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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촛불은 어디로 갈까

등록 2008-06-10 14:38수정 2008-06-10 15:34

촛불이 진화하고 있다. 촛불과 다른 손엔 마우스를 든 시민들은 불매운동을 통한 소비자운동, 선거 참여를 통한 유권자운동에 나선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촛불이 진화하고 있다. 촛불과 다른 손엔 마우스를 든 시민들은 불매운동을 통한 소비자운동, 선거 참여를 통한 유권자운동에 나선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네티즌·유권자·소비자로 모습 바꾸며 이슈를 진화시키고 있는 시민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투쟁일까. 촛불이 끝없이 진화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에서 이명박 대통령 퇴진을 넘어서 이제는 소비자운동, 유권자운동 등으로 발전하고 있다. 시민들은 6월에 들어서도 네티즌, 유권자, 소비자 등으로 얼굴을 바꾸면서 온·오프라인에서 계속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숙제하듯 광고 체크, 사과하는 기업들

6월1일 저녁, 시위대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광화문으로 행진했다. 이들은 광화문 조선일보사 앞을 지나가면서 “<조선일보> 폐간하라”를 외쳤고 동아일보사 앞을 지날 때는 “<동아일보> 물러나라”를 외쳤다. 시위대는 경찰 버스 위의 사진기자 무리를 향해 “조·중·동 내려와” “조·중·동 내려와”를 외쳤고, 기자들이 ‘조·중·동 기자는 없다’라는 몸짓을 하자 “미안해” “미안해”를 외쳤다. 심지어 한 시민은 버스에 올라가 기자증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렇게 촛불집회가 한 달을 넘기며 시민들은 서로를 교육하고 서로에게 배우고 있다. 촛불집회를 통해 시민적 상식으로 확산된 ‘안티 조·중·동’이 그 증거다. 이런 운동은 <한겨레>와 <경향신문> 구독운동으로 이어졌고 실제로 두 신문의 구독 부수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안티 조·중·동은 소비자운동과 결합하는 양상으로 진화했다. 조·중·동에 광고를 내는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이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6월6일 오전. 포털 사이트 다음 토론광장 아고라에는 ‘6월6일자 <조선일보> 및 <동아일보> 광고기업’이라는 글이 ‘오늘의 숙제’라는 문패를 달고 올라 있다. 네티즌들은 지난 5월30일부터 매일 1면부터 28면까지 <조선일보>에 광고를 실은 기업과 이들의 전화번호를 올려놓고 광고 게재를 중지하라는 항의 전화를 하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된 불매운동은 기업의 광고 중단과 사과까지 받아냈다.

6월3일 <조선일보> 지면에 ‘BBQ 참숯바베큐’ 신규사업자 모집광고를 냈다가 빗발치는 전화를 받은 BBQ 사업부는 바로 이날 오후 “광고를 즉시 중단하겠다”고 결정했다. 박열하 BBQ 홍보실장은 “다짜고짜 욕하시는 분, 조근조근 얘기하시는 분부터 시작해서 오전 내내 끊이지 않는 전화에 업무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며 “네티즌들은 워낙 전파력과 행동력이 빠르다 보니 매출이나 회사 운영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돼 즉각 대응했다”고 밝혔다. BBQ 참숯바베큐처럼 보수 언론 광고를 자제하겠다고 밝힌 기업들은 지난 5월30일부터 천재문화, 동국제약, 명인제약, 보령제약, 신일제약, 삼양통상, 르까프, 서울 척병원, 신선설농탕, 농협목우촌 등 10곳이 넘는다.

조·중·동을 향한 네티즌의 거부운동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이디 Sisyphus를 사용하는 네티즌은 5월29일 ‘조·중·동 광고기업 불매운동’이라는 청원을 아고라 광장에 올렸고 6일 현재 4392명이 불매운동에 참여하겠다는 서명을 했다.

안진걸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간사는 “현재의 촛불집회는 포괄적인 국민주권 운동”이라며 “시민이 유권자, 소비자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촛불의 얼굴이 6·4 재·보궐선거에선 유권자, 안티 조·중·동 운동에선 소비자의 얼굴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전통적 운동 진영과 융합할 수 있을까

시민이 서로를 교육하는 양상은 ‘헌법의 재발견’에서도 나타났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적 가치를 실정법인 집시법보다 우위에 두고 촛불행진의 정당성을 찾는 흐름이 그것이다. 시민들의 이러한 정서는 집회 현장에서 즐겨 부르는 노래인 <헌법 제1조>에서도 찾을 수 있다. 국회를 통한 탄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국민소환운동을 벌이자는 흐름도 여전히 존재한다.

지금도 ‘토론의 성지’로 불리는 아고라에선 ‘이제 촛불집회가 어디로 가야 하느냐’를 놓고 난상토론이 활발하다. 거리행진에 정해진 ‘코스’가 없었듯, 이슈의 진화도 예정된 경로가 없다. 촛불의 이슈는 이명박 정부 비판을 축으로 다양한 곁가지를 치면서 진화하고 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이슈에 대해서도 우발성이 강하게 작동하는 포스트모던 현상이 벌어진다”며 “그렇다고 비판이 근본적 모순을 향해서 가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자유주의 경제의 틀 안에서 비판을 도모하는 한계도 있다”며 “이를 넘어서는 전망은 없다”고 지적했다.

자발적 촛불의 행렬이 전통적 운동 진영과 어떤 관계를 맺어나갈지도 관심거리다. 5월 말 이후로 민주노총, 한총련 등이 촛불집회에 본격적으로 결합하기 시작했다. 이후 열흘이 흐르는 사이에 개인으로 참가한 시민과 이들 조직 사이에 갈등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화학적 융합은 아니어도 물리적 결합에는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투쟁은 한국적 현실에 반응하고 대응하며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한겨레21>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한겨레21>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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