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지배구조 어떻게 되나]
재용씨 CB인수 무효안돼도 과세 논란 불거질 듯
삼성SDS·전자·서울기술통신 지분 정당성도 도마
재용씨 CB인수 무효안돼도 과세 논란 불거질 듯
삼성SDS·전자·서울기술통신 지분 정당성도 도마
법원이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에 다시 유죄를 선고함으로써, 에버랜드를 지렛대로 한 삼성그룹의 후계구도 구축작업이 큰 타격을 받게 됐다.
“재벌 편법 승계에 경종”=항소심은 1심과 마찬가지로 에버랜드 이사회가 전환사채(CB)를 헐값으로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에게 넘긴 것을 무효라고 판시했다. 발행 목적이 이 전무의 지배권 획득 등 개인적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따라서 1996~1999년 에버랜드와 비슷한 방식으로 이재용씨가 취득한 삼성에스디에스, 서울기술통신, 삼성전자 지분의 법적 정당성도 크게 흔들리게 됐다. 헐값 매입으로 챙긴 차익과 이에 대한 과세 문제도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재판부가 비상장주식을 통한 편법 승계에 법적 책임을 물은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이번 판결을 계기로 세금 없는 대물림에 대해 재벌정책 및 과세 당국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발행 무효 불가능…과세 논란 일 듯=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났지만 이씨의 에버랜드 지분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현행 상법과 증권거래법은 전환사채 발행 이후 6개월 이내에 무효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돼 있다. 에버랜드 지분 대부분이 이 회장 일가와 삼성 계열사 몫이어서, 이 회장 등에 대한 주주 차원의 직접적인 법적 대응도 사실상 어렵다. 이씨가 취득한 지분과 지배권을 법적으로 문제삼을 방도가 별로 없다는 얘기다. 현재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실권한 제일모직의 소액주주들이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해 놓았지만 지분 변동과는 관련이 없다. 하지만 검찰이 이 회장 등에 대한 추가 조사를 통해 공모 혐의를 밝혀낸다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은 “발행 무효 소송은 시효가 지나 불가능하지만, 만약 공모 부분이 밝혀진다면 상법상 ‘통정 행위’ 등으로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손해액을 특정한 만큼, 에버랜드 전환사채는 불법 증여로 판단해 과세해야 한다는 논란도 불거질 수 있다.
삼성 “짜놓은 판 되돌릴 수야…”=삼성은 이번 판결로만 보면 이재용씨의 지분이나 그룹 지배권 변동과 상관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삼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비상장 계열사 지분 배정 등으로 이씨의 경영권 세습 구도를 어느 정도 완성해 놓은 상태다. 이 회장 부부의 상속 절차만 남긴 상태에서, 이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거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삼성 쪽의 시각이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삼성생명 상장과 금융 계열사와 제조 계열사의 분리(금산 분리), 지주회사 체제 전환 등을 저울질하며 근본적인 지배구조 변화를 고심하고 있다. 편법 승계뿐 아니라 현재의 소수지분 구조를 유지하는 한 정당성 시비를 벗어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건희 회장 취임 20돌인 올해 말, 또는 그룹 창립 70돌을 맞는 내년 3월께 ‘대타협안’을 내놓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김진방 인하대 교수(경제학부)는 “당장 삼성이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금융과 산업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정도라고 생각한다”며 “전부를 다 가져가려다 보니 무리수를 낳고 이를 유지하려 또다른 무리수를 두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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