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자료사진
‘일감 끊길라’ 노동자 냉가슴…구인·구직 양쪽서 챙기기도
직업소개소 8년새 3배 증가…새벽 ‘반짝영업’ 단속어려워
직업소개소 8년새 3배 증가…새벽 ‘반짝영업’ 단속어려워
지난 21일 새벽 4시30분. 일용직 노동자 남규원(45)씨는 쫓기듯 바쁜 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오늘도 늦었다간 또 하루 ‘데마’(공치기) 맞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벌써 이틀째 몇 분 차이로 일감을 놓쳤다. ‘장마가 시작되면 일감이 더 없어질텐데….’ 이날은 행여 늦잠이라도 잘까봐 밤새 뒤척이다 일어났건만, 경기 안산역 근처 인력사무소 앞에는 벌써 10~20명이 진을 치고 있었다. 다행히 이날 남씨는 일자리를 얻어 수원의 다세대 주택 건설 현장으로 갔다. 오전 8시부터 시작한 지하 방수공사는 밤 12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이처럼 어렵게 일감을 얻어 스무시간 남짓 땀흘린 끝에 남씨의 손에 쥐어진 돈은 10만원. 하지만 온전히 그의 몫은 아니다. 날이 밝으면 인력사무소에 가 ‘와리’(소개비)로 1만원을 떼어줘야 한다. 3달 미만 근무하는 노동자의 경우 직업소개료 10%를 구인자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는 노동부 고시를 남씨는 잘 알고 있다. ‘서면’으로 합의한 경우에만 구직자가 소개비 10% 가운데 최고 40%까지 낼 수 있다는 사실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남씨는 일당의 10%를 그냥 소개소에 낸다. 억울하지만 그것이 현장의 ‘법’이다. “정확한 소개료를 계산하자고 따져봤자, 일감만 끊기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뜯기고 소주 한 잔 걸치다보면, 하루벌이 생활에 저축은 꿈도 못 꾼다. ‘노가다’ 인생 10년째지만, 남씨는 여전히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0만원짜리 단칸방 신세다. 결혼은 생각도 못한다. 고향에 가본 지도 2년이 넘었다.
비단 남씨 처지만 이런 것은 아니다. 박성훈(34·가명)씨는 서울 신대방동의 월세 20만원짜리 고시원에 살며 7년째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박씨는 “한 달 동안 똑같은 현장에서 일을 해도 소개비는 하루 단위로 떼더라”며 “열흘치 일한 임금 70만원에서 소개비 7만원을 내줄 땐 열불이 났다”고 말했다.
경기 부천에서 일하는 김윤호(48·가명)씨는 구인자와 구직자 양쪽에서 소개비를 챙기는 악덕 인력사무소에 당한 경우다. 일당 10만원을 받아 소개비로 1만원을 냈는데, 구인업체가 사무소에 소개비를 포함해 11만원을 지불한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한다.
이처럼 일부 인력사무소들이 과다한 수수료로 노동자들의 얇은 주머니를 털고 있지만,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노동부는 매년 초 ‘불법 직업소개행위 단속 지침’을 내려 정기·특별·상시 단속을 실시하고 있지만, 지난해 단속을 통해 시정된 사례는 30건에 불과하다. 유료 직업소개소가 1999년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면서 급증(그래픽 참조)했지만, 단속할 행정력은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인력사무소 210곳이 몰려 있는 서울 영등포구의 경우 지도·단속 공무원은 단 1명 뿐이다. 영등포구청 사회복지과의 송희남씨는 “관련 민원 대다수가 과다한 소개료와 관련된 것들이지만, 인력사무소 대부분이 새벽에만 반짝 문을 열기 때문에 제대로 단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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