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카드 거절 일쑤…고금리 부담 ‘겹설움’
“차등아닌 차별이 문제”…대부업체로 내몰려
“차등아닌 차별이 문제”…대부업체로 내몰려
정보통신 기술자인 김아무개(40·광주광역시)씨는 공기업에서 용역직으로 일하고 있다. 최근 그의 직장에 한 은행의 대출 모집인이 찾아와 대출과 신용카드 발급을 권유했다. 마침 생활자금이 필요했던 김씨는 200만원 대출과 신용카드를 신청했다. 하지만 그는 두 가지 모두 안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용역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에서 ‘비정규직 대출’로 검색을 해보면 10곳 넘는 대부업체들이 ‘비정규직에게도 대출해준다’는 광고를 내걸고 사람들을 유인하고 있다. 그 아래 상담 코너에는 ‘비정규직인데 대출받을 수 있나요’라는 질문이 수십개 올라와 있다.
시중은행들이 대출 심사를 할 때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누는 것은 물론, 비정규직 내에서도 다시 계약직과 용역직·임시직을 차별하고 있다. 대출 심사에서 점수가 낮으면 대출을 거절당하거나 대출을 받더라도 금리가 올라간다. 은행들의 이런 관행은 최근 비정규직법 시행과 함께 많은 기업들이 기존의 계약직 노동자들을 용역직이나 임시직으로 바꾸고 있는 현실과 맞물리면서 금융 소외의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계약직에서 용역직으로 ‘신분’이 바뀐 노동자들에게는 이중의 고통인 셈이다.
시중 은행들은 이용자의 직장과 월급 같은 신상 정보, 금융권과의 거래 실적 등을 점수로 계량화해 대출 한도와 금리를 정하는 개인 신용평가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27일 각 은행에 확인한 결과, 국민은행은 고용 형태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눈 뒤, 비정규직을 다시 전문계약직, 단순계약직, 임시용역직으로 세분화하고 있다. 신한은행도 비정규직을 전문계약직, 단순계약직, 용역직으로 분류해 고객을 평가한다. 전문계약직은 계약직이지만 고액 연봉을 받는 변호사, 회계사 등이 포함된다. 용역직은 외부업체에서 파견된 노동자다.
시중은행들은 구체적인 점수 차이 공개를 꺼리고 있지만, 심사를 할 때 고용 형태에 따라 어느 정도 ‘차등’을 둔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 심사는 고객이 앞으로 상환을 제대로 할지를 평가하는 것”이라며 “은행 입장에서는 소득 수준과 함께 고용의 안정성도 같이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대출 심사에는 대출 현황과 연체 경험 등 다양한 요소들이 반영되기 때문에 고용 형태가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박수경 민주노총 비정규 차장은 “비정규직이 직장 밖에서 느끼는 차별 중 은행이 가장 심하다”고 말했다. 김주환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소장은 “금융기관들이 비정규직에 대해 신용 위험을 과도하게 반영하고 있다”며 “비정규직 중에서도 상환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뿐 아니라 저축은행과 캐피털 등 제2 금융권에서도 비정규직에 대한 대출을 거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현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부업체로 발길을 돌리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광고에서 드러나듯 대부업체도 이를 ‘틈새시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김주환 부소장은 “비정규직들은 상대적으로 소득도 적은데, 여기에 고금리까지 부담하다 보면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조성목 금융감독원 서민금융지원팀장은 “고용 형태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문제”라며 “비정규직 중에서도 상환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선별해 최대한 대출을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안선희 정혁준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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