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행사 표정
보수단체 “이승만 동상 다시 세우자”
‘건국’과 ‘광복’으로 엇갈린 8·15 광복절 행사가 열린 서울 도심은 하루종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정부의 ‘63주년 광복절 및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경축식’은 15일 오전 광화문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인 서울 경복궁 광장에서 열렸다. 경찰은 이날 아침 7시부터 세종로~태평로~서울 시청앞 도로를 전면통제하고, 이곳으로 통하는 수십 개 샛길을 전경버스 차벽으로 차단했다.
정부 기념식이 열린 시각, 3·1운동의 발원지인 종로 탑골공원에서는 또다른 기념식이 열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 항일독립운동가 단체연합회, 독립유공자 유족회, 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 등 30여 단체들은 ‘8·15 광복절 63주년 기념 국민대회’란 이름의 행사를 따로 열었다. 대한제국의 대신 중 유일하게 독립운동에 투신한 동농 김가진(1846~1922) 선생의 손자 김자동 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은 이날 행사에서 “시민들이 모여 이명박 정부의 ‘건국절’에 반대하는 ‘광복절’ 행사를 여니 소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단재 신채호 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는 김원웅 전 의원은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게 참으로 부끄럽고 부끄럽다”고 말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한민국사랑회, 한국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들은 이날 오전 청계광장에서 ‘이승만 건국 대통령에 대한 국민감사 한마당’ 행사를 열였다. 행사장엔 이 대통령의 사진과 ‘건국 대통령님 감사합니다’란 글귀가 박힌 애드벌룬이 바람에 날렸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은 민족과 국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도 조국에서 잠들 수 없었던, 역사의 십자가를 진 어린양과도 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집회장에서 만난 70대 노인은 “이승만 동상을 광화문에 다시 세우고 고액권에도 이승만의 얼굴을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80살 생일을 기념해 남산공원 터에 만들어진 이승만 동상은 4·19 직후 철거됐다. 그 터에는 지금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이 들어서 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한국사)는 “뉴라이트의 역사 왜곡으로 건국절과 그 아버지 이승만이 되살아났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서울 세종로 프레스센터에서는 한국진보연대·민주노동당·민주노총 등 진보 단체들이 모여 ‘광복 63주년, 8·15 민족자주선언문’을 낭독했다. 이들은 이날 선언문에서 “선열들이 피 흘려 되찾은 이 나라를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이 올곧게 선 평화롭고 통일된 나라, 민의가 온전히 실현되는 평등하고 정의로운 나라로 만들기 위해 힘차게 전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8·15 때 만세를 부르다가 변소에 빠진 아버지는 여운형 선생과 백범이 암살됐다는 소식을 전하자 ‘8·15의 감격은 이제 죽고 분노만 남았다’고 통곡했었다”며 “8·15는 싸워서 쟁취하는 것이지 감격만 부르짖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길윤형 황춘화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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