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8년 10월 그룹이 주관한 한 행사에서 삼성자동차의 첫 양산차인 에스엠(SM)5의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99년 빚더미 삼성차 법정관리 신청
이회장 ‘생명’ 350만주 증여 약속
채권단, 상장지연에 현금지급 요청
삼성 “압력의한 것…법적책임 없다” 1999년 7월2일 삼성그룹은 주요 일간지에 삼성차 부실 사태에 대한 그룹 차원의 대국민 사과문인 ‘삼성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발표했다. 앞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주도해 설립된 삼성차는 영업을 시작한 지 1년여 만에 부채 4조2천여억원을 남기고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삼성은 당시 사과문에서 “기업의 부채를 국민의 짐으로 돌리는 행위는 60여년간 국민의 사랑으로 커온 삼성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라며 이 회장이 갖고 있던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를 한빛은행(현재 우리은행)을 비롯한 14개 금융회사에 내놓기로 했다. 하지만 채권단은 이 주식으로 삼성차 채권 손실을 보전할 길이 없었다. 삼성생명 주식이 비상장이어서 현금화하기 어려운데다, ‘주당 가치 70만원’이라는 삼성의 일방적 계산방식도 채권단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채권단은 99년 8월 삼성그룹과 삼성 계열사들 채권 환수를 위한 합의서를 맺었다. 합의 내용은 △이 회장의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를 채권단에 무상으로 증여하고 △삼성 계열사들이 2000년 12월31일까지 증여 주식을 처분한 대금을 채권단에 지급하며 △처분 대금이 2조4500억원에 못 미치면 이 회장의 삼성생명 주식 50만주를 추가로 증여한다는 것이었다. 또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엔 2001년 1월부터 연 19%의 지연이자를 삼성 계열사들이 물어야 한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그러나 정부의 생명보험사 상장기준 확정이 지연되면서 삼성그룹과 채권단 간의 갈등이 불거졌다. 삼성은 삼성생명 주식을 처분하지 못한 것을 정부 탓으로 돌렸고, 채권단은 합의서를 근거로 삼성 계열사들이 어떤 형태로든 삼성차 채권 손실을 갚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런 공방이 벌어지는 사이에 서울보증보험과 한빛은행 등 채권단의 주축을 이루던 금융회사에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국민 세금으로 삼성차 부실을 메운 것이다. 이를 계기로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에서 삼성의 합의 이행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삼성은 “도의적 책임 차원에서 이 회장이 삼성생명 주식을 출연하기로 약속했을 뿐이지 법적 책임은 없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워 합의서 이행을 거부해 왔다. 결국 채권단은 2005년 12월 이 회장과 삼성 계열사들을 상대로 법정 소송을 제기했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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