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가 “결혼 후 1년 내 임신하고, 2명의 자녀를, 30세 이전에 낳아 건강하게 잘 기르자”는 취지의 캠페인을 펼치기 위해 제작한 ‘1·2·3운동’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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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장려 운동에 패러디로 반발…정부, 출산수당 ‘무기연기’
“1. 결혼 후 1년 내 임신하고, 2. 2명의 자녀를 3. 30세 이전에 낳아 건강하게 잘 기르자?”
그렇게 하면 “4. 40대에 파산한다!”는 것 몰라??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가 한국모자보건학회와 함께 시작한 ‘1·2·3운동’이 누리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결혼 후 1년 내에 임신해서 2명의 자녀를 30살 전에 낳아 잘 기르자는 취지의 이 캠페인과 관련 협회는 홈페이지(www.ppfk.or.kr)에 ‘1·2·3운동’을 알리는 글을 올렸고, 다음달 8일 공식 발표에 앞서 정부과천청사 2동 엘리베이터 앞에 포스터를 붙였다.
협회는 ‘고령임신과 출산으로 인구의 질이 낮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캠페인을 기획했다. 30살이 넘어 출산하는 여성이 5년 전에 비해 2배로 늘었고 선천성 기형아 출산 빈도가 높은 35살 이상 산모도 늘어나 ‘모자건강’이 위협받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저출산 극복대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이 캠페인은 시작도 하기 전에 시민과 누리꾼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찍 결혼해 한 명도 아닌 두 명의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인식 때문이다. 누리꾼들은 오히려 이 포스터 문구를 패러디한 ‘1·2·3·4운동’ 포스터를 만들어 “결혼 후 1년 내 임신하고 2명의 자녀를 30세 이전에 낳으면 40대에 파산한다”며 협회의 안일한 현실인식을 꼬집고 나섰다.
실제 30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평균 초혼연령은 남자는 30.6살, 여자는 27.5살로 전년보다 각각 0.5살, 0 .2살 많아진 것으로 나타나 30살 이전에 두 명의 자녀를 갖는다는 구호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음을 말해준다.
“두 식구 먹고 살기도 힘든데, 아이는 무슨 돈으로 키우나?”
%%990002%%“가장 행복한 생각만 할 시기이지만, 벌써부터 아이에게 들어갈 양육비를 생각하면 지금도 스트레스로 잠이 오지 않아요. 맞벌이를 해야만 생활이 가능한데, 아이를 맡길 곳도 마땅치 않고… 맡기더라도 분유·기저귀 값을 제외하고도 50만 원 이상 들어갈 텐데,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을 낳으라고요? 주변에 아이 낳는 사람들 있으면 뜯어 말리고 싶어요. 저 역시 출산은 이번으로 끝낼 겁니다.” (임신 9개월치 임산부 김아무개씨·31세)
“이번에 둘째 아이를 갖게 되면서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에요. 큰애야 청주에 있는 시댁에 맡겼지만 둘째까지 맡겨달라는 엄두가 나지 않아서요. 이전에 둘이 벌 때도 빠듯했는데, 아이 둘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죠. 아이를 낳으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을만한 조건을 먼저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임신 5개월치 임산부 홍아무개씨·30세)
“다행히 집 주위에서 아이를 돌봐줄 아주머니를 찾아 월 50만원을 주고 아이를 맡기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선택받은 셈이지만, 제 월급의 대부분이 육아비로 나가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은 클 수밖에 없어요. 야근하거나 늦은 귀가가 있는 날이 가장 난감하죠. 보육시설이 있다고 하지만 24시간 맡길 곳도 거의 없고, 돌도 안 된 아이를 값이 저렴하다고 보육시설에 맡긴다는 것이 좀 그렇잖아요.”(회사원 배아무개씨·29세)
임산부와 여성들은 ‘1, 2,3’ 캠페인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다. “지금 우리나라 실정에서 일찍 결혼해 일찍 아이를 낳는 것, 더구나 하나도 아닌 몇 명의 아이를 낳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포스터를 만들고 아이 낳는 운동을 선동하기 전에, 행정편의주의적인 저출산 극복대책을 마련하기에 앞서 임신과 출산을 고민하는 이들을 설득할만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누리꾼들의 반응도 냉담했다.
“경제적으로 힘든 젊은이들에게 30세 이전에 결혼해서 아이 2명 낳으라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처사다. 출산장려책에 있어서는 정부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네티즌 ‘luxsury77’)
“이런 쓰레기 정책은 어떤 넋 빠진 놈이 만든 거냐? 일반 서민들의 실태를 조금이라도 알고 만든 거냐? 둘이 죽어라 맞벌이해도 생활이 빠듯한데 아이는 누가 보고 양육비, 교육비는 누가 대느냐?”(네티즌 ‘kjw2033’)
“30세 이전에 아이가 둘이면 어지간한 가정은 그냥 파산이거나 간신히 밥만 먹고 산다”(네티즌 ‘해동성국’)
“두 식구 살기도 힘든데 애 생기면 사교육비, 육아비는 누가 대나? 이런 운동은 부유층한테나 하라.”(네티즌 ‘애 아빠’)
“아이를 낳아 기를 만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도 만들어주지 못하면서 아이를 낳으라는 말이냐”(네티즌 ‘애필 주세요’)
“하나(1) 기르기도 힘든데 둘(2) 낳자는 사람은 IQ 30?”
%%990003%%누리꾼들은 오히려 이 포스터 문구를 패러디한 ‘1·2·3·4운동’ 포스터를 만들어 “결혼 후 1년 내 임신하고 2명의 자녀를 30세 이전에 낳으면 40대에 파산한다”며 협회의 안일한 현실인식을 꼬집고 나섰다.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에 게재된 이 패러디 포스터는 누리꾼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빠르게 번지고 있다.
‘고자’라는 누리꾼이 올린 ’123운동 포스터’ 패러디는 국민연금, 교육비, 세금 등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이 “하나(1) 기르기도 힘든데, 둘(2)씩이나 낳자니, 혹시 IQ가 30?”이라는 문구와 함께 포스터에 등장했다. ‘안쥬’라는 누리꾼이 올린 패러디 포스터에는 “결혼 후 1년 내 임신하고, 2명의 자녀를, 30세 이전에 낳아, 40대에 파산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1·2·3·4·5·6운동’을 추진하라고 비꼬기도 한다. 한 누리꾼(아이디 : ‘-_-’)는 “40세에 허리 휘고, 50세에 병나고, 60세에 골로 간다는 내용을 추가해 '1·2·3·4·5·6운동'을 하지 그러냐?”고 꼬집었으며, 또 다른 누리꾼 ‘doong62’도 “결혼 후 1년 내 임신하고 2명의 자녀를 30세 이전에 낳으면 40대에 파산하고, 50대에 가족 동반자살한다. 로또 6개 맞으면 이민가서 애 낳겠다”며 ‘1·2·3·4·5·6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복지부 ‘1·2·3운동’따라하면 40대 파산, 50대 병 들고, 60대엔 …”
정부, 지급예정이던 20만원 출산수당도 예산부족 핑계로 ‘무기 연기’
한편 정부는 저출산 극복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출산억제 기관의 대명사였던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에 저출산대책사업본부를 신설하는 등 출산지원 전문기관으로 탈바꿈시키고 대통령 자문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 총리실 산하 저출산대책추진기획단, 사회·문화·복지관계 장관회의 등의 기구를 만들어 정책추진에 나선 상태다. 그러나 무엇보다 대책 마련의 근거가 될 ‘고령사회 및 인구대책 기본법’이 아직도 국회에 계류 중이고, 올해부터 지급하려 했던 20만원의 출산수당도 예산 부족으로 무기한 연기되는 등 뾰족한 대안이 나오지 않고 있다. 과거 새마을운동식의 ‘출산장려운동’이 헛구호에 그치고,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는 이유는 ‘백지상태’에 가까운 정부의 출산장려책에 있는 셈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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