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밤부터 10일 새벽까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을 치켜든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교수단체가 주최한 ‘촛불과 한국사회’ 국민대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촛불현장’ 학자·시민 토론회
“이명박 정부 환골탈태 기대” “물러나야” 의견 엇갈려
“뚜렷한 돌파구 없지만…” 촛불의미 승화 진지한 논의
“이명박 정부 환골탈태 기대” “물러나야” 의견 엇갈려
“뚜렷한 돌파구 없지만…” 촛불의미 승화 진지한 논의
“콘서트는 이제 그만 합시다. 가두 행진을 많이 해야죠. 행진 범위도 넓혀야 해요. 여의도와 강남까지 다니면서 더 많은 시민들의 참가를 이끌어야죠. 폭력시위만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합시다.”
자신을 현직 공무원이라고 밝힌 30대 여성의 말에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이 공무원을 비롯해 40여명의 시민들이 저마다 의견을 냈다. ‘촛불과 한국사회’를 주제로 9일 밤 10시부터 10일 새벽 2시30분까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국민 대토론회 자리였다.
애초 이 토론회는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등 3개 교수단체 소속 학자들이 시민들과 직접 만나 밤샘 토론을 한다는 ‘자리의 형식’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막상 토론회가 열리자 예상보다 훨씬 진지한 논의가 오갔다.
“이 촛불집회가 6월10일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떻게 하면 될까요.” 어느 시민이 던진 질문은 참석자 모두의 화두가 됐다. 토론회에 참석한 10여명의 학자와 500여명의 시민들이 머리를 맞댔다.
■ 촛불집회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먼저 지난 40여일 동안 진행된 촛불집회의 성격을 분석하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정태석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살고 싶다’에서 출발한 촛불이 공교육 붕괴, 대운하 강행, 사회 공공성 약화 등에 대한 서로 다른 분노의 촛불과 합쳐졌고, 시청 앞 광장은 협력·연대·배려를 통해 공동체적 감성을 공유하는 공간이 됐다”고 말했다.
김상곤 한신대 교수(경영학)는 “87년 6월 항쟁은 반독재 민주화를 위한 투쟁이었지만, 2008년 6월 촛불은 건강·안전·행복을 추구하려는 운동”이라고 말했다. 성균관대에 다닌다는 제호석씨는 “생존권과 생명권을 이념으로 삼은 시민들이 촛불 하나로 미국의 패권에 맞서는 문명사적 전환기를 만들고 있다”고 촛불집회의 시대적 의미를 평가했다.
■ 이명박 정부 환골탈태를 기대할까, 퇴진시킬까
촛불집회의 ‘수위’를 두고 논란이 시작됐다. 최갑수 서울대 교수(서양사)는 “이명박 정부가 총체적 실정을 반성하고 앞으로 국정을 훌륭하게 이끌어주길 바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며 “나는 아직 현 정권이 물러나야 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는데, 현 정부가 반성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을 땐 어떻게 할 것인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상곤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선거에 의해 선출됐다는 절차적 정당성은 지녔지만, 취임 100일 동안 도덕성과 내용적 정당성을 모두 잃어버렸다”며 “현재의 정책기조를 국민이 바라는 대로 바꾸지 않는다면, 이명박 대통령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상 ‘식물정권’이 될 이명박 정부를 5년 더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은 모든 국민의 불행”이라고 덧붙였다. 파국을 피하고 이명박 정부의 환골탈태를 기대하는 의견과 전면적인 퇴진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의견이 양립하는 가운데서도 시민들은 정권 퇴진투쟁에 더 큰 호응을 보내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토론 내내 “탄핵하자”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사회학)는 “쇠고기 전면 재협상 선언 등을 포함해 이명박 정부의 근본적인 성찰이 이뤄진다면 촛불집회 양상에 변화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명박 퇴진’ 구호가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촛불은 계속 타오른다!” 목표를 무엇으로 내걸건 촛불집회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관측은 공통적이었다. 강남훈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이번 촛불집회는 광우병 쇠고기 문제만이 아니라, 대리인들이 마음대로 주인을 배반하는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집결된 것”이라며 “인터넷 등을 통해 발달한 한국의 광장 민주주의가 허구적인 대의 민주주의와 크게 맞부딪치고 있는 만큼 촛불집회는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김상곤 교수는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촛불은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들 수도 있고, 정부 대응에 따라 다소 흩어질 수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이 촛불은 이명박 정부가 물러날 때까지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한 시민도 “청와대까지 행진해봐야 별 볼일 없을 것이라는 걸 잘 알지만, 국민의 뜻을 대변해야 할 대의정치가 실종된 마당에 우리 스스로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 촛불, 어디로 진화해야 하나 조금 긴 호흡에서 촛불집회를 이어가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경기도 안산에 사는 노동자라고 신분을 밝힌 한 시민은 “오늘 이 자리에도 잘 먹고 잘살겠다는 생각에서 이명박 대통령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인데, 그런 기대가 계속되는 한 이 대통령이 물러나도 다른 사람이 똑같은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촛불집회를 통해 ‘다른 삶’에 대한 고민을 국민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에 나선 어느 대학생도 “이명박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이념이 아니라 ‘살고 싶다’는 가치 때문에 촛불집회가 시작됐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며 “당파의 문제가 아니라 위기에 처한 삶 때문에 광장으로 나온 사람들의 뜻을 제대로 모아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찾아낼 때까지 촛불집회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남훈 교수는 참여민주주의의 제도적 안착으로 촛불집회를 승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운하 문제가 불거지면 다시 촛불을 들고 나오고, 공기업 민영화 문제가 터지면 한번 더 촛불을 켜는 식으로 지낼 수는 없다”며 “1987년 6월 항쟁이 남긴 대의 민주주의 제도를 이제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참여민주주의 체제로 바꿀 때가 왔다”고 말했다. 여러 면에서 이날 토론회는 최갑수 교수의 감격 어린 말이 잘 어울리는 자리였다. “뚜렷한 돌파구는 없어 보인다. 우리가 겪는 이 모든 것이 하나하나 새로운 경험이다. 앞으로 사태를 어떻게 끌고 갈지에 대해 답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모두의 ‘집단 지성’밖에 없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촛불집회의 ‘수위’를 두고 논란이 시작됐다. 최갑수 서울대 교수(서양사)는 “이명박 정부가 총체적 실정을 반성하고 앞으로 국정을 훌륭하게 이끌어주길 바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며 “나는 아직 현 정권이 물러나야 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는데, 현 정부가 반성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을 땐 어떻게 할 것인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상곤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선거에 의해 선출됐다는 절차적 정당성은 지녔지만, 취임 100일 동안 도덕성과 내용적 정당성을 모두 잃어버렸다”며 “현재의 정책기조를 국민이 바라는 대로 바꾸지 않는다면, 이명박 대통령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상 ‘식물정권’이 될 이명박 정부를 5년 더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은 모든 국민의 불행”이라고 덧붙였다. 파국을 피하고 이명박 정부의 환골탈태를 기대하는 의견과 전면적인 퇴진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의견이 양립하는 가운데서도 시민들은 정권 퇴진투쟁에 더 큰 호응을 보내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토론 내내 “탄핵하자”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사회학)는 “쇠고기 전면 재협상 선언 등을 포함해 이명박 정부의 근본적인 성찰이 이뤄진다면 촛불집회 양상에 변화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명박 퇴진’ 구호가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촛불은 계속 타오른다!” 목표를 무엇으로 내걸건 촛불집회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관측은 공통적이었다. 강남훈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이번 촛불집회는 광우병 쇠고기 문제만이 아니라, 대리인들이 마음대로 주인을 배반하는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집결된 것”이라며 “인터넷 등을 통해 발달한 한국의 광장 민주주의가 허구적인 대의 민주주의와 크게 맞부딪치고 있는 만큼 촛불집회는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김상곤 교수는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촛불은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들 수도 있고, 정부 대응에 따라 다소 흩어질 수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이 촛불은 이명박 정부가 물러날 때까지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한 시민도 “청와대까지 행진해봐야 별 볼일 없을 것이라는 걸 잘 알지만, 국민의 뜻을 대변해야 할 대의정치가 실종된 마당에 우리 스스로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 촛불, 어디로 진화해야 하나 조금 긴 호흡에서 촛불집회를 이어가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경기도 안산에 사는 노동자라고 신분을 밝힌 한 시민은 “오늘 이 자리에도 잘 먹고 잘살겠다는 생각에서 이명박 대통령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인데, 그런 기대가 계속되는 한 이 대통령이 물러나도 다른 사람이 똑같은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촛불집회를 통해 ‘다른 삶’에 대한 고민을 국민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에 나선 어느 대학생도 “이명박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이념이 아니라 ‘살고 싶다’는 가치 때문에 촛불집회가 시작됐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며 “당파의 문제가 아니라 위기에 처한 삶 때문에 광장으로 나온 사람들의 뜻을 제대로 모아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찾아낼 때까지 촛불집회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남훈 교수는 참여민주주의의 제도적 안착으로 촛불집회를 승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운하 문제가 불거지면 다시 촛불을 들고 나오고, 공기업 민영화 문제가 터지면 한번 더 촛불을 켜는 식으로 지낼 수는 없다”며 “1987년 6월 항쟁이 남긴 대의 민주주의 제도를 이제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참여민주주의 체제로 바꿀 때가 왔다”고 말했다. 여러 면에서 이날 토론회는 최갑수 교수의 감격 어린 말이 잘 어울리는 자리였다. “뚜렷한 돌파구는 없어 보인다. 우리가 겪는 이 모든 것이 하나하나 새로운 경험이다. 앞으로 사태를 어떻게 끌고 갈지에 대해 답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모두의 ‘집단 지성’밖에 없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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