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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새 정부, 소외계층의 삶까지 고루 비추길”

등록 2007-12-31 20:02수정 2007-12-31 22:36

이강일 소장이 호미곶 등대 꼭대기에 있는 등명기를 살펴보고 있다. 1908년 11월19일 준공해 12월20일 점등한 호미곶 등대는 8각 연와조로 철근 없이 벽돌로만 지었으며, 높이는 26.4m로 상부에서 하부로 갈수록 점차 넓어지는 형태다. 내부는 6층이며 각층 천장에는 대한제국 황실 문양인 오얏꽃이 새겨져 있다. 포항/강창광 기자<A href="mailto:chang@hani.co.kr">chang@hani.co.kr</A>
이강일 소장이 호미곶 등대 꼭대기에 있는 등명기를 살펴보고 있다. 1908년 11월19일 준공해 12월20일 점등한 호미곶 등대는 8각 연와조로 철근 없이 벽돌로만 지었으며, 높이는 26.4m로 상부에서 하부로 갈수록 점차 넓어지는 형태다. 내부는 6층이며 각층 천장에는 대한제국 황실 문양인 오얏꽃이 새겨져 있다. 포항/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100살 맞은 ‘호미곶 등대’ 지킴이들 새해 소망
항상 같은 자리에 있음으로 고마운 것이 있다. 시골 정자나무가 마을 사람들에게 변함없이 푸근함을 주듯, 등대는 늘 그 자리를 지킴으로써 바닷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돼준다. 등대가 쏘는 불빛은 무언가를 비추기 위한 게 아니다. 등대 자신이 그곳에 있음을 확인시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게 해준다.

경북 포항시 대보면에 있는 호미곶 등대가 첫 불빛을 쏜 해는 1908년. 그해 12월 프랑스 기술진의 힘으로 등대가 완공됐으니, 올해로 100년째 밤바다를 밝히는 셈이 된다.

인근 바다를 자주 다니는 배들은 불빛만 봐도 이곳이 호미곶이라는 사실을 간파한다. 호미곶 등대는 12초마다 한 차례씩 불빛이 돌아가지만, 북쪽에 있는 울진 후포 등대는 그 주기가 10초이고 남쪽에 있는 경주 송대말 등대는 흰빛과 붉은빛이 17초마다 번갈아가며 비추기 때문이다. “해상에서 등대를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인접한 등대는 일부러 그 주기를 달리한다”는 게 호미곶 등대의 운용을 책임지고 있는 이강일(52) 소장의 설명이다.

1908년부터 밤바다 환하게
GPS 갖춘 화물·바지선보다
초라한 어선들 길잡이 돼줘

경북 포항시 남구 대보면 대보리에 있는 호미곶 등대가 밤바다를 환히 비추고 있다. 이 등대 불빛은 50㎞ 밖 바다에서도 볼 수 있다. 아래쪽 손 모양의 구조물은 호미곶의 명물인 조각 작품 <상생의 손>. 포항/강창광 기자 <A href="mailto:chang@hani.co.kr">chang@hani.co.kr</A>
경북 포항시 남구 대보면 대보리에 있는 호미곶 등대가 밤바다를 환히 비추고 있다. 이 등대 불빛은 50㎞ 밖 바다에서도 볼 수 있다. 아래쪽 손 모양의 구조물은 호미곶의 명물인 조각 작품 <상생의 손>. 포항/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사람 좋은 웃음을 가진 그가 등대 지킴이의 인생을 산 지도 올해로 23년째다. 1985년 “그냥 이 일이 좋아” 몸을 담은 뒤 울릉도·독도·송대말·후포·호미곶까지 2년씩 돌아가며 순환 근무를 해왔다. 이곳 근무도 두번째다. 직원 두명과 함께 등대를 관리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일을 “수면 위 소금쟁이처럼 단조롭다”고 했다.

하지만 책임감은 막중하다. 한밤중 등대가 꺼져버리면 몇 마일 밖 해상에서 항해하던 선박이 육지로 떠밀려오고 때론 좌초하기도 한다. 위성항법장치 기술이 발전한 요즘, 등대는 각종 장비를 갖춘 커다란 화물선이나 바지선보다는 볼품없고 초라한 어선들에게 그 존재의 의미가 더 크다.


이 소장은 새해 소망으로 “새 정부가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표면과 정확하게 수평을 이루는 등대의 불빛처럼 위에 있는 사람이건 아래에 있는 사람이건 고루 나라의 혜택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이 소장과 함께 근무하는 하호규(34)씨와 엄태일(34)씨는 올 한해도 별 탈 없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이들은 이 소장과 함께 등대에 딸린 숙소에서 지내며 오전 6시, 오후 2시, 밤 10시에 3교대로 번갈아가며 근무를 맡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등대지기’라는 말은 정겹게 다가오지만, 이들은 그 단어를 쓰지 말아 달라고 했다. 엄씨는 “경찰을 ‘짭새’라고 부르면 싫어하듯, ‘등대지기’라는 말도 낮춰 부르는 감이 있어 우리는 싫어한다”고 말했다. 등대는 88년 ‘항로표지관리소’로 공식적인 이름을 바꿨고, 이곳을 지키는 이들은 ‘등대원’이다.

새해맞이를 하루 앞둔 31일 오전 7시36분, 2007년의 마지막 해가 살짝 머리를 내미는 순간 호미곶 등대는 스스로 조용히 불을 껐다.

포항/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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