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자금 의혹에 대한 검찰 특별수사·감찰본부의 수사가 진행 중인 28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에서 삼성 직원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건물을 나서고 있다.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섣부른 수사로 특검 운신 폭 제한할까 주저
‘삼성 증거인멸 시간 벌어주기’ 비난 살수도
‘삼성 증거인멸 시간 벌어주기’ 비난 살수도
검찰 삼성 특별수사·감찰본부(본부장 박한철)가 사실상 최소한의 수사만을 한 뒤 특검에 수사를 넘기겠다는 입장을 밝혀 그 동안 “성역없는 신속한 수사”를 강조해온 것이 특검이 도입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제스처였느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검사 15명, 수사관 40명 등 67명에 이르는 대규모 수사팀이 무색한 상황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검찰의 직무유기”라며 강하게 불만을 나타냈다.
김수남 특본 차장은 28일 “검찰 수사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특검법 입법취지를 존중한다. 특검의 원활한 수사진행을 위해 필요한 범위에 국한해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특본의 이런 태도는 박한철 본부장은 불과 이틀 전인 지난 26일 브리핑에서 “특검법이 공포돼 시행에 들어갈 때까지 한달여 동안 최선을 다해 필요한 사항 조사를 하고 발족과 동시에 수사 상황과 결과를 인계하겠다는 것이 목표”라며 “그러나 수사 자체가 광범위 하고 국민적 의혹이 뜨거워 신속하게 진상을 규명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것과는 상당히 달라진 것이다.
한 대검 간부는 “애초 수사팀을 너무 세게 꾸린 것이 실수였다”고 말했다. 너무 기대감을 키웠다는 뜻이다.
검찰 관계자들은 특본 수사가 삼성 쪽에 수사 방향을 노출시키고 수사를 흐트러놨다는 비판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한다. 짧은 기간 동안 수사성과를 내기 힘든 상황에서 섣불리 압수수색이나 소환조사를 했다가 특검의 운신 폭을 제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본이 수사를 미루다 삼성 쪽에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벌어줬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7일 특검을 수용하며 “삼성뿐만 아니라 관계된 주변 사람까지 아주 혹독한 수사를 두 번이나 받아야 한다”고 말한 것도 검찰의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8일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말씀은) 필요한 부분에 대한 수사를 하지 말라는게 아니라, 2중 조사, 2중 압수수색 등 과잉수사로 피조사자가 받을 불이익을 최소화해 달라는 의미이지, 수사 범위와 방법은 특본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특본은 “소환조사나 압수수색은 수사 결과를 책임지는 특검이 하는게 맞는 것 같다”며 노 대통령의 말에 화답했다.
특본의 이런 태도에 대해 이날 검찰에 출석한 김 변호사는 “그럴거라면 조사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김 변호사와 같이 검찰에 나온 김영희 변호사는 “어제 노무현 대통령이 2중·3중 수사가 안되게 해달라고 했는데 이는 특별수사를 중단해달라는 것과 같다”며 “기존 특별수사본부도 많은 비용을 들여 구성된만큼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특본이 특검에 떠넘기려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다”며 “특검이 실시돼도 특본의 수사 내용을 넘겨받을 수 있는 만큼 충분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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