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보도 “좌익 등 10만여명 학살 보고받고도 안막아”
한국전쟁 초기 남한의 군과 경찰이 자행한 좌익계 인사들의 집단처형을 미국이 알고도 묵인 또는 방조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에이피>(AP)통신은 5일 서울발 기사에서, “미군 장교들은 전쟁 초기 수 주 동안 10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좌익인사들과 동조자들이 기소나 재판 과정이 없이 집단처형되는 것을 목격하고 사진을 찍었으며 상부에도 보고했다”고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등의 비밀해제 기록을 토대로 보도했다.
이 통신은 광범위하게 각종 문서를 조사했으나 더글라스 맥아더 당시 극동군 사령관이 ‘약식 대량학살’을 중지시키기 위한 조처를 취한 징후는 찾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당시의 초법적인 대량학살은 미 국방부 최고위층과 국무부에까지 보고돼 ‘기밀’로 분류됐다. 통신은 “한국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미 국립문서보관소와 다른 문서고에서 때로는 방관하고 때로는 불만을 표시하는 당시 미국의 모호한 태도를 발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는 <에이피>와 인터뷰에서 “미군은 범죄 현장에 있으면서 사진을 찍고 보고서를 작성했다”며 “중요한 것은 그들이 처형을 중지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미군은 1950년 7월 대전 근교에서 남자 수십명이 ‘살육’되는 사진을 찍었다. 김동춘(성공회대 교수) 진실화해위원는 이 곳에서 3천~7천명의 한국민이 자국의 군·경에 총살당해 집단매장지에 던져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군의 학살 방조가 계속되자 영국군 장교들이 1950년 12월 미군 점령 하의 북한 지역에서 총살 직전의 민간인 21명의 목숨을 구했으며, 더 이상의 대량학살을 막기 위해 서울 외곽의 이른바 ‘처형의 언덕’을 장악했다고 <에이피>는 전했다.
한국전쟁 전문가인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는 “한국에서 수천명이 학살된 뒤에도 미국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대전 학살사건을 은폐하기도 했다”며, 미국도 학살에 일부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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