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호 국정홍보처장(왼쪽부터)과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가 22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참여정부 4년 평가와 진보 세력의 미래’를 주제로 좌담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참여정부 4년 평가와 진보세력의 미래
참여정부 4주년을 앞두고 이에 대한 평가와 함께 진보·개혁세력의 진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진보적 학자들의 논쟁에 대통령까지 뛰어들어 정치적 공방의 성격까지 띠고 있다. <한겨레>는 논쟁을 한단계 심화시킨다는 차원에서 당사자격인 정부와 학계·정계의 대표적 인사들과 함께 핵심적 논쟁점을 짚어보았다.사회- 김이택 한겨레 어젠다팀장
참여정부 4년 평가
김이택(사회) :(이하 사회) 그동안 참여정부 평가를 둘러싼 논쟁이 여러 차례 보도됐으므로 이 자리에서는 총론보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좌담이 진행되면 좋겠다. 크게 두 토막 정도로 진행해야겠다. 참여정부 평가문제와 진보, 혹은 진보개혁 세력 미래 문제 크게 두 가지 주제다. 시간이 되면 언론 문제도 다루겠다. 참여정부 평가와 관련해 핵심적 논란이 되는 게 양극화 문제다. 양극화가 이전에 비해 심화됐다는 문제에 대해 지난번 대통령께서는 원죄론, 이전 정부 책임론 말씀하셨는데, 관련해서 노회찬 의원이 글도 쓰셨다. 오늘 아침 저희신문에 경제학자들 멘트가 나와 있는데 외환위기라든지, 가계부채 등 과거에 잉태된 것 맞지만 해소 노력이 미흡했던 게 사실이고 참여정부 들어와 더 심화된 게 아니냐는 의견 피력했다.
김창호 :(이하 김) 본격적 논의에 앞서 두 가지 정도만 사전에 짚고 넘어갈 필요 있다. 조희연 선생께서 어제 오마이뉴스, 인터넷 뉴스에 왜 이 지점에서 대통령이 나서느냐는 요지의 발언 하셨다. 실제 참여정부 평가의 주요한 대상이자 평가가 참여정부고 대통령인 상황에서 참여정부 평가 논쟁의 가장 중심에 서야 할 것이 대통령이다. 이 지점에서 대통령이 왜 나서느냐고 하신다면 주요한 행위자는 논쟁에 참여하지 말고 구경만 하라는 논법이다. 이러한 논법은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지금 양극화 원죄이냐 아니냐, 논의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 토론 의제가 이미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을 전제로 한 토론이 되어서 이것 자체가 균형있는 토론이 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있다. 의제 자체가 부정적인 것으로 고착화됐을 때 한쪽은 문제 제기하고 한쪽은 해명해야 하는 불균형의 토론이 진행되지 않을까 우려가 있다.
노회찬 : (이하 노)물론 대통령이 행위의 가장 중심에 있기 때문에 평가에 왜 할 말이 없겠냐. 그러나 연극이 공연됐는데 연극 평론가들이 평론하는데, 다른 견해를 가진 평론가들이 논쟁에 뛰어들 순 있지만 배우가 자신이 주연한 연극에 대한 평론이라 하여 배우가 평론 논쟁에 뛰어드는 것과 비슷하다. 조희연 :(이하 조) 예를 드는 데는 역시 대단한 분….(웃음) 노 : 참여정부를 긍정적으로 보는 학자가 논쟁에 뛰어드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논쟁의 핵심인 대통령이 뛰어드는 순간 논쟁이 아니라 정치행위로 변질돼가는 우려가 있다. 또 하나는 너무 비판에 민감한 게 아닌가. 그러지 않으리라 생각되면서도 어떤 비판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많이 읽혀진다. 특히 세 가지 문제가 뭐냐면 참여정부가 뭘 잘못했느냐는 식으로 마치 잘못이 없다, 실패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이해된다. 비판하는 사람에게 ‘너희는 뭐 잘 났냐, 그쪽 진보는 잘못 없냐’고 하는데 논점이 다르죠. 마지막으로 더 잘못한, 더 나쁜 쪽에 대해선 뭐라고 안하느냐, 이 얘기도 다른 얘기다. 마치 남한 인권 얘기하는데 북한 인권엔 가만히 있느냐는 것과 같다. 핵심은 아니지만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 동의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학자들의 비판을 받아들이는데 있어 정부 권력이 직접 나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썩 바람직하지 않다. 김 : 당사자가 조희연 교수니까 해명하기 쉽지 않으실텐데 노 의원 말씀에 말꼬리 잡는 것 같아 죄송스럽지만 논쟁 자체가 정치적인 것이 아니냐. 저는 이미 대단히 정치적인 것이 됐고, 어느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논쟁 자체가 정치적인 함의가 있다. 학자들의 평론 자체도 정치적 맥락 속에서 이뤄지므로 학자들은 순수한 평론가로 남고 싶어 하겠지만 상당한 정치적인 행위다. 과거와 같은 평론가와 배우, 또는 언론과 정부라는 경계성이 허물어지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공권력을 갖고 정치행위를 했지만 민주화 이후 사회에선 언론이든 정부든 의제 관리를 통해 정치행위를 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평론가와 연극배우 사이에 구분이 없어지게 된다. 저는 그런 점에서 배우도 평론에 참여할 수 있다고 본다. 비판에 민감한 부분은 저도 안그러려고 노력하지만 사실과 워낙 다른 비판이 많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해명하려는 것이고 그 부분을 민감하게 반응한다 보지 마시고 실상이 어떤지 좀더 귀 기울여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면 많은 부분이 이해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양극화 책임:“참여정부는 노력했다” vs “최종적 책임은 현 정부가 져야 한다”
노 : 양극화는 분명히 현 정부 이전부터 시작됐던 건 사실이다. 노 대통령 당선은 지난 아이엠에프를 중심으로 해 양극화로 인한 고통이 점증되면서 누적된 양극화의 고통을 씻어줄 새로운 정책, 새로운 대안을 노 대통령에게 요구했고 참여정부에게 요구했다. 그것이 노 대통령 당선 배경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노 정권 들어와 이전 정부의 양극화 기조는 유지됐다. 사실 노 대통령 선거공약을 보면 양극화를 감수하는 그런 어떤 위기 탈출, 성장정책과 역대정권이 취해왔던 노선을 바꾸겠다고 얘기한 적 한번도 없다. 2002년 대선 때 그랬다. 그런 점에서 과거 정책의 충실한 계승자였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노 정부는 양극화를 해결할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느냐(고 한다면), 여러 가지 시도했지만 대단히 미흡했다. 그와 모순 되는, 복지정책 같은 재정투자 하면서 한편으론 비정규직, 한-미 에프티에이 추진 등 양극화 더 벌여내는 정책 아주 강하게 추동했다. 어찌보면 모순되는 정책을 썼다. 양극화 책임에 대해 ‘시작은 예전이다, 나름대로 (양극화 해소를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만 얘기할 순 없는 것이다. 양극화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했지만 미흡했고, 악화시키는 정책들을 현재까지 추진하는 것에 비판이 모아지고 있다.
조 : 이 점과 관련해 굉장히 파괴적인 양극화라는 결과는 복합적인 이유를 갖고 있다. 이전 체제로부터의 유산도 있고,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라는 세계 체제적 조건의 제약이라는 것도 있다. 문제는 이런 객관적 조건 속에서 참여정부 통치주체들이 그에 대응하는 적극적 사회경제정책들을 취하지 못함으로써, 혹은 정책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빠른 속도로 사태가 악화되면서 지금 현재 우리가 직면한 현재 상황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적극적인 정책을 취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조선일보>를 포함한 미디어 보수의 보수적 저항과 사회적 저항이 있다. 대응 사회경제정책을 취할 수 있는 제약들이 있다.
또 하나는 주체의 한계가 있다. 계급적 한계, 인식의 한계라고 표현해도 좋다. 이 점에서는 성찰적으로 보면 주체의 한계 속에는 일정 부분 진보 일반의 한계도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한 게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인 책임은, 참여정부가 억울하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대통령을 포함한 질 수밖에 없다.
김 : 양극화에 대한 정확한 개념부터 정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양극화를 기정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동원되는 용어들이 비과학적인 용어다. 대표적인 경우가 체감경기, 서민경제, 이런 용어들이 심지어 공무원 사회에서도 쓰고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과학적 근거없는 주관적 느낌을 표현한다.
실제 양극화의 실상을 잘 보여주는 통계가 최근 통계청에서 발표됐다. 통계청에 의하면 연간 6천만원 이상 소득자가 상당수 늘어났다. 기억이 정확한진 모르겠지만, 작년 한해만 26만명 늘어났고, 5천만원, 4천만원 이상 소득자도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최저 수준 소득자들이 떨어지느냐, 현상유지 지속되고 있다. 그렇게 보면 상대적 양극화지, 절대적 양극화가 아니다. 물론 절대적 빈곤층은 존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양극화 문제를 없는 것처럼 얘기하지 않는다. 상대적 양극화지만 물론 존재한다. 조 선생 말처럼 아이엠에프 후에 경기부양 시킨다고 하면서 여러 가지 경기부양 정책을 했고, 그 결과가 경제구조가 개혁되기보다는 불합리한 구조가 잔존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이뤄지는 세계화라는 불가피한 하나의 흐름 속에 나타나는 구조적인 측면도 있다.
그럼 이런 구조 속에서 ‘참여정부 뭘 했느냐’가 논란의 중심에 있다고 보는데, 문제는 다른 분들이 복지확충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했고, 비정규직 문제, 에프티에이 문제도 얘기했다. 하나하나 설명할 수 있는 논거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정부에서 복지확충 속도가 늘었느냐, 20%에서 28%로 늘었기 때문에 예산으로 보면 상당한 정도로 늘었다. 정부는 비정규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입법화를 부단히 노력했음에도 과연 시민사회나 지식사회가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가. 이 부분에 대해 문제제기할 수 있다. 에프티에이는 다른 논란거리지만, 어쨌거나 논란거리를 확산시키지 않으려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문제가 상충하기 마련이다. 이 문제 해결하려고 조합하고 균형 맞추는 것이 정치적 행위이므로 한편에선 에프티에이를 진행한다고 해서 갈등적 행위로만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조합해서 지속적으로 이끌어 나갈 것이고 지식사회나 시민사회가 진정성을 갖고 있다면 비전 2030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일자리, 부동산, 교육정책은?:“참여정부, 더 비상한 정책 썼어야” vs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사회 : 양극화 문제도 있지만,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건 일자리 문제라든지, 구체적인 부동산, 교육정책의 문제를 더 심각히 느낀다. 양극화 이외의 총론적 평가를 해보자.
조 : 저는 참여정부의 위기를 어떻게 훨씬 더 폭넓은 지평에서 바라볼 수 있느냐는 고민을 갖고 있다. 참정 정부 주체들의 개인적 문제로 환원한다든가, 위기론의 타자화라고 표현하는데, 현대사 속에서 큰 틀에서 양극화라 하면, 박정희 시기의 1차 개방근대화시기의 양극화가 있었다고 본다. 지금 국민정부, 참여정부 하에서 2차 신자유주의적 개방근대화 시대의 양극화에 직면하고 있다. 1차 개방근대화시대 양극화 과제에 대해선 독재 세력이 대면을 했고, 정책 주체였고, 지금은 반독재 민주 세력이 정책주체가 돼 있는 전환이 있다. 박정희는 1차 개방근대화시대에 양극화를 철저히 억압했다. 쟁점화 자체를 거부했다. 사회개발, 균형발전을 철저히 배제했다. 신자유주의시대 2차 개방근대화시대의 양극화는 양극화에 대해 민주세력이 일정부분 노력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시대 2차 개방근대화라는 것이 60,70년대보다 훨씬 양극화 축적체제, 양극화를 동반하는 체제로 작동한다.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박정희 시대의 1차 개방근대화를 통해 이미 물적·경제적 기반을 축적한 경제적 기득권 세력이 강고하게 있다. 저는 부동산 문제에도 그 지점 있다고 본다. 지방 땅값이 올라가면 서울 땅값은 내려가야 되는데, 같이 올라간다. 이게 부동산 가격의 정치적 동화다. 그랬을 때 참여정부가 얘기한, 저는 그 지점에서 훨씬 더 어려운 조건에 있다는 것 인정하는데, 박정희는 배제전략을 썼지만, 민주세력은 그 의제를 끌어안고 훨씬 더 높은 수준의 대응 정책으로 상쇄해야 되는데 못했다. 성찰할 지점이 있지만, 참여정부의 실패를 보면서 예를 들어, 민주노동당이 정책 주체가 됐을 때 어떨까라는 고민이 있다. 한나라당은 선진화를 이야기하지만 선진화가 성공적으로 수행돼도 140만명만 잘 살 수 있다. 국제경쟁력 부문의 고용 흡수동력이라는 게 140만명이다. 결국 훨씬 더 비상한 정책을 통해 이걸 극복할 수밖에 없는데 참여정부가 극복하지 못했다. 일자리 부분도 마찬가지다. 제가 비상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비정규직 법안 정도를, 민노당 안 정도를 열린우리당·정부의 안으로 설정하고 비상하게 돌파하는 방법도 없었을까, 이따 대연정 얘기할 때 하겠지만 그런 식의 비상한 방법을 통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노 : 일자리·교육은 일반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걸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상황이다. 일자리가 없는 게 아니라 괜찮은 일자리가 부족한 게 큰 문제다. 일자리는 제가 2002년 대선 정책 토론회때 많이 참여해 기억나는데, 일자리 창출 방식은 대단히 형식적인, 행정적 성과로는 남을지 몰라도 오래가지 않는다. 유지되지 않는다. 대졸자들 취업 기다리는 게 평균 22개월이고, (그 일자리에) 머무는 기간이 17개월밖에 안되는 정도로 양질의 일자리가 없다는 거다.
가장 큰 문제는 비정규직 문제라고 본다. 다 연관돼 있다. 비정규직이 다른 나라 평균에 비해 두배로 늘어나게 된 것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가장 강력히 추진한 나라가 대한민국이었(기 때문이)다. 역대정부도 마찬가지고 현 정부도 비정규직 규제가 없다면 (비정규직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규제를 가하는 데 대단히 소극적이었다. 법안을 만들었는데, 민노당까지 반대해 시행을 못했다는데 사실은 다르다. 그 내용이 조금이라도 더 개선되길 원했던 거고 마지막엔 한두 조항 밖에 안남았다. 기업가들의 이해를 정부가 대변해 비정규직 문제가 더 심각하게 됐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정부의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 규제완화로 여기까지 왔다고 했는데, 일면 사실이다. 아파트 가격을 자율화했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현 정부 들어서자마자 부동산 가격 자율화에 따른 폭등 가능성을 제어할 수 있는 분양원가 공개, 분양가 상한제 등 규제정책을 초기부터 써야 되는 것 아니냐. 작년 말에 와서 부동산 가격이 국가적 위기로 오기 전까지는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다. 전 정부의 부동산으로 건설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을 계승했다는 것이다.
교육정책도 마찬가지다. 교육 양극화는 현 정부 들어 양극화를 감수하고서라도 사교육을 강화하는 정책을 써온 것 아니냐. 교육 공공성 확보를 위한 재원투자, 사교육 억제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보다 교육시장 개방 등을 통해 교육시장 내부의 경쟁을 촉발시킨다거나 여러 특목고 등 사교육비를 증대시키고 입시경쟁을 과열화시키는 장치를 강화시킨 것 아니냐. 다른 한편으로는 취약계층, 차상위 계층을 위해 복지를 늘렸지만 미흡했고, 근본적인 문제와 관련해 양극화를 촉발시키는 정책을 추진했고 구체적으로 (문제점으로) 나타난 게 일자리, 교육이다.
김 : 사안을 진단할 때 사실 분석이 가장 중요하다. 시간이 없어서 사실 하나하나 설명 안한다. 지금 양극화 문제의 한 케이스로 일자리, 부동산, 교육정책인데 이것은 굉장히 복합적인 문제다. 노 의원 말씀처럼 단정적으로 할 수 없다. 일자리에 있어 노동의 미스매치도 있고, 자영업의 과도하게 높은 비중, 산업구조 자체가 일자리 창출이 없는, 노동없는 성장으로 전세계적으로 나아가는 추세도 있는 복합적인 문제다.
부동산 문제 실패를 자인했다지만 그렇게 얘기한 적은 내가 아는 한 없다. 단 미흡한 부분이 있어서 현재 조정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부동산 가격이 오른 것은 송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 부분도 워낙 많은 행위자들이 있어 조건을 고려해야 하므로 조 선생, 노 의원이 얘기하듯 한칼에 해결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
교육에 있어선 교육개방 말씀하셨는데, 어떤 것도 추진하고 있지 않을 걸로 안다. 5년간 정책으로 평가하기엔 굉장히 복잡한 내용이다. 조 선생이 참여정부 위기론, 실패론 말씀하셨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위기론·실패론 자체가 보수 언론이 만들어내는 담론 패러다임이고, 진보세력이 여기에 편승해 논쟁하는 건 방향을 잘못 잡은 것 아니냐. 두분 모두 참여정부의 비상한 대응을 주문하는데, 이건 권위주의 시대에나 있을 수 있는 방법이다. 비상한 방법은 그 이면에 부작용이 있으므로 위험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교한 대응이 필요한 거다. 참여정부더러 비상한 대응을 요구하는 것은 권위주의적 발상을 주문하는 것이다.
사회 : 총론적으로 보면 참여정부의 지지도가 낮은 수준이다. 이 문제에 대해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 때문에 진보진영이 망한다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 했고, 참여정부와 관련해 ‘차기 정권의 책임문제까지 현 정권이 져야 된다는 부분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했다. 맞는 말인가.
조 : 참여정부는 결과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고, 한국 정치동학으로 봐서도 비판당할 자세를 가져야 된다고 본다. 저는 한국 정치라는 게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진보하는 지점이 있다고 본다. ‘왜 평가를 안해주느냐’고 하는데, 전쟁이 끝난 후 역사가 됐을 때 평가한다. 과거청산, 법원이라든지 반부패, 부패 축소와 투명성 진전, <조선일보>와 같은 거대한 미디어 보수 권력과 긴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한 것은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교체기의 정치동학에서 불가피한 지점이 있다.
또 하나는, 국민 정부에서 참여정부로 넘어가는 데 주도집단의 전환이 있었고, 다음에 한나라당의 집권이 저지돼도 주도집단의 교체가 있을 것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단지 주도집단, 민노당이 위력적으로 성장하면 새로운 주도집단이 될 수 있다. 그와 함께 민주개혁세력이랄까, 이런 세력 안에서도 혁신적 주도집단, 국민적 신뢰를 획득한 주도집단이 탄생할 수 있다고 본다. 차기정부와의 관계를 바라본다. 참여정부를 긍정적으로 계승하더라도 장점에 대한 대안적 비전을 국민에게 제시하는 새로운 혁신적인 주도집단일 수밖에 없다. 정치적 개혁으로 무장한 집단이 사회경제적 개혁을 하는 주도집단으로 바뀌는 것이다.
노 :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이 확실히 된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현재로서 상대적으로 다소 높아 보이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이는 것은 참여정부의 실패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여론조사 해보면 드러난다. 한나라당 지지자 40%는 고정 지지층 아니라 참여정부 실망에 의한 반사적 지지다. 참여정부의 책임이다. 그래도 한나라당 집권을 막기 위해 반한나라당 전선으로 모여야 된다는 주장은 동의할 수 없다. 지금 민주화 세력은 분화 중이다. 개혁적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으로 분화중이고 그게 열린우리당이고 민주노동당이기도 하다. 개혁적 보수와 진보를 통틀어 개혁적 보수의 헤게모니로 끌고 나온 것도 있다.
지금 필요한 건 더 확실한 분화로 진보 세력이 정리돼야지,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현 여권을 더 지지해 달라’는 얘기는 ‘북한이 쳐들어올지 모르니까 박정희를 계속 지지해야 된다’는 얘기와 유사한 것으로 들린다. 현 정부가 실패했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것 당연하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한나라당은 없어져야 할 세력이고, 열린우리당은 실패했으니 심판받아야 된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양대 세력에게만 모든 권력을 분점하다시피 맡겨둔 정치지형이 극복될 필요가 있다. 국민들은 에프티에이에 대해 50대 50으로 나눠져 있는데, 나머지 50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없다는 거다. 양자구도, 한나라당 대 범여권 구도가 이번 대선 과정에서 한번에 다 바꿔지지 않더라도 3자 구도 정도로 바꿔줘야 한다. 한나라당 앞에서 나머지가 분열하는 것으로 보이면 안된다. 한나라당은 오히려 광범위한 서민층 포섭하고 있다. 참여정부와 같은 신자유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개혁적 세력은 안된다. 진보세력, 진보정당에게도 있다고 생각한다. 진보세력 혁신과 분발로서 한나라당으로 포섭돼 있는 서민대중 끌어오는 게 중요하고, 그 결과로서 이번 대선 통해 3강 구도 만들어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김 : 국정홍보처장으로서 정당이나 정치적 사안은 코멘트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말씀드리지 않겠고, 저는 진보의 위기지만 실패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참여정부도 어려움이 있지만 위기론, 실패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기자로서의 경험 등 안팎의 경험으로 보면. 우리가 진보세력과 참여정부의 복합적인 관계, 다양한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한편에선 노 의원 말씀처럼 진보 내부에서 여러 경향성이 분화되는 측면이 있고, 일정 부분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원하든 원치 않든 민주개혁평화 세력 속에 공통으로 묶여 평가받는 경우가 있다. 참여정부 평가논쟁과 같은 경우 서로 싸움을 시키기도 하고, 색깔 공세를 할 때는 묶어서 공격하기도 하는 지점에 있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진보적 지식인 뿐만 아니라 진보의 개념이 다르게 규정한다. 이 세력들이 갖고 있는 사회적 동학의 영향, 상당 부분 영향력을 갖고 있고, 앞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본다. 지금 이 문제를 진단하면서 참여정부가 다 잘했다고 볼 수는 없다. 현재 지역주의를 벗어난 참여정부가 그나마 25% 지지율을 유지하는 것은 정치적 성과다. 저희가 미흡한 부분은 있으되, 그것을 진보세력 전체가 같이 고민해야 되고 스스로 반성해야 될 의제다. 이를 특정 정치세력에게 떠넘기고 문제에 대한 성찰을 회피하게 되는 정치적 효과를 갖고 오게 될 경우 이것은 진보세력 전체와 더 나은 발전을 위해 좋지 않다. 제가 정부에 참여한 경험에 비춰보면 다음 정부 어느 정부가 될지 모르지만, 이 정부의 정책에 대한 장악력이 참여정부만큼 따라올 수 있겠느냐 하는 부분에 있어 회의하고 있다. 행위자가 많이 늘어났고, 변수도 늘어났다. 굉장히 정교하고 집중적인 일처리가 필요하다. 비상한 대응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정책적 헤게모니를 다음 정부가 어떻게 관철시켜 나갈 것이냐, 어느 정치 세력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진보에서 보수까지 이 헤게모니를 지켜나갈 수 있겠느냐, 그런 점에서 참여정부는 무척 높게 평가돼야 한다. 미군기지 이전문제, 특권해체, 권위주의 해소, 권언유착 근절 등을 제대로 관철시킬지 우려가 있다.
조 : 참여정부의 위기라는 상황은 한나라당 내부엔 두 가지 프로젝트가 있다. 수구적 프로젝트와 신개발주의로 무장한 이명박류의 신보수주의 프로젝트가 있다. 국민이 수구적, 신보수주의적 프로젝트에 경도되는 상황에서, 민노당으로 상징되는 훨씬 더 진보적인 대안적 프로젝트 만들어져 다가가야 하고, 한편에선 중도세력 내부에서도 참여정부의 위기를 성찰하는 일종의 혁신된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사회경제적 개혁 프로젝트일 수도 있고, 양극화에 응전하는 반 양극화 프로젝트일 수도 있다. 이런 것들 가동되면서 대중들의 비전, 희망이 훨씬 더 진보적인 것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게 대선정국의 각축이 아닐까.
진보세력 앞날 어떻게
◇신자유주의와 개방: “무조건 ‘신자유주의’ 매도는 문제”vs “진보가 신자유주의를 수용할 순 없어”
사회 : 참여정부와 진보진영 사이의 대립점 가운데 하나가 신자유주의 개방정책 문제다. 노 대통령은 “진보세력도 신자유주의에 대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다, 중국 지도자도 거역하지 못한 것 아니냐”고 했다. 김 처장은 관념적 좌파와 결별해야 한다고 했다. 중요한 논점을 대통령이 던졌는데, 신자유주의 반대 혹은 문제점에 대해 진보 쪽에서 반박이나 대안 말씀이 있어야 하지 않나.
노 : 무엇이 진보냐, 보수냐는 시대마다 내용이 변할 수밖에 없다. 현 시점에서 보수-진보를 나누는 주요한 지표 중의 하나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태도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에 있어 그 비용을 약자에게 전가한다. 이런 위기 탈피책은 결과적으로 자본의 위기 극복엔 어느 정도 효율적일지 몰라도 사회적 약자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건 모든 나라에서 검증된 것이다. 그 부작용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로 정책의 차이가 조금씩 나타나기도 한다. ‘유연한 진보라면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에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 있다고 느낀다. 에프티에이도 마찬가지다. 어떤 개방도 반대한다는 게 아니고 모든 개방을 반대하는 것이 진보도 아니다. 하지만 한-미 에프티에이는 다르다. 이 경우엔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게 분명해 보인다. 일부 기업이나 한나라당 일부 의원처럼 ‘우리 사회가 양극화를 감수해서라도 한-미 에프티에이를 체결해 위기를 탈출해야 된다’고 얘기하는 게 더 솔직하다고 본다.
좀 다른 얘기지만 ‘진보진영이 용산기지 이전을 다 요구해놓고 평택은 왜 반대하느냐, 주한미군이 떠나란 얘기냐, 과격하고 관념적인 것 아니냐’고 하는데, 용산과 평택은 다르다. 수도 한복판에서 (미군 기지를) 옮기는 데는 일부 수구세력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동의했다. 그러나 평택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의 문제이므로 모든 보수가 찬성하고, 진보세력이 반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보수와 진보가 나눠진다. 평택은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 문제가 아니었다. 어디서 보수와 진보가 나눠지느냐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오히려 진보진영의 요구는 관념적이고, 과격한 것으로 치부하고, 현 정부의 주의주장과 정책을 유연한 진보로 얘기하니까 개념부터가 뒤엉켜 있다.
사회 : 진보진영에서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적지 않은데.
노 : 당연한 얘기이고, 책임있게 대안을 내놔야 하고, 진보가 잘했다고만 할 수 없다. 비판은 얼마든지 수용돼야 한다. 에프티에이 안하면 뭘 먹고 살 거냐, 사람을 어떻게 성장시키고 동력을 어디서 찾을지 구체적인 대안을 내놔야 한다. 그것이 정당들, 이번 대선에서 국민에게 검증받을 것으로 본다.
김 : 용산 문제에 대한 정부의 인식은 이렇다. 평택으로의 기지 이전은 굉장히 자주적인 선택의 부분이 있다. 그것 자체가 진보진영에서 완벽한 목표 달성에 이르지 못했다고 해서 부정적으로 평가할 때, 중간단계를 혁명적으로 뛰어넘을 수 있느냐는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기지 이전 자체를 굉장히 자주적이고 진보적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언론이 ‘악마의 주술’처럼 사용하는 게 아니냐.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신자유주의라 가장 추상적이고 원칙적인 수준의 개념을 사용한다. 신자유주의라는 것은 구체적인 정책에 적용되는 개념이라기보다 거대한 사회적 흐름 속에서 철학적 원칙과 같은 것인데, 이걸 현안에 대해 기계적으로 적용하려는 것은 어렵다.
우리의 고민은 시민·지식사회의 고민과 같다.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한 개방을 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는데, 어떻게 하면 개방적 자립경제를 이끌 것이냐가 포함돼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에프티에이 자체를 미국이든 중국이든 어디든 그것 자체를 ‘신자유주의다,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범주의 개념적 혼돈을 일으키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참여정부 정책을 신자유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은, 조금 더 치열한 분석과 치밀한 논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 : 유연한 진보와 관련해 개방, 성장 문제를 진보세력이 어떻게 응전할 것인지 고민이 있고,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민주노동당의 사회연대전략 속에서도 핵심적인 고민지점이다. 좌파 결별론이라며 진보세력이나 급진세력과 대결하는 노 대통령이나, 참여정부 전략의 정치적인 효과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정책을 수행하는 데 있어 보수적 제안과 급진 진보적 제안이 있고 양자가 협공을 하는 거다. 두 가지 반대되는 요구가 정부에 주어지는 것이고, 보수적 저항은 일종의 적대적 저항이고, 급진진보적 저항은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을 요구하는 비적대적 저항이다. 급진진보적 저항을 일정부분 수용하면서 보수적 저항은 상쇄시키며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책을 관철시켜야 한다. 그런데 참여정부 정치적 기반의 협소함은 이런 점에도 있다. 보수적 저항에 의해서도 기반이 협소되고, 급진세력이나 진보세력과의 대결을 통해서도 스스로의 기반을 협소화하는 방식으로 기반이 협소해지고 결과적으로 모든 비판이 아프게 느껴지는 결과가 아닌가.
◇‘진보’는 대안 내놓을 수 있나: “대안 부족 반성한다” vs “박정희 뛰어넘는 모델 만들어야”
사회 : 조 교수는 “박정희와 다른 방식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비전과 대안에 대해 고민해야 된다”고 말씀한 적이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선 좀더 구체적인 토론이 필요한 것 같다.
조 : 가장 핵심적인 지점이 그것이다. 박정희 반대 세력이 박정희 모델을 뛰어넘는, 비전과 대안이 이번 대선 과정을 통해 대안경쟁 과정이 돼야 되는 측면이 있다. 핵심적인 게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시대의 대안적 사회국가 모델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도 조금더 진일보한 정책들을 내놓을 수 있다고 본다. 사회투자국가가 하나의 모델이다. 대단히 신자유주의적인 요소를 갖고 있지만 기존 정부정책으로 보면 일정하게 나간 정책으로 본다. 복지를 사회투자라고 보는 나름의 고충이 있다고 보고. 비판자적 입장에서 보면 신자유주의적 요소를 갖고 있는 한계가 있다. 다양한 모델들이 나오고 대중에게 다가가는 경쟁이 돼야 된다.
노 : 박정희 시대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은, 박정희 시대의 폐단 때문만이 아니다. 경제가 그 시대와 너무 달라졌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고용없는 성장도 그렇고, 100억불 수출이 78년도 국가적 경사라고 했는데, 지금 대우조선 하나만 수출이 100억불이다. 30배 수출에도 불구하고 내수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가 굉장히 떨어져 있다. 수출 많이 하고 성장률만 높여서 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 사실은 조건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도 과거 대기업 위주, 수출과 성장 위주로 경제를 재단하는 경지에 온 게 아니냐. 17대 국회 이후로만 본다면, 제가 목격한 것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대립한 것은 국가보안법, 언론관계법, 사학법 등 비경제적인 분야였다. 경제에서는 민생, 대기업, 재벌규제에 대해 치열하게 대립한 적이 없다. 양쪽의 굳건한 합의로 대부분 통과됐다. 대통령께서 개헌문제 말씀하시면서 경제정책에 관해서 차이가 없다고 얘기한 것이 솔직한 말씀이기도 하지만, 대통령의 인식이기도 한 것이다. 차이가 없다는 건 민노당과 차이가 없다는 게 아니라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간에 정책 차이 없다는, 뭐 있겠느냐는 얘기다. 저는 이것이 문제라고 본다. 예컨대 열린우리당의 개혁적인 의원을 만나도 정서적으론 같지만 정책적으론 한나라당과 거의 같다. 일부 조항에 대해 한나라당의 수구적 태도 때문에 헤게모니 싸움이 격화되면서 현안처럼 보였지만, 일반 국민은 관심이 떨어지고, 관심 많은 사안은 쟁점화, 차별화를 하지 못했다. 민노당 목소리는 소수파 목소리로 묻혔다. 이것이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의 실패 배경이기도 하다.
사회 : 어제 민노당 토론회를 봤는데, 손호철 교수가 얘기하기를 “민노당도 진보세력의 대안 제시 관련해서 책임있는 것 아니냐, 아파트 반값 문제만 해도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에게 뺏긴 것 아니냐”고 하더라. 진보적 정책 문제에 대해선 민노당이 좀 더 설득력있는 대안을 내놓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노 : 그런 질책은 대단히 공감한다. 민노당 지지율이나 국민적 평가가 2년 전보다 낮아졌는데, 이건 다른 요인이 아니라 민주노동당 때문에 낮아졌다. 설사 9석밖에 없는 소수 정당이라고 하더라도 차별화된 정책대안을 속 시원히 내놓음으로써 그 여파를 보도록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한편으론 참여정부 실책 비판하지만 민노당이 잘했다는 전제가 아니다.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수긍한다.
김 : 손호철 교수가 박정희 시대를 ‘물리력에 의한 자원동원형 체제’로 말씀하신 걸로 기억한다. 이제는 행위자가 다양해졌기 때문에 과거 권위주의 시대처럼 정치권력이 물리력을 동원해 자원을 총동원하고 성장률을 높이는 시대는 지나갔다. 그런 점에서 인적투자, 사회적 투자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적절한 판단이다. 참여정부도 그에 따라 비전 2030을, 장기적이지만 전체적인 방향을 사회·인적 투자로 전환하는 것으로 내놨다. 충분하진 않지만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동반성장 문제 끊임없이 고민하고 정책들 쏟아내고 있다. 노 의원의 비판적인 부분은 겸허히 경청해야겠지만, 혹시 그 비판이 너무 극단의 입장에 서서 정책 차별성에 주목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 반대로 소수의 ‘소통 권력’들은 민노당과 참여정부를 구분하지 않고, 함께 비판하며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합의에 대해 얘기했는데, 제 권한 밖이라 말씀드릴 수 없다.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 보면 다른 보수적인 정치 세력과는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데, 오히려 진보적인 세력, 특히 민노당과는 대화와 타협이 불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해 민노당은 스스로 되짚어 봐야 되는 것 아닌가. 참여정부는 가능한한 이견과 양극단을 조율, 조정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바라는데, 그 과정의 여러 어려움 중 하나가 진보 세력의 명분론적 반대였다. 명분론적 반대가 정치세력으로서 설득력있는 태도인가. 그런 것이 관념적 좌파들이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닌가.
조 : 대안에는 콘텐츠와 가능한 힘의 측면이 있다. 콘텐츠에 대해선 이미 30년 동안 한국경제는 개방경제였다. 개방경제 하에서 한국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시대 국민경제는 격차 사회, 단절사회, 괴리를 구조로 해서 작동하게 돼 있는 것 같다. 신자유주의적 양극화 축적 체제라고 얘기하게 되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아무리 잘 나가도, 스필오버, 흘러넘치는 효과가 없는 것이다. 단절적으로 이뤄진다. 단절과 괴리, 경쟁력·비경쟁력 괴리가 박정희 시대보다 극단화되는 것은 국가적 개입으로 상쇄할 수밖에 없다. 멀리 가는 측면도 있지만 사회적 일자리 창출 노력, 3교대를 4교대로 바꿔 고용을 창출한 유한 킴벌리 모델도 있고 사회적 기업 모델도 있다. 복지 부문을 확장시켜가면서 그것을 어떻게 사회투자적 기능으로 결합하느냐 하는 요소가 있다. 이런 요소를 결합해 총체적 대안 모델로 대중에 호소력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사회적 힘의 문제가 있다. 이것이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대중의 급진화가 필요하다. 민노당이 얘기한 반 신자유주의 정책이 가능하려면 반 신자유주의 정치가 가능해야 하고, 그러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미디어 보수세력의 사회적 저항이 있다. 강남 사람은 계급의식이 있는데 강북사람은 없다. 대중의 계급적 의식을 고양시켜서 반 신자유주의적 정치를 어떻게 하고, 정치공간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반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가능케 한다.
김 : 신자유주의로 야기되는 사회적 양극화 현상을 완화시키거나 제어하거나 극복하려면 공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공적 개입의 성격에 뭐가 있는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업 규제를 끊임없이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다른 하나는 인적·사회적 투자를 통해 그것을 보완하거나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경향성이 있다. 전자가 바람직할 것이냐 문제제기할 필요가 있다. 인적·사회적 투자, 저는 관념적 좌파라고 개념을 규정하지만, 일각에선 기업에 대한 규제까지를 요구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조 선생 말씀 중에 여러 가지 선택 중에 혹시 그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조 : 미디어 보수세력 같은 경우엔 일체의 공적 규제를 관치라며 해체하려고 하고, 굳이 관념적 좌파라고 한다면, 극단적인 고정화된 규제남발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그 중간지대에서 신자유주의에 부응하는 적절한 공적규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과도한 공적 규제는) 관치와 경계가 분명하지 않지만. 증세-감세 논쟁도 그렇지만, 한국의 자본들이 스스로의 거시적 합리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적절한 공적 규제, 국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도 수용해야 된다고 본다. 전경련이 총자본이 아니라, 삼성 등 개별자본의 이해만 대변하고 있다고 본다. 일체의 세금 증대를 반대하는 거다. 개별기업의 눈으로만 보니까. 저는 한국의 자본도 변해야 된다고 본다.
노 : 좌파 내부에 관념적 부분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관념적 좌파가 ‘악마의 주술’로 쓰여선 곤란하겠다고 생각한다. 스위스 국민 중 농민은 4%밖에 안되지만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국민 투표를 거쳐 미국과 에프티에이 협상을 중단시켰다. 스위스 정부가 관념적 좌파 정부냐. 저희가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분양원가 공개 공약을 지키라는 것이다. 부동산 폭등 완화에 효과가 있으리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듣지 않았다. 그게 관념적 좌파의 요구고, 그래서 안받아들인 거냐. 스위스는 비정규직 동일임금 안주면 형사처벌한다. 호주는 시급개념으로 따지면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비슷하거나 더 많기도 하다. 그런 게 한국 기준으로 관념적 좌파냐. 우리가 비판했고 요구한 내용에 대해 참여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관념적이기 때문에 안받아들였고, 우리는(참여정부는) 현실에 기반하기 때문에 옳다고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사회 : 강북사람을 끌어들일 만한 분야나 정책을 구체적으로 모색할 지점이 있다면.
조 : 민노당은 훨씬 더 급진적인 의제화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 대중이 계몽되고 정책선택 공간이 확장되면 참여정부는 한나라당과 훨씬 더 구별되는 상대적으로 진보화된 정책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봐야 된다. 1가구 2주택 금지 등 급진적으로 나가야 된다. 대중들이 볼 때는 이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혁명적으로 지지하면 실현가능한데, 현재 정치적 지형에서는 현실 조건 때문에 어렵다고 본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토지임대부 주택이나 환매조건부를 선택할 수 있는, 한나라당의 공급 확대전략과는 구별되는 주택정책을 받아들일 공간이 생긴다는 것이다. 홍준표 의원은 시장 메커니즘적으로 얘기하지만 그것도 공적 방식으로 더, 민노당의 급진적 부동산 정책에 도움 받아서 참여정부가 생각하는 정책을 실현할 수 있다.
◇이번 대선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사회 :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를 해보자. 예를 들어 교육정책에 있어 민주노동당은 대학 평준화를 주장한다. 만일 국민적 관심사인 부동산이나 교육문제에 대해 대중적으로 설득력 있는 대안을 내놓는다면 상당한 호응이 있을 것이다.
김 : 급진적 의제화 전략이라고 했는데, 진보 세력 중 좌파도 있고 생활세계적 진보도 있지만 진보 위기론으로 넘어가면 진보 위기의 핵심은 급진적 의제화 전략이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보편성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도론과 같은 방식으로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개혁세력도 성장과 분배 고민해야 하는데, 중도론은 경제를 일으킨 성장주의자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결합으로 이 문제를 돌파할 수 있는 것처럼 접근하는 것은 잘못됐다. 문제는 개혁세력이 어떻게 성장과 개방에 대해 대안을 마련하느냐하는 내재적 책임을 묻는 것이지 근대화 세력, 산업화 세력과의 절충적 결합으로 해결할 수 있지는 않다. 한국의 진보진영, 좌파 진영은 과잉 정치화돼있다. 투쟁, 이론 노선에서 보편적 설득력을 얻기보다 과잉 정치적 의제화하려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유럽과 같은 경우엔 여성, 환경, 젠더, 평화 등 생활세계적 의제로 이미 다 바뀌었고, 보편성, 대중성과 결합했다. 우리는 아직도 과잉정치화 함정에 빠져있는 것 아니냐. 생활세계적 의제로 바뀌어야 되는 것 아니냐. 그런 점에서 저는 지역 풀뿌리 부재도 심각한 문제로 본다. 개혁세력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지역단위 미시적·사회적 의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헤게모니를 상실하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다. 생활세계적 진보로 다가가지 못한 것이다. 북한과 전쟁은 반대하고 북 인권문제를 동시에 얘기하면서 에프티에이는 옳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이 진보적이냐, 아니냐? 민주노총 주요 행위자인데 가부장이면 진보냐. 아니냐? 대통령 말씀은 유연하게 진보 개념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 : 진보세력의 무능으로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박정희 세력은 개발을 성취했고 근대화를 촉진했다. 그것이 현재도 친박정희 정당성의 근거가 되고 있다. ‘성공의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국민들은) 과거의 성취에 만족해 지지하지 않는다. 반독재 세력도 성공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민주세력이 상당히 (민주주의를) 성취했다고 자인해도 좋다. 그러나 박정희가 성공의 위기, 문제를 단순화하므로 따옴표를 쳐야 하는데, 대중들이 그걸 주어진 걸로 받아들인다. 민주세력의 통치기간에 새롭게 제기된 문제에 민주세력이 응전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대중들은 그것에 감사하지 않는다. 과거를 돌아보니 감사해 계속 지지하겠다고 보지 않는다. 결국 개방에 대한 응전문제, 이른바 신계급사회가 동반하는 응전의 문제다. 진보진영은 여전히 사회경제적, 특히 경제적 의제 정치적 의제에만 집중하지 생태적, 지역 이슈 끌어안지 못했다. 경제적 정치적 진보, 노동진보를 확장하는 과제가 있다. 대선국면이 진보의 자기 혁신 과정이다.
노 : 지난 4년 개혁 세력의 헤게모니 하에 진보세력이 끌려 다닌 측면이 있다. 저는 진보세력이 결별해야 한다고 본다. 진보세력의 헤게모니 하에 개혁세력을 아우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도 분리해 나와야 된다. 그 이유는 개혁 세력의 헤게모니로는 수구와 개혁의 대립으로 전선이 쳐진다. 경제적인 문제는 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야 되는 문제와 차별성이 없다. 몇 가지 정치적 사안-과거사, 보안법에서는 차별되지만 비정규직, 에프티에이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현재의 대립구도, 수구와 개혁이 대립하는, 수구와 개혁 헤게모니가 대립하는 것은 역사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바람직한 구도가 결코 아니다. 오래된 완고한 구도가 새로운 역사적 과제를 소화 못함으로써 많은 혼란, 역사의 지체가 생겨나고 있다. 한칼에 되는 건 아니겠지만, 새로운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도 분리돼야 한다. 분별 정립하는 게 당장 급한 일이고, 장기적으론 크게 보수와 진보로 가야 되는데, 그것은 상당한 시간이 걸리리라고 보는 사람이다. 보수와 개혁, 진보가 각각 서서 경쟁하고, 그런 속에서 정치 현대화도 이뤄지지, 그렇지 않고선 낡은 대립구도 미화하는 용어가 바로 반한나라당 전선, 민주 대연합론, 마치 독재 세력이 있는 것처럼 가져가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잘했냐 못했냐, 진보세력이 뭘 해야 되느냐’가 아니라 지형이 이렇게 나타나야만 해결된다.
조 : 저는 이미 열린우리당, 민노당 구별돼있고, 콘텐츠의 차별성으로 더 확대하고, 진보세력이 정치적으로 성장함으로써 훨씬 더 가속화해야 한다고 본다. 이젠 비판적 지지 시대는 지났다. 민노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는 있을 수 있어도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있어선 안된다. 두 정치세력 연합의 문제가 있을 순 있어도.
김 : 인식이 중요하다. 저는 모든 권력은 퍼셉션(인식)이라고 본다. 보수 세력과 개혁세력, 진보세력으로 정치 세력을 나누는 것은 가장 이상적일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개혁과 진보가 국민 인식 속에 분화돼 있지 않다. 이를 의도적으로 분리하려는 것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진 우리의 주관적인 분리, 문제제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세력의 무능론, 진보세력 무능론엔 동의하지 않는다. 문제는 진보 민주세력에 적합한 전망과 비전 찾으려면 참여정부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이뤄져야 된다. 그것을 한 단계 뛰어넘는 의제 설정이 가능한 것이지, 포퓰리즘적 평가에 기대 비전을 수립하려면 한계가 있다. 진보에 다소 위기의 측면이 있다고 해서 진보의 무능으로 이어지거나 진보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단견이다.
사회 : 참여정부 논쟁 과정에서 보수 언론 문제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조 교수는 좀 전에 현 정부가 보수 언론과 긴장을 유지한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고 했다. 하지만 최장집 교수는 현 정부에 대해 ‘실패의 알리바이’를 보수언론에 떠넘기지 말라고 했다. 반면 김동민 교수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게 하는 독립변수가 조중동이다. 관료 특히 경제관료들이 휘둘리고 부동산 정책도 영향을 받는다. 조중동을 제어하지 못하면 민주주의가 작동될 수 없다”고 했다. 상당히 중요한 논점 중의 하나인데 그리 부각되지는 못한 것 같다. 이에 대해 어떻게 보나.
조 : 참여정부가 미디어 보수와 긴장을 지속했다는 것만으로 평가해줘야 되고, 어떤 개혁세력도 계승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단지 최장집 선생이 실패의 알리바이라고 하는 점을 수용하는 게 뭐냐면, 조중동의 비판은 상수다. 상수를 받아들이자는 게 아니라 그것을 전제로 해서 뛰어넘는 정책집행 전략, 정책 수행 전략을 구사하지 못해서 문제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분단에 의해 규정된 대중의 계급적 의식이 낮은 것을 상수로 한 상태다. 단지 제가 문제 삼는 것은 현재 미디어 보수세력은 ‘수구지’나 ‘반개혁지’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계급지’라는 사고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개혁 대 반개혁이란 전선이 변화되면서 신계급사회 등장으로 인해 새로운 갈등과 긴장 나타나고 있는데, 미디어를 그렇게 봐야 된다.
김 : 소통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 사회세력이나 정치세력은 존재할 수 없다. 제가 와서 주요한 정책 실현 과정에서 보면 일부에도 소통권력, 소수의 언론권력 뛰어넘어 국민과 소통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부동산도 실수요자 놓고 논쟁하고 토론했던 게 아니라, 언론의 도전을 뛰어넘어 국민에게 전달하는 게 중요한 과제다. 참여정부의 도전에는 역사철학적 함의가 있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물리적 통치기구로 운영했다. 정보기구, 경찰기구가 들어가고 행정기구, 경찰조직이 있었다. 권력, 언론, 시민사회 순의 서열사회였다.
민주사회로 오면서 소통의 공간이 넓어졌고, 건강한 시민사회가 생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언론이 중요한 권력의 중심에 들어섰다. 소통권력의 균형있는 발전은 중요한 민주적 과제다. 소통권력과의 소통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어떤 정치세력이나 사회세력이 자기 정체성을 얘기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조 선생 말씀처럼 헤게모니 전략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하시는데, 저는 이런 문제, 보안법 비롯해 너무 정치중심적인 사고를 뛰어넘을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생각한다. 정치사회 영역이기도 하지만 시민사회 영역이기도 하다. 시민사회와 정치사회는 의제경쟁에서 탈락해 버린 것이 아니냐. 그래서 전선은 언론과 정부로 좁혀지고 같이 이 문제를 고민하고 치열하게 성찰해야 할 시민사회와 지식사회는 의제생산 능력을 상실해 버렸다. 헤게모니 전략 부재로 얘기할 게 아니라 역사철학적 과제에 대한 시민사회와 지식사회의 고민이 필요하다.
노 : 언론 대응과 관련해 참여정부 실패의 주요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참여정부가 언론환경 굉장히 안좋다고 얘기하는데, 방송이나 인터넷 포함하면 역대 어떤 정권보다 좋았다고 본다. 가장 큰 문제는 일부 언론, 거의 이렇게 정치세력화 돼있는 언론이죠. 사실 언론인가, 심판받지 않는 정치권력이다. 선출되지 않는, 선거에 나가지 않는 준 정당조직이라고 본다. 정치언론이라고 할 수도 있고. 이 부분에 너무 과도하고 민감하게 대응했다. 외국에 나가서도 특정 언론 보도에 댓글 다는, 결국 그 언론에 휘말리게 됐다. 그 외의 통로도 많고, 일부라고 얘기하기엔 센 집단이긴 하다. 거기에 반박하다 보니 휘말려버린 게 아닌가. 언론과 관련해 더 넓게 국민과 제대로 소통이 됐는가? 국민과의 소통을 언론이 왜곡시켰는가? 작년 1월, 올해 1월 가장 적극적으로 국민 앞에 나섰지만, 국민과 가장 소통한 정권으로 평가할 수 있느냐. 어떻게 보면 국민과 가장 소통 못한 것 아니냐. 시장 가서 사진 안찍겠다는 것 개혁적인 발상이지만 실제 사람들 고민 어떻게 들으려 했느냐, 대통령이 거칠게나마 심경을 쏟아낸 적 많았지만, 탈권위주의 권력이면서도, 검사와 대화한 이후로 국민과 대화가 없지 않았느냐. 소통의 부재도 문제였다.
정리= 안선희 박주희 조혜정 기자 shan@hani.co.kr
김창호 국정홍보처장. △51살 △서울대 철학과 △중앙일보 전문기자 △중앙일보 학술분야 선임전문위원 △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 부교수 △국정홍보처장(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노회찬 : (이하 노)물론 대통령이 행위의 가장 중심에 있기 때문에 평가에 왜 할 말이 없겠냐. 그러나 연극이 공연됐는데 연극 평론가들이 평론하는데, 다른 견해를 가진 평론가들이 논쟁에 뛰어들 순 있지만 배우가 자신이 주연한 연극에 대한 평론이라 하여 배우가 평론 논쟁에 뛰어드는 것과 비슷하다. 조희연 :(이하 조) 예를 드는 데는 역시 대단한 분….(웃음) 노 : 참여정부를 긍정적으로 보는 학자가 논쟁에 뛰어드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논쟁의 핵심인 대통령이 뛰어드는 순간 논쟁이 아니라 정치행위로 변질돼가는 우려가 있다. 또 하나는 너무 비판에 민감한 게 아닌가. 그러지 않으리라 생각되면서도 어떤 비판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많이 읽혀진다. 특히 세 가지 문제가 뭐냐면 참여정부가 뭘 잘못했느냐는 식으로 마치 잘못이 없다, 실패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이해된다. 비판하는 사람에게 ‘너희는 뭐 잘 났냐, 그쪽 진보는 잘못 없냐’고 하는데 논점이 다르죠. 마지막으로 더 잘못한, 더 나쁜 쪽에 대해선 뭐라고 안하느냐, 이 얘기도 다른 얘기다. 마치 남한 인권 얘기하는데 북한 인권엔 가만히 있느냐는 것과 같다. 핵심은 아니지만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 동의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학자들의 비판을 받아들이는데 있어 정부 권력이 직접 나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썩 바람직하지 않다. 김 : 당사자가 조희연 교수니까 해명하기 쉽지 않으실텐데 노 의원 말씀에 말꼬리 잡는 것 같아 죄송스럽지만 논쟁 자체가 정치적인 것이 아니냐. 저는 이미 대단히 정치적인 것이 됐고, 어느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논쟁 자체가 정치적인 함의가 있다. 학자들의 평론 자체도 정치적 맥락 속에서 이뤄지므로 학자들은 순수한 평론가로 남고 싶어 하겠지만 상당한 정치적인 행위다. 과거와 같은 평론가와 배우, 또는 언론과 정부라는 경계성이 허물어지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공권력을 갖고 정치행위를 했지만 민주화 이후 사회에선 언론이든 정부든 의제 관리를 통해 정치행위를 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평론가와 연극배우 사이에 구분이 없어지게 된다. 저는 그런 점에서 배우도 평론에 참여할 수 있다고 본다. 비판에 민감한 부분은 저도 안그러려고 노력하지만 사실과 워낙 다른 비판이 많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해명하려는 것이고 그 부분을 민감하게 반응한다 보지 마시고 실상이 어떤지 좀더 귀 기울여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면 많은 부분이 이해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양극화 책임:“참여정부는 노력했다” vs “최종적 책임은 현 정부가 져야 한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51살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창립 △매일노동뉴스 발행인 △진보정당추진위 대표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민주노동당 의원(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51살 △서울대 사회학과 △미국 남가주대(USC) 영국 랭커스터대 교환교수 △참여연대 사무처장 및 정책위원장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및 엔지오(NGO)대학원 교수(현)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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