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미(왼쪽)·최명규씨 부부가 서울 강서구 화곡동 집에서 지난해 말 입양한 딸 혜영(생후 3개월)을 돌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휴가 며칠 내는것도 ‘눈치’
“아이를 입양할 때 고개 조아려가며, 겨우겨우 나흘 휴가를 받았어요. 제가 낳았더라면 당당히 3개월 출산휴가를 받았을 텐데 말이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출근하다 보니 유대관계를 만들 시간이 너무 부족하죠.”
맞벌이 부부인 김은아(31·가명)·한진우(31·가명)씨는 지난해 4월 결혼 5년 만에 한 달 된 여아를 입양했다. 김씨가 초등학교 때 심장판막증으로 수술을 한 뒤 계속 약을 먹어야 해, 임신 대신 입양을 결정한 것이다. 김씨는 “둘째도 입양하고 싶지만 직장 사정 때문에 나중으로 미룰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벗고 저출산 문제를 풀기 위해 정부가 국내 입양을 장려하고 있지만, 입양 휴가 등 사회적 배려는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내 입양아 10명 중 8~9명이 1살 미만의 영유아라는 점에서 입양 휴가가 절실하다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보건복지부의 통계를 보면, 지난해 국내에 입양된 1332명 가운데 생후 3개월 미만의 영아는 945명으로, 전체의 71%를 차지한다. 여기에 3살 미만 유아 301명(23%)을 합치면, 국내 입양아의 94%가 3살 미만이다.
홀트아동복지회 김은희 사회복지사는 “입양은 출산만큼이나 가족에게 큰 변화”라며 “부모와 아기가 서로 정을 붙이고 익숙해지도록 돕는 최소한의 사회적 배려로 입양 휴가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지난해 7월 입양 휴가제(2주)를 도입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부터 공무원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을 뿐이다. 자산총액 기준 10대 그룹 가운데 입양 휴가제를 도입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해 입양 휴가제를 도입하려 했지만, “연월차 휴가로 충분하다”는 사외이사의 반대로 무산됐다. 상당수 언론은 입양 휴가제 도입을 두고 ‘도덕적 해이’라고 질타했다.
이에 대해 홀트아동복지회 등 4개 입양기관이 공동설립한 입양정보센터의 박미정 센터장은 “입양은 유전적으로 단절된 관계에서 하나의 가족이 되는 과정”이라며 입양 휴가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입양이라는 큰 결심을 하고도 맞벌이 부부들이 아기와 많은 시간을 갖지 못해 힘겨워하는 모습을 여럿 봤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덴마크(47주), 독일·일본(14주), 벨기에(15주), 미국(12주) 등은 입양 휴가제를 오래전부터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 결혼 14년 만에 생후 45일 된 여아 혜영이를 입양한 맞벌이 부부 박영미(42)·최명규(43)씨는 “처음엔 부서지기라도 할까 아기를 안는 것도 두려웠고, 아기가 밤중에 서너 번씩 깨는 바람에 낮에 꾸벅꾸벅 졸았다”고 말했다. 이들이 아기와 함께 사는 생활에 익숙해지는 데는 석달 가량의 시간이 필요했다. 부인 박씨가 휴직 중이었던 게 행운이었다. 박씨는 “아기를 입양할 테니 휴가 좀 쓰겠다고 회사에 말하기가 어려워 월차만 하루 낸 사람도 봤다”며 “입양도 제2의 출산인데 휴가가 필요한 게 당연하지 않으냐”고 말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국내 입양 현황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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