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에서 ‘미완의 촛불’을 주제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장석준 진보신당 정책팀장, 김호기 연세대 교수,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촛불, 100일을 말하다
- 사회자 : 이번 촛불 집회를 ‘새로운 주체’의 등장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있다.
- 김민영 : 촛불집회는 30·40대 남성 위주의 전통적 거리운동이 아니었다. 10대의 등장이랄지, ‘82쿡 닷컴’과 같은 온라인 카페들의 등장이 두드러졌다. 생활인의 불만과 욕구가 분출된 측면이 있다. 이들은 과거와 다른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익숙해져 있었고, 이를 도구 삼아 자연스레 공유, 협력, 집단행동을 발전시켰다.
- 김호기 : 노조를 포함해 운동 조직에 몸담은 시민활동가들이 사회적 행위의 중요한 주체였다. 이번에는 10대와 여성은 물론 다양한 지위의 ‘생활인’이 적극 참여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사회운동과 다르다. 주목하고 싶은 것은 10대다. 이들은 외환위기 시절을 지켜보며 자란 이른바 ‘88만원 세대’와도 또다른 세대인 것 같다. 문화적 감수성도 다르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으면서도, 88만원 세대와 같은 외환위기의 그늘을 갖지 않고 자기 표현이나 주장을 당당하고 확실하게 한다. 이들이 촛불 초기를 이끌었다.
촛불에 참여한 여성은 잠재했던 주체가 표면에 등장한 것이다. 각 시민단체 회원 가운데 여성이 상당히 많다. 여성운동은 물론 환경운동 분야에서도 주부들의 참여가 높다. 잠재했던 관심이 이번에 먹거리 문제를 비롯한 생활 이슈와 잇닿으면서 이들이 거리로 나왔다. 촛불 여성은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적 계몽이 이들 사이에서 진행되어 왔다. 이들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여성을 폄하하는 것이기도 하다. ‘레몬테라스’, ‘소울드레서’, ‘82쿡닷컴’ 등은 그 모임 내부에서도 이런 문제들에 대한 관심을 이전부터 갖고 있었다.
- 김민영 : 온라인 카페 외에도 생협 조직이 있었다. 이들은 평소에 유전자 조작식품 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는데 광우병 쇠고기 문제가 터지면서 자연스럽게 거리로 나왔다. 중고생을 둔 부모들은 가족이 한 덩어리가 되어 쏟아져 나왔다.
- 장석준 : 개별 주체들의 특질에 대한 주목도 중요하지만, 각 주체 사이에 이뤄진 연합의 양태를 보는 것도 중요하다. 처음에는 10대가 촛불을 끌어갔고, 중반부터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20대가 참여했다. 그 저변에 광범한 여성이 있었고, 386세대가 이를 지지했다. 이들 네 주체가 연합을 이루면서 전례없는 참여가 이뤄졌다. 그런데 여기에 전사(前史)가 없는 게 아니다. 억압적 학교체제에 대한 10대 저항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준히 이뤄졌고, 생협이나 인터넷 커뮤니티도 주목하지 않는 사이에 모락모락 성장했다. 88만원 세대의 불만도 무정형하지만 생성되고 있엇다. 이것이 이명박 정부의 무책임한 협상과 국민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를 계기로 하나로 합류했다. 촛불을 통해 다양한 주체의 연합이 가능했다는 사실이 성찰을 요구하는 대목이다.
- 김민영 = 그런 점에서 상당히 이질적인 그룹들이 서로 처음으로 거리에서 만나게 됐다. 그 과정에서 상당한 갈등이나 긴장도 존재했다. 조직을 대표하는 깃발을 들고 집회에 참가하는 것에 대한 ‘깃발 논쟁’도 있었다. 집회의 실무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과연 어느 정도가 참여할 건인지,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지를 예측히기 힘들었고, 실제로 그 예측이 계속 틀렸다.
과거 효순·미선 촛불이나, 탄핵 촛불과 비교해보면 일련의 촛불 집회 과정에서 주도 그룹이 계속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탄핵 반대촛불 때만 해도 시민사회단체들이 전반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집회 전반의 내용과 형식을 갖춰갔다. 당시에도 ‘디겔’ 등 참신한 온라인 그룹이 있었지만, 그들은 등장은 굉장히 일시적이었다. 그런데 이번 촛불 집회는 주도 그룹이 분명치 않고, 지도적 그룹이라는 것 자체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특히 그런 것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온라인 기반 각종 커뮤니티들이 전면에 등장하고 그들이 강력한 동력을 형성했다. 시민단체는 이를 옆에서 거들었다.
이는 향후 사회운동에 있어서 고민의 지점이기도 하다. 전통적 의미의 정당이나 사회운동 세력이 대규모 대중운동을 이끌던 시대와 사뭇 달라졌다. 이들간의 경쟁과 긴장이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따라 사회운동도 다른 색깔로 진화할 수 있겠다. 가두 행진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전통적 사회단체들은 오히려 머뭇거렸다. 아고라 처럼 온라인 기반 커뮤니티들이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사회단체는 그 뒤를 따라 갔다. 예를 들어 이명박 퇴진 구호를 내걸것인지를 두고 시민운동 그룹 내부에서 논쟁을 벌이는 사이에 이미 가두에선 그 구호를 일반화시켰다. 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고 대중을 이끄는 기능이 옮겨가버렸다. - 장석준 = 커뮤니케이션 혁신이 촛불에 반영된 측면도 있겠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한국 운동사에 걸친 세대의 문제가 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모든 운동은 6월 항쟁을 계승하는 동시에 그것과 다른 새로움을 같이 보여줬다. 효순·미선 촛불이나 탄핵반대 촛불만 해도 이 가운데 6월 항쟁 계승의 성격이 더 강했다. 이번 촛불 집회는 6월 항쟁에 대해 계승보다는 단절의 측면이 강하다. 무엇보다 참여 주체의 측면에서 6월 항쟁과 후속 투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주력이 됐다. 진행 과정에서 벌어진 기존 운동 세력과 새로운 주체 사이의 갈등은 경험과 언어의 단절에서 생긴 ‘정세적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문제가 앞으로도 계속 된다기보다는 서로 적응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이다. 다만 커뮤니케이션 혁신의 면에서는 사회운동 자체의 근본적 혁신이 필요한 대목이 있다. 쌍방향 소통을 이번에 절실하게 경험했다. 심지어는 현장 상황을 화면으로 보면서 소통하는 일까지 경험했다. 이런 상황에선 19· 20세기식으로 지식인과 대중, 전위와 후위, 계몽하는 주체와 배우는 대중 식의 접근법을 벗어나지 않으면 운동 자체가 성립이 될 수 없는 상황에 접어 들었다. 대중이 너무나 성숙했다. 이는 기존 사회운동에 비해 높은 질을 가진 새로운 운동의 등장으로 볼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기존 운동과 새 운동 사이에 연속성을 만들지 못할 경우 부정적 양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 김호기 = 운동의 주체. 목적, 방식, 조직 등의 측면에서는 6월 항쟁과의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두드러진다. 6월 항쟁의 목표는 민주화라는 거시적인 것이었지만 이번 촛불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묻는 생활 이슈에서 비롯했다. 조직의 측면에서도 탈위계적, 탈조직적, 탈중심적이었다. - 사회자 = 새로운 주체와 기존 사회운동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 김민영 = 다양한 동기나 경로를 통해서 제각각 행동에 나섰지만, 결국 공동의 경험을 했다는 면에서는 촛불 참여 이전과 이후가 상당히 다를 것이다. 공동행동으로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된 각성한 시민이 등장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이들이 곧바로 정치세력화 될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다만 6월 항쟁 뒤 1~2년 동안 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조직들이 등장했듯이 이번 촛불을 거치면서 새로운 형태의 사회운동 조직들이 출현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 조직의 성공 여부는 더 두고봐야겠지만, 여러 종류의 조직이 출현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 김호기 = 촛불 과정에서 일부는 정당정치, 제도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그들이 사회운동의 의미를 과소 평가했다는 점에서 불만이 있다. 이번에 촛불에 참여한 ‘유모차 부대’를 예로 들면, 이들이 촛불 이후 일상에서 과연 예전처럼 살 수 있겠는가. 그저 쇼핑하고 드라마보면서 살지는 못할 것이다. 이미 이들은 세상에 대해 ‘불편’해져 있다. 운동에 참여하면서 개인의 계몽과 각성이 이뤄진다. 이게 사회발전의 중요한 동력이다. 정당정치를 강조하는 분들은 이런 대목을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 87년 6월 항쟁 이후 경실련부터 참여연대까지, 그리고 전교조부터 민주노총까지 많은 운동조직이 만들어졌다. 6월 항쟁의 선물이다. 이번에는 분명히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쪽에서 다양한 조직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다만 촛불 이후 정치적 무관심이 확산될 요소도 없지 않다. 세계 어느 나라 정부이건 이 정도의 사회운동이 전개되면 대체로 국민의 뜻을 따른다. 그런데 현 정부는 기이하게도 강공으로 일관한다. 이것이 촛불 참여자들에게 상처 같은 것으로 남게 되면, 그것이 정치적 무관심으로 결론지어질 수도 있다. 그런 양면성이 존재한다. 경실련이 89년에 만들어졌고, 참여연대는 93년에 탄생했다. 긴 호흡으로 새로운 운동의 조직화 경향을 지켜봐야겠지만, 동시에 정치적 무관심과 무력감의 확산 여부도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 - 김민영 = 이명박 정부의 탄압 때문에 일부 위축된 측면은 있지만, 이것이 곧바로 패배감이나 무력감으로 급속히 빨려들어갈 것 같진 않다. 잠재된 불씨들이 곳곳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이것이 언제 어떤 계기로 촉발될 것인지가 관심사항이다. 문제는 그것을 촉발시켜 낼수 있을만한 능력을 갖춘 신뢰받는 정치, 사회 집단의 존재 여부다. - 장석준 = 그 점에서 주목할 것이 새로운 주체의 ‘낯선 행동양식’이다. 거대 미디어가 아니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상호 소통을 통해 정보와 지식을 얻거나 특정 조직의 공식적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서로간 논의와 결의를 통해 거리에 나서는 것이 반복됐다. 이런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확인했다. 이와 같은 새로운 행동 양식 자체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는다. 몇만 명씩 거리에 나오는 상황은 소강상태에 빠진다 해도, 이런 행동 양식 자체는 계속 이어진다. 거리에 사람들이 모이지 않더라도 소통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이번의 촛불보다 더 명확한 대안을 가진 운동이 솟구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기존 사회운동이 이런 새로운 행동양식에 얼마나 적응하는지가 관건이다. - 김민영 = 서로 다른 개성과 특성을 갖고 있던 온·오프라인 조직들이 서로 연합한 것도 중요한 행동양식이다. 서로 연대했을때의 시너지 효과를 이번에 모두가 확인했다. ‘대책회의’에는 전통적 사회단체나 진보정당 대표, 온라인 카페 대표 등 대단히 많은 조직이 참여했고, 불협화음도 많았다. 그러나 위계를 갖추지 않고 공동의 목표 아래 연대를 논의하는 자리는 앞으로도 다시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 모였다 흩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신축적인 연대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 김호기 = 지금까지의 연대는 차이를 존중하진 않았다. 이번 촛불에서는 차이를 존중하는 연대를 실험한 것 같다. 대책회의가 연단에서 행사하는 데 일부 시민들은 행진에 나서는 식이다. 이것이 당혹감을 준 측면도 있지만, 촛불 100일 동안 차이를 존중하는 연대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를 적절히 훈련한 것 같다. ‘성찰적 연대’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는데, 새로운 연대에 대한 실험, 체험, 훈련을 이렇게 광범위하게 벌인 것은 한국 사회운동에서 사실상 처음인 것 같다. 이와 관련해 ‘집단지성’에 대해 짚고 갈 필요가 있다. 집단 지성은 그람시가 말한 ‘유기적 지식인’의 21세기적 버전이다. 집단지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흐름도 있는데, 옳지 않다. 그런 비판에는 엘리트주의가 포함돼 있다. 민영화 관련 현안 분석에 대해 아고라에 실린 글과 전문가의 글을 비교해 읽었더니, 아고라에 올라온 글이 어떤 면에서는 훨씬 더 탄탄한 논리와 충실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만큼 시민사회가 지적으로 성숙했다. 사회현안에 대한 토론에서 소수 그룹이 토론 주도권을 독점해서는 안된다. 집단지성은 활성화되면 될수록 좋은 것 아닌가 한다. - 장석준 = 집단지성 문제를 나는 성숙한 대중사회 문제로 표현하고 싶다. 지식생산자나 미디어가 아니라 대중 스스로 지식에 대한 접근과 생산에 대한 통제력을 갖게 됐다. 미디어에 지배당하는 대중이라는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 새로운 대중사회다. 여기에는 두가지 측면이 있다. 대중의 자발적 성숙을 통해 이전의 어떤 사회도 경험하지 못한 민주주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대중 스스로가 정치적 해결을 위한 대안을 형성하지 못할 경우 대중의 냉소주의가 강화할 수도 있다. 소통 능력이 강한만큼 자신이 봉착한 실제 정치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냉소 또는 허무의 요소가 강화되는 것이다. 열매가 익어서 먹기에 딱 좋아 보이지만, 이는 잠시 뒤 썩어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두 측면 가운데 어느 쪽으로 갈 것인지는 기존 사회운동 세력이 새 환경에 적응할 것인지, 어떤 정치적 해결책을 내놓을 것인지와 관련이 있다. - 김호기 = 그런 점에서 정치사회가 중요하다. 한국의 경우 시민사회가 대단히 성숙해 있는데, 이들이 갖고 있는 요구를 정치사회에서 실현해 줘야 한다. 집단지성이 갖는 정치적 열망, 대안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정치사회 내에 존재하느냐 안하느냐가 중요하다. - 장석준 = 그런 점에서는 현 상황은 최악이다. 국회 구성은 촛불 이전의 권력 지형을 반영하고 있다. 정치사회와 시민사회가 그동안 끊임없이 괴리되어 오긴 했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가장 심하다. - 김호기 = 국민의 절반 이상이 신자유주의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치사회를 구성하는 다수는 신자유주의를 지지한다. 정치사회와 시민사회 사이에 나타나는 비대치성의 비극이다. - 김민영 = 그 문제를 조직 구성의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기존 정당이나 사회운동 조직은 조직된 틀을 통해 참여를 호소해다. 그런데 이번 촛불에서는 자신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아래로부터 만들어진 조직들이 나왔다. 자신의 돈, 시간, 기회비용까지 쪼개면서 자발적으로 밤새워 거리에 나오는 사람들이 이를 만드었다. 예전에는 이런 조직을 만들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지만, 지금은 온라인을 통해 쉽고 넓게 만들 수 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변화된 상황에 기반을 둔 본격적인 정치조직, 사회조직이 나와야할 필요성이 무르익었다.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기존 운동과 정당은 정체된 상태로 계속 갈 것이고, 분출하는 시민들의 참여욕구는 새로운 정치조직, 새로운 사회운동의 형태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구시대적 정당과 사회운동조직이 새로운 정당 및 사회운동조직과 경합하는 상황이 될 가능성도 있다. - 김호기 = 이번 촛불집회는 일종의 직거래다. 과거에는 참여연대와 같은 대변형 기구를 통해 자기 생각을 표시해 왔다. 이번 촛불 집회는 시민들이 정부와 직거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인터넷 쇼핑몰과 비슷하다. 슈퍼마켓을 통하지 않고 직접 사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기존 사회운동이나 정치조직이 당황해 하고 있다. 지금까지 시민단체의 역할이 ‘주도’에 있었다면, 앞으로의 역할은 ‘매개’, ‘연결’로 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동안은 준 정당의 역할 했다면 앞으로는 다양한 조직을 연결시키는 네트워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런 문제 때문에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촛불 집회에서 마냥 즐거워만 하진 않았던 것 같다. - 김민영 = 당연히 그렇다. 시민운동은 새로운 현상 앞에서 스스로 낡은 운동으로 전락할 것인지, 변화의 흐름를 타고 스스로 변신할 것인지의 기로에 서있다. 다만 이번 촛불은 최근 2~3년의 흐름과 연계지을 필요가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불거진 시점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끊임없이 제기했던 시민단체와 전문가가 있었다. 그것이 피디수첩 보도로 폭발했고, 그게 운동으로 갔다. 이러한 전사가 없었다면 촛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의제를 제기하는 시민단체의 정론적 기능은 앞으로도 남을 것이다. 다만 새 흐름을 쫓아간다고 하여 콘텐츠를 생산하는 본연의 역할까지 못한다면 이도저도 아닌 게 될 수도 있다. 다행스런 것은 다음 선거가 지방선거라는 점이다. 지방선거를 매개로 하는 시민운동의 포지션 변화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후 정치적 활동에 있어서 새로운 접근법을 보여줄 것이다. - 김호기 = 이명박 정부의 강공 드라이브를 보면서 촛불시민들을 정치적으로 대변할 세력이 없을 때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 절감했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에서도 민주화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세계화 시대가 본격화됐다. 이에 따라 ‘비신자유주의 최대다수 정치연합’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발상에 대해 ‘비판적 지지론의 21세기 버전’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던데. 정당연합이 됐건 운동연합이 됐건 선거연합이 됐건,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보수세력과 구분되는, 신자유주의에 동의하지 않는 모든 세력이 결집하는 정치연합이 필요하다. 이는 선거연합, 정당연합이 될 수도 있고, 이를 위한 새로운 정당 건설운동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인식에 도달하는 게 단숨에 되는 것 같지는 않다. 6월 항쟁 이후 경실련, 민노총 등이 곧바로 만들어진 게 아니듯이 ‘비신자유주의 최대다수 정치연합’의 실현에 이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 장석준 = 촛불운동조차 그동안의 전통적 대규모 동원에서 예외가 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바로 서울 중심의 중앙 집중 동원이다. 촛불이 지역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서울 중심으로 지역 생활 세계와 괴리된 형태로 참여가 이뤄지고 있다. 인터넷 중심 참여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역세계에서 소통 공간이 없으니까 오히려 다른 어느 나라보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발전시킨 측면이 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어떻게 지역에 스며들도록 할 것인가에 정당과 사회운동의 책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지방선거에 주목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다만 광범위한 사회운동세력이 지방선거를 단기적 목표 삼아서 촛불연합을 만들어야 할텐데, 그 함의가 비신자유주의 또는 반신자유주의와 같은 구호로 나타나면, 참신성을 갖기 힘들 것이다. 촛불운동 참여자가 갈구했던 대안이 생활정치에서 드러날 수 있도록, 대안적 일상을 가치와 정책으로 구현하는 연합을 정당과 사회운동이 형성해서 지금부터라도 지역에서 운동을 만들어내고 지방선거에 도전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그나마 가장 가깝게 다가와 있는 이명박 정권 심판의 기회가 지방선거다. - 김호기 = 지난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시금석이었다. 한국 사회에는 성장연합과 분배연합이 있다. 지난 대선 때는 6대4 정도로 성장연합이 우세했다. 비록 주경복 후보가 낙선하긴 했지만, 촛불 정국을 지나면서 두 세력의 역관계가 5대5 정도로 복원된 것 같다. 실제로 주경복은 친민주당이라기보다는 친민노당, 친진보신당 후보였다. 지금까지는 진보세력 스스로가 가진 ‘자기검열’이랄까, 대중 앞에 자신 있게 등장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었는데, 이번 선거에서 그것이 일부나마 허물어졌다. 전교조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도 적잖이 바뀐 것 같다. 최근의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민노당과 진보신당 지지율을 합해 15%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다. 이건 촛불이 가져온 결과다. 시민사회 내에서 진보세력에 대한 관용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촛불을 경험하면서 누가 우리편인가, 누가 우리 이익과 가치를 대변하는가에 대한 각성이 어느 정도 진행된 것 같다. - 김민영 = 보수 세력은 촛불을 끊임없이 보수-진보의 이념대결로 몰아가려 했다. 그에 비해 촛불에 참여한 다수는 이념이 아니라 생활의 문제로 접근했다. 보수는 분명히 하나의 세력으로 형성돼 있는데, 그들의 정책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반대 세력은 아직 어떤 개념으로도 포착되지 안고 있다. 진보나 개혁이라는 개념으로 그 반대 세력을 표현하기 힘들다. 이제부터는 사회운동 세력이 무엇을 중심으로 촛불 참여자 앞에 자신을 드러낼 것인지의 문제가 남아있다. 그걸 진보라 표현할 것인가. 진보라는 개념으로 촛불 시민 전반을 아우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잘 안 될 것이다. 내용적으로는 비신자유주의 연합이 되겠지만 그건 대중적 용어가 아니다. 주경복 후보의 경우 반대와 폐지로 일관하면서, 대안을 내세워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안티보수, 안티이명박 정도에 머물렀다. 제시한 정책도 모호하거나 불충분하거나 낡았다고 보여지는 측면이 있다. 이게 현단계 진보 개혁 세력의 실체다. - 장석준 = 2006년 지방선거 이후 대선·총선 등 3대 선거를 거치면서 성장주의 중심의 ‘수동 혁명’이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불과 몇 달만에 그 약한 고리를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연합’ 바깥에 있는 나머지 사람들을 결집시킬 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이른바 ‘최대연합’을 형성해야 한다는 점에 이견이 있다. 촛불 의제도 광우병 쇠고기 문제의 단일 의제에서 출발해 나중에 5대 의제로 확장됐지만, 거기에도 끼지 못한 중요한 의제가 있다. 그게 바로 비정규직 문제다. 5대 의제 안에 들어갈만한 핵심적인 사회쟁점이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런 문제가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가로지르고 있는 한 ‘최대연합’ 형성은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제도적 행보를 보였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두고 ‘촛불 최대연합’ 안에서도 넘어서기 힘든 균열이 존재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진보와 중도라 불리는 양 세력 간의 연합을 쉽사리 말할 수 없는 근본 문제가 있다. 앞으로 촛불 정신을 계승하는 과정에서도 촛불운동과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해 긴장과 갈등이 있을 것이다. - 김호기 = 한국 중도 세력의 대다수는 ‘중도적 신자유주의’다. 중도이면서 반신자유주의인 그룹은 소수다. 앞서 언급한 ‘비신자유주의 정치연합’을 만든다 해도 이들 중도적 신자유주의 세력과 같이 갈 수는 없다. 이들은 보수적 신자유주의 세력과 더 가깝다. 다만 정당이 늘 고정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 희망을 걸 수는 있다. 정당 내부의 세력 지형도 나름대로 변화하고 발전한다. 촛불을 거치면서 다수 시민의 정치의식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촛불 앞에서 보수세력은 물론 중도세력도 상당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 역시 촛불 시민들에게 거부된 것이나 다름 없다. 촛불 시민들의 의식 변화는 단기적으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적어도 4~5년 정도 지속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정치적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5년 뒤에 오늘을 돌아보면 바로 지금 이 순간 큰 씨앗이 뿌려졌음을 알게 될 수도 있다. 지난 10년간 운동 세력이 신자유주의 반대를 홍보했는데, 촛불 100일 사이에 참여자들이 이를 자연스레 체득하게 됐다. - 김민영 = 그동안의 운동은 굉장히 연역적 방식이었다. 무엇이 중요하다 판단하고 이를 대중에게 알리는 방식이었다. 비정규직 문제가 중요하다. 그러나 비정규직은 구조적 문제이므로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사회 변화를 도모하기 힘들다는 논리를 형성해 대중에게 일방적으로 알리려 하면 촛불의 교훈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는 더이상 운동이 되지 않는다. 쇠고기 문제는 곧 나의 문제라는 착안에서 시작해서 100일 동안 촛불이 켜졌다. 이 촛불에 비정규직 문제를 집어넣어야 한다는 것도 과거식 관념일 수 있다. 앞으로도 귀납적 방식으로 운동이 형성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 장석준 = 쇠고기 문제가 시민사회단체가 끊임없이 이야기 해오다가 갑자기 촉발된 것처럼 비정규직 문제도 일상적 접근이 있어야 폭발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정당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다.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모두 87년의 자식들이다. 이들이 어떻게 하면 1987년이 아니라 2008년에 적응할 것인지의 문제에 직면했다. 화석화된 노동운동과 중앙집중형 시민운동 속에서 성장한 중도 내지 진보세력이 2008년에 드러난 한국 사회 변화 속에서 새로운 답안지를 어떻게 제출할 것인가가 촛불을 살리는 핵심이다. 다만 현재 상황은 어느 당이 됐건 당의 공식적 구조 자체로만 보자면 이런 촛불의 질문에 응답하기 힘든 형태를 갖고 있다. 진보정당도 그렇다. 새로운 리더십과 담론이 창출되는 구조를 내부에 갖춰야 하는데, 어느 정당이건 이를 봉합하고 있거나 계파 연합에 머물고 있는 성격이 있다. 대안 이 제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 세력 관계가 고착화되고 있다. 실험장이나 배양장이 되기엔 좋지 않은 구도다. 새로운 기대를 하기에는 거리가 있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보더라도 각 정당 내부의 특정 분파만이라도 거리의 변화와 요구에 자신을 적응시키면서 새 변화의 요소를 만든다면, 바로 그 세력에게 희망과 기대를 걸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다. 그저 기계적으로 기존 정당의 경계를 허무는 게 아니라 각 정당 내부에서 그 내부 정치를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당 밖에서도 이에 대해 주목할 필요 있다.
- 김호기 = 그 리더십은 비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촛불은 생활, 참여, 디지털, 인정, 가치의 정치다. 그리고 세계화의 정치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선결조건이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70,80년대식 권위주의 정권의 특성을 드러낸 측면도 있지만, 사실 재협상은 국내적 사안이 아니다. 상대가 미국이다. 쉬운 문제가 아니다. 쇠고기 문제 자체가 세계화 문제다. 성장연합 세력은 시장 논리를 강화하면서 경쟁력을 높여 성장을 이루면 ‘트리클 다운’ 효과를 통해 분배가 가능하다는 논리를 가진 반면, 중도세력이나 진보세력은 세계화와 관련한 정치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않다. 이와 관련해 중도세력이 제시한 것은 기껏해야 노무현 대통령이 말했던 좌파 신자유주의다. 왼쪽 깜빡이 켜고 오른쪽으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정당성까지 상실하게 됐다. 이미 미국산 쇠고기가 우리 식탁 위에 올라와 있는데 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국민 시선으로 보아 설득력 높고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리더십은 이런 비전의 문제, 정책의 문제와 연관돼 있다. 세계화에 맞설 수 있고, 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비전과 정책이 제시되면 리더십은 자연스레 그것에 올라타면 된다. 이것이 촛불이 우리 사회에 준 과제다. 진보건 중도건 세계화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 응답하라는 요구를 부여받았다. 이 부분이 우리가 촛불집회에서 주목해서 강조할 부분이다. 촛불집회라는 것은 권위주의적 정부에 대한 거부와 저항도 보여주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민주화 시대가 끝났다는 것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 장석준 = 물론 이 쪽도 그런 대안 부분에서 취약한 점이 있지만, 촛불을 통해 신자유주의 자체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도 확인했다. 또한 신자유주의 세력 역시 그 헤게모니가 한계에 도달한 상황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금융중심의 신자유주의 질서의 전환을 요구받는 시점에 왔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상수로 남아 있겠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상당히 역동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그렇다고 하여 진보세력의 책무가 덜어지는 건 아니지만 그 과제를 수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상황이 열릴 수 있다.
- 김호기 = 촛불을 통해 한국 사회는 일종의 ‘파국적 균형’에 들어갔다. 누구도 헤게모니를 갖고 있지 않다. 제도적 헤게모니는 이명박이 갖고 있지만 정치적 정당성은 시민사회에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비신자유주의 블럭을 구축할 기본 조건은 갖췄다. 이제 내용을 채워야 한다. 2010년까지 어느 정도 채워놓지 않으면 지방선거에서도 이번 교육감 선거처럼 석패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 장석준 = 이번 교육감 선거를 보면 공립형 대안학교 설치 등의 대안을 제시한 것은 그저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말로 포괄되지 않는 교육자율성과 교육창의성에 대한 요구를 수용하는 새로운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생태적 전환의 문제가 이제 더이상 호사스런 의제가 아니라 실질적 문제로 대두된 게 아닌가 한다. 대안을 만드는 데 하나의 원군이 등장한 것이다. 성장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근거지점이 마련된 측면이 있다. 먹거리도 생태의 문제다. 사람들이 성장이란 것을 신비화된 가치에서 좀 더 비판적으로 바라보는데 중요한 계기가 된 게 생태적 감성이었다. 진보정당이나 사회운동이 지역으로 스며드는데도 생태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대안 형성 과정에서 초록과 생태의 가치를 반신자유주의 핵심으로 주목해야 하지 않나 한다.
- 김민영 = 부패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유능하다고 했던 부패세력의 호언장담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 몇 개월만에 드러났다. 보수는 부패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 경영의 능력이 없다는 게 확인됐다. 이들은 도그마에 빠진 이념 지향 세력이고, 그들이 갖고 있는 끼리끼리 이익분배의 방식으로는 국가 경영을 담당하기 어렵다는 게 확인됐다. 이는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쟁투가 아니라 다양한 요소가 섞이고 일방적 독주가 허용되지 않으며 소비자의 권리의식이 강력해지는 21세기에 이념 도그마에 빠진 신자유주의 세력의 노선으로 한국을 운영하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이러한 도전에 처한 상황에서 그렇다면 앞으로 국가 경영 주체로 누가 등장해야 하느냐가 분명치 않다. 비전과 설득력 있는 대안의 문제이고, 담당할 주체로서 조직과 리더십의 문제다. 그런 면에서 여전히 불비하다. 향후에는 정당이건 사회세력이건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측면 있다. 그 과정이 일면 경쟁의 과정, 즉 제 세력이 국가 주체를 담당하겠다는 경쟁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정치적 과정에서 어떻게 협력할 것인지가 동시에 존재한다. 촛불을 통해 각 정치세력은 자신의 요구를 앞세우기 어려운 조건이 만들어졌다. 이제 대중 운동 이 정치세력보다 우위에 있다. 대중 요구에 따라가는 방식으로 역전했다. 2010년에도 이런 상황 발생한다면, 각 정당이 정치적 협력을 통해 사회변화에 복무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 차원에서의 주민 주체가 부상하고 여기에 제 정치세력이 복무하는 방식으로 선거 치른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제 정치세력이 누가 국가 운영 주체의 자격을 갖췄는지 경쟁하고 협력하는 것이 앞으로의 10년을 준비하는 핵심적 요소라고 본다.
- 김호기 = 실생활과 연결되는 정책적 요소 가운데 중소기업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성장 문제를 과소평가할 수 없다. 비정규직 문제는 중소기업 문제이기도 하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면서도 이를 사회통합적으로 구조조정 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여기에 생태, 여성, 소수자, 인권 등의 이슈를 결합시키면, 보수세력의 신자유주의와 경쟁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넓은 의미의 진보세력이 비전과 정책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이것만이 해법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을 때는 서구의 신보수주의 세력처럼 적어도 10여년을 지속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것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그릇인지 불과 6개월만에 증명됐다. 그들의 대안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황량하게 만드는지 벌써 경험했고 앞으로의 일도 예상할 수 있게 됐다. 촛불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촛불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촛불이 제기한 유토피아적 희망이 있다. 그걸 훼손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비전과 정책 경쟁에서 설득력 높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촛불을 끄자는 게 아니라 촛불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 장석준 = 중소기업 문제를 단순히 중소기업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로 접근하면, 그 내용에서는 보수건 진보건 비슷해진다. 문제 핵심은 한국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수익 분배가 막혀 있다는 점에 있다. 그런데 기존 노동운동이 이런 ‘자본 내 분배’를 해결할 교섭구조를 갖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시켰다. 촛불이 열어놓은 가능성을 발전시킨다는 차원에서 중요한 것은 노동운동의 환골탈태다. 자본간 수익분배 구조를 변경시켜서 비정규직 해결로 확산시키는 새로운 운동구조와 교섭구조가 필요하다. 이를 노동운동이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촛불을 계기로 하는 노동운동의 혁신이 촛불 이후 핵심 과제라 생각한다. 정책 제시만으로는 반신자유주의 연합 실체가 등장하긴 역부족이다. 주체의 변화가 필요하다, 새로운 세력이 등장해서 함께 가야만 촛불을 살릴 수 있다.
- 김호기 = 사회헌장 같은 것을 채택하면 어떨까 한다. 100일 동안의 촛불에서 드러난, 정말 양보할 수 없는 인간적인 권리를 10여개 항목으로 정리해 발표 선언하는 것이다. 다양한 세력이 촛불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이 회의체를 만들어 촛불 헌장을 만들면 좋겠다. 크게 보아 반신자유주의의 열망, 인간 존엄성에 대한 열망, 그리고 생활의 정치 열망 등을 헌장화하는 것이다. 유럽연합이 채택한 사회헌장도 그 모델이 될 수 있다.
- 장석준 = 촛불헌장 만들려면 전문가 말고 아고라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 김민영 = 촛불 헌장을 만든다면 인간 존엄성을 지켜야할 국가 책임에 대한 것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 사회자 =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촛불의 광범위한 위력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공안정국의 강경책을 쓰고 있는 자신감에 대해 짚어보자.
- 김호기 = 지금 이명박 정부가 주장하는 건국 60년 담론은 국가 정체성을 문제 삼는 것이다. 뉴라이트와 촛불은 정확히 대척지점에 있다. 현재 서로 다른 국가관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로 상징되는 절대 다수는 헌법 1조로 상징되는 민주공화의 가치를 지키려 하는데, 뉴라이트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 김민영 =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킨 보수세력의 무능과 이념적 경직성이 촛불 국면을 낳았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과 같은 대응 방식을 선택한 배경에는 그들이 국가권력을 모두 장악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촛불 시민들을 전반적으로 찍어 누르면서, 이 과정을 촉발했던 방송과 인터넷을 장악하여 마비시키면 앞으로 도전세력이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다. 그 과정을 이념대결로 포장하고 있다. 한국의 진보연대를 궤멸시키면 촛불이 사그라질 것이라는 구상이다. 이는 현 상황에 대한 잘못된 진단이다. 몇몇 단체가 이 운동을 주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강력한 탄압으로 약화시킨다 해서 촛불이 사라지지 않는다. 현재의 소강상태는 그저 촛불 자체의 내부에 기인한다. 이명박 정부의 강경 대응이 성공하긴 어려울 것이다. 다만 이런 탄압을 경험해 보았고 이에 대한 대응력을 갖고 있는 사회단체가 아니라, 이번에 처음으로 투쟁 주체가 됐던 사람들은 이게 무엇인가에 대해 감이 덜 잡힌 상황이다. 그게 촛불이 소강상태에 빠진 한 원인이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국가 권력의 탄압을 충분히 뚫고 나갈 수 있고, 새로운 역전 기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전반적으로 대중 사이에 퍼지게 되면 촛불은 어떤 계기로건 발화할 것이다.
- 장석준 = 요로를 통해 확인할 결과, 이명박은 전혀 위기라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완전히 자신감 회복해서 기고만장하다고 한다. (웃음) 이명박의 실패는 우파 시민사회의 실패다. 그들은 나름대로는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만회하기 위해서 보수 교회와 전향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시민사회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였는데, 실제로는 이들이 헤게모니 형성의 주체로서의 능력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게 드러났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다.
부동산 정책이나 경기 활성화 등 현재 이명박이 구사하는 정책 하나하나마다 큰 위험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오래 못 갈 것이다. 불안 속의 안정 상황이라 할까, 너무도 많은 위험요소를 감내하면서 가고 있다. 어느 한쪽에서만 고리가 빠져나가도 전체가 붕괴하는 구조로 대응하고 있다. 불안정성이 크다. 문제는 이런 위험요소가 전부 세계화라는 상수와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이 위험이 실제 드러났을 때, 이명박 정부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날지 아니면 허무적으로 나타날지의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세계적 변수와 연결되어 부동산 거품이 꺼진다거나 제2의 외환위기가 올 때, 시민들이 굉장히 수동적으로 상황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상황을 열어가려면 이명박 정부의 헛발질을 기다리지 말고, 대안을 추구하는 정당과 사회세력이 적극적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 김호기 = 이명박 정부는 취약한 역량 속에서도 전형적인 ‘두 국민’ 전략을 쓰고 있다. 보수 세력을 결집시켜 통치기반으로 공고히 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80년대 서구에서 등장한 신자유주의, 신보수주의 정권의 전형적 정책이다. 지지하는 그룹만 결집시키고 나머지 집단들은 배제한다. 이러한 ‘두 국민’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을 가져올 수도 있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는 전략이 5대 5가 아니라 1대9나 2대8의 두 국민 전략이라는 점이다. 우호세력이라 생각했던 국민 범위가 대단히 좁다. 이명박 정부가 70,80년대로 돌아가는 듯한 공안적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이것이 단기적으로는 시민사회를 약화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갈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두 국민 전략은 지지세력을 넓게 결집시키는 게 아니라 대단히 협소한 세력 중심으로 국민을 양단하는 것이다. 그 결과 이번에 겪은 촛불집회 못지않은 통치위기가 닥쳐올 가능성이 있다. 역사적 경험이 보여주듯이 그런 위기는 거창한 문제보다는 작은 문제에서 시작할 수 있다. 예기치 않은 이슈에 직면해서 이명박 정부가 촛불보다 더 심각한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런 점에서 나라가 걱정이다. 우리는 일본이나 미국처럼 경제 규모가 크지 않다. 세계화로부터 지속적인 영향을 받는다. 외적 변수가 상수로서의 의미 갖고 있다. 통치위기가 발생했을 때 이것이 외적 충격과 결합하면 아주 심각한 위기로 나아갈 수도 있다. 우리 사회 미래가 걱정이다. 이 점에서 역설적이지만, 이명박 정부가 제발 잘해줬으면 좋겠다.
- 장석준 = 그런 점에서 보수언론은 이미 우파 내부의 세력 재편 필요성을 느끼는 것 같다. 개헌 등을 고리 삼아 개입하려는 듯 하다.
- 사회자 = 촛불 집회 과정에서 진보 정당 내부의 세력 경쟁은 없었나.
- 장석준 = 갈등 같은 것은 없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그야말로 선의의 경쟁을 했다. 그런 점에서 촛불을 통해 경험적으로 느끼게 된 것은 분당하기 잘했다는 점이다. (웃음) 왜냐하면 만약에 서로 경쟁하는 구도가 안됐다면 진보신당의 ‘칼라 티브이’ 같은 실험이 없었을 것이다. 기존의 것과는 다른 실험들인데, 민주노동당의 질서 안에 머물렀다면 불가능했을 실험이다. 지금은 하나의 당이 두개로 갈라지는 문제가 아니라, 중도정당, 진보정당 등이 제각각 창조적 파괴를 겪어야 하는 국면이다. 그 귀결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이와 관련해 노동운동을 다시 거론해야 겠다. 그동안 민주노총이 파업만 하면 비난했던 여론 지형이었는데 이번 촛불 시위 때는 오히려 커다란 목소리로 지지하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나 노조 운동이 그런 지지여론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다. 서글픈 일이다. 촛불을 통해 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가장 강력하게 받은 첫 번째 대상이 진보정당이고 그 다음이 노동운동이고 세 번째가 시민사회다. 기존의 것으로부터 변화해야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받은 집단이다. 특히 노동운동의 경우는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김민영 = 촛불을 통해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면서 기존 운동세력과 긴장과 갈등, 협력을 두루 겪으면서 서로 영향을 미쳤다. 시민사회운동의 입장에서 보자면, 스스로의 정체성을 더 강화할 필요성이 생긴 동시에, 변화된 조건에서 다수 시민과 어떤 방식으로 만나고 협력을 이끌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과제를 갖게 됐다. 이게 일거에 변화할 것 같지는 않다. 두가지 경로가 가능하다. 기존 운동을 새로운 운동으로 대체하는 과정도 있겠고, 기존 운동과 새로운 운동이 병존할 수도 있다. 가급적이면 병존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게 좋겠다.
- 김호기 = 최근 몇 년간 학계에는 “대안이 없다”는 비관적 정서가 주를 이뤘다. 신자유주의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비관론이 있었다. 촛불은 여기에 일대 경종을 울렸다. 지난 5월2일 이후 이제는 10대 조차도 신자유주의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식사회도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새 비전과 대안, 그리고 정책개발에 더욱 주력해야 하겠다. 우리 안에 존재했던 비관주의를 과감히 떨쳐버리는 과제도 안게 됐다. 그동안 진보적 지식사회 내부에서도 엘리트주의가 강했는데, 촛불을 통해 좋은 의미에서의 민중주의, 대중주의가 민주주의에 대단히 중대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확인했다. 우리 안에 존재했던 엘리트주의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지식사회 내부에 “민주주의가 과연 밥 먹여 주느냐”는 의문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민주주의가 밥을 먹여주건 아니건, 밥 먹는 것 못지않게 민주주의가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했다. 촛불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성찰을 지식사회에 요구했다. 요약하자면 촛불은 다양한 각도에서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 김민영 = 철저한 경쟁사회가 내면화되는가 했는데, 호혜, 협력, 공유라는 사회적 질서가 있을 수 있구나 라는 것을 보여준 측면이 있다. 이것은 향후 사회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정리/안수찬기자 ahn@hani.co.kr
이는 향후 사회운동에 있어서 고민의 지점이기도 하다. 전통적 의미의 정당이나 사회운동 세력이 대규모 대중운동을 이끌던 시대와 사뭇 달라졌다. 이들간의 경쟁과 긴장이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따라 사회운동도 다른 색깔로 진화할 수 있겠다. 가두 행진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전통적 사회단체들은 오히려 머뭇거렸다. 아고라 처럼 온라인 기반 커뮤니티들이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사회단체는 그 뒤를 따라 갔다. 예를 들어 이명박 퇴진 구호를 내걸것인지를 두고 시민운동 그룹 내부에서 논쟁을 벌이는 사이에 이미 가두에선 그 구호를 일반화시켰다. 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고 대중을 이끄는 기능이 옮겨가버렸다. - 장석준 = 커뮤니케이션 혁신이 촛불에 반영된 측면도 있겠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한국 운동사에 걸친 세대의 문제가 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모든 운동은 6월 항쟁을 계승하는 동시에 그것과 다른 새로움을 같이 보여줬다. 효순·미선 촛불이나 탄핵반대 촛불만 해도 이 가운데 6월 항쟁 계승의 성격이 더 강했다. 이번 촛불 집회는 6월 항쟁에 대해 계승보다는 단절의 측면이 강하다. 무엇보다 참여 주체의 측면에서 6월 항쟁과 후속 투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주력이 됐다. 진행 과정에서 벌어진 기존 운동 세력과 새로운 주체 사이의 갈등은 경험과 언어의 단절에서 생긴 ‘정세적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문제가 앞으로도 계속 된다기보다는 서로 적응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이다. 다만 커뮤니케이션 혁신의 면에서는 사회운동 자체의 근본적 혁신이 필요한 대목이 있다. 쌍방향 소통을 이번에 절실하게 경험했다. 심지어는 현장 상황을 화면으로 보면서 소통하는 일까지 경험했다. 이런 상황에선 19· 20세기식으로 지식인과 대중, 전위와 후위, 계몽하는 주체와 배우는 대중 식의 접근법을 벗어나지 않으면 운동 자체가 성립이 될 수 없는 상황에 접어 들었다. 대중이 너무나 성숙했다. 이는 기존 사회운동에 비해 높은 질을 가진 새로운 운동의 등장으로 볼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기존 운동과 새 운동 사이에 연속성을 만들지 못할 경우 부정적 양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 김호기 = 운동의 주체. 목적, 방식, 조직 등의 측면에서는 6월 항쟁과의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두드러진다. 6월 항쟁의 목표는 민주화라는 거시적인 것이었지만 이번 촛불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묻는 생활 이슈에서 비롯했다. 조직의 측면에서도 탈위계적, 탈조직적, 탈중심적이었다. - 사회자 = 새로운 주체와 기존 사회운동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 김민영 = 다양한 동기나 경로를 통해서 제각각 행동에 나섰지만, 결국 공동의 경험을 했다는 면에서는 촛불 참여 이전과 이후가 상당히 다를 것이다. 공동행동으로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된 각성한 시민이 등장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이들이 곧바로 정치세력화 될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다만 6월 항쟁 뒤 1~2년 동안 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조직들이 등장했듯이 이번 촛불을 거치면서 새로운 형태의 사회운동 조직들이 출현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 조직의 성공 여부는 더 두고봐야겠지만, 여러 종류의 조직이 출현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 김호기 = 촛불 과정에서 일부는 정당정치, 제도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그들이 사회운동의 의미를 과소 평가했다는 점에서 불만이 있다. 이번에 촛불에 참여한 ‘유모차 부대’를 예로 들면, 이들이 촛불 이후 일상에서 과연 예전처럼 살 수 있겠는가. 그저 쇼핑하고 드라마보면서 살지는 못할 것이다. 이미 이들은 세상에 대해 ‘불편’해져 있다. 운동에 참여하면서 개인의 계몽과 각성이 이뤄진다. 이게 사회발전의 중요한 동력이다. 정당정치를 강조하는 분들은 이런 대목을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 87년 6월 항쟁 이후 경실련부터 참여연대까지, 그리고 전교조부터 민주노총까지 많은 운동조직이 만들어졌다. 6월 항쟁의 선물이다. 이번에는 분명히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쪽에서 다양한 조직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다만 촛불 이후 정치적 무관심이 확산될 요소도 없지 않다. 세계 어느 나라 정부이건 이 정도의 사회운동이 전개되면 대체로 국민의 뜻을 따른다. 그런데 현 정부는 기이하게도 강공으로 일관한다. 이것이 촛불 참여자들에게 상처 같은 것으로 남게 되면, 그것이 정치적 무관심으로 결론지어질 수도 있다. 그런 양면성이 존재한다. 경실련이 89년에 만들어졌고, 참여연대는 93년에 탄생했다. 긴 호흡으로 새로운 운동의 조직화 경향을 지켜봐야겠지만, 동시에 정치적 무관심과 무력감의 확산 여부도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 - 김민영 = 이명박 정부의 탄압 때문에 일부 위축된 측면은 있지만, 이것이 곧바로 패배감이나 무력감으로 급속히 빨려들어갈 것 같진 않다. 잠재된 불씨들이 곳곳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이것이 언제 어떤 계기로 촉발될 것인지가 관심사항이다. 문제는 그것을 촉발시켜 낼수 있을만한 능력을 갖춘 신뢰받는 정치, 사회 집단의 존재 여부다. - 장석준 = 그 점에서 주목할 것이 새로운 주체의 ‘낯선 행동양식’이다. 거대 미디어가 아니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상호 소통을 통해 정보와 지식을 얻거나 특정 조직의 공식적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서로간 논의와 결의를 통해 거리에 나서는 것이 반복됐다. 이런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확인했다. 이와 같은 새로운 행동 양식 자체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는다. 몇만 명씩 거리에 나오는 상황은 소강상태에 빠진다 해도, 이런 행동 양식 자체는 계속 이어진다. 거리에 사람들이 모이지 않더라도 소통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이번의 촛불보다 더 명확한 대안을 가진 운동이 솟구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기존 사회운동이 이런 새로운 행동양식에 얼마나 적응하는지가 관건이다. - 김민영 = 서로 다른 개성과 특성을 갖고 있던 온·오프라인 조직들이 서로 연합한 것도 중요한 행동양식이다. 서로 연대했을때의 시너지 효과를 이번에 모두가 확인했다. ‘대책회의’에는 전통적 사회단체나 진보정당 대표, 온라인 카페 대표 등 대단히 많은 조직이 참여했고, 불협화음도 많았다. 그러나 위계를 갖추지 않고 공동의 목표 아래 연대를 논의하는 자리는 앞으로도 다시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 모였다 흩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신축적인 연대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 김호기 = 지금까지의 연대는 차이를 존중하진 않았다. 이번 촛불에서는 차이를 존중하는 연대를 실험한 것 같다. 대책회의가 연단에서 행사하는 데 일부 시민들은 행진에 나서는 식이다. 이것이 당혹감을 준 측면도 있지만, 촛불 100일 동안 차이를 존중하는 연대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를 적절히 훈련한 것 같다. ‘성찰적 연대’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는데, 새로운 연대에 대한 실험, 체험, 훈련을 이렇게 광범위하게 벌인 것은 한국 사회운동에서 사실상 처음인 것 같다. 이와 관련해 ‘집단지성’에 대해 짚고 갈 필요가 있다. 집단 지성은 그람시가 말한 ‘유기적 지식인’의 21세기적 버전이다. 집단지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흐름도 있는데, 옳지 않다. 그런 비판에는 엘리트주의가 포함돼 있다. 민영화 관련 현안 분석에 대해 아고라에 실린 글과 전문가의 글을 비교해 읽었더니, 아고라에 올라온 글이 어떤 면에서는 훨씬 더 탄탄한 논리와 충실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만큼 시민사회가 지적으로 성숙했다. 사회현안에 대한 토론에서 소수 그룹이 토론 주도권을 독점해서는 안된다. 집단지성은 활성화되면 될수록 좋은 것 아닌가 한다. - 장석준 = 집단지성 문제를 나는 성숙한 대중사회 문제로 표현하고 싶다. 지식생산자나 미디어가 아니라 대중 스스로 지식에 대한 접근과 생산에 대한 통제력을 갖게 됐다. 미디어에 지배당하는 대중이라는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 새로운 대중사회다. 여기에는 두가지 측면이 있다. 대중의 자발적 성숙을 통해 이전의 어떤 사회도 경험하지 못한 민주주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대중 스스로가 정치적 해결을 위한 대안을 형성하지 못할 경우 대중의 냉소주의가 강화할 수도 있다. 소통 능력이 강한만큼 자신이 봉착한 실제 정치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냉소 또는 허무의 요소가 강화되는 것이다. 열매가 익어서 먹기에 딱 좋아 보이지만, 이는 잠시 뒤 썩어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두 측면 가운데 어느 쪽으로 갈 것인지는 기존 사회운동 세력이 새 환경에 적응할 것인지, 어떤 정치적 해결책을 내놓을 것인지와 관련이 있다. - 김호기 = 그런 점에서 정치사회가 중요하다. 한국의 경우 시민사회가 대단히 성숙해 있는데, 이들이 갖고 있는 요구를 정치사회에서 실현해 줘야 한다. 집단지성이 갖는 정치적 열망, 대안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정치사회 내에 존재하느냐 안하느냐가 중요하다. - 장석준 = 그런 점에서는 현 상황은 최악이다. 국회 구성은 촛불 이전의 권력 지형을 반영하고 있다. 정치사회와 시민사회가 그동안 끊임없이 괴리되어 오긴 했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가장 심하다. - 김호기 = 국민의 절반 이상이 신자유주의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치사회를 구성하는 다수는 신자유주의를 지지한다. 정치사회와 시민사회 사이에 나타나는 비대치성의 비극이다. - 김민영 = 그 문제를 조직 구성의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기존 정당이나 사회운동 조직은 조직된 틀을 통해 참여를 호소해다. 그런데 이번 촛불에서는 자신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아래로부터 만들어진 조직들이 나왔다. 자신의 돈, 시간, 기회비용까지 쪼개면서 자발적으로 밤새워 거리에 나오는 사람들이 이를 만드었다. 예전에는 이런 조직을 만들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지만, 지금은 온라인을 통해 쉽고 넓게 만들 수 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변화된 상황에 기반을 둔 본격적인 정치조직, 사회조직이 나와야할 필요성이 무르익었다.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기존 운동과 정당은 정체된 상태로 계속 갈 것이고, 분출하는 시민들의 참여욕구는 새로운 정치조직, 새로운 사회운동의 형태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구시대적 정당과 사회운동조직이 새로운 정당 및 사회운동조직과 경합하는 상황이 될 가능성도 있다. - 김호기 = 이번 촛불집회는 일종의 직거래다. 과거에는 참여연대와 같은 대변형 기구를 통해 자기 생각을 표시해 왔다. 이번 촛불 집회는 시민들이 정부와 직거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인터넷 쇼핑몰과 비슷하다. 슈퍼마켓을 통하지 않고 직접 사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기존 사회운동이나 정치조직이 당황해 하고 있다. 지금까지 시민단체의 역할이 ‘주도’에 있었다면, 앞으로의 역할은 ‘매개’, ‘연결’로 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동안은 준 정당의 역할 했다면 앞으로는 다양한 조직을 연결시키는 네트워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런 문제 때문에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촛불 집회에서 마냥 즐거워만 하진 않았던 것 같다. - 김민영 = 당연히 그렇다. 시민운동은 새로운 현상 앞에서 스스로 낡은 운동으로 전락할 것인지, 변화의 흐름를 타고 스스로 변신할 것인지의 기로에 서있다. 다만 이번 촛불은 최근 2~3년의 흐름과 연계지을 필요가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불거진 시점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끊임없이 제기했던 시민단체와 전문가가 있었다. 그것이 피디수첩 보도로 폭발했고, 그게 운동으로 갔다. 이러한 전사가 없었다면 촛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의제를 제기하는 시민단체의 정론적 기능은 앞으로도 남을 것이다. 다만 새 흐름을 쫓아간다고 하여 콘텐츠를 생산하는 본연의 역할까지 못한다면 이도저도 아닌 게 될 수도 있다. 다행스런 것은 다음 선거가 지방선거라는 점이다. 지방선거를 매개로 하는 시민운동의 포지션 변화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후 정치적 활동에 있어서 새로운 접근법을 보여줄 것이다. - 김호기 = 이명박 정부의 강공 드라이브를 보면서 촛불시민들을 정치적으로 대변할 세력이 없을 때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 절감했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에서도 민주화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세계화 시대가 본격화됐다. 이에 따라 ‘비신자유주의 최대다수 정치연합’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발상에 대해 ‘비판적 지지론의 21세기 버전’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던데. 정당연합이 됐건 운동연합이 됐건 선거연합이 됐건,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보수세력과 구분되는, 신자유주의에 동의하지 않는 모든 세력이 결집하는 정치연합이 필요하다. 이는 선거연합, 정당연합이 될 수도 있고, 이를 위한 새로운 정당 건설운동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인식에 도달하는 게 단숨에 되는 것 같지는 않다. 6월 항쟁 이후 경실련, 민노총 등이 곧바로 만들어진 게 아니듯이 ‘비신자유주의 최대다수 정치연합’의 실현에 이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 장석준 = 촛불운동조차 그동안의 전통적 대규모 동원에서 예외가 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바로 서울 중심의 중앙 집중 동원이다. 촛불이 지역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서울 중심으로 지역 생활 세계와 괴리된 형태로 참여가 이뤄지고 있다. 인터넷 중심 참여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역세계에서 소통 공간이 없으니까 오히려 다른 어느 나라보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발전시킨 측면이 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어떻게 지역에 스며들도록 할 것인가에 정당과 사회운동의 책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지방선거에 주목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다만 광범위한 사회운동세력이 지방선거를 단기적 목표 삼아서 촛불연합을 만들어야 할텐데, 그 함의가 비신자유주의 또는 반신자유주의와 같은 구호로 나타나면, 참신성을 갖기 힘들 것이다. 촛불운동 참여자가 갈구했던 대안이 생활정치에서 드러날 수 있도록, 대안적 일상을 가치와 정책으로 구현하는 연합을 정당과 사회운동이 형성해서 지금부터라도 지역에서 운동을 만들어내고 지방선거에 도전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그나마 가장 가깝게 다가와 있는 이명박 정권 심판의 기회가 지방선거다. - 김호기 = 지난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시금석이었다. 한국 사회에는 성장연합과 분배연합이 있다. 지난 대선 때는 6대4 정도로 성장연합이 우세했다. 비록 주경복 후보가 낙선하긴 했지만, 촛불 정국을 지나면서 두 세력의 역관계가 5대5 정도로 복원된 것 같다. 실제로 주경복은 친민주당이라기보다는 친민노당, 친진보신당 후보였다. 지금까지는 진보세력 스스로가 가진 ‘자기검열’이랄까, 대중 앞에 자신 있게 등장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었는데, 이번 선거에서 그것이 일부나마 허물어졌다. 전교조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도 적잖이 바뀐 것 같다. 최근의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민노당과 진보신당 지지율을 합해 15%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다. 이건 촛불이 가져온 결과다. 시민사회 내에서 진보세력에 대한 관용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촛불을 경험하면서 누가 우리편인가, 누가 우리 이익과 가치를 대변하는가에 대한 각성이 어느 정도 진행된 것 같다. - 김민영 = 보수 세력은 촛불을 끊임없이 보수-진보의 이념대결로 몰아가려 했다. 그에 비해 촛불에 참여한 다수는 이념이 아니라 생활의 문제로 접근했다. 보수는 분명히 하나의 세력으로 형성돼 있는데, 그들의 정책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반대 세력은 아직 어떤 개념으로도 포착되지 안고 있다. 진보나 개혁이라는 개념으로 그 반대 세력을 표현하기 힘들다. 이제부터는 사회운동 세력이 무엇을 중심으로 촛불 참여자 앞에 자신을 드러낼 것인지의 문제가 남아있다. 그걸 진보라 표현할 것인가. 진보라는 개념으로 촛불 시민 전반을 아우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잘 안 될 것이다. 내용적으로는 비신자유주의 연합이 되겠지만 그건 대중적 용어가 아니다. 주경복 후보의 경우 반대와 폐지로 일관하면서, 대안을 내세워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안티보수, 안티이명박 정도에 머물렀다. 제시한 정책도 모호하거나 불충분하거나 낡았다고 보여지는 측면이 있다. 이게 현단계 진보 개혁 세력의 실체다. - 장석준 = 2006년 지방선거 이후 대선·총선 등 3대 선거를 거치면서 성장주의 중심의 ‘수동 혁명’이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불과 몇 달만에 그 약한 고리를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연합’ 바깥에 있는 나머지 사람들을 결집시킬 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이른바 ‘최대연합’을 형성해야 한다는 점에 이견이 있다. 촛불 의제도 광우병 쇠고기 문제의 단일 의제에서 출발해 나중에 5대 의제로 확장됐지만, 거기에도 끼지 못한 중요한 의제가 있다. 그게 바로 비정규직 문제다. 5대 의제 안에 들어갈만한 핵심적인 사회쟁점이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런 문제가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가로지르고 있는 한 ‘최대연합’ 형성은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제도적 행보를 보였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두고 ‘촛불 최대연합’ 안에서도 넘어서기 힘든 균열이 존재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진보와 중도라 불리는 양 세력 간의 연합을 쉽사리 말할 수 없는 근본 문제가 있다. 앞으로 촛불 정신을 계승하는 과정에서도 촛불운동과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해 긴장과 갈등이 있을 것이다. - 김호기 = 한국 중도 세력의 대다수는 ‘중도적 신자유주의’다. 중도이면서 반신자유주의인 그룹은 소수다. 앞서 언급한 ‘비신자유주의 정치연합’을 만든다 해도 이들 중도적 신자유주의 세력과 같이 갈 수는 없다. 이들은 보수적 신자유주의 세력과 더 가깝다. 다만 정당이 늘 고정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 희망을 걸 수는 있다. 정당 내부의 세력 지형도 나름대로 변화하고 발전한다. 촛불을 거치면서 다수 시민의 정치의식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촛불 앞에서 보수세력은 물론 중도세력도 상당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 역시 촛불 시민들에게 거부된 것이나 다름 없다. 촛불 시민들의 의식 변화는 단기적으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적어도 4~5년 정도 지속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정치적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5년 뒤에 오늘을 돌아보면 바로 지금 이 순간 큰 씨앗이 뿌려졌음을 알게 될 수도 있다. 지난 10년간 운동 세력이 신자유주의 반대를 홍보했는데, 촛불 100일 사이에 참여자들이 이를 자연스레 체득하게 됐다. - 김민영 = 그동안의 운동은 굉장히 연역적 방식이었다. 무엇이 중요하다 판단하고 이를 대중에게 알리는 방식이었다. 비정규직 문제가 중요하다. 그러나 비정규직은 구조적 문제이므로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사회 변화를 도모하기 힘들다는 논리를 형성해 대중에게 일방적으로 알리려 하면 촛불의 교훈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는 더이상 운동이 되지 않는다. 쇠고기 문제는 곧 나의 문제라는 착안에서 시작해서 100일 동안 촛불이 켜졌다. 이 촛불에 비정규직 문제를 집어넣어야 한다는 것도 과거식 관념일 수 있다. 앞으로도 귀납적 방식으로 운동이 형성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 장석준 = 쇠고기 문제가 시민사회단체가 끊임없이 이야기 해오다가 갑자기 촉발된 것처럼 비정규직 문제도 일상적 접근이 있어야 폭발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정당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다.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모두 87년의 자식들이다. 이들이 어떻게 하면 1987년이 아니라 2008년에 적응할 것인지의 문제에 직면했다. 화석화된 노동운동과 중앙집중형 시민운동 속에서 성장한 중도 내지 진보세력이 2008년에 드러난 한국 사회 변화 속에서 새로운 답안지를 어떻게 제출할 것인가가 촛불을 살리는 핵심이다. 다만 현재 상황은 어느 당이 됐건 당의 공식적 구조 자체로만 보자면 이런 촛불의 질문에 응답하기 힘든 형태를 갖고 있다. 진보정당도 그렇다. 새로운 리더십과 담론이 창출되는 구조를 내부에 갖춰야 하는데, 어느 정당이건 이를 봉합하고 있거나 계파 연합에 머물고 있는 성격이 있다. 대안 이 제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 세력 관계가 고착화되고 있다. 실험장이나 배양장이 되기엔 좋지 않은 구도다. 새로운 기대를 하기에는 거리가 있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보더라도 각 정당 내부의 특정 분파만이라도 거리의 변화와 요구에 자신을 적응시키면서 새 변화의 요소를 만든다면, 바로 그 세력에게 희망과 기대를 걸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다. 그저 기계적으로 기존 정당의 경계를 허무는 게 아니라 각 정당 내부에서 그 내부 정치를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당 밖에서도 이에 대해 주목할 필요 있다.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 촉구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여학생들이 21일 밤 서울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무대에 올라, ‘촛불소녀’ 캐릭터 아래 “조중동은 끊어 주자” “의료 시장화 안돼” 등의 구호를 써 넣은 손팻말들을 들어보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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