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대필 사건 필적감정이 번복되기까지
필적 감정 어떻게 번복됐나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해 4월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뒤 필적 감정이 사건 해결의 핵심이라고 보고 신뢰성 있는 기관의 재감정을 받기 위해 노력해왔다.
진실화해위는 우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함께 필적 감정 능력에서 공신력을 인정받는 국방부 산하 조사본부와 대검찰청에 감정을 의뢰했다. 사건 수사 당시 감정을 맡았던 국과수는 배제 대상이었다. 그러나 위원회의 요청을 받은 두 기관은 “확정 판결을 받은 사건의 증거물은 재감정의 실익이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재감정을 거부했다. 진실화해회 관계자는 “감정 결과가 가져올 파장을 의식한 것”이라고 말했다.
진실화해위는 국외 감정기관에 필적 감정을 의뢰하는 방안도 고려했다. 국가정보원을 통해 국외 연구기관의 명단도 전달받았다. 그러나 한글 자모와 전혀 다른 문자 체계에 익숙한 외국인의 감정 결과는 공신력을 얻기 힘들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사건 상고심에서 변호인 쪽이 국과수와는 정반대 결과가 나온 일본인 감정가 오오니시 요시오의 감정 결과를 제출하기도 했으나, 대법원 재판부는 “감정인으로서의 기본 능력과 감정의 기본 조건을 결한 상태에서 작성한 것으로서 믿을 수 없음이 명백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결국 올해 초 국내 사설 필적 감정기관 7곳에 감정을 의뢰한 결과 “유서의 필적은 강기훈씨가 아닌 김기설씨의 것”이라는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진실화해위는 이를 근거로 국과수를 압박했고, 국과수는 결국 재감정에 들어갔다.
1991년 당시에도 <한겨레>가 사설 감정기관에 감정을 의뢰해 “유서와 김씨가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수첩의 필적이 동일하다”는 결론을 얻어낸 바 있다. 이후에도 이 사건을 다룬 각종 방송사의 시사 프로그램이 자체 필적 감정 조회 결과를 바탕으로 당시 국과수의 필적 감정에 문제가 있음을 여러차례 지적하기도 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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