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국과 관련해 귀 회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하니 7월4일(금) 18:00까지 의견을 정리해 보내 달라”는 공문(사진)
“의견요청뒤 발표 돌연 당겨…요식행위” 항의 빗발
“집행부 독단” 성명내용 싸고 조직적 반발 움직임
“집행부 독단” 성명내용 싸고 조직적 반발 움직임
대한변호사협회(변협·회장 이진강)가 지난 3일 촛불시위에서 등장한 정권 퇴진 요구를 “헌법질서 파괴” 행위로 규정하고 “불법행위자 엄정 대처”를 주문한 성명을 내는 과정에서 돌연 회원들 의견 접수 시한을 앞당겨 반발이 일고 있다. 또 앞당긴 의견 접수 시한보다도 먼저 성명을 발표해, 하나마나한 요식 절차라는 빈축을 사고 있다.
변협은 지난달 30일 상임이사회에서 시국성명을 내기로 결의하고 “현 시국과 관련해 귀 회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하니 7월4일(금) 18:00까지 의견을 정리해 보내 달라”는 공문을 각 지방변호사회에 보냈다. 변협은 3일 오전 갑자기 당일 오후 3시까지 의견을 취합해 달라며 시한을 앞당겼다. 이에 일부 지방변회는 취합된 소수의 의견을 급히 추려 변협에 전했다. 일부는 의견이 없다고 알려 왔다. 전국 14개 지방변회 가운데 부산·인천 등 8곳은 개별 회원들의 의견을 모은다고 공지했고, 서울·대구 등 6곳은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의 의견을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변협이 갑자기 마감 시한을 바꾸는 바람에 일부 변호사들이 의견을 내지 못하거나 시한을 넘겼다. 광주지방변회 소속 이상갑 변호사는 “2일 광주변회로부터 3일까지 의견을 보내라는 공문을 받아 오후 4시께 A4 용지 석 장 분량의 의견서를 보냈는데, 이미 성명이 발표된 상태여서 황당했다”며 “변협은 회원들을 들러리세워 의견을 수렴하는 척했을 뿐”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변협이 3일 오후 3시까지 의견을 보내라고 하고는 그보다 앞선 2시40분께 성명을 발표한 데에도 변호사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성명서 작성이 끝난 상태에서 의견을 받는 꼴이라는 것이다.
성명 내용과 발표 과정에 대한 조직적 반발 움직임도 일고 있다. 서울변회 소속 권영국 변호사는 변호사 수백명에게 ‘변협에 항의 메일을 보내자’는 전자우편을 보냈다. 그는 “성명서가 변협 집행부의 독단적 견해를 반영한 것임을 분명히해 성명서의 정당성을 박탈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광희 변호사는 “회원들의 위임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집행부가 국민의 위임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부를 편드는 행위는 정부와 변협이 막상막하임을 보여 준다”고 비판했다. 송상규 변호사는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 변호사단체에서 시민 1천여명이 부상당하고, 인권침해감시단으로 나섰다가 도리어 심한 부상을 입은 변호사 회원이 있는 상황은 전혀 언급하지 않다가 이런 성명을 낸 것은 균형을 상실한 정치적 행위”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태형 변협 대변인은 성명 발표가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고 밝혔다. 그는 발표가 앞당겨진 이유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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