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포럼’과 대부분 일치…식민지근대화론 되풀이
지난달까지 교육과학기술부에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수정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낸 곳은 국방부, 통일부, 대한상공회의소, 교과서포럼 등 네 곳이다. 주목되는 점은 정부 부처와 대한상의가 낸 요구안의 관점과 내용이 모두 교과서포럼이 앞서 펴낸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대안교과서)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이승만·박정희 정부의 공적을 집중 부각하거나, 제주 4·3 사건을 ‘좌익 반란’으로 재규정하라고 요구한 대목 등이 그렇다. <대안교과서>가 부처 등 요구안의 기준(가이드라인) 구실을 했다는 의심을 살 만한 이유다.
2005년 출범한 교과서포럼은 토론회·간담회 등을 통해 현행 교과서 6종을 ‘친북 좌경’,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해 왔다. 이들이 “역사를 바로 쓰겠다”며 지난 3월 펴낸 것이 <대안교과서>다. 집필에는 경제사·정치사·사회사를 전공한 연구자 12명이 참여했다.전공이 다른 필자들을 한데 묶은 인물이 뉴라이트의 ‘대부’격인 안병직 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이다. 필자 대부분이 1980년대 중반 안 전 이사장이 설립한 ‘낙성대 경제연구소’에 몸을 담았거나 공동 연구에 참여하는 등, 그와 직·간접 관계를 맺고 있다. 낙성대연구소는 수량통계학과 엄격한 경험주의 방법론에 입각한 경제사 연구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들이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1990년대 중반 내놓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통해서다.
일본의 식민통치가 시장경제를 이식하고 산업화의 기초를 다짐으로써 근대화에 이바지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근대사 연구의 주류였던 ‘내재적 발전론’의 근본 가설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어서 사학계의 거센 반발을 샀다. <대안교과서>도 식민지 시기에 합법적 경제 운용과 의미 있는 경제성장이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어 식민지 근대화론 입장에 서 있다는 게 학계의 중평이다. 내재적 발전론이 ‘식민통치=수탈’이라는 규범에 얽매어 있다고 비판하며 엄격한 실증에 입각한 가치중립적 학문 탐구를 역설했지만, ‘이승만·박정희 재평가’를 주도해 온 보수 진영 이데올로그들과 만나면서 이들은 첨예한 이념 논쟁에 휘말렸다. 보수 진영과 이들을 연결한 고리는 ‘근대화’를 보는 시각이었다.
근대화를 ‘생산력 발전’이라는 단선적 과정으로 파악하는 식민지 근대화론 관점을 현대사 영역으로 확장한다면, 인권을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질식시켰을지언정 뚜렷한 경제성장을 이룬 박정희 전 대통령이야말로 ‘근대화 혁명가’요, 산업구조를 고도화해 ‘선진화’의 기초를 닦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근대화 혁명의 완성자’라는 평가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김동노 연세대 교수는 “실증주의 방법론의 맹점은 숫자를 과신한 나머지 행위자의 의도나 역사적 전후 맥락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대안교과서>가 ‘친일·독재 미화’ 논란에 휘말린 것도 수치가 드러내는 성장에만 집착해 역사를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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