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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생활의발견2. 임신진단키트, 진실을 말하다

등록 2005-04-16 09:56

서울 중랑구 망우동 장중환산부인과에서 한 임산부가 태아동영상 인터넷 서비스업체인 베베컴에서 신생아의 동영상을 가족들에게 실시간 인터넷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서울 중랑구 망우동 장중환산부인과에서 한 임산부가 태아동영상 인터넷 서비스업체인 베베컴에서 신생아의 동영상을 가족들에게 실시간 인터넷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생활의 발견 첫회를 읽은 독자들에게)
[생활의 발견] 첫 회 ‘임신은 행복 끝 불행 시작?’이 나간 후 반응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포털사이트에 실린 이 기사엔 수백 개의 댓글이 올라왔다. 대부분 ‘반감’과 ‘불만’이었다. 많은 사람에게 내 글은 ‘임신에 대한 원망 또는 후회’와 ‘어미로서의 권리 포기’처럼 보였던 것 같다. “아이 양육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대목에서 많은 이들은 부모의 책임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여기엔 오해도 있는 것 같다. 난 '직장에 다니는 임신한 여자'로서 나 개인만의 관심사일 가족에 대한 이야기보다 '임신'이 갖는 사회적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고자 '생활의 발견' 기사를 시작한 것이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점점 넓어지고 있는 사회상황에서, 임신과 출산, 육아의 문제를 여성 자신, 혹은 가정 안에서 알아서 해결하라고 할 때는 이미 지났다는 판단에서다. 국가적 위기로 대두하고 있는 ‘저출산’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도 사회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올바른 정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할 필요성을 말하기 위해서다. 지금 내 상황이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임신부’이고, 조만간 사회생활을 하며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될 처지에 있기에, 현장에서 느끼는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생활의발견]'생활의 발견-출산을 앞두고’2. 임신진단키트, 진실을 말하다
2004년 9월25일 토요일, 임신진단키트 진실을 말하다

%%990002%%종종 술자리가 있었지만 집-회사를 오가는, 직장인으로서 평범한 하루 하루의 연속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매달 규칙적이었던 달거리(?)가 열흘 정도 늦어지고 있다는 점 외에. 그래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종종 이런 경우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여자의 직관(?)은 무서운 법. 별 뜻 없이 “테스트해 볼까?” 요량으로 약국에서 임신진단키트를 구입했다. 시약을 아침 첫 소변을 묻혀 생긴 줄이 둘이면 ‘임신’이고, 하나면 임신이 아니다. 검사한 결과 ‘두 줄’이 선명했다.

당황했다. 임신 계획이 없던 탓이다. 결혼 당시의 계획은 가계가 안정될 때쯤인 2~3년 후 2세를 갖자는 것이었다. 임신 전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해야 한다는 선인들의 가르침도 철저히 무시한 셈이 됐다. 임신 사실을 알기 전날에도 신랑과 거나하게 술 한 잔 한 터라, 태아의 건강도 염려됐다. 임신에 대한 흥분과 기대보다 실망과 걱정이 앞섰다. 기쁨의 눈물이 아닌, 슬픔의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렀다. 아이를 갖게 된 뒤 포기해야 할 사회생활과 개인생활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기적인 생각이겠지만) 아이를 위해 내 인생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그때까지 난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생각이었고, 자칭 ‘딩크(double income no kids)족’을 꿈꾸며 주변인들에게 내 소신을 전하고 다니지 않았던가! 그러던 내가 임신이라니. 당혹함 속에서 신랑과 병원을 찾기로 했다.

고민스러웠던 임신 초기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고민했던 가장 큰 이유는 좀 앞서나가는 고민일지도 모르겠지만, ‘보육’문제였다. 내 아이를 다른 아이들보다 ‘좋은 여건에서 키워야겠다’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계수준에 맞춰, ‘저렴하면서도 믿을 만한 시설에 맡길 수 있을까?’라는 염려가 먼저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이 낳는 것이야 10개월 고생하면 되지만, 아이를 키우는 문제는 출산휴가를 끝낸 뒤부터 지속적으로 해결해야 할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정부가 저출산 극복 대책이라며 내놓은 보육비 지원과 보육시설 확대는 내가 보기에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이는 여성부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전국 1만2000가구(아동가구 4000가구), 보육시설 2만4219개소를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 보육실태 조사’ 결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현재 우리나라 아동 1인당 월평균 보육시설 이용비용은 16만5000원으로 가구소득 대비 8.3%를 차지해 아동가구의 61.6%가 비용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양육비 지원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지적됐다.

특히 여성의 사회진출 분위기를 감안했을 때, 영유아(0∼5세)일 경우 대부분 가정에서 해결(개인교육 29.7%, 혈연 21%), 보육시설 이용률은 27.9%에 그쳤고, 보육시설 대신 혈연이나 주변사람들에게 맡기는 경우 영아(만0∼2세)는 월평균 55만5000원을 지불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나마 지금껏 세워진 보육시설도 참여연대 등 17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이하 참여자치연대)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전체 보육시설은 1990년 1919개에서 지난해 2만5319개로 12배나 급증했지만,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한 국공립 보육시설 비율은 오히려 감소했다. 보육시설을 기준으로 국공립 시설 비율은 1990년 18.76%에서 지난해 5.31%로 줄었다. 아동수 기준으로는 국공립 비율이 같은 기간 52.08%에서 11.35%로 떨어졌다. 이는 보육시설 증가가 주로 막대한 사교육비를 요구하는 민간시설 확충에 의존했음을 말해주는 것이어서, 정부의 저출산·보육대책이 얼마나 부실했던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콩알이’를 만나고 

%%990003%% 병원에서 의사를 만나 진찰을 받게 되었다. 초음파기로 자궁 속을 비추었다. ‘콩알’만한 생명체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전까지 ‘당혹함’과 ‘심란함’ 일색이던 임신부는 ‘생명의 씨앗’ 앞에서 놀랐다. 순간 당혹감과 심란함 대신 생명에 대한 소중함과 경외, 그리고 책임감이 밀려왔다. 내 몸 속의 ‘콩알’만한 생명의 존재를 잊고, 내 처지에서 내 걱정만 했던 것이 후회스럽고 미안하기도 했다. 회사나 가정 여건, 개인적 욕심이 가득 차 있어 두려움과 심란함뿐이던 내게 어디서인지 모를 ‘자신감’과 ‘용기’도 솟아나는 게 느껴졌다. “까짓 거 빨리 낳아 숙제 해치우는 것도 괜찮지, 뭐~”

하지만 처음 본 생명 앞에서 느끼는 책임감과 솟아나는 용기 속에서도 불안감은 숨길 수 없었다.

"어제까지 술 마시고 그랬는데, 괜찮아요?" 의사를 향한 내 첫 질문이었다. 의사는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모르고 했으면 괜찮아요. 하지만 이제부터는 안 돼요”라며 안심시킨다. ‘휴우~’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던 나는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서점으로 향했다. 이렇게 임신과 관련된 책이 많다니~.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을 골랐다.

스스로를 설득하니 자신이 생겼다. 임신사실을 주변에 알리기 시작했다. 부모님과 친구들을 비롯해 회사 사람들… 내 임신 발표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놀랍다’ ‘뜻밖이다’였다. 일부는 “축하한다” 또 더러는 “걱정스럽겠다”며 기대와 염려를 보였다. 새로운 가족 구성원이 생기게 된 것에 대해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일하는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 육아가 여자에게 기쁨이라기보다 사회생활의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출산파업’이란 말이 생겨났겠는가! 나도 회사에 임신사실을 알리는 데 있어 상당기간 망설인 끝에 “죄송하지만 제가 임신을~ ”이라는 말로 말문을 열지 않았던가.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여성부 설문조사에서 보듯, 결혼 후 취업을 중단한 경험이 있는 여성 비율은 38.4%였다. 중단 이유는 자녀 양육(64.9%), 출산에 따른 불이익(12.6%) 등이었다. 또 취업을 하지 않은 기혼 여성의 경우 미취업 사유로 자녀 양육(49.1%), 자녀를 맡길 곳이 없어서(23%) 라는 결과도 이런 현실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말해줬다.

“엄마는 위대하다” 이제 나도 ‘위인’이 될 수 있어

‘소중히 생명’을 확인하고 나니 후회가 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동안 방탕(?)하게 살아온 생활은 물론 ‘콩알’이가 알았으면 서운해했을 법한 마음가짐과 말, 임신에 대한 스트레스로 콩알이에게 소홀했던 점이 후회스러웠다.

가정의 경제력, 여성의 사회진출 등을 감안할 때 어려움은 있겠지만, 생명체를 자신의 몸으로 품어 세상에 내보내는 임신은 여성만의 특권이자 놀라운 능력이다. 하지만 아기를 갖고 싶지만 어렵거나 도움이 필요한 불임부부가 7~8쌍 가운데 1쌍 수준이다.

전에 눈에 들어오지 않던 기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태어난 지 한달밖에 안된 갓난아기가 잠자던 엄마에 깔려 숨졌다”거나 “산후조리원에서 직원의 보살핌 없이 혼자 병에 든 젖을 마시던 생후 21일 된 영아가 숨졌다”는. 부모의 심정은 어땠을까? 지금은 어떨까? 280일간 정성스럽게 뱃속의 아이를 키웠던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안타까운 탄식이 먼저 나왔다. 서른한 살이 된 나는 ‘엄마’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엄마의 마음’이 어떠한 것인지를 스스로 엄마로 변해가면서 체험하고 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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