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희씨
‘행복 디자이너’최윤희씨가 전하는 행복 비결
전업주부서 대기업 국장, 이젠 인기 강사
‘오도방정’ ‘오버’ ‘오지랖’ 행복 보증수표
‘오해’ ‘오리발’ ‘오리무중’ 불행의 지름길
IMF사태 이후 10년. 후유증은 깊다. ‘사오정’ ‘오륙도’ ‘이태백’라는 단어들이 지속되는 고통을 말해준다. 웃고 싶어도 환히 웃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최근 ‘수 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을 다룬 <시크릿>이 베스트셀러다. 비밀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다름 아닌 ‘웃음’과 ‘행복’, ‘긍정적인 삶의 자세’에 있다는 내용이다. ‘행복 디자이너’ 최윤희(61)가 뜨고 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우울증에 빠져 있던 15년차 전업주부에서 38살에 금강기획 카피라이터로 사회 복귀하고, 국장까지 승진했다. 97년 퇴직 후엔 ‘행복디자이너’로 인기 절정의 강사가 되었다. ‘행복 디자이너’ 최윤희씨 “‘오도방정’ ‘오버’ ‘오지랖’이 행복 보증 수표” [%%TAGSTORY1%%] 최씨는 환갑을 넘긴 나이지만, 초록색으로 물들인 머리를 휘날리며 “웃어라. 그러면 행복해진다”고 외친다. 그의 외침은 “‘행복’이 왜 내게는 없는 걸까” “왜 내 삶은 이렇게도 불행할까” 하는 이들에게 삶의 희망이 되고, 살아가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그래서 더욱 그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은 아닐까.
“행복의 비결요? 별거 없어요. 띨순이, 푼순이, 맹순이 즉, ‘삼순이’이가 되면 됩니다. 하하핫. 저를 보세요. 제가 바로 ‘걸어다니는 희망’이자 ‘구세주’이지 않습니까.” 남의 시선, 다른 사람의 부와 명예…. 이런 것에 신경쓰지 않고,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행복’을 얻는 지름길이다. 최씨는 예쁘지도, 똑똑하지도, 잘나지도 않았다. 중국, 일본, 미국 한번 가보지 못했고, 나이도 많다. 다만, “99%가 띨빡하다면, 1%가 특별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뭇여성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있다. ‘1%’의 재능, ‘삼순이’를 적극 활용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그에게 상담전화를 하는 이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 딱 한가지만 써서 보낸다. “하하하, 히히히, 호호호, 깔깔깔…. 웃음 소리를 내는 의성어들만 죽 모아서 보내요. 그것만 봐도 웃음이 나고, 행복해지니까요.” 행복론 1. “하루에 수십 번씩 웃어, ‘깔깔깔’…행복은 그대 마음속에 있어요”
그가 말하는 행복의 비결은 가까운 곳에 있다. 바로 ‘웃음’이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수백번씩 웃는다. 물론, 그라고 해서 행복한 날만 있을까. 하루에도 열두번씩 옥상에서 뛰어내릴까 고민하는 평범한 여성이다. 다만, 위기와 역경의 순간마다 유머로 역전시킨다는 게 다른 점이다. 지금까지 그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바로 남편의 사업 부도였다. 15년간 주부로 살아온 인생이 나락으로 빠지는 순간이었다. “죽을까 고민했지만, 아이들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다시 살아보자”고 결심하고나니, 새로운 힘이 생겼다. ‘긍정’의 힘. 그는 83년 현대그룹 주부사원 공채에 응했다. 시험 보러 온 여자는 무려 1331명. 이 가운데 그녀는 유일한 합격자가 됐다. 합격의 비결은 긍정적인 자세였다. 그녀는 금강기획 카피라이터로, 전환점을 맞게 된다.
“애꾸눈 임금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들에 빚대어 쓴 기발한 형식의 자기소개서 때문이었어요. 또한 ‘특기-멍하게 하늘 쳐다보기! 바람 맞으며 무작정 걷기! 취미-인상 쓰고 있는 사람 간지럼 피우기!’라고 쓴 독특함이 높은 점수를 받았죠. 당시에는 어마어마하게 파격적인 것이었으니까요”라는 게 합격의 비결이다.
어렵게 입사했지만, 직장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서른여덟살의 주부사원을 따뜻하게 맞아줄 직원은 없었다. 인간관계도 쉽지 않았다. “‘실자매’, 즉 진실과 성실과 동거했죠. 특히 저는 전화 메모하는 게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별, 동그라미, 사각형, 마름모꼴 등으로 가위로 오리고, 메모 역시 기발한 아이디어로 채웠죠. 나중에는 내 메모를 보는 재미로 회사를 다닌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는 그만의 진실과 성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내세워 또래에 비해 승진도 빨랐다. “무엇보다 책을 많이 읽은 게 도움이 됐어요. 가사를 할 때는 요리하면서도 책을 읽었어요. 하루 평균 2~3권씩 읽었어요.”
하지만 그는 ‘그 좋다는’ 직장을 97년 박차고 나온다. 이때 나이 52살. 퇴직 후 삶의 계획도 불분명한 상황이었다. “아이엠에프 때 젊은 사람들이 다 퇴직하는데, 자리차고 앉아 있기가 미안했어요. 내가 그만두면 젊은 사람 3명이 먹고 살수 있다는 생각에서 사표를 쓰고 나왔죠.”
계획 없이 낸 사표였지만, 전화위복이 됐다. 술술~ 풀렸다. ‘행복디자이너 최윤희’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아이엠에프로 무너진 가정들을 위해 글을 썼고, 그걸 묶어 <행복, 그거 얼마예요?>라는 책을 냈다. “부도로 무너진 가정,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싶어 냈는데, 우연히 텔레비전에 출연하게 됐어요. 그 뒤 방송과 강의 섭외가 이어졌어요. 그만큼 행복에 굶주린 사람이 많았다는 얘기죠.”
그의 강의는 언제나 만원사례다. 한번 강의를 한 곳에선 ‘리필’(재차 강연을 요청하는 것)이 반드시 온다. 그의 ‘말빨’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생활에서 묻어난 거죠.” 그는 직장생활 전까지도 ‘말 한마디 못하는 산 벙어리’였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말할 기회가 늘었다. 방송에서까지 먹힐 수준인 그의 입담 비결은 바로 인생 밑바닥까지 다녀온 경험의 결과였다. “저 역시 절망·인생의 밑바닥까지 갔었기 때문인지, 사람들이 너그럽게 이해해주셨어요. 내가 살아온 삶을 그대로 얘기했는데, 인생의 경험에서 녹아난 것이어서 감동을 느끼는 것 같아요.”
행복론 2. “일류대학 나와 명품옷? 싼루오션이 있는데…돈 앞에 자유를 잃지 말라”
최윤희. 어쨌든 지금 그는 잘 나가는 인기강사다. 하루에도 2~3차례 이상 강의를 나간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 인터뷰 중에도 강의요청 전화가 여러 번 걸려왔다. “해드리고 싶죠. 그런데 어쩌죠? 시간이 통 안나네요. 꼭 이번이 아니더라도 다음에 꼭 해드릴께요. 절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리 미리’ 크리스마스~!”
“어디든 간에 절 찾아주는 것 자체가 고맙죠. 전 강사로서 나쁜 조건을 다 갖췄어요. 나이 많고 못 생긴 저를 봐주고, (나도 참을 수 없는) 나쁜 제 목소리를 들어니, 너무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죠.”
그가 출연하는 고정 방송 5개, 고정 칼럼 5개 이상이다. 최씨는 매년 1권 꼴로 책도 펴낸다. 환갑이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그는 젊고 파릇파릇하다. 얼굴에조차 피곤함이 묻어나지 않는다. 건강의 비결은? 새벽 3시에 일어나 걷는 산행과 하루 10번 이상 ‘까르르’ 큰 소리로 웃는 것이다. “건강관리 비법이 따로 있지는 않아요. 등산하고, 자주 웃고. 자주 웃어보세요. 그냥 미소만 짓는 게 아니라 큰 소리로 말이에요. 좁쌀 한번 구르는 것보다 호박이 한번 구르는 게 낫잖아요. 웃으면 기적의 호르몬이 나와요. 행복이 그냥 굴러들어 옵니다.”
‘오도방정, 오버, 오지랖’. 그가 말하는 또다른 행복의 비법이다. 이 세가지만 실천해도 절대 불행하지 않다. 반면 ‘오해, 오리발, 오리무중’만 좇으면 절대 행복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에게는 “13년째 창업 준비중(실제로 백수)”인 남편이 있다. ‘무뚝뚝’의 전형에다, 돈벌이까지 시원치 못한 남편에 대한 불만이 없을까. 그녀의 대답은 확고했다. “절대 아니다”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그래서 부부 사이에 싸움은 전혀 없다. “제가 행복 디자이너가 되고 난 뒤 가장 큰 수혜자는 남편과 가족이에요. 하핫”
“저는 싼 것으로 블루오션을 추구합니다. 일명, ‘싼루오션’이요. 2900원, 3900원이면 반품과 환불이 안되지만, 정말 좋은 옷 살 수 있어요. 왜 비싼 옷을 입습니까? 제 친구들 중에는 68만원짜리 옷 입었지만, 그것 때문에 맘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왜 그럽니까? 뭐 묻으면 바로 닦고, 구겨져도 신경 안쓰고…. 옷을 입는 목적이 편하자고 입는 것 아닌가요?”
그는 머리도 직접 자르고, 염색도 직접 한다. 10년 가까이 직접 머리를 매만지다보니, 이제는 ‘프로급’ 미용사다. 단, 절대 좌우 머리의 길이를 똑같이 맞추지 않는다. 그녀의 콘셉이다. “반듯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많은 이들이 갖고 있는데, 꼭 그럴 필요 없어요. 강박관념을 버리니, 너무 재밌어요. 초록색 머리요? 축구를 너무 좋아해서 잔디밭을 머리에 깔아놓은 거예요. 예전에는 저도 남의 시선을 의식했는데, 지금은 남들이 흉을 보건 말건 제 인생을 사는 것이기에 신경쓰지 않아요.”
행복론 3. “너의 인생에 태극기를 꽂아라! 기죽지 말고, 얽매이지 말고, 남의 시선 의식하지 마라”
그는 다음달에 새 책을 펴낸다. <너의 인생에 태극기를 꽂아라>(가제)다. “기죽지 말고, 얽매이지 말고, 남의 시선 의식하지 말라가 주 내용입니다. 돈 식민지, 허영 식민지, 남편 식민지, 지식 식민지, 권력 식민지 등을 타파하자는 거죠. 많은 이들은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면 ‘아이쿠’ 하죠. 하지만 인생에서 ‘행복’이 빠져나가는 것에 대해선 무덤덤 해요. 일류대학 나와 타워팰리스에 살면서 명품 걸친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합니까? 남을 먼저 배려하고, 웃고 살면 행복해집니다. 20대여! (무엇이든) 미치세요. ‘미치면 미치고, 안 미치면, 못 미칩니다.’ 즉, 미치면 언젠가 완성의 경지에 도달합니다. 여러분~ 미치세요!”
글·사진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영상 박수진 피디 jjinpd@news.hani.co.kr
‘오도방정’ ‘오버’ ‘오지랖’ 행복 보증수표
‘오해’ ‘오리발’ ‘오리무중’ 불행의 지름길
IMF사태 이후 10년. 후유증은 깊다. ‘사오정’ ‘오륙도’ ‘이태백’라는 단어들이 지속되는 고통을 말해준다. 웃고 싶어도 환히 웃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최근 ‘수 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을 다룬 <시크릿>이 베스트셀러다. 비밀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다름 아닌 ‘웃음’과 ‘행복’, ‘긍정적인 삶의 자세’에 있다는 내용이다. ‘행복 디자이너’ 최윤희(61)가 뜨고 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우울증에 빠져 있던 15년차 전업주부에서 38살에 금강기획 카피라이터로 사회 복귀하고, 국장까지 승진했다. 97년 퇴직 후엔 ‘행복디자이너’로 인기 절정의 강사가 되었다. ‘행복 디자이너’ 최윤희씨 “‘오도방정’ ‘오버’ ‘오지랖’이 행복 보증 수표” [%%TAGSTORY1%%] 최씨는 환갑을 넘긴 나이지만, 초록색으로 물들인 머리를 휘날리며 “웃어라. 그러면 행복해진다”고 외친다. 그의 외침은 “‘행복’이 왜 내게는 없는 걸까” “왜 내 삶은 이렇게도 불행할까” 하는 이들에게 삶의 희망이 되고, 살아가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그래서 더욱 그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은 아닐까.
“행복의 비결요? 별거 없어요. 띨순이, 푼순이, 맹순이 즉, ‘삼순이’이가 되면 됩니다. 하하핫. 저를 보세요. 제가 바로 ‘걸어다니는 희망’이자 ‘구세주’이지 않습니까.” 남의 시선, 다른 사람의 부와 명예…. 이런 것에 신경쓰지 않고,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행복’을 얻는 지름길이다. 최씨는 예쁘지도, 똑똑하지도, 잘나지도 않았다. 중국, 일본, 미국 한번 가보지 못했고, 나이도 많다. 다만, “99%가 띨빡하다면, 1%가 특별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뭇여성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있다. ‘1%’의 재능, ‘삼순이’를 적극 활용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그에게 상담전화를 하는 이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 딱 한가지만 써서 보낸다. “하하하, 히히히, 호호호, 깔깔깔…. 웃음 소리를 내는 의성어들만 죽 모아서 보내요. 그것만 봐도 웃음이 나고, 행복해지니까요.” 행복론 1. “하루에 수십 번씩 웃어, ‘깔깔깔’…행복은 그대 마음속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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