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고된 활동담은 백서 나와
“2005년 6월1일. 동남아시아 해안을 강타한 지진해일(쓰나미)의 마지막 한국인 희생자 조아무개(당시 29)씨의 신원이 최종적으로 확인됐다. 당시 경북 김천에 있던 조씨 어머니가 ‘꿈에 아들을 만났는데, 오전에 신원 확인 연락이 왔다’고 했다는 얘기를 훗날 전해 들었다. 유가족들이 오랫동안 우리를 신뢰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혼신을 다한 정성에 이보다 더 귀한 보답은 없을 것이다.”
2004년 12월 발생한 지진해일 피해 이후 한국인 희생자 주검 감식에 나섰던 ‘신원확인단’의 1년여에 걸친 활동 기록을 담은 백서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나왔다.
200여쪽 분량의 이 백서는 “죽은 이의 가슴에 이름표나마 달아주어 가족의 슬픔을 달래주고 영원한 나라로 보내고자 한다”는 머리말처럼, 대형 참사의 통계적 내용만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얽힌 애환도 함께 드러냈다.
타이 카오락과 피피섬 등 재해 지역이 광범위한 만큼 신원확인단은 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네 지역을 오가며 강도 높은 임무를 수행했다. 그 와중에도 유족들을 만나 위로하는 일까지 도맡아야 했다.
조사 초기엔 타이 쪽과 각국 대표단으로 구성된 국제신원확인단 사이의 업무 갈등이 일어나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해 유족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또 가능성이 높은 순서로 신원확인 작업을 진행했을 뿐인데도, 작곡가 고아무개(41)씨 부부의 경우 유명인이라 특별 배려를 했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현지 당국으로부터 주검을 인수해둔 뒤 신원확인 사실을 발표해야 한다는 교훈도 얻었다. 신원확인 사실이 먼저 발표되는 바람에 주검 인수 전 현지에 도착한 유족을 돌보느라 다른 업무를 보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 신원확인단은 10차례 전문가를 파견해 2005년 11월 말까지 한국인 희생자 20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10명 이상 희생자를 낸 국가 중 제일 먼저 실종자 전원의 신원을 확인하는 개가”였다고 백서는 설명했다.
당시 신원확인단 총괄팀장을 맡았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정낙은 법의관은 “지금처럼 대형 재해가 발생했을 때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한시적인 특별단을 구성하는 것보다는 상시적인 기구를 마련해둬야 대형 재난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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