고불매운동 수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 검찰이 피해업체에 고발을 종용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상황이다. 그런 것은 자제해야 하지 않나. 검찰이 안 나서는 사회가 가장 좋은 사회다. 광고불매운동이 왜 불법인지, 불법이라도 구속까지 될 범죄인지 납득이 안된다.

- 사이버모욕죄도 반대하나?
= 저질 댓글을 보면 나도 화가 난다. 그렇다고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것이 옳으냐는 문제는 별개다. 혐오감을 느끼는 말에 대해서도 보호해주는 게 언론·표현의 자유다. 그 기준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정말 필요한 부분이 아니고서는 언론 자유에 제한을 가해서는 안된다. 제재하더라도 가장 가벼운 수단이어야 한다. 실효성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3. 검찰의 독립성에 대한 평가

금태섭 변호사
금태섭 변호사
인터뷰는 과거를 돌아 현재로 넘어왔다. 한때 검찰에 몸담았던 그에게 현재의 검찰 모습에 대해 물었다. 그는 2003년 대통령과 평검사와의 대화 당시 대검찰청에 근무했다. 당시 검사들은 노 대통령의 파격 인사에 항의하면서 검찰의 독립성을 강하게 요구했다. 금 변호사는 “당시 건국 이래 최초로 법무부-대검-서울지검의 지휘체계가 안 먹히던 시기였다”며 “정권과 검찰이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확보한 것은 지난 정부의 공”이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 들어 검찰에 대한 그의 평가는 어떨까?

- 참여정부 때는 ‘검사와의 대화’ 등을 통해 젊은 검사들이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했다.
= ‘당시 검사들이 노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서로를 사랑할 수 있었는데, 서로에게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컸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검사와의 대화 때 젊은 검사들은, 과거 정권과 결탁해 왜곡된 모습을 보였던 일부 검사들과 차이가 있었다. 또한 정치적 독립에 대해 기대치가 높았다. 검사들은 대통령이 격려해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젊은 검사들까지 그런 (왜곡) 검사처럼 몰아세웠고, 젊은 검사들은 그런 대통령의 말과 행동에 화가 났던 것이다.

▶“정권과 검찰 긴장관계 유지해야…참여정부 때 검찰 독립성 최고”

- ‘검사와의 대화’ 이후 이견을 잘 조율했다면 좋은 결과가 나왔을까.
= 그렇다. 검사와의 대화 이후 서로를 보듬어 안지 못했다.

- 현 정부에서 정권과 검찰의 긴장관계가 어떻다고 보고 있나?
= (현재) 검찰이 정권이나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참여정부 때는 상당히 (정치적)독립성을 찾았으나 지금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검찰이 그런 식으로 실제로 변했건, (독립성에 문제는 없으나) 그런 여론이 많아졌다면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깨졌다는 것이다. 지난 정권 때 우리는 청와대로부터 가장 미움을 받았지만 가장 힘이 있었고, 국민의 신뢰를 받았다. 검찰은 정권과 긴장관계를 가져야 한다.

#4. 변호사 금태섭의 꿈

으레 인터뷰의 마무리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묻기 마련이다. 그에게 미래를 묻기에 앞서 과거를, 특히 기고문 파문에 대해 ‘후회하지 않느냐’고 재차 물었다.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2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기고문을 쓰겠다”는 것. “후회가 없으니까” 당연한 결론이다.

그는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검찰에 입문할 당시에 품었던 검찰총장의 꿈은 버렸다. 대신 이제 유능한 변호사의 길을 새롭게 개척하려고 한다. 구두 변론의 달인 클레러언스 대로 변호사가 그가 꼽는 모델이다.

“변호사로서의 성공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일을 해보고 싶어요. 공익적인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실력이 뛰어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일도 하고 싶고요.”

책벌레인 금 변호사의 또 다른 꿈은 책을 내는 것이다. 쉬는 시간에 읽고, 술 마시러 가더라도 먼저 도착하면 반드시 책을 읽는다. “책을 읽지 않더라도 책을 갖고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차이가 난다. 다른 건 몰라도 책을 사는데 필요한 돈은 평생 대주겠다”는 아버지의 가르침 덕이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요. 언젠가 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궁극적으로는 소설이지만 아직 자신은 없어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법을 쉽게 설명해주는 책을 쓰는 게 국민에게 도움을 주는 길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어요.”

그가 국민들에게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쉬운 책으로 선물하는 날, 사람들은 다시 그에게 ‘국민 변호사’라는 애칭을 붙여줄지 모르겠다.

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영상 김도성 이규호 피디 kds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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