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모씨가 지난 1일 현대중공업이 내려다보이는 울산시 동구 봉대산에 올라 ‘87년 노동자 대투쟁’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울산/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울산서 25년째 ‘기름밥’ 정병모씨
“87년 여름은 속이 뻥 뚫리는듯 했었는데…”
“87년 여름은 속이 뻥 뚫리는듯 했었는데…”
현대중공업 특수선생산부 노동자 정병모씨는 울산의 조선현장에서 25년째 ‘기름밥을 먹고 있다’. 쉰 줄에 접어든 그는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로 벌이도 괜찮고, 누가 봐도 안정된 가정의 가장이다. 지난 1일 울산 동구 노동자정보통신지원단에서 만난 정씨는 요즘 “가슴 한쪽이 아리다”고 털어놓는다.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20년이 지났는데 노동자도 다 같은 노동자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고, 노조는 ‘이익단체’로 전락해 따가운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두 번의 구속과 해직을 감당하며 앞장서 만든 노조로부터 징계를 당해 요즘 조합원으로 권리조차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노조가 임금협상을 유리하게 끌어내는 것 못지않게 고루 잘사는 사회를 만드는 데 가장 앞장서야 한다”고 믿는다.
정씨는 1987년 여름 ‘광장’에서 그렇게 배웠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울산의 거리 곳곳에서 학생들이 ‘군부독재 물러나라’고 외치는 모습에서 속이 뻥 뚫리는 듯했다”고 회고했다. ‘공돌이’로 핍박받던 그 자신의 한이 풀리는 듯한 느낌이었던 것이다. 6월의 불볕더위 내내 그는 잔업마저 포기하고 신명나게 거리에 동참했다. 이 경험은 중졸의 정씨에게 노동투사로 변신하는 하나의 ‘자양분’이 됐다.
6·29 선언이 발표된 뒤 거리는 다시 평온의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머리가 조금 길어도 관리자들이 이발기로 밀었고, 밥먹듯이 욕지거리를 해댔죠.” 하루 12시간 불볕더위와 싸우며 쇠를 다루는 노동은 계속됐고, 인간대접을 못 받는 설움은 여전했다. 이대론 안 된다는 생각이 치솟았다.
87년 7월28일은 그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몇몇 동료들과 함께 회사 정문 앞에서 “어용노조 몰아내고 민주노조 건설하자”는 구호로 시작한 시위가 구름떼 같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공장 안에서 시작된 시위는 거리로 번졌고, 7~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다. 그 경험은 그를 노동운동가로 만들었고, 그는 노조 간부로 혹은 평조합원으로 노동조합 활동에 청춘을 바쳤다. 정씨는 요즘 울산지역 노동운동사를 정리하는 데 힘을 보태고, 회사 안 노동 글패를 이끈다. 노동운동 경력으로 ‘출세’를 하지도 않았고 번듯한 감투도 없다. 그저 현장에서 일하고, 일한 만큼 받고, 할 말은 한다.
“생활은 확실히 나아졌지만 노동자들이 맘 편하게 일하고 정당한 대우를 받고 사는 세상은 아직 아니죠. 내가 정규직이라 안심하고, 다른 이들보다 좀 더 받는다고 위로받는 사이 내 아이들이 차별받는 비정규직이 되는 미래를 결코 잊어선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울산/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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